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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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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7대 종단
개신교 불교 가톨릭 원불교 유교 천도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

1. 개요2. 대한민국 개신교 역사
2.1. 조선 개항기2.2. 일제강점기2.3.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2.4. 대한민국 현재
3. 특징
3.1. 교파 구성
3.1.1. '개혁'과 '쇄신'3.1.2. 목사 또는 개교회의 교단 이동
3.2. 부정적 평가3.3. 가톨릭과의 관계3.4. 정치 참여3.5. 축도3.6. 스톨
4. 논란5. 한국 개신교의 여성목사 안수6. 비판 7. 교세
7.1. 지역별7.2. 소득별7.3. 교단별
8. 선교
8.1. 국내8.2. 국외
9. 봉사 활동10. 교포 사회에서의 역할11. 교육기관
11.1. 초등학교11.2. 중학교11.3. 고등학교11.4. 전문대학11.5. 대학, 대학원대학11.6. 목사 임명에 대한 논란11.7. 군종장교요원 특혜 논란
12. 관련 링크13. 관련 문서14.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의 개신교를 다루는 문서이다.

2. 대한민국 개신교 역사

2.1. 조선 개항기

개신교의 한국 유입은 서학(가톨릭)의 전래보다 상당히 뒤늦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예수회의 주도로 동양을 비롯한 해외 선교에 적극적이었지만 개신교가 주류인 영국,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의 북방국가들은 18세기까지 국외 선교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이후, 영미를 주축으로 장로회감리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많이 오게 됨으로 루터교회성공회가 주류인 유럽의 개신교 구성과 달리[1] 우리나라의 개신교 교단은 장로회감리회가 주류가 되었다.

1832년 유대계 독일인 루터교 목사 칼 귀츨라프에 의해 한국에 처음 개신교가 전파됐다. 칼 귀츨라프는 중국에서 선교활동 중에 조선의 소식을 듣고 다른 지원 없이 '혼자' 개인자격으로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의 1000t급 로드 암허스트호에 의사 겸 통역사로 승선하였다. 그 후 황해도와 군산만을 돌아서 1832년 7월 25일, 충청도 고대도 부근에 도착하였다. 비록 수십여 일 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서양 감자 파종법과 포도 재배를 조선인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짧은 기간동안 칼 귀츨라프 선교사는 직접 한글을 배워서 귀환 후에는 중국 선교 잡지에 발표하여, 독일과 영어권에 조선을 소개하였고 자신이 독자적으로 주기도문을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조선에선 25일을 머문 끝에 지방관과 필담을 나눴지만 중국 허락없이는 통상을 금한다는 조정의 뜻에 따라 순순이 조선을 떠나게 된다. 칼 귀츨라프는 해당 교단과 선교회의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고, 선교 중 필요한 비용은 자비로 지출하였으며, 더불어 외부 지원도 없고 조선의 협조 또한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개신교계에서는 영국인 개신교 목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를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로 보고있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토마스 목사를 선교 중에 사망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긴 하나 어쨌거나 일단 선교 목적으로 조선에 와서 사망한 것 자체는 맞다. 토마스는 중국에서 조선인 가톨릭 신자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하여, 1865년 조선에 입국하여 성경을 배포하며 몇달 간 선교 활동을 하였다가 배가 파손되어서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였다. 이듬해인 1866년 병인박해에 항의하기 위하여 조선으로 향하는 프랑스 함대에 통역관으로 합류하기로 되어있었으나, 로즈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는 때마침 베트남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상해를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토마스는 미국의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다시 조선으로 떠났다. 자세한 내용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참고하길 바란다.
이후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믿기 시작하면서 개신교가 조선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개항기에 이르러 많은 북방국가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면서 대한민국, 조선의 개신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아펜젤러언더우드, 알렌, 스크랜튼과 같은 선교사들은 배우지 못한 조선인들의 교육 및 계몽을 위하여 삶을 헌신하였다. 이들은 지금의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2], 최초의 서양식 사립학교 배재학당, 숭실학교 등의 근대 학교들을 설립했다. 또한 여성교육에도 뜻을 두어, 여성 선교사인 스크랜튼는 한국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설립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배화학당, 숭의여학교, 정신여학교, 삼일소학당등의 여학교도 설립했다. 연세대학교 설립자로 알려진 언더우드 선교사는 개신교 최초의 조직교회 새문안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 서울 각지에 승동교회, 정동교회 등의 개신교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렇게 개신교가 급격히 확장된 이유는 양반 계층 입장에서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최단 루트가 개신교 선교사를 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고, 오랫동안 소외받았던 일반 민중 및 하층계급 입장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이념이 담긴 기독교 정신과 민주주의적 사상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특히나 평양은 오래전부터 권력에서 밀려난 비주류 세력이 이루던 지방이었고 많은 상인들이 활동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 교세가 빠르게 확장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선 개신교의 산실이었고 평양신학교는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의 대표적인 신학교의 전신이다. 안타깝게도 6.25 전쟁 직후 혹부리 독재자의 가혹한 탄압 탓에 이북 지역의 기독교 전통은 씨가 말라버렸다. 지금의 평양은 북한 주체사상의 던전처럼 되어버린 상태. 이와 비슷하게 대구광역시도 일제강점기에는 공산주의자가 많아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릴 정도였으나 지금은 보수적인 도시다.

사실 선교 초기부터 주류 양반 계층은 제사를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로 문제 삼는 것 때문에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부정적으로 보았다. 기독교는 제사를 우상숭배로 여겼기에 조선인들은 기독교를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는(無父無君)' 사학(邪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항 이후 선교 제한이 풀리면서 청나라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서양인들이기에 조선 조정에서도 역시 서양인들을 무서워했고, 이 때문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수탈이 심한 지역에 들어가 백성들 대신 지방관들에게 대들어서[3] 지방관들이 전전긍긍했다.[4] 민중들이 개신교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교 과정에서 서양 신문물을 선물하며 선교했기에, 신문물에 거부감이 없는 상인 계층들에게서 환영 받았고, 이전의 천주교처럼 아녀자들이 신자의 대다수가 되었다.

사실 제사 문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리들이 유림들 입장에서도 거부감이 없었고[5] 이 때문에 천주교와 다르게 양반 계층에도 퍼지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나온 표현이 다름아닌 위군위민(爲君爲民)의 종교. 특히 평양 대부흥을 기점으로 1907년 경에는 천주교와 신자 수가 역전하게 된다.

한국 개신교의 특징 중 하나인 술, 담배를 금지하는 풍습도 이 때 자리잡기 시작했다. 본래 선교사들의 주류 교단인 장로회, 감리회부터가 음주 및 흡연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고,[6] 선교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생활 개선의 일환으로 교육 및 의료 사업 등과 함께 금주, 금연 운동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천주교 근본주의자들은 조선왕조를 열교왕조라고 하였고 교황청은 싫어하면서 왕조에 야합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정체성을 문제삼았다. 개신교를 유대교와 야합한 종교라고 비판했듯 이번에는 유교와 야합한 세속주의적 종교로 비난했다. 더욱이 우리가 실컷 고생하며 개척했는데 낼름 다 먹었다고 비판했다.[7]

사실 천주교는 왕조에 대해 그렇게 저항하는 입장이 아니였었고, 교리적 특성만 놓고 보면 오히려 개신교 측이 더 저항해야 옳았겠지만 뭔가 입장이 바뀌어 버린 이유는 황사영 백서 사건 몇십 년 뒤 상황이 반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즉 개신교가 위국위민 종교가 될 시점에 천주교는 프랑스 혁명 때처럼 봉건주의 및 제국주의와 동시에 싸우는 종교가 되고 있었기 때문.

또한 상대적으로 뒤늦게 전파되기 시작한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괜히 왕조를 건드렸다가 라이베리아나 청나라 태평천국의 난 같은 일이 터질까 봐 왕조에 크게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2.2.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개신교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굴하여 친일을 하기도 했었으나,[8] 개신교도 서양 선교사들의 개신교 정신으로 비롯된 민주주의, 국민주권주의, 삼균주의를 포함한 건국 이념이나, 3.1운동을 비롯한 항일 민족 운동에서 개신교도 참여한 역사도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개신교의 중요 사건은 저항과 파괴로 볼 수 있다. 서양 선교사들로부터 받아들인 개신교가 민족 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을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세우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유관순, 안창호와 같은 독립운동가들과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해냈으나, 일제강점기 말기로 갈수록 극심한 탄압을 거치며 많은 수의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인들이 변절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 한국의 개신교는 인터넷상 반 개신교 성향에서 극딜하듯 친일에 적극 나선것이 아니다. 신사참배 문제와 관련하여 타종교, 비종교인과 오십보 백보 또는 도찐 개찐. 같은 비판과 내부적 반성은 타당하다 할지라도, 아무 근거없이 '개독이 친일에 앞장섰다.'같은 헛소리는 엄연히 역사 왜곡이다. 독립운동을 이끈 교회를 이어받은 신학교나 교회를 주축으로 하는 친일 연구가 현재에도 활발하다. 재밌는 것은, 개신교 학계는 물론 반개신교 성향의 일반인들도 이 자료들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

단적인 예로 일제시대 내내 가장 극심한 탄압을 받은 종교는 천도교와 더불어 개신교였고, 신사참배에 거부하여 2천명의 신도들이 체포되고 200여개의 교회가 강제폐쇄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50여명의 신자가 순교했다.

개신교는 일제가 1919년 3.1운동까지 구한말 민족사학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개신교계 미션스쿨들을 통폐합시켜왔기에, 서양학문을 토대로 민권 사상등을 가르치는 통로로 여겨왔고 이는 해방까지 계속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중에 16인이 개신교측 인사였는데 이 당시 개신교의 교세는 전체 인구의 1.1~1.3%에 불과했다. 당연히 일제는 개신교를 통치에 방해되는 집단으로 여겼고, 지속적인 감시 대상이었다. 한편 식민지 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에서도 개신교인을 비롯한 기독교인은 노동조합 참가자, 사회주의자들과 더불어 특별고등경찰[9]의 주 감시 대상이었는데 기독교의 교리상 국가 국가신토의 천황숭배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

3.1 운동의 경우처럼 제암리 교회 학살이 전세계에 널리 퍼진것도 한국교회의 희생과 선교사의 덕이었고, 3.1 운동 과정 기독교인 체포자는 전체의 17.6%인 3천여명에 달했었다. 특히 유관순을 비롯한 여성 체포자는 470여명중 309명이 개신교도였다.

일제 강점기에 개신교는 구한말 신문물과 새로운 사상의 유입을 가져왔고 이는 민족의식을 가진 지도자들을 대거 배출하면서 반일의 집결지가 되었다. 1911년 105인 사건의 경우 개신교인이 92명이었고, 사실상 일본은 개신교단을 탄압대상으로 삼았다. 구한말 개신교 인사중 대표적인 인사들은 독립운동가중 상당비율을 차지하는데 이승훈, 양기탁, 이회영-이시영 형제, 이갑, 조만식, 여운형, 전덕기 목사, 유동열, 이동휘, 이동녕, 강우규 전도사, 이재명, 김상옥, 김마리아, 유관순, 안창호, 김구, 김규식, 반민특위의 창설자 김상덕등의 인물들은 개신교인이었다. 이는 '개신교의 대표적 인물은 이승만만 있고 나머지는 친일파다.'라는 선동과는 정반대다. 독립운동사 인물들 가운데 개신교 인사들도 민족 해방에 앞장섰다.
한국 개신교의 일제강점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신사참배 문제이다. 그러나 당시 이 문제에 가장 거세게 항의한 종교 역시 개신교였으며, 신사참배의 경우, 1938년 4월을 기점으로 일부 목회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교단 차원에서 결국 신사참배를 결의하기로 했다. 이는 불교의 경우 딱히 신사참배를 막을 만한 교리가 없었고 조직은 일본 승려에 장악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특유의 신불습합 문화가 그대로 조선에까지 유입되었고, 천주교는 일본의 천주교와 교황청에서 세속권력과 타협을 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강한 교단 내에선 신사참배에 대해 극심하게 의견이 갈리고 권력에 맛본 어용목사들이 하나 둘씩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면서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이 자발적으로 폐쇄하여 불복종하거나, 용인하여 존속하는 결정을 따랐다. 이에 반발한 사람들이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다. 아예 박헌영처럼 유물론을 받아들여 반기독교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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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결의한 직후, 평양신사를 참배하는 장로회 총회 임원들 모습. 1938년 9월 12일 자 <조선일보> 사진.

이하는 개신교 진보 언론 뉴스엔조이에서 개신교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위해 쓴 칼럼(이종록 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에서 인용된 내용의 일부를 재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소위 "개신교인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어야 하는 성경적 이유".
북미합중국의 워싱턴 동상이 있는데 합중국 국민으로는 그 동상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고, 합중국 국기에 합중국 국민으로 누구나 다 경의를 표합니다. 합중국은 기독교국이니만치 기독교인이 대다수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 우상숭배자로 간주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일본 황국신민만이 국조숭모(國祖崇慕)하는 의식에 기독교인이 어찌 참례할 수 없으며 황국(皇國)을 대표한 일본 국기에 경의를 표함이 어찌 기독교인에게 죄가 되겠습니까. 전화위복(轉禍爲福)하는 자 있으나 기독교인은 그러한 의미에서 참배함은 절대로 아니요 국가 의식에 국민의 의무로서 참례(參禮)함이 당연한 줄로 각오(覺悟)하고 시인(是認)한즉 양심이 평안하고 충군애국지심(忠君愛國之心)이 날이 감을 따라 두터워집니다. 사신우상(邪神偶像)은 금수 곤충 어별(魚瞥)의 형상으로 된 것인데 어찌 우리의 조상이 그 우상과 동류(同類)가 될 수 있으랴? 그런즉 신사참배하는 일을 우상숭배라고 한다면 이(此)는 불경죄(不敬罪)에 가깝다고 말하여 둡니다.
《청년》 9, 10호, 1939년 2~3월호. 김승태,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반성〉 p.410
기독교의 설립자라고 칭할 만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로마 제국의 공민(公民)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랑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반도인들은 일본 제국의 신민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랑할 것입니다. 그것이 반도인의 유일한 활로입니다. 반도인들은 이 기회에 죽은 과거를 청산하고 산 장래를 위하여 활동하여야 되겠습니다. 선각자가 된 기독교도들은 민중에게 이 활로를 지시할 책임이 있습니다.
《청년》 9, 10호, 1939년 2~3월호. 김승태,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반성〉 p.432

여기에 일본 측 개신교에서도 당연히 거들고 나섰다.
조선 전도부의 어용적 성격은 1919년 3․1독립운동에 대한 반응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3․1독립운동을 목격한 와타세는 즉각적으로 '조선 소요 사건과 그 선후책'을 《新人》 4월 호에 기고해, 3․1운동에 참가한 조선 기독교인들은 구약의 정신이 농후하고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이 없는 유대교도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즉, 만일 기독교인들이 산상수훈의 정신을 안다면 그들은 그런 식으로 반행해서는 안 될 것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형제로서 더 포용적으로 내선일체를 대성하는 정신'에 근거하여 행동했어야만 했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건전한 신앙을 근거로 해 건전한 사상'을 배양함으로써 유다주의를 극복하고 '양 민족의 새로운 영적 일치'를 달성하기 위한 조합교회의 조선 전도의 의의를 더욱 강조하였다.
《한국 기독교와 역사》 제5호(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양현혜, 〈일본 기독교의 조선 전도〉 p.195~196

그러나 위의 문제들은 어디까지나 교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가결했을지는 몰라도 개개인이 모두 신사참배를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당시 신사참배를 했던 목사들이나 교인들 중에서는 진심으로 후회하고 뉘우친 사람들도 많다. 특히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수많은 유명 목사들이 당시 신사참배한 사실을 공석에서 밝히고 용서를 비는 것이 유행했다.

