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및 고려의 호족과 군벌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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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彦
생몰연대 미상
1. 개요
후삼국시대 강주 지역의 호족. 경주시나 천안시 지역이 연고지일 가능성도 있다.2. 생애
본래 강주 호족 왕봉규의 부하로, 왕봉규가 중국 후당에 조공할 때 사신으로서 건너갔으며 이후 927년 4월 영창, 능식이 이끄는 고려군이 강주를 침공해 강주 소속이던 전이산, 노포, 평산, 돌산 4개 지역을 점령하면서 왕봉규와 휘하 세력을 무너뜨렸는데, 그 와중에도 임언은 지위를 인정받아 고려국의 사신으로서 다시 중국 후당에 사신으로 건너가게 된다.고려사 후비열전에 따르면 태조 왕건의 수많은 후비 중 11번째 부인인 천안부원부인(天安府院夫人) 임씨가 임언의 딸이며, 효성태자(孝成太子) 왕임주(王琳珠)와 효지태자(孝祗太子)를 낳았다고 한다. 이들은 천안낭군(天安郞君)이란 별칭으로도 불렸는데 경종 시기 복수법에 얽혀 살해당했고[1] 결국 후사는 끊겼다.
이처럼 여러 차례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된 것으로 보아 임언은 유학과 한학에 능통한 학자였던 것으로 추측되며, 딸 천안부원부인이 경주 출신이란 점이나, 호칭의 천안을 봐선 본래 연고지는 경주나 천안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