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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colcolor=#fedc89> 신라의 주 전주 (완산주) 全州 (完山州) | |
하위 행정구역 | 1소경 10군 31현[1] |
소경 | 남원경 |
주둔 정 | 거사물정 |
설치 | 685년 |
폐지 | 936년 |
후신 | 안남도호부[2] |
현재 | 전북특별자치도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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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체계였던 9주 5소경의 주 중 하나로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및 그 주변 지역에 해당된다.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와 완주군의 명칭 또한 여기서 유래하였다.[3]2. 역사
신라 기준으로 기원은 555년 현재의 창녕군인 비자벌에 설치된 하주(下州)이며, 대가야가 멸망한 후인 565년 옛 가야의 다라국이었던 합천군으로 옮겨져 대야주(大耶州)로 개칭되었다. 642년 대야성 전투의 패배로 경산시로 옮겨져 잠시 압량주(押梁州)가 되었지만[4] 백제 멸망 후 합천군 일대를 회복하며 661년 다시 대야주(大耶州)가 되었으며, 663년 백제의 거열성을 점령한 뒤 거열주(居烈州)가 되었고 685년 최종적으로 옛 백제 영토인 전주시에 옮겨져 완산주(完山州)가 되었다.[5]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 도성 되어 한 국가의 중심지이기도 했다.3. 여담
지금까지 쓰이는 전주(全州)라는 이름은 경덕왕 때 한화정책으로 지은 것인데, 남북국시대 당대에는 한화지명이 쉽게 정착하지 않아 이후로도 '완산주'라는 지명으로 더 많이 등장한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 행정구역을 정리할 때 본격적으로 한화지명을 사용하면서 '전주'라는 명칭이 제대로 정착하게 된다.[1] 경덕왕 당시[2] 940년에 다시 전주로 환원[3] 이는 백제의 완산군(完山郡)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에 해당하는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 있던 순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이렇게 저렇게 표기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옛 마한 소국의 토착지명을 그대로 계승한 것에 해당한다.[4] 이때 압량주 군주(軍主)가 된 사람이 바로 김유신이다.[5] 이와 동시에 옛 가야 영토가 강주로 떨어져나갔다. 신라 당시의 하주를 정신적으로 계승한 것은 강주지만, 어쨌든 군사적 목적으로의 하주는 완산주가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