김재준을 위시하여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인 장로회의 일부 세력들과 조합교회(組合教会)[10]는 이 당시 친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조합교회는 해방 이후 완전히 퇴출돼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현대에도 진보 / 에큐메니컬 교단이 가장 까이는 큰 이유가 바로 신사참배를 가벼이 여겼다는 점이다.(뉴스앤조이 기사) 참고로 신사참배를 최초로 한 학교는 조선신학교로써, 현재의 한신대학교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을 맺자면 개신교계에선 적지 않은 개신교 신자와 교회가 신사참배 굴복한 문제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당시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고 있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들을 기리나 그런 순교자들과 애국자들이 있다하여 타종교와 신사참배를 순응한 당시 식민지 치하의 동포들에게 우월감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많은 변절과 교단적으로 하나님을 배도한 것의 큰 죄를 지은 것은 기독교인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계 과거 반성을 위해 나온 자료들을 반기독교계에서 적극 이용하며 마치 친일종교로 몰아가는것은 씁쓸해한다. 기독교계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신사참배에 거부한것은 불교 교단의 결정과 달리[11] 타종교와[12] 일반 대중들은 당사자들의 투옥은 물론 가족들의 배급, 진학, 직장생활등을 포기하는 불이익 때문에 그런 시도 조차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사참배 문제는 두말할 것 없이 대한민국 개신교계의 최대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 주기철, 이기동, 한상동, 이원영, 손양원등 일부 목사님들만 거부했고 나머지는 적극적 친일에 나섰다고 비방하는 글이 있는데 이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이미 만주사변 이후부터 전체주의 교육을 강화하며 개신교계 사학들과 갈등을 빚었으며 조선 신학교나 숭실학당처럼 신사참배를 따를 수 없기에 자진 폐교하거나 군소 사학들은 사학 재단 운영권을 강탈당한 사례도 있었고, 친일적 행태를 띄는 교단, 목사에 반발하고, 일본의 현지 교단의 결정을 전혀 준수하지 않고 신사참배에 거부하여 2천명의 신도들이 체포되고 200여개의 교회가 강제폐쇄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50여명의 신자가 순교했다.

처음엔 1932년 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신사참배 사건이 일어났다. 남장로회에서 경영하던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가 만주사변에 대한 기원제에 참가하지 않거나 참가하더라도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 도 당국의 엄중 문책을 받았다. 그 다음해 9월에는 평양 숭실학교를 비롯한 10여개의 개신교 학교가 평안남도 도지사의 통첩을 무시하고 ‘만주사변 1주년 기념 전몰자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아 해당 학교가 시말서를 쓰게 되었다. 1933년 9월 18일 함경남도 원산에서도 캐나다장로회 소속 진성여자보통학교가 만주사변 2주년 기념일에 거행된 순난자(殉難者) 위령제에 참석을 거부하여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개신교계 학교에 신사참배가 문제가 된 것은 대륙침략을 계기로 조선총독부가 정신교화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신사참배 문제가 크게 확대되는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1935년 11월 14일 평양 기독교계 학교의 교장들이 평안남도 지사의 지시에 불복하고 평양신사에 참배하지 않은 사건이다. 식민지 관료로 대만총독부 문교국장을 역임한 바 있는 평남지사 야스타께(安武直夫)는 기독교계 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었다. 그는 먼저 기독교계 학교 교장들을 굴복시키려 했다. 이해 11월에 들어서서 그는 이 지역 공사립 초등학교장 및 중등학교장 회의를 잇달아 소집하여 회의가 끝나는 날 평양신사에 참배토록 했다. 그러나 기독교인 학교장들은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그러자 14일에 개최한 중등학교장 회의에서는 야스타께 지사가 회의 전에 평양신사에 참배한 후 회의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숭실학교장 매큔(G.S.McCune, 尹山溫)과 숭의여학교장 대리 정익성(鄭益成), 순안 의명학교 교장 리(H.M.Lee, 李希滿)는 "기독교의 교리상 따를 수 없다."라고 거부했다. 그러자 평남도 당국과 총독부는 기독교계 학교에 대해 설득, 경고하면서 금후 교장 자신의 신사참배 의향 여부와 학생들의 신사참배 의향 여부를 서면으로 회답하도록 요구했다. 이런 요구의 배후에는 교장의 파면과 강제 폐교의 강경방침이 있었다. 그 결과 매큔에게는 1936년 1월 숭실학교장 및 숭실전문학교장직 인가가 취소되고, 스눅도 1월 22일 숭의여학교장 대리인가를 취소당했다. 그 후 총독부는 2월 21일자로 학무국장이 각 도지사를 통해 기독교 각 교파 포교관리자 및 대표자에게 ‘신사와 종교에 관한 건’이라는 통첩을 보내, 신사의 봉사는 종교가 아니며 신사참배는 국민교육상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서 막나가는 일제의 강압에 맞서 외국 선교회 계열의 사학에선 여러 논의와 대응이 나왔는데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는 1936년 11월 전주에서 개최된 남장로회 선교사 연례회의에서 신사참배를 강요한다면 교육사업에서 철수할 수 밖에 없음을 결의했다. 그들은 선교본부에 연락, 해외선교부 총무 풀턴(C.D.Fulton)의 내한을 요청했다. 풀턴은 일본에서 출생한 2세 선교사로서 신도가 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937년 2월에 내한하여, 신사참배를 시키기보다는 학교를 폐쇄할 것을 허락하는 13개항의 소위 ‘풀턴 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이 해 9월에 남장로회 학교들의 폐교 신청이 잇달았는데, 광주 수피아와 숭일학교, 목포의 정명학교와 영흥학교가 1937년 9월 6일에, 전주의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군산의 영명학교와 멜볼딘여학교가 각각 9월 8일에, 순천의 매산학교와 매산여학교는 9월 21일에 각각 폐교를 신청했다.

호주 장로회 선교부는 1936년 2월 7일 총무 맥라렌(Ch.I.McLaren, 馬羅連)의 주재 아래 회의를 열고, 산하의 기독교 학교가 신사참배를 할 수 없다고 결의했다. 그 뒤 선교본부는 교육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학교를 계속 경영하기를 원했고 또 일본 당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하여 “신사참배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또 1938년 9월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후, 그들은 그 이듬해 1월 특별위원회를 소집, 신사참배와는 관계를 끊되 학교를 유지하려는 모든 노력은 그래도 경주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절충적인 노력은 한계를 들어내 그 해 대부분의 선교부 소속 학교를 폐쇄시켰고 동래 일신여학교만 1940년에 폐교되었다.

캐나다 선교부는 1930년대 초에는 학교의 문을 닫더라도 신사참배를 거부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38년에 이르러, 신사에서의 행사는 애국적인 것이요 종교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는 총독부 당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 의식들에 참가하고 학교를 계속 경영하기로 했다. 캐나다 선교부 산하의 기독교 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문을 닫아야 하는 일은 없었다. 1898년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한 캐나다 장로교회는 다른 세 교단보다는 신학적 입장이 자유로웠던 데다 1925년 감리교회·회중교회와 연합하여 캐나다연합교회로 개편된 후 한국에 들어온 다른 세 장로교단과는 달리 신사참배 문제를 타협적으로 처리했다. 선교학교 문제의 타협적 처리는 감리회 선교부도 마찬가지다.

1938년 2월 총독부 경무국은 ‘기독교에 대한 지도대책’을 마련하고 기독교계 기관들에 대해 변질과 개편을 강요하는 한편 기독교 연합기관을 해산시키거나 국제기구와 연결된 기관들에게는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도록 종용하며 일본 안에 있는 동일 계열의 기구와 통폐합해 나갔다. YMCA와 YWCA, 조선주일학교연합회, 감리회의 청년회인 엡웟회 등 그 대상들을 점차 확대시켜 갔다. 한편 1937년 6월부터 1938년 3월에 걸쳐 일제가 안창호 계열에 대한 탄압을 가하여 수양동우회 사건을 일으켜 180여 명의 지식인들을 검거했다. 이어서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더욱 조성하기 위해 1938년에는 이승만 계에 대한 흥업구락부 사건을 일으켜 관련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했다. 이는 조선의 기독교 지식인세력을 외세로부터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기독교회 외곽에 대한 이같은 강압책으로 장로교회를 집중 공격하던 일제는 1938년에 들어 각 노회별로 신사참배를 유도, 강제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친일목사로 돌변한 이승길(李承吉), 김일선(金一善) 등을 내세워 개별적으로 신사참배에 찬성하도록 설득했다. 2월 9일 조선에서 가장 교세가 강한 평북노회가 일제에 굴복, 신사는 국가의식이라 하여 신사참배를 사실상 결의했다. 뒤이어 2-3월 중에 총회 산하 전국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예배당에서 제 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총회 전에 일본 경찰주기철, 이기선, 김선두등 신사참배 반대 지도자들을 사전 구금했을 뿐아니라 선교사들과 총대들에게는 사전에 신사참배 결의를 방해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이튿날 속회, 신사참배를 불법적으로 가결시켰다. 당시 결의를 지켜봤던 김양선의 구술을 보면
“다음날 오전 9시 30분 총회가 재개되었을 때에 교회당 내외에는 수백명의 사복경관으로 완전 포위되었고 강대 아래 전면에는 평남 경찰부장을 위시하여 고위 경관 수십명이 긴 검을 번쩍이면서 기라성같이 자리를 잡고 앉았고 총대들의 좌우에는 그 지방 경찰관 2명씩이 끼어 앉았고 실내 후면과 좌우에는 무술경관 100여명이 눈을 부라리고 서 있었다. 그 살벌한 분위기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주기철 목사, 이기선 목사, 김선두 목사등 신사참배를 적극 반대하는 유력한 교회 지도자들은 사전에 모두 구금되었고 저들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끌려온 27노회(만주 4노회 포함) 대표 목사 88명, 장로 88명, 선교사 30명 합계 206명이 넋을 잃고 앉아 있을 때에 10시 50분 이미 조작된 각본대로 평양·평서·안주 3노회 연합대표 평양노회장 박응률 목사의 신사참배의 결의 및 성명서 발표의 긴급제안이 있었고 박임현 목사와 길인섭 목사의 동의와 재청이 있었다.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전신을 떨면서 ‘이 안건이 가하면 예라고 대답하십시오’라고 물었다. 이때에 제안자와 동의·재청자의 10명 미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했고 그들 외의 전원은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은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표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았으므로 수백 경관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일대 위협을 표시했다.
당황한 총회장은 ‘부’를 묻지 않고 그냥 만장일치의 가결을 선언하였다. 이때에 이런 사태가 있을 것을 예상한 선교회는 약속해 두었던대로 방위량 선교사를 선두로 2,3명의 선교사들이 회장의 불법선포에 항의하는 한편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주장하려고 했으나 경찰관의 강력한 제지로 발언이 막히자 선교사 30명 전원은 차례로 기립하여 ‘불법이오’‘항의합니다’라고 외쳤다. 봉천노회 소속 헌트(B.F.Hunt, 韓富善)선교사는 무술경관의 제지를 뿌리치고 불법에 대한 항의를 외치다가 그들에게 붙들려 옥외로 축출당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소란 속에 총회 서기는 성명서를 낭독하였고 평양 기독교 친목회 회원 심익현 목사는 총회원 신사참배 즉시 실행을 특청하였다. 동일 12시에 부회장 김길창 목사의 안내로 전국노회장 23명이 총회를 대표하여 평양신사에 참배함으로써 장로교회마저 그들의 불법 강요에 굴하고 말았다.”

장로회 총회에서 이처럼 결정이 내려졌으나 이 날 선교사들은 따로 모여 총회에 항의서를 제출하는 등 몇 차례에 걸쳐 항의했으나 일본 경찰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연구로는 서울쪽에선 신사참배에 순응적이었고 오히려 평양지역이 신사참배에 더 반대했으며 선교사들 조차 선교회, 교단, 신학교 내부에서도 서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한때 카더라로 알려진 박형룡 신사참배 용인설은 현재 연구론 조선 신학교 폐교전 박형룡등이 만주로 망명한것으로 나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감리교회도 신사참배에 순응하게 되었다. 미 감리회 선교부가, 이 참배는 애국적인 것이요,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정부의 행사라는 일본 정부의 선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자 거의 때를 같이하여 한국 감리회 또한 신사참배를 수용하게 되었다. 1936년 양주삼 총리사는 4월 10일자 「감리회보」에 ‘신사문제에 대한 통첩’을 게재하여 감리교회가 신사참배를 문제삼지 않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 뒤 1938년 9월 3일에도 양주삼 총리사는 통고문을 내어 교단 안의 여론을 잠재우는 데에 부심했다.
"신사참배는 국민이 당연히 통행할 국가 의식이요, 종교가 아니라고 한 것을 인식하셨을 줄 압니다. 그런고로 어떤 종교를 신봉하든지 신사참배가 교리에 위반이나 신앙에 구애됨이 없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감리회 지도부의 이같은 행태가 교계 전체의 공감을 얻은 것은 아니다. 감리회 교도들 가운데서도 교단의 정책과는 달리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고난을 겪은 이들이 없지 않다. 이 밖의 여러 교단들도 제대로 항거하지 못하고 순응하는가 하면 교단자체가 해산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단 지도부의 이같은 훼절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신사참배 정책에 불응하면서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이들이 나왔던 것이다.

침례회는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44년 교단이 강제해산을 당한다. 성결교회는 신사참배 문제로 결국 교단을 자진해산했다. 그런데 교단 인사 중에 황국신민선서와 대동아전쟁의 승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고 창씨개명을 한 인물들이 다수 있긴 하다.

