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8 14:58:54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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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7747f><colcolor=#ffffff>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제3회 올림픽 대회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대회
Games of the III Olympiad
St. Louis 1904
파일:1904_olympics.png
[1]
파일:attachment/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1904.jpg
대회기간 1904년 7월 1일 ~ 11월 23일
개최국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참가국 12개국
참가선수 651명[2]
경기종목 17개 종목, 91개 세부 종목
개회선언 데이비드 R. 프랜시스
세인트루이스 루이지애나 매입 기념 박람회 조직위원장[3]
개·폐회식장 프랜시스 필드

1. 개요2. 상세3. 사건사고4. 종목
4.1. 비공식 종목
5. 메달 집계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1904년 7월 1일부터 11월 23일까지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최된 제3회 하계올림픽. 20세기 최초의 올림픽이자 미국이 치른 첫 번째 올림픽이다.[4] 원래는 시카고가 개최권을 얻었으나 같은 해에 세인트루이스 박람회가 열리게 되어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는 세인트루이스에서 같이 열도록 하였고 IOC가 받아들임으로써 세인트루이스로 결정된다.

앞의 파리 대회와 쌍벽을 이루는 파행의 대회. IOC위원장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시 만국박람회의 일환으로 열린 이 대회는 교통사정 때문에 유럽에서 8개국 52명만이 참가했을 뿐(외국 선수 모두 합쳐도 118명), 한마디로 이 대회는 526명을 출전시킨 미국의 전국체전이었다. 중고등대학부의 별도 대회가 치러졌고 프로 경기도 끼어드는 등 난맥에 있어서는 앞의 대회를 확실히 앞질렀다.

2. 상세

루이지애나 구입 100주년 박람회의 부속 행사로 올림픽을 활용하려는 중서부 실력자들의 압력으로 치러진 대회. 시카고가 개최 예정이었지만 세인트루이스가 독자적인 체육 대회를 열겠다고 위협, 개최권을 가져온다. 개회식과 폐회식의 절차도 없이 진행되었다.이 대회가 얼마나 개판인지는 이 사진 하나로 증명된다. 골목에서 펼친 이 허들 경기의 장면이 이 대회의 실상을 잘 알려준다.[5]

1900 파리 올림픽 때도 그랬지만 이 올림픽은 아예 올림픽과 만국박람회가 같이 열렸으며, 기간도 그에 맞춰서 상당히 길게 진행이 되었었다. 다만 기간이 길긴 했어도 당시 러일전쟁 때문에 분위기가 묘해졌던지라 거리가 먼 국가에서는 참가를 하지 못했으며, 대부분 미국 선수나 캐나다 선수들이 참가하였다. 여자선수가 참가하긴 했지만 고작 6명만 참가했을 정도. 대회 자체도 망했지만, 이 망한 대회를 어떻게든 끌어올려보려고 계획했던 인류학의 날 행사가 기획부터 19세기식 제국주의인종차별주의의 엑기스라 할 수 있는 대문제작이었던지라 욕만 대차게 먹은 올림픽이기도 하다.

만국박람회와 러일전쟁등 국제정세로 두차례나 올림픽이 유명무실해지자 IOC는 아테네에서 유럽국가를 중심으로 한 중간대회를 개최키로 합의, 그리스는 적국인 오스만 제국까지 참가시키면서 중간 대회에 열의를 보였으나 첫 대회 직후 크레타 전쟁에서 참패하고 발칸반도 일대의 긴장이 누그러들지 않는 상황이라 중간 대회 이후 그리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전대회에서 제외되었던 역도와 레슬링이 추가되었으며, 복싱과 한손 역도(덤벨), 레슬링 자유형과 근대 10종경기가 정립되고 정식종목으로 추가되었다. 농구야구가 시범종목으로 추가된것 이외에는 전대회와 크게 차이가 없는 종목을 보여준다.

