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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프랭스 Port-au-Prince[1] Pòtoprens[2] | |
국가 |
|
지역 | 서부 주 |
면적 | 48.27 km2 |
시간대 | UTC-5[3] |
인구 | 1,200,000명 [A] |
인구 밀도 | 27,395명/km2 [A] |
1. 개요
아이티 수도이다. 프랑스어로 왕자의 항구란 뜻[6]으로, 이름의 유래는 "Le Prince" 라는 배가 이 도시에 정박했던 것을 계기로 지어졌다고 한다. 개발도상국 최초로 등록박람회인 1949 포르토프랭스 엑스포를 개최하였다. 면적은 약 37km2이며, 인구는 2012년 기준 942,194명이다. 한 나라의 수도이지만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의 피해가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데다 갱단들의 행패로 인해 매우 낙후되어 있다.2. 역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히스파니올라 섬에는 타이노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기원전 2600년경에 큰 통나무 카누를 타고 도착했다. 이들은 주로 현재 베네수엘라 동부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들은 스페인 사람이 도착하기 30년 만에 사라졌다. 이 지역에 대한 스페인의 직접 통치가 확립되자, 오반도는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착지를 세웠다. 이 정착지는 1535년 프랑스 탐험가들에 의해, 그리고 1592년 영국인들에 의해 다시 불태워졌다. 이러한 공격은 스페인 식민 행정부에 큰 타격을 입혔고, 1606년 이 지역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늘날 포르토프랭스 지역은 일부 해적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하지만 현재 포르토프랭스 지역은 약 1650년경부터 프랑스 해적들이 정착하면서 프랑스는 이곳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스페인은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으나, 1697년 리스위크 조약을 통해 해당 지역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게 되었다. 1706년, 드 생트-앙드레라는 선장의 함선 Le Prince가 만에 정박하면서 ‘왕자의 항구’라는 뜻의 포르토프랭스가 되었다.1770년에 포르토프랭스는 카프아이시앵을 대신하여 프랑스령 생도밍그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1804년, 이곳은 신생 독립국 아이티의 수도가 되었다. 1806년 장 자크 데살린이 암살당하자, 포르토프랭스는 혼혈이 지배하는 남부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1807년에는 항구를 외국 상업에 개방하며 국가의 주요 무역 중심지로 성장했다. 1820년 아이티가 다시 통일되면서 포르토프랭스는 아이티 전체의 수도로 재등장했다. 1949년에는 도시 창건 2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엑스포가 개최되었으며, 외국 전시관과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21세기 들어서는 최근 수년간 갱단 폭력, 문화유산 파괴, 치안 붕괴와 같은 심각한 사회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25년, 역사적 호텔인 오로프손의 파괴와 예술품 대량 긴급 대피 등은 이러한 위기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3. 경제
포르토프랭스는 아이티 최대 경제 및 금융 중심지 중 하나이다.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는 가장 많이 소비되는 커피와 설탕을 수출하며, 과거에는 신발과 야구공 같은 다른 상품도 수출한다. 하지만 현재 갱단이 설쳐 실업률은 높으며, 불완전 고용으로 인해 경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4. 관광
- 아이티 국립 판테온 박물관 (Musée du Panthéon national haïtien) : 1983년 개관한 박물관으로 아이티 독립 영웅과 아이티의 역사 및 문화 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는 스페인과 식민지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앙리 크리스토프가 자살할 때 사용한 은제 권총, 투생 루베르튀르가 매일 기도할 때 사용한 묵주, 높이가 4미터에 달하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범선 산타 마리아 호의 닻이 있다.
- 올로프슨 호텔 (Hôtel Oloffson) : 1935년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중심부의 카푸아 거리와 크리스토프 거리 모퉁이에 지어진 호텔로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유래한 열대풍 진저 브레드 하우스 양식의 건축물이다. 2025년 7월 6일, 아이티에서 장기간에 걸친 극심한 무법 상태와 갱단 폭력이 지속되던 중 , 이 호텔은 정체 불명의 방화범들에 의해 소실되었다.
- 철시장 (Marché en fer):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공공 시장 중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이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기념물 중 하나이다.
5. 자매도시
6. 사건사고
2010년 아이티 지진이 일어나자 포르토프랭스는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2024년 3월부터 아이티는 갱단에 의한 혼란이 지속되며 포르토프랭스의 대부분 지역을 갱단이 점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주민들 스스로 자체방어에 나서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 유럽연합 등에서도 대사관 철수를 시작했다.#
포르토프랭스로 향하는 길목은 갱단에 의해 막힌 것으로 알려졌다.#
포르토프랭스의 국제공항과 항구도 혼란으로 인해 폐쇄됐다.#1#2 3월 4일에는 갱단과 경호인력간에 공항에서 총격전도 발생했다.#
2024년 현재 갱단이 도시의 80%이상을 점거, 거리 곳곳에 시신들이 널린 상태이다. 비행기는 이미 막혔지만 어떤 루트로든 절대 방문하지 않아야 목숨에 좋다.
결국 2024년 5월 1일부터 아이티 전 지역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었다.
2024년 11월 11일, 포트로더데일에서 포르토프랭스로 향하던 스피릿 항공 951편이 갱단의 총격에 피격되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급히 회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전 국제선이 결항되었다.
[1] 프랑스어; 실제 발음은 '뽀르 오 프랭스'에 가깝다. Port의 끝에 있는 t가 연음(liaison)되지 않는데 이 점이 반영되지 않아서 '포르토프랭스'로 통용되고 있는데, 아이티에 대한 지식이 보편화되면 '포르오프랭스'로 표기법이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2] 아이티 크레올어.[3] 대한민국(UTC+9)보다 14시간 느리다.[A] 2022년 기준[A] [6] Port-au-Prince. Prince는 왕자라는 뜻 뿐만 아니라 대공, 귀족(고위 귀족을 부를 때의 칭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콕 집어서 왕자의 항구라고 번역하기는 좀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