이후 전개로는 이런 상황에서 신차참배에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나게 된다. 신사참배가 ‘가결’되고 난 뒤에 장로교단 안에서는 개인적인 혹은 합법적인 차원에서 이에 저항하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막아보려는 시도들이 없지 않았다. 평양신학교 학생 장홍련이 평양노회장 김일선의 기념식수를 벌목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신학생들이 신사불참배 운동을 확산시키려다가 결국 학생 다수와 박형룡 김인준 교수가 검속된 사건이 있다.

김선두(金善斗) 목사와 박관준(朴寬俊) 장로는 조선 총독부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일본 정계의 그리스도인들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김선두 목사는 김두영 윤필성 박형룡 등을 대동, 1938년 8월 24일 동경에 도착, 박영출의 안내로 일본 정우회 부회장 외무부장 중의원 의원 마츠야마(松山常次郞) 장로와 군부의 원로 히비키(日疋信亮) 장군(장로) 등을 방문, 한국 교회의 수난상을 진정했다. 그 결과 이를 들은 이들이 동 9월에 조선에 와서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을 만나게 되었다. 박관준 장로는 1939년 1월 안이숙 박영창을 대동하고 도일하여, 일본 제국의회 회의장에 들어가 진정서를 투척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일본 경찰의 집요한 방해와 일제 신사참배 강요정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들 개인적인 차원의 합법적 저항과는 달리 반대투쟁을 조직화하여 ‘거부항쟁’의 단계로 이끈 이들도 있었다. 개인적이든 조직적이든, 저항자들 중에는 수감, 투옥되는 것은 물론이고 순교에까지 이른 이도 있었다. 신사참배 거부를 권유하고 거부자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중심 인물로 국내에서는 평안남도주기철(朱基徹), 평안북도의 이기선(李基宣), 경상남도의 한상동(韓尙東), 전라남도손양원(孫良源) 등이 있었고, 만주지역에서는 박의흠(朴義欽)·김윤섭(金允燮)·헌트(B.F.Hunt, 韓富善) 등이 있었다.

신사참배 거부항쟁자들에 대해서 당국은 개별적으로 위협, 구금했던 때도 있었다. 1938년 장로회 총회를 앞두고 주기철·이기선·김선두 목사 등을 예비구금 형태로 검속한 것도 그 일례다. 당국은 이렇게 위협과 고문을 가해도 굴하지 않는 주동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영향력이 확산되지 않도록 했다. 이런 경우, 예비검속 형태로 구금하여 정식 재판에 넘기지 않고 고문하고 장기구금했다. 때문에 장기적인 구금으로 순교한 이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사건이 평양지방법원에서 취급했던 이른바 ‘예수교도의 신사불참배 교회 재건운동사건’이다.

이 사건의 관련자들은 “모두가 조선예수교 장로파 교역자 혹은 독실한 신자들로서 1939년 8월 이래 성서의 이른 바 말세론에 기초하여 머지 않아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된다고 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일본) 국체를 변혁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신사불참배 재건총회 조직 준비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전국적으로 이를 확대 강화하기 위해 활동하고 또한 여러 가지 불온언사를 함부로 한다”고 했다. 일제는 이를 근거로 1940년 9월 20일 새벽을 기하여 전국적으로 신사참배 거부항쟁자 193명을 검거했다. 평양지방 검사국은 1941년 5월 15일에 이기선 목사 등 68명을 송치하고 그 1년 후인 1942년 5월 12일에 그 중 35명을 기소, 예심을 청구하고, 8명은 기소 유예, 나머지 25명은 불기소 처분했다. 예심 심리는 3년간이나 계속되어 그 동안 최봉석 목사, 주기철 목사, 최상림 목사, 박관준 장로 등 4명이 순교하여 평양지법 예심종결 결정에서 제외되었고, 이기선 목사 등 21명에 대해서는 1945년 5월 18일에야 예심종결 결정이 났다.

신사참배 거부를 위해 만주로 망명했음에도 일제는 동북삼성(만주)에서도 신사참배가 강요했고, 신사참배 반대투쟁이 있었다. 1936년 10월부터 만주 하얼빈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던 헌트(韓富善)은 1939년 봉천노회에서 제명된 후 계속 한국인들을 격려하며 항쟁하다가 1941년 10월 하르빈 경찰서에 수감되었고 1942년 6월 강제 추방되었다. 한편 하얼빈 경찰은 헌트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활동에 주목하다가 1940년 3월 19일 약 70여명을 체포, 1942년 2월 3일 재판에 넘겼고, 김윤섭·박의흠·안영애·김신복 등은 수감 중 혹은 풀려난 지 얼마 안되어 순교했다.

국내에서도 본격화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많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투옥되었다. 그들은 치안유지법, 보안법 혹은 불경죄를 적용하여 중형 처벌했다. 주기철을 비롯하여 이영한(李榮漢, 감리), 최태현(崔泰鉉, 안식), 전치규(全穉珪, 침례), 박봉진(朴鳳鎭, 성결), 손갑전(?) 등은 옥사했고, 남은 이들은 8.15해방과 더불어 석방되었다. 오랜 동안 옥에서 시달린 결과 출옥 후에 곧 목숨을 거둔 이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것이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가 해방 전후에 조선 내의 기독교인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명단을 작성하는 단계였는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사족으로 일본 측 개신교라고 해서 모두 신사참배에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과 정반대로 세력이 미약한지라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도키와 다카오키(常葉隆興)[13]를 필두로 한 몇몇 개혁교회 목회자들은 신사참배를 "우상숭배요 죽음에 이르는 죄악"(偶像礼拝であり、神に対して死に値する罪であった)으로 규정하고 반성한 바가 있다.

2.3.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신사참배 거부 건으로 투옥되었다가 해방 직후 출옥하게 된 이른바 '출옥 성도' 계열 인물들이 교계 정화를 부르짖으며 기성 교단에 회개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로 인해 그 동안 은폐되어 왔던 트라우마가 해방과 거의 동시에 터질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특히 고신 교단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신사참배 반대 순수신앙파 장로교 교인과 목사들이 대표적이었는데, 기성 교단은 이들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신학교 교육 과정에서도 조직적으로 은폐 및 왜곡[14]하면서 스스로의 치부를 덮는 데 급급했다.[15] 이 때문에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스스로 평가하는 것조차 '해방과 동시에 본격적인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논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개독교 쪽을 참고.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신사참배와 관련한 문제를 완전히 물타기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이 때 찾은 새로운 타겟이 바로 북한김일성 정권을 위시한 공산주의 세력이었다. 해방이 되고 북한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탄압을 받자, 믿음의 자유를 찾아서 평양에서 활동하였던 종교 관련 인사들이 대거 월남한 역사가 있다. 개신교의 최대 신학교인 총신대학교장신대학교는 각각 전신이 평양장로회신학교, 평양신학교였다.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정도로 개신교가 크게 부흥했던 지역들 중 하나였지만 북한의 우익 대학살을 거치면서 지금은 주체사상의 성지로 전락해 버렸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북한 정부가 개신교도들을 비롯한 모든 기독교도들에게 큰 핍박을 가했다. 당시에는 북한에서의 우익과 기독교도들의 교집합이 많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북한이 6.25전쟁을 거치면서 기독교도들에게 크게 대학살을 진행하였다. 현재도 기독교도들을 적대계층으로 분류하고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무조건 정치범수용소로 끌고 가는 등 기독교에 대한 매우 강도 높은 핍박을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외국의 기독교인들이 이를 문제 삼아서 진상조사에 나설 정도이다. 그렇기에 한국 기독교인들의 북한에 대한 적대감은 유대인들이 나치에 대해 적대감을 보이는 정도와 비슷하다. 기독교인의 정치적인 성향과 상관없이 이 시기의 일을 물어보면 크게 치를 떨 정도로 6.25 전란기는 한국 기독교의 암흑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인들은 북한 정부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다. 북한의 핍박이 신사참배를 요구한 일제의 핍박보다 더 지독했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한국 기독교인들의 북한에 대한 증오심은 엄청나다. 물론 저 말 그대로 신사참배를 완강하게 거부한 성직자들만 끌고갔던 일제와 달리 북한은 예배를 하는 모습만 보여도 도륙을 낼 정도로 핍박이 극심했기에 증오심이 그만큼 큰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들 각자의 정치성향의 차이 때문에 판문점 선언에 대한 견해차가 있지만 그래도 북한의 핍박에 대한 증오심과 남북 통일 이후 북한 수뇌부 처벌에 대한 소망을 공통적으로 갖고있다. 차후 북한 정부 수뇌부가 이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적대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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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전쟁 직후의 기독교인들의 북한에 대한 분노는 엄청났다. 전쟁 직후의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은 기독교인들에게 반공을 내세워서 자신의 지지를 호소할 정도였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 당시 이승만 장로와 이기붕 권사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는 포스터[16]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도 한국 보수정치에 있어서 기독교의 지분이 클 정도로 기독교인들이 북한에게 입은 상처는 매우 컸다. 국내 보수 진영이 북한 기독교인을 비롯한 북한 인권 문제에 꽤나 적극적인 것은 기독교인들이 보수 정치에 주는 영향이 꽤나 크기 때문이다.

이승만, 김구, 김규식과 같은 대한민국의 건국 지도자들은 개신교 정신을 기반으로 기독교 건국론을 주장했고, 이들은 상해임시정부, YMCA, 흥사단에 참여했던 신실한 개신교인들이었다.
반만년 길고 유구한 역사에 처음으로 민주주의 시대를 개막하고 국회를 열게 된 것은 사람의 힘과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우리 민족을 사랑하사 대한민국을 탄생케 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대한민국 국회 속기록 제 1권 1쪽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열리던 날, 초대 국회의장 이승만은 위와 같이 연설함으로서 대한민국이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민주주의공화국이라 연설하였다. 그렇게 남한에는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주의, 국민주권주의, 삼균주의를 포함하여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보수적 가치를 내걸고 북한 김일성을 겨냥한 반공내셔널리즘[17]을 외치기 시작했다.[18]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은근히 불교를 탄압하였는데, 개신교 교회에서는 세금을 받지 않았던 것과 달리 사찰에는 세금을 따로 받고 승려들의 환속을 권장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승려들이 당시 이승만에게 아첨하며 "또 다른 부처님"이라는 망언을 해댔다.[19][20] 지금도 보수적 성향이 강한 한기총에선 이승만 대통령을 국가의 아버지라 추앙하며 조선일보뉴라이트와 같이 동상을 만들자고 하는 이들도 꽤 적지 않다.

1970년대 근대화와 새마을 운동을 계기로 해서 개신교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교회들이 굉장히 근대적인 이미지를 내세워서 개신교 믿으면 서양식으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하고[21][22] 이러한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기복신앙적인 면과도 결합하게 되었다. 지금도 도시와 마을 곳곳에 빨간 십자가 교회 철탑이 많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전통 문화들 가운데 개신교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을 없애는데 개신교 영향이 컸다.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에만 하도 도시산업 선교회 등 친노동운동적인 개신교 단체가 존재했으나 정부의 탄압으로 소멸당하거나 규모가 축소되었다. 다소 예외일 수 있겠으나, 70-80년대 빈민선교활동과 두레 공동체 운동으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10월 유신 반대로 옥고를 치렀다가 뉴라이트 연합 상임 이사가 된 김진홍 목사 같은 경우도 있다.

민주화 운동에 관한 것으로는,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학문적으로 민중신학, 해방신학처럼 기독교 신학을 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진보적인 신학들을 한국 상황에 맞게 해석하여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을 실천한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종교 간의 대화, 곧 다른 종교를 적대시할 대상이 아닌 같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대화하려는 노력을 했으며, 기독교 교파에 따른 전통들의 다양성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기독교의 공동 신조에 근거하여 존중하고 일치하려는 교회 일치 운동으로 교회 분열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였다. 또한 개발독재시기에는 자본가들의 착취와 노동운동 탄압 곧 노동자들의 권리가 자본가에 의해 짓밞혀지는 불의한 현실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려는 산업선교가 실천되기도 하였다. (천주교의 인천교구가 노동사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저명한 개신교 신학자 장공 김재준 목사가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스스로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예배/미사를 집전하자, "이 자리는 전태일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가 아닌, 기독교인들의 나태를 추모하는 자리다."라고 설교한 일, 도시산업선교회가 들어오면 도산한다는 자본가들의 비방과 형사를 보내 감시하는 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개신교인들에 의해 도시산업선교회를 결성하여 활동한 일이 그 흔적이다. 그러나 이런 진보적 개신교인 역시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그 예로 도시산업선교회는 오늘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직 예장통합 교단 산하에 남아있는 영등포산업선교회가 그 명맥을 미약하게나마 이어오고 있다.

2.4. 대한민국 현재

"안에서의 불신도 문제지만, 교회 밖에서 한국 개신교의 현주소는 훨씬 참혹했다. 무종교인의 한국 개신교 신뢰 비율은 8.4%, 불신 비율은 56%로 부정적인 평가가 7배에 달했다. 세부 항목에서 개신교인의 신뢰 지수는 4.4%, 목사는 11.5%, 한국 개신교는 18.8%를 기록했다. 이 교수는 한국 개신교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교인들만의 신앙적 게토로 변질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가톨릭불교에 비해서도 한국 개신교는 무종교인들에게 가장 믿을 수 없는 종교였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 항목에서 개신교를 꼽은 무종교인들은 8.6%에 불과했다. 반면 가톨릭과 불교는 32.7%, 26.6%의 신뢰를 받았다. 기윤실은 나이별 신뢰도에서 20대에게 최저 수준의 신뢰(12.9%)를 받은 것을 언급하며, 한국 개신교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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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뉴스링크 출처. 자료제공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주지하듯이 가톨릭이 사회적으로 신뢰받고 존경받는 종교집단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가운데, 불교 역시 완만한 신뢰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개신교의 체감 신뢰도는 급전직하하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시행된 통시적 설문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시사점이 발견되었다. 과거만 하더라도 개신교의 신뢰회복을 위한 첫째 과제는 봉사 및 구제활동이었으나, 2013년 현재에 이르러서는 윤리와 도덕 실천 운동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결론이 나온 것. 과거에는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뭐 하는 게 있느냐는 반응이었다면 이제는 "너나 잘 하세요" 정도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개신교가 맛 잃은 소금이 되었다는 사회적 합의가 모아진 것. 현대 개신교계 내에서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있어 개신교의 위상은 시궁창 수준이며, 교회 내부의 어린이 및 청년 교육도 부실한 상태다. 이는 청년들이 교회 밖에서는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아서 교회에 오지 않고, 교회 안에서는 교회가 싫고 잘 몰라서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교계에서는 다음세대(Next Generation) 문제라 하여 중요한 화두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불과 2007년만 하더라도 "평양대부흥 100주년" 이라 샴페인을 터뜨리고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던 것과 대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의 분위기가 불과 몇 년만에 변화하였다.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이 이 때만 하더라도 부흥이 실제로 핵심적 화두였었다.[23] 하지만 이 해 개신교의 외적 성공에 겨워 기쁨을 만끽하다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았다. 피랍된 개신교인들이 극단적 무장단체인 탈레반에 납치된 상황에서 여론은 피랍된 개신교인들에게 상당히 나쁘게 작용했다. 이는 기존의 무차별적이고 타문화 존중이 없는 국내전도와 해외선교에 대한 염증, 배려심 없고 반성 없는 기존의 한국 개신교에 대한 반발, 그리고 교회 목사들의 각종 불법, 편법적인 행위나 사건, 사고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는 온라인에 숨어있던 반기독교 여론이 수면 위로 노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말부터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이전에는 교회 내부에서 쉬쉬하고 넘어간 개신교의 문제점이 온라인 상으로 노출되기 시작하였고, 온라인은 이미 반기독교, 특히 다른 교파들보다 반개신교 여론이 대세인 상태였다. 성도수 늘리기에만 집중한 성장 위주의 개신교에 대한 염증과 우려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19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통일운동, 촛불집회 등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진보성향의 개신교 교회들(향린교회 등)마저 그저 같은 개신교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독교 취급을 받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때마침 서점 종교코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기독교 문제 진단서적들이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무신론 관련 서적들도 이 무렵에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오기 시작한다. 특히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경우 15만부나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전통적인 유교의 무신론적 성향과는 달리 9.11 테러 이후 나타난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대니얼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같은 종교에 비판적인 신 무신론(New Atheism)의 영향으로 21세기에는 무신론자도 급증하는 추세이다. 앞서서 설명된 20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무신론자가 되는 추세는 높은 편이다. 서울대에는 무신론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단 20대 무신론자들은 비록 개신교 뿐 아니라 종교라는 제도 자체에도 반대하는 성향을 보이고 명절에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는 행위 역시 유신론적 전통이라고 거부하는 듯.