참고로 1, 2, 3위에게 금, 은, 동메달을 수여하기 시작했던 대회가 이 대회부터였다.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종목수도 상당히 세분화되었고 메달도 많이 걸렸지만, 유럽 쪽 선수들이 거의 참가를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메달을 미국이 쓸어갔다. 미국 선수단도 가장 많은 526명이 참가하였으며, 세부종목까지 포함해서 메달을 전부 미국이 쓸어간 종목[6]도 있고, 메달이 많이 걸린 육상도 대부분의 메달을 싹쓸이 해갔을정도.[7] 이쯤 되면 올림픽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거의 미국 국내 대회 수준이다. 1, 2회 대회 때 미국의 가능성을 봤던 쿠베르탱은 이 대회에 많은 기대를 걸었으나 만국박람회의 시시한 부속행사 수준으로 전락하자 매우 실망한 나머지 아예 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수영과 사이클에서는 미터가 아니라 마일로 측정하기도 하였다.

이 올림픽의 주 경기장이었던 프랜시스 필드는 현재 워싱턴 대학교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소유로, 학교 스포츠 팀의 홈 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3. 사건사고

  • 전 대회에 이어 마라톤 경기에서 또 하나의 사고가 터졌는데, 뉴욕에서 온 미국의 프레드 로즈 선수는 경기 도중 탈진해 주저앉았다가 자신을 태워준 승용차를 타고 스타디움 앞 6km 지점에서 내려 스타디움으로 들어갔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이 우승컵을 수여할 때 진짜 우승자 토마스 힉스가 들어왔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로즈는 자신의 행위를 실토함으로써 우승은 힉스에게 돌아갔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지만 마라톤 코스 40km[8] 중에서 17.6km나 차를 얻어타고 오는 짓거리를 벌인 로즈의 기록은 당연히 말소되었다.
  • 이 외에도 당시 남자 개인 마라톤 경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우선 기온이 섭씨 32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서 40km나 되는 코스에 음수대가 딱 하나밖에 없었으며, 이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탈수와 탈진으로 중도 탈락했다. 출전선수 32명 중 완주한 선수가 부정행위를 저지른 로즈를 포함해도 절반이 안되는 15명 뿐이었을 정도. 로즈의 탈락으로 우승자가 된 토마스 힉스도 탈수증세로 닥터스탑이 걸렸다가 트레이너가 신경자극제인 스트리키닌을 탄 브랜디를 먹이는 극약처방으로 간신히 달린 것이라고 하며, 결승선에 도착할 즈음에는 탈수와 스트리키닌에 의한 환각증세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고 한다.
  • 이 대회 최대의 반영웅은 육상에서 미국의 완전독식을 저지한 캐나다의 56파운드 투해머 선수 에티네 데스마테우, 그로 인해 일국의 육상종목 완전 석권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기록은 세워지지 않았다.[9]
  • 올림픽 페막 후, 117년 후인 2021년 7월에 일부 미국 선수들이 아직 국적을 획득하기 전의 상태였다는 게 드러나 메달 획득국에 대대적인 조정이 가해졌다.
    • 그 예시로, 미국인으로 여겨진 프랭크 비초니는 1917년에야 미국 국적을 얻었다고 확인되어 이탈리아 시민으로 밝혀졌다.
    • 두 명의 노르웨이계 미국인 선수인 찰스 에릭센과 베른호프 한센 중, 찰스는 1905년 3월 22일 전까지는 국적을 얻지 못했다고 확인됐고, 베른호프는 아예 얻지 못했다고 여겨져 역시 노르웨이 국적으로 바꾸는 심사가 2013년도에 진행되었다.
    • 프랑스계 미국인 알베르(앨버트) 코헤(코리)는 마라톤에서 은메달, 혼성 팀으로 은메달을 하나 더 획득한것이 확인되었다.

