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000038><colcolor=#fff> 영국 제22대 인도군사령관 콜린 캠벨 Colin Campbell CCB, KS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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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초대 클라이드 남작 콜린 캠벨 경 Colin Campbell, 1st Baron Clyde | |
| 출생 | 1792년 10월 2일 | |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글래스고 | ||
| 사망 | 1863년 8월 14일 (향년 70세) | |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채텀 | ||
| 국적 | | |
| 학력 | 글래스고 문법학교 버니스사관학교 | |
| 복무 | 영국 육군 (1808~1860) | |
| 최종 계급 | 육군 원수 | |
| 참전 | 반도 전쟁 미영전쟁 아편전쟁 제2차 영국-시크 전쟁 크림 전쟁 세포이 항쟁 | |
| 재임기간 | 제22대 인도군사령관 | |
| 1857년 8월 ~ 1861년 4월 | ||
1. 개요
영국의 군인.2. 생애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출생명은 콜린 매클라이버(Colin Macliver)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후, 외삼촌 존 캠벨 소령이 그를 사관학교에 보내 훈육시켰고, 1808년 졸업한 뒤 제 9 이스트노퍽 보병연대 소위로 임관했다. 즉 캠벨은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성이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캠벨이라는 성을 썼으며, 그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힌 바가 없어서, 후에 그가 발라클라바 전투의 영웅이 된 이후 이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그 중 하나는 그의 외삼촌 존 캠벨이 고위층에게 막 임관한 콜린을 소개했을 때, 고위층이 콜린을 존 캠벨의 아들로 착각해 콜린 캠벨이라 부른 것이 굳어졌다는 것이지만,[1] 다른 하나는 그가 사실은 진짜 존 캠벨의 사생아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서 웰즐리, 존 무어 휘하로 종군하며 프랑스군과 전투를 치렀다. 1809년 중위로 진급해 발체렌 전역에서 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입원했다.이후 지브롤터에서 전투를 치렀으며 토머스 그레이엄 장군 휘하 경보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대위로 진급해 미영전쟁에 투입되었으나 총상을 입고 귀국해야했으며 이 부상으로 몇 년간 입원하는 바람에 워털루 전투에는 참전하지 못했다.
1818년 제21 왕립 북영국 퓨질리어 연대에 배치되어 중남미에서 발생한 노예반란 진압에 투입되었다. 1828년 아일랜드에 주둔했고 1835년 제9보병연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제98보병연대에 배치되었다. 제1차 아편 전쟁 당시 휴 고프 휘하로 진강 전투에 참가했고 대령으로 진급한 후 홍콩에 배치되었다.
1847년 동인도 회사령 인도 라호르로 배치되어 임시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시크 전쟁 당시 3개의 전투에서 활약해 공을 세우며 바스 훈장을 수여받았다. 1849년 댈후지 백작 제임스 브라운램지의 요청으로 인도에 잔류했다.
크림 전쟁 당시 1854년 준장으로 진급 후 하이랜드여단장으로 참가해 알마 전투에서 러시아군과 전투를 치렀고 발라클라바 전투에서도 남쪽 계곡 내 작은 언덕에 배치되어 러시아 공격진의 좌익을 저지하게 되는데, 병력이 워낙 열세여서 방진은 커녕 고작 두 줄의 병사로 방어선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으나 러시아 기병대와 치열하게 싸워 계곡을 사수했다. 이 공으로 준장으로 진급해 케임브리지 백작의 후임으로 제1사단장이 되어 레단 전투를 지휘했다. 1855년 대장으로 진급했고, 발라클라바에서 무능함으로 악명을 떨친 사령관 래글런 남작이 병사하고, 그 후임으로 부임한 심슨 경 역시 악명만 쌓은 채[2] 사임하자, 그가 총사령관으로 추천되었으나, 후배격인 코드링턴 경이 임명되었고, 이에 격분한[3] 캠벨은 사임하고 귀국해버렸다. 결국 정치가들의 협상에 의해 공동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다시 크림 반도로 향했으나 사실상 전쟁은 끝난 상태였고, 이후 남동군관구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이 발발하자 영국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인도로 파견되었고 캘커타에 상륙후 영국 벵갈군이 방어하고 있는 러크나우로 진군해 세포이들을 격파하고 러크나우를 구원했다. 이후로도 분산되어 있는 세포이들을 각개격파하며 항쟁을 진압했다.
귀국 후 1860년 전역했으며 1862년 원수로 진급했다. 1년 후 1863년 사망했다.
[1] 아마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임관 전부터 콜린 캠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간에서 바로 뒤에 나온 소문이 사실로 굳어지자 이를 덮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추정된다.[2] 어느정도였냐면, 이때 영국군은 러시아군에게 "영국군은 당나귀가 지휘하는 사자다"라는 놀림을 받았다. 물론 그 반세기 뒤엔 이번에 러시아군이 "러시아군은 당나귀가 지휘하는 곰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3] 비록 코드링턴 경이 크림 전쟁에서 유능함을 입증하기는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전투 한번 치뤄본 적 없이 제독이었던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령까지 진급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화가 날 만 하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