2007년 한국 개신교 최악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등을 겪으면서, 비로소 개신교 내에서 이런 대책없이 교세를 늘리기에만 급급하는 내실없는 '부흥' 이야기가 다소 사그라들고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언급한 평양 대부흥 건에 대해서도, "부흥" 자체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평양 대각성" 이라고 고쳐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래서인지 2009년에 예멘에서 독일인 개신교인 의료봉사 단체와 같이 갔다가 총에 맞아 죽은 한국 여성 엄영선 사건이 철저하게 묻혀졌다. 당시, 개신교계는 엄영선이 선교랑 무관한 의료봉사라고 변명했지만,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때도 하던 변명이다. 게다가, 한겨레와 동아일보 취재로 드러난 것은 엄영선은 대전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를 희망하던 만큼, 종교와 거리를 두고 의료봉사를 하러 가기에는 어려웠다. 덕분에 시나이 반도 버스 폭탄테러 사건 때도 또 개신교냐? 비난이 속출했다. 사실, 성지 순례로 가던 것이긴 하지만 해당 교회 목사들은 부상자들 치료 및 여러가지 돈을 세금으로 지원해달라는 말을 한 것에 언론으로 보도되면서 엄청난 까임새를 듣었다.

2016년에 급기야는 부천 여중생 살인 사건이 발생해서[24] 개신교의 이미지에 제대로 먹칠을 해버렸다.

그런데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8년 대비 개신교 인구가 소폭 증가하고, 가톨릭불교 인구가 다시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먹고 살기 힘들어진 상황, 앞날이 불안한 상황에서 의지할 대상을 찾다 보니 거리가 가까운 교회를 많이 찾게 된 것이 이유라 볼 수 있다.[25]

그럼에도 기존의 큰 교회 건물 짓기 같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사회 봉사활동을 늘리고 유년, 청소년 교육 중심으로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사

사실 대한민국의 개신교가 바뀌려면 신자들의 의식과 행실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목사나 교단, 교회 차원의 문제점도 어느 정도 바뀌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러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신자들이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토대로 나온 기사에 따르면 통계청이 공개한 '인구총조사:성별/연령별/종교별 인구-시군구'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독교 전체 인구는 총 967만 5,761명으로, 2005년 861만 6,438명보다 약 12%(105만 9,323명)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기독교 남자 전체 인구도 10년 사이 더 많아졌다. 2005년 400만 3,536명이었던 남자 전체 인구는 2015년 431만 7,696명으로 약 8%(31만 4,160명) 증가했다. 대략 남성 44.6% : 여성 55.4% 비율이며 약간 여초 현상을 보이고 있다.

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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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가 본래 종교개혁으로 시작했으나 지금 한국의 개신교는 개혁은 커녕 썩어가는 고인 물로 전락했다는 걸 감안해 보자.[26] 이 정도면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슬로건이 무색할 지경이다.

3.1. 교파 구성

장로회가 한국 개신교회의 60~65% 정도를 차지하고, 그 나머지의 반 정도는 감리회이다. 장로회와 감리회를 제외한 20% 가량을 오순절교회(순복음교회), 침례회, 성결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구세군 등등이 나누고 있어서 국내 개신교 교파의 구성이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 장로회도 수많은 군소교단이 있지만 양대 교단인 예장합동, 예장통합 교단이 역시 대부분을 차지하고 네다섯개 교단을 제외하면 신도수가 매우 적은 군소교단이다. 이는 구한말과 일제시대 선교사들이 장로회와 감리회 소속이었던 영향이다. 이는 유럽의 개신교가 루터교회성공회가 주류인 것과 많이 다르며, 현재 한국에서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매우 적은 숫자이다. 루터교회가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개신교 교파 중에서도 가장 빠른 1860년대로, 개인 자격으로 유대계 독일인 목사 칼 귀츨라프가 상륙해서 몇주 만에 포교 허가를 받지 못하고 순순이 출국 하고 뒤늦게야 195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이다.[27] 성공회도 일제강점기 5천 명에서 현재 5만여 명으로 늘긴 했으나 역시 다른 교파에 비해 교세가 작은 편이다.

한편 미국 개신교 역시 한국에 선교한 장본인인만큼 한국과 비슷한 교단분포를 보이리라 예상할지 모르지만 미국 개신교 최대 교파는 침례회가 미국 전체인구 중 25.3%로 압도적이고, 그 다음으로 오순절교회 8.9%, 루터교회 5.1% 장로회는 3.8%, 감리회는 3.6%, 성공회 1.5%, 재림교회 1.4% 순이다. #

3.1.1. '개혁'과 '쇄신'

개신교가 본래 종교개혁(The Reformation)으로 시작했으나 지금 한국의 개신교는 개혁은커녕 권력화되었다는 평이 꽤 많다. 물론 한국 개신교에는 일부 목사의 갑질과 세습, 신사도 운동과 연루된 방언이나 신비체험 남발, 헌금 강요나 예배당 건물의 무리한 대형화같이 물질적 성장에만 치중하는 행위 등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은 같은 개신교 내부에서도 거세게 비판받고 있으며,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28]

다만 '개혁'이란 용어를 쓴다면 혼동의 여지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전술 한대로 한국 교회는 장로회와 감리회가 주류인데 특히 장로회는 칼뱅주의 또는 개혁주의에 영향을 받은것이 특징이다. 칼뱅주의와 동의어로 쓰는 '개혁주의'는 서양에서 언어 불문하고 과거형으로 표기되는데, 이는 가톨릭의 전통주의와 인습에 기대는 교리를 모두 배격하고 성경에 맞게 개혁되었다는 뉘앙스를 갖고 있다. 교착어인 한국어가 굴절어인 서구권 언어의 시제 표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로 '개혁'이라고만 번역하다 보니 "보수적인 교단이 왜 '개혁'이란 단어를 쓰는 거지?"란 식의 오해가 생겨난 것이다. 고로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는 식의 여론은 '개혁' 보다는 '쇄신'이나 '개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종교 개혁 당시의 개혁은 교회나 신도들의 도덕성 회복이 목적이 아니었다. 신학적으로 오직 성경(Sola Scriptura)구호에 다라 모든 신앙과 교리의 근원을 성경으로 되돌린 것이다. 마르틴 루터장 칼뱅의 신학에서 우리는 비록 교인이라도 완전히 타락한 죄인이며 도덕성 회복은 우리의 자체의 힘으로 불가능하며 구원과도 무관하다 는 인간론이었기 때문에 도덕적 행동으로 나서는걸 주장한것이 아니라 은혜와 믿음, 하나님의 선택과 소명을 강조했다. 이는 종교개혁으로 파급된 16세기 당시 재세례파들의 의견과 사뭇 다른데 이들은 도덕성 회복과 자유의지에 따른 신앙고백 으로 자격을 갖춘 사람만 교회에 입교 하자는 의견과 상반되는 의견이었다. 하여튼 종교 개혁은 금전적 도덕적 개혁이란 용어와 핀트가 다른 소리다. 마르틴 루터나 장 칼뱅이 이어받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론도 교회는 병자들이 모인 병원과 같은 곳이며 마르틴 루터 역시 교회안에는 죄인들이 모이는곳이라는 입장이었다.

3.1.2. 목사 또는 개교회의 교단 이동

사례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목사와 교인 간의 갈등, 교회 내부 파벌 간의 갈등, 목사 또는 개교회와 교단 간의 갈등, 그 외 기타 사유로 인해 목사나 개교회, 또는 목사와 일부 교인들이 소속 교단을 변경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평신도가 개인 자격으로 소속 교회나 교단을 옮기는 것은 교단 차원에서의 영향도 거의 없는데다 기존 교회를 탈퇴하고 새로운 교회에 등록하는 것으로 끝나기에 절차가 간단하고 자격 제한 역시 거의 없지만[29] 목사나 개교회가 교단을 옮기는 것은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당사자가 탈퇴하는 교단과 옮겨가는 교단 사이의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개신교의 주요 교단들은 목사나 개교회의 교단 변경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30]

단순히 타 교단 청빙(가입) 신청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적하려는 교단 산하 신학교(신대원)에서 신학 교육을 이수하고, 교단에 따라서는 목사 고시까지 다시 치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목사의 소속 교단 변경의 경우 교육부 인가를 받은 신학교 출신인지를 따지고 자교단 신학과정 이수를 의무화할 뿐만 아니라, 옮겨가고자 하는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도 크게 고려하여 선별적으로 허가하는데, 예를 들면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경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가입하였거나 세계 개혁교회 커뮤니언(WCRC)에 소속된 교단인 예장통합, 감리회, 구세군, 성공회, 정교회, 순복음, 예장대신(구 백석 포함) 출신 목사만 교단 가입을 허락하며[31],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은 총회헌법에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대신(구 백석 포함), 예장합신, 기장, 기감, 기성, 예성, 기침, 순복음 등 10개 교단 출신 목회자만 가입 가능하도록 명시하였다.[32]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역시 1997년 제82회 총회를 통해 예장 계열 중 합동, 통합, 고신, 대신, 청담(개혁), 방배(백석), 고려 교단 출신만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가입 가능한 타 교단을 명시하지 않는 교단들도 2010년대 들어 거쳐야 하는 과정과 준수사항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경우 제100회 총회에서 타 교단 출신 목사가 가입하려면 합동 교단 신학교에서 2년 이상 수업 후 총회강도사 고시에 합격하여야 하도록 규정을 강화하였고, 타 교단 목사 영입에 관대한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도 총회행정서식에 가입 가능한 신학교 63개를 명시하여 교육부에서 인가받은, 신학 교육의 질이 검증된 신학교 출신만 가입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기독교대한감리회교리와 장정에 가입 가능한 교파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감리회 산하 신학대학원과 동등한 수준의 신학대학원[33] 졸업자로 목사증빙서류 제출, 지방회 자격심사, 1년간 서리 시무 후 연회 천거, 이후 3개 교단 신학대학교 중 한 곳에서 웨슬리 신학, 감리교회사, 교리와 장정 이수 후 논문 제출 등의 과정을 거쳐야 가입할 수 있다.

3.2. 부정적 평가

한국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내부의 성찰의 목소리에서 한국 개신교가 기복신앙에 빠졌다는 비판이 많다.[34] 한국인의 정서에 적절히 어필한 이러한 믿음은 개신교가 국내에서 부흥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으나 우리는 이미 교인이니 구원을 받았고 이제 현세에서 복만 빌면 된다는 발상 또는 기독교 핵심인 영혼의 구원은 당연히 받았다는 순간 구원 이론 내지는 종교 편의적 사고 때문이다.

목사 자질에 대한 비판도 많다. 자질 문제에 있어서 7~80년대까진 신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목사들을 그냥 교회 열심히 다니고 믿쑵니다 잘 외치면 신학대학을 보냈는데 당시 교육과정도 그다지 체계적이지도 않았고 군소 교단은 아예 교세를 늘리고자 목사 자리를 퍼주고 다녔다. 현재 예장 합동이나 예장 통합 같은 대형교단에서 목사되기가 결코 쉽지 않지만 어렵게 목사가 되었다고 사고 안 치진 않는다. 오히려 목사의 직위를 이용하여 평신도들을 입막음하고 교회 내에서 정치적 편향성을 보이며 신도들에게 강요하기도 하며, 교회 재산과 교단의 직위를 노리고 일반인보다 못한 처신을 보이기도 한다.

목사만 문제라고 볼 수도 없다. 흔히 한국교회의 부정적 모습을 목사의 황제식 독재로 떠올리지만, 우리나라 개신교의 70%는 장로회인데 장로회에서 장로의 파워가 너무 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조용기처럼 오너(?) 목사가 아니라면, 대형 교회 대부분은 목사 혼자의 카리스마로 키운 경우는 드물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 장로 자리를 오랫동안 교회에 봉사하고 명망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헌금 많이 내고 세속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퍼주었다. 그런게 장로가 된 이들이 교회에서 정치싸움 하며 목사가 마음에 안 든다거가 교회 재산처분과 관련하여 너 죽고 나 죽자 싸움하다가 교회를 갈라먹고 목사를 쫓아내고 신도들이 뿔뿔이 흩어진 사례가 많다. 이는 대형교회뿐만 아니라 중견교회나 소규모 교회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남녀 신자를 불문하고 교회를 사교와 친교의 목적 사회생활의 마당으로 활용하려는 나이롱 신자들이 상당히 많으며 특히나 자영업자들은 교회에 발을 하나 걸쳐놔야 영업에 도움이 되고, 군대나 공무원, 기업에서도 상사나 상사의 아내의 교회에 따라 나가는 등 전혀 신앙과 상관없는 일들이 교회 세속화에 한몫 거들었다.

