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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1. 한국사 후삼국시대의 호족
후삼국 및 고려의 호족과 군벌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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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逢(삼국사기) / 元奉(고려사)
후삼국시대의 호족.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1]에 있던 하지성의 호족이었다.
후삼국시대 초반에는 독자 세력을 지키고 있었지만 인근 형세가 고려에 유리해 보이자 922년 고려에 항복했다. 왕건은 원봉의 귀순을 환영하며 원봉이 안동 풍산읍 지방을 순주(順州)라는 이름으로 승격시키고 본성으로 계속 다스리도록 했다.
923년 왕건은 원봉에게 원윤(元尹) 관직을 하사했다.
그가 고려를 택했지만 927년 후백제의 견훤의 기습 공격으로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약탈당하고 곧이어 공산 전투에서 고려군이 크게 패배하면서 한때 삼한의 대세가 후백제에 넘어가는 듯 했다. 견훤은 고려군이 제대로 지원하지 못 하는 틈을 타 경북 북부 지역을 맹공격했고, 929년 7월 견훤이 직접 5천 군대를 이끌고 의성부를 공격할 때 성주 홍술이 항전했으나 패해 전사했다. 곧이어 의성 옆 순주로 공격해 들어오자 원봉은 고려사 기록으로는 후백제에게 항복, 삼국사기 기록으로는 도망쳤다고 한다. 이후 기록을 봐선 도망쳤다고 해도 견훤이 순주를 약탈하고 물러간 후 다시 성에 돌아온 듯 하다.
왕건은 이 소식을 듣고 화를 냈으나 원봉의 지난 공을 생각해 그를 용서하고, 대신 순주를 하지현(下枝縣)이라는 하위 행정구역으로 강등시켰다.
견훤이 고창 전투에 대패한 다음날인 930년 1월 22일, 견훤은 패잔병을 모아 순주성을 기습했다. 이때 원봉은 방어가 불가능하다 여기고 밤에 또 도망쳤다. 결국 순주성은 후백제군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순주 백성들은 완산주로 옮겨졌다.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은 순주로 행차해서 직접 원봉을 처벌했다.[2] 그가 후백제에 잠깐 붙었든 도망쳤든 간에 본보기를 세울 필요가 있었던 듯 하며 이후 원봉이 어떻게 됐는지는 더 이상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