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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colcolor=#fedc89> 신라의 주 강주 (청주) 康州 (菁州) | |
하위 행정구역 | 11군 30현[1] |
주둔 정 | 소삼정 |
설치 | 565년 |
폐지 | 940년 |
후신 | 진주 |
현재 | 경상북도 남서부 및 경상남도 서부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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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일신라의 지명통일신라의 행정구역 체계였던 9주 5소경 중 하나로 옛 가야의 영역이자 대체로 지금의 경상남도 서부 지역에 해당한다. 다만 지금의 경상북도 소속인 고령군과 성주군이 통일신라 강주 소속으로 들어가는 등[2] 세부 경계선은 현재와는 달랐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淸州)와는 한자가 다르고 아무 관련이 없다.[3] 한화 이후 지명은 강주. 중심지는 강주로 지금의 진주시.[4] 11개 군 27개 현을 관할하였다. 김헌창의 난 때 장안국에게 협조했다.
2. 역사
변한을 거쳐, 대가야와 아라가야가 주도하던 후기 가야의 영향권과 범위가 비슷하다.562년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킨 후, 신라는 기존 가야의 중심도시였던 고령군이나 함안군 지역 대신 합천군의 대야성을 이 지방의 중심 도시로 밀어주었다. 대야성이 중심지였기 때문에 대야주, 대량주라고도 불렸다. 642년 대야성 전투로 백제에 잠시 넘어가 주치는 잠시 압독(경산시)으로 피난 갔지만, 백제를 멸망시키고 1년 뒤인 661년 다시 대야성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합천 대야성은 방어에 유리한 지역이라 중시되었던 건데 백제가 사라지면서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685년 지금의 진주시로 주치를 옮기고 주 이름도 강주가 된다.
후삼국시대에는 윤웅과 그 부하
이후로도 진주는 경상남도청, 도청 서부청사 등이 자리하며 21세기 현대까지 쭉 서부 경남 지역의 중심도시로 남아있다.
3. 그밖에
가야와 관련이 있다고 하나 가야 전성기의 중심지는 다른 호족인 소율희의 영역이었던 김해였고, 김해는 엄연히 양주에 속했다. 또 진주와 거창은 시기에 따라 백제의 영향력에 있었는 등 가야와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만 금관가야 중심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거의 강주의 영역에 들어가며, 신라가 가야를 최종적으로 흡수하던 6세기 중후반경 가야의 영역과는 대체로 일치한다.4. 소속된 군현[8]
* 강주: 지금의 경남 진주시- 가수현: 지금의 경남 합천군 삼가면 일대로 추정[9]
- 굴촌현: 지금의 경남 하동군 옥종면 일대
- 난포현: 지금의 경남 남해군 삼동면 난음리 일대
- 평산현: 지금의 경남 남해군 남면 평산리 일대
- 성량현: 지금의 경남 하동 금남면 일대
- 악양현: 지금의 경남 하동 악양면 일대
- 하읍현: 지금의 경남 하동군 진교면 일대
- 문화량현: 지금의 경남 고성군 상리면
- 사수현: 지금의 경남 사천시 사천읍
- 상선현: 지금의 경남 고성군 영현
- 현무현: 지금의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일대
- 의령현: 지금의 경남 의령군 의령읍
- 아주현: 지금의 경남 거제시 아주동 일대
- 명진현: 지금의 경남 거제시 거제면 명진리 일대
- 남수현: 지금의 경남 거제시 남부면
- 단읍면: 지금의 경남 산청군 신등면
- 산음현: 지금의 경남 산청군 산청읍
- 운봉현: 지금의 전북 남원시 운봉읍
- 이안현: 지금의 경남 함양군 안의
- 여선현: 지금의 경남 거창군 위천면
- 함음현: 지금의 거창군 가조면
- 야로현: 지금의 경남 합천군 야로면 및 가야면 일대
- 신복현: 지금의 경북 고령군 우곡면
- 삼기현: 지금의 경남 합천군 대병면
- 팔계현: 지금의 경남 합천군 초계면
- 의상현: 지금의 경남 의령군 부림
- 수동현: 지금의 경북 구미시 인의동 일대
- 계자현: 지금의 경북 칠곡군 약목면
- 신안현: 지금의 경북 성주군 성주읍
- 도산현: 지금의 경북 성주군 가천면
[1] 경덕왕 당시[2] 이 지역들은 지금은 대구광역시의 근교 위성도시가 되어 경상북도 방향과 동질적이지만, 과거에는 낙동강을 경계로 서쪽은 가야, 동쪽은 신라 세력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남쪽 경상남도 방면향과 동질적이었다.[3] 지금의 청주시의 이름은 당시 웅주의 서원경이었다.[4] 진주에서 '강주'라는 지명은 현재 정촌면에 위치한 강주 연못과 인근 마을 이름으로 남아있다.[5] 소격달의 아버지 소송은 원래 신라의 귀족으로 강주도독으로 부임해 있다가 강주의 유력 호족이었던 차윤웅과 왕봉규에게 살해당했다. 왕봉규는 소송의 아내 정효부인 김씨가 이미 임신해 있는 상태인 걸 알고도 받아들였고 태어난 아이는 왕격달이란 이름으로 살다가 후에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어 소씨 성을 회복한 뒤 복수를 위해 차윤웅, 왕봉규와 대립하게 된다.[6] 이후 소격달은 꾸준히 고려의 장수로 머물다가 운주성 전투 때 공을 세우게 된다.[7] 후백제가 항복할 때 강주도독이라는 직함을 가진 용검이 항복을 했다.[8] 출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잡지 지리지[9]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는 내용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