3.3. 가톨릭과의 관계

전반적으로 보면 교파마다 케바케이다. 물론 NCCK에 속한 교회들을 중심으로 교류 및 협력하려는 움직임이 많이 증가했고, 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나 떼제 공동체 등 교회 일치 운동이 많이 활성화 되어가고는 있으나 이들은 보수 교단에 비해서 숫적으로 적으며, 한교연 등 에 속한 대형 개신교단들은 가톨릭은 물론, 가톨릭과 대화하려는 행위 자체도 꺼림직하게 생각한다. 더 나아가 극우 성향의 단체인 한기총은 가톨릭을 아예 다른 종교로 인식을 하고 있고, 가톨릭과 일치운동이나 대화를 하는 NCCK 계열의 개신교 교단들까지 배교 집단이니 종교다원주의자로 공격하는 상황이다. 보수 교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은 가톨릭의 세례성사를 인정하지 않으며 NCCK 계열의 교단들과도 신학이나 강단교류 자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보수적 성향을 띄고 있는 예레미야 이단 연구소는 가톨릭을 이단으로 지정하고 비판자료를 올리고 있다. 한국기독교이단연구소의 경우에는 천주교를 이단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 개신교의 반가톨릭 역사는,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 땅을 밟기 시작한 18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본주의 신학을 등에 업은 미국 선교사들은 가톨릭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선교 활동을 펼쳤다. 국가 권력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개신교를 한국 사회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종교로 소개했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개신교보다 100년 일찍 선교해 온 가톨릭은 제국주의 종교로 부각했다.

미국 북장로회 출신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1892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제5차 장로교 총공의회에서 가톨릭이 선교지의 왕실과 친밀을 도모하고, 권력층이나 세도층과 결탁해 정사나 조정의 문제에 수시로 개입한다고 비판했다. 선교 초기, 언더우드는 한국어에 능통한 신부들과 높은 인쇄술, 부지 매입에 적극적인 가톨릭을 언급하며 가톨릭이 한국을 손에 넣으려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는 "개신교인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훗날 불신자가 아니라 가톨릭교인을 회심하게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잇달아 방한하자 가톨릭은 교세 확장을 우려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7대 교구장인 프랑스인 블랑 백 요한 주교는 "오류를 설교하는 열교[35] 목사들이 활보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파리 외방전교회에 보내 지원을 요청했다.

교리 논쟁도 일어났다. 1907년 가톨릭이 개신교 비판을 위한 호교론 책을 펴내자, 이듬해 감리회 신학자 최병헌이 번역한 <예수텬쥬량교변론>(정동예수교회)에는 교황의 무류성, 고해성사, 성모 마리아의 전구, 성직자/수도자의 독신 생활 등을 언급하면서 가톨릭이 성경의 내용을 왜곡하거나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신교 선교 초기 두 기독교 교파가 항상 갈등 양상만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개신교는 한국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100여 년 앞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벌여 왔던 가톨릭의 역사적 경험을 자료 삼아 나름의 한국 선교 전략을 수립했다. 개신교가 '간접 선교', 즉 학교나 병원을 중심으로 간접적인 교육선교와 의료선교를 우선적으로 펼치는 선교 전략을 채택했던 것도 가톨릭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적극적인 반추(反芻)를 통한 것이었다.

해방 이후 개신교 지도자들은 가톨릭에 대한 적대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야당 부통령 후보로 장면이 출마했는데, 여당은 장면이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를 들며 공세를 퍼부었다. 당시 자유당 선거대책위원회 사무장이었던 박영출 목사는 선거 연설에서 "가톨릭 교인인 민주당 부통령 입후보 장면 박사가 당선되는 날에는 우리나라를 바티칸교황청에 팔아먹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 정권의 공보실장을 역임한 전성천 목사는 1956년 4월 <한국기독시보>에 가톨릭 신자가 집권할 경우 한국이 교황의 내정 간섭을 받게 된다면서 개신교 신자들은 장면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썼다.

오늘날 한국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인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2가지 인식이 공존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신앙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구성하는 두 전통의 형제애가 강조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서로 상대방을 폄하(貶下)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단시(異端視)하기까지 하는 흐름이 엄존하고 있는 것이다. 교단별로 살펴보자면, 대한성공회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가톨릭 내 진보적 에큐메니컬파는 전자 입장에 있고, 가톨릭성 비오 10세회 등의 극보수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고신, 대신 및 기타 보수 성향 장로회 교단, 기독교한국침례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는 후자 입장에 있다. 가톨릭 내 중도파[36],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중간 입장에 있다.

1982년에 실시된 <한국교회 성장과 신앙양태에 관한 조사 연구>는 개신교인들의 각 교단 및 타종교에 대한 ‘친소도’(RDI=the relative degree of intimacy)를 조사한 바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인들은 가톨릭교회에 대해 33.8%가 친근감을 나타낸 반면에 45.5%가 경원하는 태도를 보여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여전히 상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37년 전 자료다. 가톨릭에 거부감을 가진 개신교인들 중에도 이단 종파들이나 불교이슬람교 등 타 종교보다 더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단 종파나 타 종교보다는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1월 18일부터 25일까지를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으로 지정하여, 매년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NCCK 소속 교단) 등 교파를 초월한 모든 그리스도교 성직자와 신앙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합기도회를 가진다. 그렇지만 가톨릭과 개신교가 격렬하게 싸웠던 역사적인 특성상 몇몇 개신교 단체는 항상 그 기도회가 열리는 문 앞에서 반대 시위를 격렬하게 벌인다. 이 또한 한국 교회 전체(특히 개신교)가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야 할 복잡한 현실이다.

3.4. 정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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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파에 골고루 퍼져있다.

한국의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깊게 관여되어 있다. 교회에는 항상 교인이 모이고, 같은 종교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인맥화하기 매우 쉽기 때문이다. 정치색은 대체로 보수적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국가신토와 북한의 주체사상이 개신교를 탄압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전두환의 쿠데타 당시 여러 교회의 목사들이 참여한 기도회가 TV로 생중계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오히려 불교계에서 10.27 법난이 일어나는 등 저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전두환의 독재에 반대하여 박해받은 교회도 있었다.

다만 신학적으로 보수 성향인 교단이나 교회들이 모두 친정부 / 정치적 수구 성향이라고 착각하면 매우 곤란하다. 일례로 10월 유신에 반대하여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까지 한 바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예장합동 교단 소속의 충현교회 신자였고, 장로를 지내기까지 했다. 또한 18대 국회의원 이었던 민주노동당 곽정숙의원은 무려 예장합동측[37] 전도사였으며 민주당에서 17-19대 의원을 지낸 전병헌의원은 예장고신출신이다. 이외에도 예장고신이 국가조찬기도회 참여를 정교분리 훼손이라 하여 거부했다던지, 영락교회에서 2대 담임목사를 맡았던 박조준 목사가 전두환 정권의 명령을 거부했다가 험한 일을 겪었다던가 하는 일화가 있지만 같은 개신교계 외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선거철 혹은 중요한 정치이슈, 혹은 그들의 이권과 관련되는 움직임이 있을때마다[38] 특정 대형 교회의 특정 정치 세력 지지가 문제가 되곤 하는데, 주로 보수적 성향의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들이 나오며, 이를 지원하듯 이런 교회들이 대규모 집회에 교인들을 동원하여 실력행사를 하곤 한다.[39] 이러한 특정 교회의 특정 세력 지지 발언의 영향력을 통계학적으로 검토해보면, 현재까지의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친 적이 없다. 하지만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정교분리를 초월하려는 일부 교회의 위와 같은 행위는 부적절하므로 지양되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 중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윤보선 전 대통령,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종교로, 이명박, 김영삼, 윤보선은 장로회 신자였으며 이 중 이명박과 김영삼은 장로였다. 이승만은 감리회 신자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천주교지만 영부인 이희호 여사는 감리회.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사돈이 예장통합 측 목회자이며 아들은 아내를 따라서 개신교로 입교했다. 최근 몇년간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으로 평가하면서 숭앙하는 작업에 극우 개신교 세력이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 뉴스앤조이 기사
반면에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며 보수 진영 정권들에 저항하고 비판하거나 진보적 성향을 띄는 교회 또한 상당수 공존한다. 대표적인 진보 진영 교단으로는 교단과 신학의 보수화에 반발하여 떨어져 나온 김재준 목사에 의해 설립된 한국기독교장로회(한신대학교의 재단)[40]와,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학풍을 가지고 있는 대한성공회가 있다. 이쪽 계열에서 사회운동을 한 사람들로 문익환 목사와 정계 입문 이전의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 등이 있다. 대체적으로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후기 자유주의[41]신정통주의 계열의 교단은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인 경향이 있으나 신학적으로 보수인 경우에는 정치적 입장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노선을 따르는 경우, 정치 스펙트럼은 문자 그대로 걷잡을 수가 없다. 또한 그 반대도 될 수 있기에, 일반화해서는 안된다.[42]

현재에도 민중신학의 영향을 받은 진보성향의 개신교 교회와 단체들이 사회현장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성공회는 19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노동운동에 앞장섰으며, 도시산업선교회, 크리스챤 아카데미 등의 사건으로 군사정권의 심한 탄압을 받아왔다. 촛불집회나 여러 시위와 농성현장에 가보면 전국 목회자 정의평화 협의회, 예수살기 공동체, 촛불을 드는 그리스도인, 반전평화 기독인 연대 등 여러 개신교 단체들이 선두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신교인 비율이 지역 중 가장 높은 호남지역도 5.18등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진보성향을 띠고 있는 편이다.

진보 성향의 개신교 단체의 연합으로 기독교 사회선교 연대회의가 있는데 소속 단체로는 고난함께,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기빈협), 기독교환경운동연대(기환연), 기독여민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 새시대목회자모임, 영등포산업선교회, 생명평화기독연대, 일하는예수회, 평화교회연구소,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한기연),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EYCK),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등이 있다.

이러한 진보성향의 개신교를 대변하는 언론으로 뉴스앤조이, 에큐메니안이 있다. 다만 이러한 진보적 교회들 역시 정통 교리와 상충하거나, 문익환 목사의 사례처럼 친북 논란이 따라다니는 등 비판이 아주 없진 않다.

다만 어느 정도 높은 직급을 가지지 않은 신자들은 보수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편인데, 한국에서는 어느 종교이든 간에 정치 성향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별 문단이나 기불릭, 참고.

3.5. 축도

보통 개신교의 축도는 바울의 축도[43]와 아론의 축도[44]가 있는데 미국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 개신교회들은 98%이상 바울의 축도만 한다. 바울의 축도의 경우 각 교단별로 축도의 말미가 다른데 원래 개신교초기에는 개역한글성경에 나와있는 그대로 '있을지어다'로 축도를 했었으나 나이든 성도들이 버릇없는 목사로 인식해버리는 일이 생기고 더불어 목사의 축도 권한에 대한 논쟁이 커짐에 따라 몇몇교단들은 '축원하옵나이다'로 수정한 상태이다. 이와 별개로 예의를 갖춘 변형버전인 '계실지어다'와 '하실지어다'가 생겨나기도 했다.

3.6. 스톨

보통 진보적인 교단일수록 스톨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고 보수적인 교단일수록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왠만해선 착용[48]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일부 착용[49]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거의 없음[50]
*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그런거 없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왠만해선 착용
* 기독교대한감리회: 절반가까이 착용[51]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일부 착용
* 기독교한국침례회: 그런거 없다.
* 기독교한국루터회: 거의 다 착용
*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그런거 없다.

4. 논란

항목 참조.

5. 한국 개신교의 여성목사 안수

한국 최초의 여성목사 안수는 1931년 기독교대한감리회 (당시는 기독교조선감리회) 이다. 한국인이 아니지만 파송 된 여성선교사들이 목사로 안수되었다. 선교지 국가보다 더 빠른 피선교지 국가의 여성목사 안수였기 때문의 나름의 의미가 있다. 최초의 한국인 여성목사 안수는 1955년, 같은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전밀라 목사이다.(명화용 목사도 이 때 같이 안수를 받았다.) 조금 논란이 있긴하지만 1951년 재건교회의 최덕지 (명예)목사를 최초로 보는 경우도 있다. 사실 재건교회에 대해서 교회사학자들이 제대로 연구를 못한게 크다.
그 뒤 장로교는 1974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여성목사 안수 허용을 결의하면서 1977년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여성 목사인 양정신 목사가 안수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1995년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했고, 1996년 통합교단 최초의 여성 목사인 박진숙 목사가 안수되었다. 개신교 울타리 안에 있는 대한성공회는 2001년 민병옥 사제를 최초의 여성사제로 서품했다. 이후 2003년 예수교대한성결교회, 2004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2011년 보수교단으로는 의외인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교단에서 2012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측), 2013년 기독교한국침례회의 여성목사 안수가 허용이 되었고 무기명 투표하니까 통과가 되었다. 아직도 여성안수를 하지 않은 교단은 언급한 교단을 제외하고 전부이다. 대표적으로 합동 고신 교단은 여성 목사 안수가 영성 약화의 결과라고 2019년에도 이야기하고 있다.

6. 비판

개독교, 목사/문제점, 근본주의, 예수천국 불신지옥 항목 참조.

7. 교세

개신교는 한국에서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훨씬 먼저 들어온 가톨릭을 뛰어넘는 신자 수를 가지게 되었다.

이 지도는 각국의 개신교 신자 비율을 나타낸 것인데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색이 칠해져 있다.

참고로 2014년 12월 11일 JTBC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에서 나온 말인데 한국의 개신교 교회 숫자는 무려 78,000개라고 한다.[52] 편의점은 25,000개. 그 많다는 편의점보다 3배는 더 많다. 참고로 인구 95%가 이슬람터키가 인구 7,500만이고 여기서 이슬람 성원인 모스크 수가 63,000여개인 걸 생각하면 한국에 개신교 예배당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할 수 있다.[53]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정관계에서는 개신교 신자 비율이 한국 전체 인구 내 개신교 신자 비율보다 높은 편이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 가운데 개신교 신자 비율이 23% 정도 되는데, 국회의원 가운데 개신교 신자는 18대 국회에서는 120여 명, 19대 국회에서는 107명으로 35.7%를 차지하였으며, 20대 국회 당선자는 75명(25%)이다. 어째 신자는 느는데 국회의원은 계속 줄어든다?[54]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기독교인은 몇 명? 또한 개신교 신자들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관념과는 다르게[55] 개신교인 정치인은 모든 정파에 고루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개신교의 교단들 중에 장로회가 가장 교세가 강한데, 장로회 선교사들이 근대 시기의 한국으로 많이 유입하여 선교한 것도 있지만, 평신도 입장에서 장로라는 감투가 있는 것도 장로회의 교세 성장에 기여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여기에 더해 장로교단의 분열도 장로회의 교세 성장에 크게 기여했는데, 분열되어 나온 교단들이 제각기 세를 불리고자 선교, 교회 개척을 공격적으로 추진한 것도 한 몫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목회자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운 먹사들도 양산되었지만.)[56] 본래 장로가 없는 감리회 등에서도 장로회의 영향을 받아 장로라는 직책을 만들었을 정도. 반면 유럽에서 많은 성공회루터교회는 보기 어렵다. 구한말부터 선교사들은 영미의 장로회와 감리회 선교사들이 많았던 영향이고 루터회는 1950년대에야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대륙 개신교와 교류할 때는 주로 네덜란드와 교류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개신교 인구가 처음으로 불교 인구를 앞질렀다. 그러나 실제로 예배에 참여하거나 교회에 열성적인 신도는 몇 안된다. 물론 열성 신도 비율은 불교가 훨씬 더 적지만. 헌금만 많이 내라고 하니까 당연하지. 게다가 신경도 안쓰는데

7.1. 지역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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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전통적으로 서고동저 그러니까 서해안으로 갈수록 많아지며, 반대로 동해안으로 갈수록 줄어든다.[57] 울릉도를 제외하면 눈이 잘 안오고 건조한 기후대에 개신교세가 집중된다는 점도 특징. 다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개신교세는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해 있다.