4. 종목

4.1. 비공식 종목

  • 게일릭풋볼
  • 농구[27]
  • 모터사이클
  • 미식축구
  • 야구
  • 헐링

5. 메달 집계

1904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메달 집계
최종 집계
<rowcolor=#000,#ffffff> 순위 국가 메달 합계
1 [[미국|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 미국
79 84 82 245
2 [[독일 제국|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 독일
4 4 5 13
3 [[캐나다 자치령|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868-1921).svg
]] 캐나다 자치령
4 1 1 6
4 [[쿠바 공화국(1902~1959)|
파일:쿠바 국기(1902-1906, 1909-1959).svg
]] 쿠바[28]
3 0 0 3
5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896-1915)천사.svg.png
]] 헝가리
2 1 1 4
6 [[올림픽|
파일:오륜기.svg
]] 다국적 팀
1 1 0 2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파일:영국 국기.svg
]] 영국
1 1 0 2
8 [[그리스 왕국|
파일:그리스 국기(1822-1978).svg
]] 그리스
1 0 1 2
[[스위스|
파일:스위스 국기.svg
]] 스위스
1 0 1 2
10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 오스트리아
0 0 1 1

6. 관련 문서


[1] 공식 엠블럼으로 인정되지 않는 문양이다.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된 문양으로서, 간단한 연적 사항과 개최지 이름만 들어간 로고로 제작되었다.[2] 남자: 645명, 여자: 6명, 여자 6명은 전부 미국인으로 양궁에만 참가하였다.[3]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다. 올림픽 개회선언을 국가원수가 하지 않은 최초의 사례다.[4] 이 올림픽 이후 미국은 하계와 동계를 통틀어 9번의 올림픽을 더 치르게 됐다. 1932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32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1960 스쿼밸리 동계올림픽,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등을 치렀고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2034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이다.[5] 뒤에 있는 잘린 흑인 선수는 흑인 최초의 메달리스트인 조지 포지이다.(200미터, 400미터 허들에서 동메달을 땄다.)[6] 양궁, 복싱, 사이클, 로크, 테니스, 줄다리기, 수구, 레슬링[7] 어느 정도냐면 당시 1위했던 미국이 금 78, 은 82, 동 79, 총합 239개이며, 그나마 그 차점인 쿠바가 금 5개, 3위인 독일이 금 4, 은 4, 동 5, 총합 13개로 거의 넘사벽 수준으로 따버렸다.[8] 이 당시엔 아직 마라톤 코스 거리 관련 규정이 정립되기 전이라 공식 경기에서도 코스가 42.195km가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당시 코스 길이는 24.85마일, 약 39.99 km였다.[9] 위의 마라톤 우승자 토마스 힉스도 당연히 미국인이다.[10] 미국,캐나다만 참가. 이후 올림픽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다시 정식종목으로 부활했다.[11] 독일 3명, 미국 7명[12] 캐나다 이누이트 원주민에게서 유래된, 긴 채로 공을 받아 패스하는 종목.캐나다가 2팀, 미국 1팀으로 총 36명.[13] 당시 대회에 참가했던 42명의 선수들 중 메달을 딴 2명이 아직 미국 시민권을 따지 않아 노르웨이 국적이었던 상태였다.[14] 1900년 파리 올림픽 당시 크로케 종목과 유사하다. 긴 망치 같은 막대로 공을 치는 게이트볼 같은 종목. 미국선수들만 참가했다.[15] 미국만 참가(18명).[16] 미국만 참가(18명).[17] 미국만 참가(21명).[18] 32명 중 독일 4명, 오스트리아-헝가리 2+1명, 나머진 죄다 미국선수.[19] 미국만 참가(남23+여6)[20] 그리스선수 페리클레스 1명 빼고 전부 미국인, 덤벨은 미국인만 참가.[21] 제일 많은 나라가 참가했다. 10개국.[22] 2명이서 보트 노 젓는 경기. 캐나다 9명 빼고는 죄다 미국 선수들.[23] 그리스와 남아공이 참가했으나, 초반에 다 미국선수들한테 졌다.[24] 미국, 캐나다만 출전[25] 36명 중 독일 선수 1명 빼고, 죄다 미국인.[26] 디아즈와 폰스트를 쿠바 선수로, 반 조 포스트, 타담을 미국 선수로 계산하면 쿠바 선수 2명, 미국 선수 8명.[27] 1936년에 공식종목으로 등장했다. 일반부, 대학부, 고등부, 초등부까지 있었다![28] 찰스 타탐과 알버트 반 조 포스트가 미국 국적으로 인정되면서, 이들이 딴 메달은 미국에 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