위의 대한민국 각 지역별 종교인 통계에 의하면 호남지역에서 가장 강세다. 개신교는 호남과 수도권에서 강세를 보였고,(전북 26.9%, 서울 24.2%, 전남 23.2%, 경기 23.0%) 영남, 충북에서 약세였다.(경남 10.5%, 경북 13.3%, 부산 12.1%, 대구 12.0%, 울산 10.9%, 충북 15.5%) 개신교의 지역별 신자분포 차이는 일제 강점기 때의 선교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출처

신자 수로 따지면 서울, 수도권 지역의 개신교 신자 수가 훨씬 많다.[58] 서울의 경우 대부분의 지역에서 개신교 신도가 가장 많다. 그 중에서도 신도 수 비율이 많은 곳은 강남3구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에서 각각 25~30%대를 기록하고 있다.[59] 그 외에도 강동구, 용산구와 서울의 영등포구, 양천구, 종로구와 중구, 성동구, 동대문구, 성북구, 노원구, 서대문구, 마포구, 강서구, 강북구와 은평구와 구로구, 동작구, 관악구, 금천구에도 개신교인이 꽤 많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도봉구에서 개신교 신자 수가 상당히 줄었다고 한다.[60]수도권 일대 도시 지역에서는 과천시(29.86%), 의왕시(26.59%), 용인시 수지구(27.82%), 고양시 일산서구(25.16%), 성남시 분당구(25.06%) 등이 개신교인 비율이 25%를 넘는 지역으로 집계됐다. 또 광명시,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시 덕양구, 용인시 처인구, 용인시 기흥구, 수원시 장안구, 수원시 권선구, 수원시 팔달구, 수원시 영통구, 안성시, 이천시, 평택시, 양주시, 동두천시, 의정부시, 성남시 중원구, 성남시 수정구, 광주시, 하남시, 파주시, 화성시, 남양주시, 구리시, 안산시 단원구, 안산시 상록구, 부천시 소사구, 부천시, 포천시, 연천군, 가평군, 양평군, 여주시, 오산시, 군포시, 시흥시 등도 기독교 비율이 높다.

전국에서 교세가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호남도 그 내부에서 지역 차가 좀 있는데, 전주, 익산, 군산, 김제 등을 비롯한 전북 서북부 지역과 순천, 여수, 광양 등 전남 동부 지역에서는 특히 개신교 비율이 높다. 반면 무주, 진안, 장수, 곡성 등 영남 지역과의 경계에 있는 산간 지역에서는 개신교 비율이 비교적 낮은 편. 특이한 지역은 광주광역시인데, 광주는 개신교 비율은 타 호남 지역에 비해 높지 않은 반면 가톨릭 신자 비율이 비수도권 지역에서 가장 높다. 이는 아무래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가톨릭 측의 적극적인 협조 덕으로 여겨진다. 물론 당시 개신교 측에서도 많이 협조하긴 했지만.

반대로 (울릉군을 제외한) 영남 지방에선 개신교도의 비율이 매우 낮은데, 이는 영남 지방이 멀리는 신라의 중심지였던 오래 전부터 불교의 영향력이 컸고, 구한말-일제시대에는유림의 세가 상당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포교가 원활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도시인 대구, 부산, 울산도 기독교가 낮다. 또한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매우 낮다. 이유는 육지 문물에 대한 배타성과 해방 직후 서북청년단이 제주도에서 저지른 범죄 때문.[61] 당시 서북청년단의 주축이 영락교회 출신자들이었다. 다만 충청권은 조선 유력 사대부들이 많았던 지역임에도 대전광역시, 충청남도는 개신교 세가 약하지는 않다. 수도권과 비슷한 정도. 이는 충북 지역은 전통적 사대부들이 많았던 지역이지만 대전과 천안 지역은 근대에 들어서 도시가 급성장하여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된 지역이며, 충남의 다른 지역은 본래 천주교인들이 도피지로 삼았던 곳임을 감안해야 한다. 또 아산, 공주, 논산, 서산, 당진, 보령, 태안, 홍성, 예산, 청양, 서천, 금산, 계룡 등에도 기독교 비율이 높으며, 대전에서도 동구, 중구, 대덕구는 물론, 서구, 유성구 등의 신도심도 기독교 비율이 높다. 세종시도 마찬가지로 기독교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강원도에서는 전방의 여러 군들(화천군, 인제군, 철원군, 양구군, 고성군 등)이 신자 비율이 높다. 아무래도 군에서 진급을 하려면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듯. 또한 외지인 비율이 높은 춘천과 원주도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 또 속초, 강릉, 태백, 동해, 정선, 영월, 삼척, 양양 등의 영동지방도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 충청북도에서도 증평, 진천, 음성과 청주에서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 충주시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괴산군도 상당히 기독교 비율이 좀 높다. 그리고 옥천군, 영동군, 보은군, 제천시도 점차 기독교가 선방을 하고 있다.

물론 경상도에서는 교세가 낮지만, 최근 선방을 하고 있는 지역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데 대구광역시의 동구, 서구, 남구, 북구, 중구 등의 구도심, 수성구, 달서구 등의 부촌 등과 부산광역시의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의 구도심, 동래구, 수영구, 금정구의 인구번화가, 연제구, 부산진구, 남구, 해운대구 등의 번화가와 부촌, 북구, 사상구, 사하구, 강서구 등의 낙동강벨트 등이 개신교가 선방하는 지역으로 뽑히며, 울산광역시의 중구, 남구, 울주군과 동구, 북구, 그리고 경상북도의 구미시, 포항시, 경주시, 김천시, 영주시, 칠곡군 등은 선방을 하고 있는 지역이며 경상남도의 김해시, 거제시, 양산시, 진주시, 통영시, 창원시 성산구, 창원시 의창구, 창원시 진해구,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시 마산합포구 등도 나름 선방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교세가 여전히 약세이며 신자 수도 주로 청년층보단 노년층에서 증가한다는 건 약점이다.

2005년에 크게 감소했다가 그 이후로 다시 교세를 회복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대한민국 개신교는 1970년대 이래로 메이저 지위를 놓친 적이 없었다. 좋든 싫든 현재 대한민국 정치, 사회, 문화 등 국민의 삶 전반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종교 1위가 개신교다. 대체로 2005년에 큰폭으로 감소하거나 2015년 다시 증가했다고 보기보단 통계 조사시 질문 순서나 용어의 차이로 2005년엔 과소 조사되고[62], 2015년엔 개신교에서 이탈한 신흥 종교들이 대거 포함된 걸로 본다. 대체로 타 기관이나 교계 조사로는 05년 감소폭이 이상변동이었고 18~19%로 조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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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전국에서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시/군으로 강화군[63], 전라남도 신안군, 경상북도 울릉군[64] 등 주로 서해안 쪽 지역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엉뚱하게도 이들 지역에서는 육지처럼 교회가 난립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육지에서 경쟁적으로 교회를 개척하는 개신교 교단들이지만, 섬 지역에서는 여건상 각 교단별로 선교 구역을 분담하는 경우가 많아 대개 섬 하나에 교회가 하나 꼴로 존재하기 때문에 신자 수 확보를 위한 교회, 교단 간 경쟁이 육지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7.2. 소득별

서울 강남3구와 종로구 평창동, 분당, 판교, 일산 등의 신도시, 부산 해운대구, 대구 수성구, 인천 청라지구 등 소위 말하는 부촌에서 압도적으로 비율이 높은 편이다. 대체로 아파트 위주로 된 부촌일수록 개신교세가 강하며, 반대로 낙후된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 위주로 된 슬럼가일수록 불교, 샤머니즘 세가 강하다는 인식이 있다.

다만 예외가 없진 않은데, 호남 출신 이주민들의 비율이 높은 성남 수정구와 중원구, 부천 구시가지, 서울 금천구, 관악구, 구로구는 저소득층 지역임에도 개신교세가 강하다.

7.3. 교단별

2002년 2008년 2011년
교단 신도수 교단 신도수 교단 신도수
1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2,300,327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2,896,967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2,953,116
2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2,283,107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2,686,812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2,852,311
3 기독교대한감리회총회 1,394,515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1,800,000
4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개혁) 1,169,572 기독교대한감리회총회 1,557,509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1,800,000
5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1,106,712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정통) 866,599 기독교대한감리회총회 1,586,063
6 ~~ 960,459 기독교한국침례회 801,437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 1,016,036
7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정통) 823,469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 564,260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백석)[65] 870,583
8 기독교한국침례회 692,767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신) 474,047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 566,500
9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 503,991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대신) 452,314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개혁)[66] 551,857
10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신) 427,832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337,570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신) 464,799
출처 : 이혜정, 통계를 통해서 본 종교인구와 개신교단의 변화(2015) - 문화관광부 한국의 종교 현황(2002, 20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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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주요 6개 교단 교세 통계-뉴스앤조이

위의 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 개신교의 대다수는 극심하게 분열된 예수교장로회 교단이다. 그중에서도 합동·통합 양대 교단의 교세가 가장 크다[67]. 그 외에도 감리회, 오순절교회(하나님의 성회), 침례회, 성결교회 등의 교세가 크다. 공통적으로 보수적이고 복음주의 및 근본주의적 교리가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68]

이러한 이유로는 칼뱅주의 특유의 확실하고 깔끔한 교리, 심플한 인테리어와 예배 형식이 사상적 일관성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뿌리는 다르지만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장로회의 영향을 많이 받은 대한감리회가 장로회 다음으로 큰 교파라는 점, 장로회 중에 칼뱅주의의 색채가 제일 덜한 기독교장로회의 교세가 작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해준다.[69]

반면 진보성향 및 사회구원 성향인 기독교장로회, 성공회, 루터교회, 구세군, 기독교대한복음교회 등은 예나 지금이나 최하위권에서 맴도는 수준. 이는 상기했듯 한국인의 전반적 성향과 맞지 않아서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70] 이들 교단이 다른 교단에 비해 물량 위주의 개별 전도보다는 사회 선교에 주력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71] 예를 들어, 대한성공회는 국내에 교회가 100여개 정도인데, 위탁운영 중인 사회복지시설이 150곳을 넘는다. 교회 수보다도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 수가 더 많은 것으로, 사회 선교에 집중하는 성공회의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72] 구세군 대한본영도 전국적으로 교회수가 265개인데 비해 직영 및 위탁운영 사회복지 시설이 158개로, 사회 선교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다만, 기독교장로회의 감소세에는 문익환 목사의 무단 방북 사건 등 극단적인 정치적 행보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는 물론 정치적으로 중도 성향인 기독교인들에게까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면도 없지는 않다.

또 주목해 볼 만한 점은, 십여 년간 급격한 교세 확장으로 오순절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마찬가지로 거대 교단이 되었지만 대한민국에서만은 이단으로 취급되는 재림교회가 상위권에 있다는 점이다.

8. 선교

8.1. 국내

극성 예수쟁이를 위시하여 보편적 사회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선교 활동이 문제시된다. 이들 예수쟁이와 일반 개신교인들의 포교활동 간의 범위가 모호해 전반적인 개신교의 선교활동이 한꺼번에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 태도를 막론하고 전도 자체가 타인이 종교를 믿지 않을 권리를 침해할 요소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개신교의 역사적 특성상 종파가 매우 다양하고, 각 종파 간의 차이가 성경 해석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성향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극과 극에 이르는 경우도 많으므로 개신교는 어떻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한 바가 있다. 하지만 일부 이단 항목 참조

이러한 선교 활동이 비기독교인들이 수용 가능한 선에서 건전한 자원 봉사활동 등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사회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사회의 전통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지나치게 배타적인 선교 활동의 경우 사회적인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가 곪고 곪아 터지는 한 예가 바로 땅밟기. 해당 문서 참조.

8.2. 국외

한국에서 신자가 많이 늘고 교세가 많이 확산되었기에, 짧은 역사도 불구하고 국외로의 활발한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였다.[73] 조용기 목사에 의하면 무려 190개 나라에 3만 명이 있다 카더라. (출처는 월간 중앙에 조용기 목사가 쓴 광고)

국외 선교활동에 대한 현지에서의 평가는 일반적으로 좋은 편이다. 이는 해외에서의 선교활동이 봉사라는 형태로 시작하기 때문으로서, 구호품 전달, 학교나 병원 설립 등 현지인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부분에 도움을 많이 주고 있어 이에 대한 현지인들의 평가가 높다. 또한 이러한 선교와 봉사에 태권도, 한국 요리, 국악한국 문화 전파도 함께 이루어져 외국에 한국을 알리는 데에도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봉사와 개신교에 대한 호감은 전혀 다르다. 봉사라는 형태의 재화와 서비스만 수용하고서 개신교 신앙 자체는 거부해 버리는 경우먹튀가 흔하다고. 이로 인해 물정 모르고 들어온 선교사 중에는 충격을 먹고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습.

국외에서의 개신교 선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이 다음 단계이다. 일단 이런 선교단체에서의 봉사라는것이 기본적으로는 선교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선교가 근본적인 목적이기 때문에 선교 없이는 봉사활동도 없다는 소리. 때문에 봉사를 통한 감화라는 장기적인 계획 없이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려고 하거나, 현지의 문화와 종교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배타적인 포교활동을 하여 봉사와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게 될 경우 큰 문제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74]

문제를 만드는 것은 일부만의 문제인가? 현지인과 문제없이 지내며 조용히 헌신하는 선교사들이 다수라고 주장되며 인터넷에서 까임의 대상으로서 언급될 때처럼 절대 다수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이런 선교사들조차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조급증과 우월감, 배타성에서 비롯된 온갖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꽤 많은 숫자로 발생하고 있다. 사건사고 면은 선행보다 기억에 강하게 남기 마련이다.

한편, 이러한 국내외에서의 선교 및 포교 목적의 봉사 활동을 국내 개신교인들에 대한 과시, 보여주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봉사 활동을 위해서는 돈과 물자와 사람이 필요한 법이니 당연히 홍보야 필요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비판은 봉사에 대한 홍보가 실제보다 지나치게 부풀려지는 경우가 왕왕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은 인터넷과 거리의 전단물 등을 통해 무차별로 확산되어 문제를 부풀린다. 국외에서 선교과정에서 일어난 수두룩한 사건들이 이를 증명하며, 이에 관련된 책으로는 〈개독교를 위한 변명〉,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등의 목사선교사에 의해 쓰여진 내부 증언담이 있다.

교단들이 이런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 것 또한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일부만 그렇고 대부분은 좋은 소리 듣는다면 좋은 쪽만 홍보하고 선전하며 잘못은 모른 척 하는 문제를 넘기면 안 된다.

대한민국 개신교는 더 이상 국내에서 교세 확장 등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이미 교세가 늘어날 만큼 늘어났으며, 교회는 너무 많아서 경쟁이 심하다. 출생률 감소 추세와 맞물려서 교세의 성장이 둔화되었거나 마이너스로 접어들었다는 분석. 이것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선교를 무조건 반대하는 시각도 옳지 않다. 어찌 보면 종교 집단의 당연한 활동이며, 불교천주교정교회원불교도 선교하고 봉사단체도 얼마든지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에 선교 목적으로 나가는 사람 중에 한국에선 수십여 년 사이 50년대 대비 40년 만에 10배 이상 급속도로 교인이 증가하는 유례 없는 성장세를 거두었으니 국외에서도 이와 같은 성공이 반복될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각국에는 그 나라의 종교가 뿌리내리고 있으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이슬람 국가에서 그렇게 했다간? 코로 할랄푸드를 먹는다. 코랄푸드

순례 목적으로 기독교 성지를 방문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성지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이나 이슬람 국가들의 영토다. 터키에선 중요한 성지들을 경비원들을 통해서 지켜준다곤 하지만, 터키의 동부는 보수적인 이슬람 동네이다. 다른 곳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개신교 찬송가를 부르면서 울부짖으면서 기도어그로하는 것은 주위의 이목을 끄는 일이며,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한국어니까 모를 것 같은가? 손에 들고 있는 것과 분위기만 봐도 뻔하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거기 가서 땅밟기를 해대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똑같이 하려나 극과 극은 통하는 법

게다가 웬만한 성지들은 전부 가톨릭 아니면 정교회 등 개신교 아닌 타 기독교 종파의 소속이다. 엄연히 가톨릭인 가르멜 수녀회가 운영하는 주님의 기도 성당에는, 기도문을 수정해야 한다는 어느 극우성향 개신교 목사의 주장에 따라 1960년대부터 40여 년 넘게 자리하며 순례자들을 맞이해온 가톨릭 주님의 기도문이 갑자기 철거되고 개신교식 주기도문이 설치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개신교 내부에서도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개신교 교계언론에서도 대차게 까였다.

한국어 주님의 기도문을 봉헌한 천주교 부산교구는 이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원상 복구를 바라는 공문을 예루살렘 총대주교와 가르멜 수도회 총장, 주님의 기도 성당을 관할하는 이스라엘 주재 프랑스 대사관과 해당 가르멜 수녀원 등에 보냈다. 이에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2월 9일자로 원래대로 복구할 것이라는 답변을 보내왔고, 한국어 가톨릭 주님의 기도가 다시 설치되었다. 문제는 개신교 주기도문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어로 된 주님의 기도가 2개나 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예루살렘이나 시나이 산과 같은 다종교의 공동 성지에서 새해 첫날 찬송가 불러대며 울부짖는 건 민폐의 결정판.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국가 이미지 손실이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면 안된다는 것. 예를 들어 지하철 포교는 법에 어긋나므로 하면 안되는 것이다. 헌데 지겹게 하고 법적으로 어긋난다고 해도 종교 탄압이라며 발악하잖아

그나마 21세기 들어서 개신교 신자가 늘어난 나라가 중국이다. 이미 중국 내 개신교도 인구는 일각에서는 한국 인구를 능가했다고도 전해진다.[75] 최근 개신교의 성장세에 중국 정부의 탄압은 나날이 거세지면서 공산당 산하 교회가 아닌 교회를 불도저로 밀어 버린다던지, 목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간다든지 국외 출신 선교사를 추방하거나 목사나 교회에 대하여 세금 탈세라든지 여러가지로 딴지를 걸거나 교회를 폐쇄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를 두고 국내 개신교 선교층의 반응은 여러가지인데 우선은 같은 개신교로서 환영하는 분위기. 반대로 중국에서도 국외 선교를 하기에 한국 교회의 국외 선교에 라이벌이 된다고 반발하는 반응도 있다.

2016년 터키 동부에서 또 한국인인 극우 개신교 선교단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결국 현지 터키인들의 욕설과 빗자루로 처맞고 모욕당하는 게 당당하게 유튜브로 올라와 있다.#

9. 봉사 활동

한국 개신교는 국내외 봉사 활동에 절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개중에는 포교를 목적으로 하는 봉사 활동은 물론이거니와, 포교를 표면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후원하는 봉사 활동도 많다. 봉사활동이라고 보긴 어렵겠지만 지역사회 기여 같은 것도 점차 제도화되어 가는 추세라, 신도시에 지어지는 신설 교회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지역 사회를 위해 족구장이나 풋살장 같은 레저/스포츠 센터, 헬스장, 대강당, 공연장 등을 함께 무료로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 포교를 목적으로 하는 봉사 활동의 경우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참고로 모든 종교활동의 대외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포교다.

10. 교포 사회에서의 역할

개신교가 강세인 영미문화권[76]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가톨릭 또는 정교회가 강세인 유럽이나 중남미, 공산국가인 중국 [77], 기독교가 거의 없는 일본이나 중동[78] 등 대부분의 이민지에서 한인교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79]

국외 각지의 교포 사회에서는 교회 본연의 역할에 더하여 교인들 간의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한인 교포들이 개신교 신자들이다. 새로 이민을 오게 되는 사람들이나 유학생들이 현지에 적응하는 데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교회를 나가지 않던 사람도 해외에서 교회를 다니는 경우가 매우 많다. 다만 이걸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 같은 교회 다니는 교우를 돕는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선임자의 이점을 이용해서 신임자를 소위 '낚시질'하려는 목적으로 도움을 제공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0년 전후해서 도쿄에서는 한인교회 소속의 재일교포들이 집 구하기 어려워하는[80] 신참 유학생들 상대로 방을 빌려준다며 낚시를 한 후, 입주할 때 다 되어서 별안간 '교인 아닌 사람에겐 못 빌려준다'며 교회에 나오기를 강요하는 사태가 빈발했던 적이 있었다.

이민 사회에서 교회가 비대하게 커지면서, 비신자들에 대한 배타성이나 한인교회 간의 다툼 또는 교회 내부에서의 힘싸움 등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게 가볍게 볼 게 아닌 것이, LA 폭동 당시 한인교회는 몇몇 교회끼리 나뉘어져 서로 한인 교포 피해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이걸 종교 드립으로 선전하는 일도 벌어졌다.

11. 교육기관

대한민국의 개신교 산하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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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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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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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성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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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1] 감리회 계열과 장로회 계열이 공동 운영함.
[2] 재단이 감리회 계열이지만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대학.
연세대, 이화여대, 배재대는 재단과 별개로 신학대학원이 KAICAM과 인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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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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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회 산하 대학교
기독교대한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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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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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사렛/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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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사학력 인정 각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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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장로회 산하 대학교 및 대학원대학교
대한예수교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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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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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대한예수교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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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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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3 (예장대신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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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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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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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3 (예장백석대신)
대한예수교장로회
-3 (예장순장)
대한예수교장로회[4]
-3 (예장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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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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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석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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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장웨신)
대한예수교장로회
-3 (예장피어선)
대한예수교장로회
-3 (예장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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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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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서울한영대학교
대한예수교장로회-3 (예장통합)
신대원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
신대원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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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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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자대학교
신대원
서울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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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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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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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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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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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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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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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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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장합동보수)
대한예수교장로회
-3 (예장합신)
한국기독교장로회
-3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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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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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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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대한예수교장로회-3 (예장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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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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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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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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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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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대학교
장로회 계열 초교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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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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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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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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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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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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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대학교
[4] 백기환 목사가 창립한 정통교단.
[5] 장로회 계열과 감리회 계열이 공동 운영함.
[6] 재단이 장로회 계열이지만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대학.
연세대, 경성대, 김천대, 한남대는 재단과 별개로 신학대학원이 KAICAM과 인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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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침례회, 초교파 산하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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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회 산하 대학교 및 대학원대학교
기독교한국침례회
-3 (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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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신학대학교
한국성서침례친교회
-3 (성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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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침례대학원대학교
세계베뢰아교회연합[◆]
-3 (세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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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 이단 시비가 있는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를 지지하는 교단.
대한민국의 초교파 독립교단 산하 대학교 및 대학원대학교
한국독립교회및선교단체연합회(KAIC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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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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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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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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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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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신대원
주안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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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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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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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트리니티대학원대학교
대한민국의 초교파 산하 無교단 대학교 및 대학원대학교
파일:강대로고.png
강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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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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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대학교
치유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한국국제대학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GUseal.png
한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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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 해당 교단의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원 목회학과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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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학 목록


개신교 계열의 교육기관. 한국에서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기타 여러 종교에서 미션스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개신교 미션스쿨이 참 많다. 아시는 대로 계속 추가 바람.

11.1. 초등학교

11.2. 중학교

11.3. 고등학교

11.4. 전문대학

대한민국의 개신교 산하 전문대학
{{{#!folding [펼치기 · 접기 ] 감리회 배화여자대학교 안산대학교 인덕대학교
그리스도의교회 경남정보대학교 세계사이버대학
장로회 광주보건대학교 경민대학교 경북과학대학교 기독간호대학교
대전과학기술대학교 백석문화대학교 백석예술대학교 서해대학
선린대학교 숭의여자대학교 신안산대학교 전주기전대학
전주비전대학교
초교파 강원관광대학교 경인여자대학교 계명문화대학교 국제예술대학교
동원대학교 명지전문대학 송곡대학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포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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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목록

11.5. 대학, 대학원대학

대한민국의 개신교 산하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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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3 (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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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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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성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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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교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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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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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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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1] 감리회 계열과 장로회 계열이 공동 운영함.
[2] 재단이 감리회 계열이지만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대학.
연세대, 이화여대, 배재대는 재단과 별개로 신학대학원이 KAICAM과 인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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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대한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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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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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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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재단이 장로회 계열이지만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대학.
연세대, 경성대, 김천대, 한남대는 재단과 별개로 신학대학원이 KAICAM과 인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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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목사 임명에 대한 논란

목사로 임명받는 과정은 각 교단 별로 차이가 있지만, 정통적이라고 여겨지는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신학대학원 과정(3년)을 이수해야 하고, 자신이 소속된 교회에서 전도사로서 봉사를 하여야 한다. 참고로, 미국과 같은 경우는 youth pastor나 assistant pastor로 칭하는데, 미국의 경우는 교회에서 사역을 공식적으로 하는 사람을 pastor라고 부른다. 대다수의 교단은 미혼인 사람은 목사로 임명조차 하지 않으며, 전도사로서 봉사를 시키는 것은 해당 인물이 적합한 인물인지 평가를 위해서다. 이는 바울의 서신(디도서 1장, 디모데전서 3장)에서 나온 감독으로 합당한 자에 대한 설명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교단 등록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것을 이용, 기존 교단들의 이름과 비슷한 교단을 만들어 그럴 듯하게 장로회감리회침례회니 하는 이름만 빌렸을 뿐 전혀 관련이 없는 자체적인 교리와 시스템을 가지고 사이비 단체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으며, 아예 신천지, JMS같은 사이비 종교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유령교단이나 위장교회를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기성 교단이라도 군소교단들의 경우 이른바 속성으로 목사 안수를 받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한두 달은 양반이고 3일 속성, 7일 속성코스나 심지어 인터넷만으로도 국가에서 인정한, 합법적인 목사가 될 수 있다. 이런 군소 신학교나 사이버 신학교들은 그 특성상 교육의 질이 낮은 데다 단기간의 안수로 제대로 된 목사가 될 수 있을리가 만무하기에 문제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군소교단들이 규모가 큰 교단들과 합칠 경우, 경력이 조작되거나 세탁되는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83]

실제로 사기와 같은 범죄를 조금 더 쉽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방향으로 목사 '타이틀'을 취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출소 후 자신이 종교에 귀의하여 개과천선했다는 빌미로 자금을 끌어모으거나 범죄를 숨기기 위한 방패막이로 삼는 것인데,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가 전직 고문기술자 겸 목사 이근안[84], 한때 대도로 유명했던 조세형의 경우다. 관련기사 그 외에 옥중에서 안수를 받아 수감자 상태에서 목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2016년 말 대한민국을 혼돈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 사건의 근원인 최태민도 대표적인 사례.

11.7. 군종장교요원 특혜 논란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12. 관련 링크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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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외적으로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우리나라와 개신교 구성이 엇비슷하며, 특히 네덜란드는 같은 칼뱅주의란 공통점 때문인지 직접적인 교류가 드문데도 한국 개신교 신학계에서 생각보다 자주 언급된다.[2] 경신학교 대학부가 기원[3] 주로 황해도, 평안도[4] 아무래도 영남 지방과 기호 지방은 유림의 세가 상당했기 때문.[5] 지금도 일부 개신교 교회에서는 은근히 유교 윤리와 구약 율법에 명시된 윤리가 비슷하다는 걸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6] 사족으로 영미식 장로회와 대륙식 개혁교회의 차이점들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같은 개혁주의임에도 네덜란드 등 대륙식은 전통적으로 음주, 흡연에 관대했다.(근거)[7] 그러나 천주교도 필요에 따라 조선왕조와 어느 정도 통교할 때가 있었고 조선에서도 서학의 일종으로 온건하게 취급해 줄 때가 있었다.[8] 실제로도, 아직 일반인들에겐 개신교가 모든 종교중에서 친일이 가장 많았다고 주장할 정도로 인식이 좋지않다. 물론 독립운동가나, 반일을 하던 개신교도도 당연히 있었다. 일사각오로 유명했던, 주기철목사를 비롯한 신사참배에 대항했던 목사들이 예.[9] 일반 사법 경찰과 달리 정치범과 중요사건을 다루는 경찰조직[10] 명목상 평신도 회중제로 운영하는 교회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을 통해 들어온 조합교회는 어용교단 노릇을 하면서 한국의 개신교를 분열시키는 역할을 했었다.[11] 도리어 불교는 조선시대 숭유억불에 대한 울분 풀이랍시고 구한말부터 이동인, 이회광처럼 일제에 적극적으로 친일 부역질을 일삼은 자들이 많았다.[12] 전통 민족신앙이라해도 대종교와 분리된 국내 단군교의 경우 적극적 친일이었다.[13] 박형룡처럼 존 메이첸의 제자이다.[14] 아예 '출옥 성소들의 광적인 활동과 테러 행위'에 대해 날조된 교육을 하는 곳들도 있을 정도이며, 엔하위키 시절부터 본 문서에 '광적인 활동'에 대한 서술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15] 고신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신학교의 교회역사학에서 고신 교단에 대한 교육을 전혀 하지 않으며, 일선 교회에서도 고신 교단이 아닐 경우 관련 정보를 신도들에게 전혀 가르쳐 주지 않는 것으로 악명높다. 이러한 정보 은폐가 어찌나 심각한지 아예 자체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홍보하는 역사편찬위원회를 고신 쪽에서 따로 꾸려야 했을 정도다.[16] 장로회가 상대적으로 번성한 대한민국에서 권사는 여자만 받는 직분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상태라 이기붕 '권사'라는 직함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감리회는 남녀 모두 권사가 될 수 있다.[17] 여기서의 내셔널리즘은 진보 세력이 지향하는 민족주의와 조금 다른 개념이다. 이승만 정부는 북한 인민들이 김일성 정권, 즉 공산주의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고, 임기 기간동안 계속해서 북진통일을 주장했다.[18] 상대적으로 민주당, 그 가운데 신파는 부통령 장면을 중심으로 가톨릭 신자였고 김대중의 대부이기도 하다. 다만 민주당 구파의 대표 인사인 윤보선 전 대통령은 장로회 신자였다.[19] 고려원 "한국의 불교".[20]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대한민국에서 개신교만 반공을 외친 것은 아니란 것이다. 실제로 공산주의 자체가 종교 자체를 적대하는 경향이다 보니 굳이 개신교가 아니라도 (이승만 정권의 개신교 편향에 대한 불만과는 별개로) 종교인이라면 반공 성향은 매우 당연하게 여겨졌다.[21] 개신교를 믿는 나라들은 모두 잘 산다는 주장도 사실 이때부터 나왔던 것이다. 물론 반개신교 측에서는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예시를 들어 개신교 국가임에도 못 사는 나라들이 수두룩했다는 반론을 편다.[22] 새로 그린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에도 나오는 얘기인데, 한국에서 개신교가 흥한 이유로는 개신교가 미국의 종교이기 때문에 근대적 이미지는 물론, 해방자 이미지가 씌워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동남아시아 등의 경우는 서양 국가들에 의하여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침략자들의 종교인 기독교(가톨릭 포함)에 대한 반감이 강했다.[23] 하지만 한국교회대부흥100주년기념상암서울대회에서 故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는 한국 개신교의 타락을 비판하고 목회자들의 회개를 촉구하기도 하였다.[24] 딸을 죽인 아버지가 다름아닌 목사였다. 그것도 사이비, 이단 종파의 목사가 아닌 정통 교단의 목사[25] 통계청에서 기성 개신교 뿐 아니라 이단 및 신흥교파들까지 싸잡아 집계한 결과라 못 믿겠다고 하는 시각도 없진 않으나 이단을 제외해도 개신교 인구가 가장 많이 나오는 건 비슷하다.[26] 단, 이 짤 자체는 인도의 부패문제에 대해 만들어진 것이다. 출처는 이쪽.[27] 이 때에는 유럽이 아닌 미국의 미주리 시노드를 통해 들어왔다.[28] 비단 한국 뿐 아니라 개신교 인구가 많은 나라라면 어디든 기복주의, 성장주의, 물량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은 일어나고 있다.[29] 다만 교단에 따라 신자들의 직함이나 직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교단을 옮길 경우 직분의 등급이나 명칭이 변경되는 경우는 존재한다.[30] 주로 예장통합, 기장, 기감 등의 메이저 교단들이 타교단 소속 목사와 개교회를 받아들이는 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소속 교회나 목회자 수가 적은 군소 교단들은 그런 거 없다.[31] 해당 출처에서 문의글을 올린 작성자는 현직 예장합동 소속 목사이다.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장은 예장합동 출신 목사의 청빙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문의글을 올린 목사는 다른 교단으로 이적했을 듯.[32] 이단 감별사로 유명한 최삼경 목사도 본래 총신대 출신으로 예장합동 목사였다가 1985년 예장통합으로 이적한 경우이며, 서울교회 설립자 이종윤 목사도 연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거쳐 예장합동 목사로 충현교회를 담임했다가 스스로 예장통합으로 교단을 옮겨 서울교회를 설립하였다.[33] 한마디로 어느 교단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않을 뿐이지 대한민국 교육부 인가를 받은 정규 신학대학원을 운영하는 교단의 목사만 가입이 가능하다는 뜻이다.[34] 다만 기복신앙 자체가 무조건 죄는 아니며, 인류의 본능이란 점은 감안해야 한다. 현재 개신교가 황혼을 맞이한 독일 네덜란드 북유럽에서도 전성기였던 18세기~20세기 초까지는 비슷한 문제가 많았다.[3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가톨릭에서 개신교에 대한 시선은 딱 '열교 이단'이었다.[36] 교회 일치 운동 자체에는 동의하나 개신교와의 성사 교류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의 파벌로, 가톨릭 내 대다수의 인사들이 중도파에 속한다.[37] 광주서현교회[38] 대표적인 예로 사학법이 있다. 사학법과 관련된 사립학교들 상당수가 기독교계 재단 소유기 때문.[39] 이는 주로 민주당쪽 후보를 지지하는 가톨릭 성당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앓고 있는 문제인데, 미사 중 특정 후보 지지 및 정치적 활동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40] 물론 떨어져 나오기 전에 먼저 교단에서 축출당한 것. 김재준 목사는 모세오경을 쓴 것이 모세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등 성경비평에 입각한 신정통주의 신학을 펼치다가 근본주의 신학을 하는 이들에게 비판을 받는 등 큰 소란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기장과 예장이 갈라섰다. 하지만 그 어떤 교단보다도 기장, 한신측의 전신인 조선신학교 계통 교단이 신사참배에 가장 호의적이었던 탓이 가장 크다.[41] 2차대전 이전의 1세대 자유주의와는 좀 다르다. 자세한 것은 자유주의 문서의 신학 문단을 참조하자.[42] 또한 신정통주의를 표방하거나 NCCK 소속 교단이라 하여 모두 진보적인 것만은 아니다.[43] 고후 13:13[44] 민 6:24-26[45] 공식적으로는 '있을지어다' 이지만 '계실지어다'로 끝내는 목사가 근소하게 더 많다[46] 구 백석측 출신 목사들 중에 '하실지어다'로 끝내는 목사가 종종 있는 편이다.[47] 공식적으로는 '축원하옵나이다' 이나 간혹 '있을지어다'로 축도하는 경우도 있다.[48] 제자광성교회, 동춘교회 등 착용안하는 교회도 있긴 하다[49] 용산남부교회, 대구서부교회, 꿈과 사랑의 교회, 한남교회 등이 착용하며 최근 들어 착용하는 목회자가 늘고 있다. 유행이다 [50] 다만 부산개금교회에선 목회자가 스톨을 착용한다.[51] 선한목자교회, 꿈의교회, 만나교회 등 젊은이들한테 인기많은 대형교회들은 왠만해선 착용안한다.[52] 참고로 먼나라 이웃나라 한국편에서는 5만개로 집계된다.[53] 그러나 실제로 예배가 이루어지고 운영이 되는 교회는 절반 정도밖에 안되며 이마저도 신도들이 점점 줄고 있고 신도들 대부분이 소형교회의 흙수저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향력 면에 있어서는 가톨릭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이 종교학자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교회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대형교회들은 더욱 커지나 동네 소규모 교회들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54] 사실 한국에서 증가하고 있는 개신교인 대부분이 다른 종교를 접해보지를 못했거나 특히 가톨릭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흙수저들이 대거 개신교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55] 정치적 보수와 사회문화적 보수는 다르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호남에서 단지 반(反) 자유한국당 성향일 뿐 특별히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사회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56] 실제로 최태민 같은 자도 목사 직함을 얻었다.[57] 불교세가 강한 영남에서 선방을 하고 있는 경북 김천 / 경북 포항 / 경남 거제와, 개신교세가 강한 호남 가운데 전북 군산 / 전남 신안 / 전남 여수의 초강세를 볼 수 있다.[58] 초기 서울의 교회는 이북(특히 평안도)에서의 실향민들의 영향이 컸다. 대형 장로교단의 평양노회가 현재는 서울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그 흔적. 적어도 분단 이전에는 평안도가 기독교 신자 비율이 가장 높았고 현대 개신교 원로들의 출신지가 이북, 특히 평안도 지역 출신지가 많다. 또한 1960년대 이후 호남 출신의 이주민들이 많이 이주하면서 호남 출신의 신자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또한 호남 출신들 다음으로 호서 출신들도 꽤 많은 편이다.[59] 강남권은 개신교 뿐만 아니라 천주교 교세도 강한 지역이다.[60] 서울에서 개신교 신자 중 가장 적다고 한다. 15.3% 정도로 추정되며 이 지역을 비롯한 북한산-도봉산 일대 지역에 역사가 오래된 불교 사찰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 강북지역은 서울 강남지역과 달리 개신교 바로 뒤를 불교가 따라가는 지역이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큰 지역으로 2019년 현재 알려져 있는데, 이 지역이 경기 북부 지역 출신 비율이 많고 도봉구 전체 인구의 30~35%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양주시(구리시, 남양주시 출신 제외) 출신이 가장 많다. 도봉구 전체 인구의 1/4인 25% 정도이며, 본래부터 경기 북부 출신들은 원래 개신교에 대한 반감 뿐만 아니라 혐오감이 상당히 심한 편이라고 한다. 더욱이 녹산교회라는 이단 교회가 있어서 이에 대한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아주 상당한 편이다. 보수적인 지역인 포천, 연천 쪽이 특히 그런 편이며(실제로 이 두 지역의 복음화율은 8%, 9% 정도로 경기도 전 지역에서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가평이 17% 정도의 복음화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말이다.), 2004년에 서울광염교회가 이 지역에 있었을 때만 해도 도봉구 전체의 개신교 인구가 18% 정도 됐었으나 최근에는 상당히 많이 떨어져 14% 정도도 안 되는 걸로 확인된다. 무종교인도 서울에서 가장 많은 편이며,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지역이라 복음화 비율이 최근에 많이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61] 사실 제주도는 신축민란의 여파 때문에 로마가톨릭에 대한 감정이 극악을 달렸으므로, 개신교가 퍼질 가능성도 충분이 높았던 지역이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당시 이기풍이 선교지로 삼았던 곳도 이 지역.[62] 05년 조사시 1번 기독교(천주교).... 3번 기독교(개신교)로 하는 바람에 성질 급한 신도들이 3번이 아니라 1번으로 쓴 거 같다는 의견이 많다. 그게 아니라면 2015년 조사에서 천주교 교세가 큰폭으로 감소하거나 개신교세가 급격하게 증가해야 하는데 실제 체감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별 변동이 없기 때문[63] 감리회와 더불어 육지에서는 마이너 교단인 성공회의 교세가 강한 편이다.[64] 동해권에서 유일하게 개신교 교세가 강하다 볼 수 있다. 특히 침례회의 교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65] 구 합동정통[66] 서울 관악구 남현동 소재[67] 2015년도 뉴스앤조이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이래로 교인수 1위는 통합, 개교회·목사수 1위는 합동이다.[68] 다만 감리회의 경우 장로회의 영향을 받아 어느 정도 보수화, 복음주의화 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온건진보 성향에 가깝다.[69] 우리나라의 장로회 교인이 650만명 정도이고, 전세계의 장로회 교인이 약 2,000만명이다. 전세계 장로회 교인의 1/3이 한국인이라는 말이다. 미국 PCUSA, PCA, OPC, RCA, CRC같은 백인계 칼뱅주의 교단에서조차 한인교회가 많이 소속되어 있을 정도.[70] 달리 말하면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개신교의 대표 이미지가 장로회로 완전히 고착화되었단 뜻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찬밥 취급받는 교단들이 구세군을 제외하면 대체로 전례적(liturgical) 성향이 강하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71] 성공회, 구세군 등 영국에서 전파된 개신교 교파의 경우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긴 국내 선교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성공회는 1890년, 구세군은 1908년 국내에 처음으로 선교사가 파송되었다.[72] 이에 대해 대한성공회 내부에서도 교세에 비해 너무 무리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73] 참고로 천주교를 포함하면 6위다.[74] 그 이전에도 인터콥이라든지 극단적인 선교단체가 이스라엘이나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에서 대규모 부흥회를 한다고 설치다가 외교부나 대사관은 물론, 그 나라 정부에서 무슨 일 터져도 일절 한국 정부가 책임지라고 으르렁거렸던 바 있다. 특히 이스라엘 부흥회 시도 당시 이스라엘 측이 반이스라엘 폭도로 규정하고 무차별 발포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었다. 결국 모조리 무산되었거늘 인터콥 측은 이게 종교 탄압이라고 적반하장으로 발광하여 개신교 선교에 대한 어그로를 부채질했다.[75] 그러나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공산당 산하 어용 단체만 공식 신자로 집계하기 때문에 여러 조사가 있지만 일단 공식 숫자보다 최소 2~3배 이상 많다고 보는게 보통이고 개신교 인구가 가톨릭보다 4~5배 정도 많다.[76]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한인교회를 나가도 되고 현지교회를 나가도 된다.[77] 중국은 외국인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므로 한인교회가 있지만 한국 국적자만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중국 공인교회는 중국인 외에 출입금지다. 참고로 홍콩은 그런 거 없고 한인교회를 가든 현지교회의 영어예배를 드리든 중국어예배를 드리든 (이 동네는 영어 및 표준중국어가 공용어니까...) 아무 제약 없음.[78] 이슬람 종주국 중동, 교회 있는 거 아세요?[79] 물론 나라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인 이민 사회는 전통적으로 한국대사관, 주재하고있는 기업의 현지 지사, 한인교회, 이렇게 세 곳을 중심으로 모인다. 교포 사회에서는 한인교회가 개신교 예배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가난한 유학생들 입장에서 집에서 한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때가 주일 예배 후에 교인들과 함께 먹는 점심일 경우가 흔하다. 또 그렇게 개신교 신자가 되기도 하고...[80] 일본의 웬만한 저가형 원룸 건물은 대개 노인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데 이들은 외국인 불신이 뿌리깊고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어서 돈 내도 방 안 빌려주는 곳이 꽤 많다[81] 서울시에 있는 계성초등학교는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에서 운영하는 가톨릭 학교다.[82] 경기도 성남시성일고등학교와는 다른 곳[83] CBS 기독교방송의 《크리스천 NOW》 22회분[84] 이후 논란이 되자 목사직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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