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6 22:43:35

한국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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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건축, 혹은 한국인건축

1. 역사별로 보는 건축 양식들
1.1. 전통 건축
1.1.1. 원시 시대1.1.2. 삼국 시대1.1.3. 남북국시대의 발해와 신라1.1.4. 고려 시대1.1.5. 조선 시대
1.2. 개항 이후 ~ 해방 이전1.3. 해방 이후 ~ 현재
1.3.1. 현재의 전통 목건축1.3.2. 북한 건축
2. 한옥/장단점3. 건축물 명칭4. 건축물 일람
4.1. 전통건축4.2. 근대 건축4.3. 현대 건축
4.3.1. 교통 인프라4.3.2. 박물관/미술관4.3.3. 북한4.3.4. 기타
5. 둘러보기

1. 역사별로 보는 건축 양식들

1.1. 전통 건축

목재를 주로 사용한 건축으로, 부재를 결합할 때 되도록이면 짜맞춤에 의존하며 못을 거의 쓰지 않는다. 공학적으로는 중국식 건축의 구조인 대량식을 가져왔으나 공간 활용과 세부적인 면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마루와 같은 개방형 공간과 안방과 같은 폐쇄형 건축이 조합된 독특한 구조를 자랑하며, 이는 온돌, 매다는 문짝(들문)과 더불어 추운 겨울와 더운 여름을 모두 소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물에 닿으면 썩기 시작하는 목재를 주로 활용했기에 한 가지 큰 단점을 꼽는다면, 무너진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2] 기와가 떨어지고 집이 기울어 비에 노출되기 시작한 목조건물은 불과 수십 년만 지나도 순식간에 녹듯이 썩어 사라진다. 전란 등으로 인해 불에 타서 사라지기 쉬운 것도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고대나 중세 건축물의 연구에 어려움이 크다.

소나무가 한국 전통건축의 대표 목재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건축물에 사용하는 목재는 2007년에 발표된 '우리나라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 수종의 변천' 논문에 의하면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거의 참나무속 나무를 사용했고 고려시대부터 소나무를 많이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직 소나무만이 한국 전통건축의 대표 목재라는 것은 다소 조선 후기 한옥의 이미지에 매몰된 것.[3] 조선 후기에 들면 소나무의 점유율이 88%에 육박하게 된다.

한국의 건축은 규모와 미적 요소에 있어서 서양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건축과 비교해도 크거나 화려하지 못하다. 특히 고대, 중세 건축에 비해서 조선 건축은 유교의 영향으로 그 규모나 장식면에서 화려함을 극히 억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조선 후기로 가면 상공업의 발달로 다시 점차적으로 화려함이 강조된다. 삼국과 통일신라는 건축의 스케일이 큰 시기였으며, 발굴되는 기와나 치미 등이 조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편견과 달리 원래 2층 건물이 흔했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침루가 흔했으나 점차 보기 어려워진다. 삼국시대의 건축물은 규모가 매우 크기까지 했기 때문에 이 시대 상류층의 건축물을 제대로 재현한다면 흔히 생각하는 조선시대의 건축물과 달리 굉장히 크고 화려하면서 다층인 건물이 흔하게 된다.

1.1.1. 원시 시대

여기서의 원시 시대 건축은 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시대를 의미한다.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집은 구석기시대의 막집과 신석기시대 움집이다. 막집은 말 그대로 막 지은 집이란 뜻으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주거시설이다. 움집은 지열을 이용하기 위해 땅을 파서 움을 만든 뒤 그 위에 지은 집으로, 시대가 발전할수록 점차 움이 얕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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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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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토막식 움집의 모습. 초기의 움집으로, 땅을 이후 시대 움집보다 깊게 파고 그 위에 지붕을 덮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둥과 주초가 나타나고, 나중에는 방과 초기형 온돌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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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에 비해 많이 발달한 청동기시대 움집. 이런 형태로 벽이 외부에 노출되기 시작한 움집을 초옥토실식이라 한다. 이 초옥토실식 움집에서 한국 전통 건축물의 기본 형태가 나타나기에, 보통 한국 전통건축의 시원은 이 초옥토실식 움집으로 잡는다.

이 외에 누목식(귀틀집)과 고상식 집, 토실도 나타난다. 귀틀집은 통나무를 井자 형태로 쌓아올리고 통나무 틈은 흙으로 메워 만든 집을 말하며, 고상식 집은 윈두막처럼 지면보다 높게 지은 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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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토실(土室)의 구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초옥토실(草屋土室)이라고 나온다. 단, 초옥토실은 지붕을 초가로 하고 흙으로 벽을 만든 집이라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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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를 얹은 귀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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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고상식 주거의 복원. 비와 습기에 강한 고상식은 한반도 남쪽에서 올라온 주거 양식으로 추측된다. 일본 도다이지의 정창원 건물은 아직도 이러한 고상식 모습을 하고 있다. 참고로 가야는 철기 도입은 빨랐지만, 기와의 도입은 상당히 느린 지역이었다.

또한 철기시대로 넘어가면서 한반도에 기와가 도입된다. 기와는 이전에 지붕재료로 쓰이던 풀이나 너와와 달리 반영구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제작 단가가 높고 무거워 근세 후기 부농/상공업자의 성장 이전에는 기와를 마련하고 좋은 원자재로 튼튼하게 집을 짓는 게 가능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1.1.2. 삼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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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의 복원모형

아쉽게도,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목조 건물은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 남아있는 고대 목조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같은 목조건축문화인 중국이나 일본의 상황도 거의 비슷하다. 왜냐하면 돌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 썩고 또 불에 약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부적인 면은 쉽게 알 수가 없으며, 남아있는 터의 기단과 주춧돌로 건물의 배치와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일본에는 호류지, 시텐노지 등 직, 간접적으로 백제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고대 건축물이 존재하며, 무덤이나 조각, 금속으로 만든 모형 등의 유물로 간접적이나마 그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입식과 좌식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삼국시대에서 건축으로 가장 덜 유명한 것은 (자료가 적은 가야는 논외로 치고...) 백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안학궁이나 황룡사 등 규모가 큰 고구려나 신라의 건축물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크기로 유명한 건축물이 부족해서이며,(미륵사가 있지만...)[4] 사실 백제가 삼국시대에 가장 수준높은 목건축술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황룡사의 9층 목탑에도 백제의 기술자가 와서 도와주었으며, 일본의 고건축과 관련된 기록에도 거의 다 백제의 장인이 등장한다.

출토되는 유물이나 터로 봤을 때는 근대를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가장 건축물이 거대한 시기이기도 하다. 터도 크지만, 발굴되는 기와나 치미의 크기 등이 장난이 아니어서 기와의 무게가 조선시대 기와의 5배 정도 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건축물의 크기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된다. 유명한 황룡사 9층 목탑만 하더라도 당대 지어진 세계 건축물 중에서도 높이에 있어서 손에 꼽을 정도다.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치미는 높이가 무려 180cm가 넘으며, 만덕사지 치미도 이에 맞먹는 규모다. 지붕 장식의 규모가 이 정도니 건물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가늠할 수 있다.

삼국을 대표하는 사찰로는 고구려정릉사, 백제의 미륵사, 신라황룡사가 있다. 궁궐로는 한국 역사상 가장 크고 아름다웠 것으로 추정되는 고구려의 안학궁, 신라의 경주 월성 등이 있다.
고구려의 경우는 고구려/건축도 참고.

1.1.3. 남북국시대의 발해와 신라

남북국시대 신라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신라의 연장선이며, 이 시대 역시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남은 것은 거의 없지만 불국사, 석굴암, 안압지 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비교적 그 모습을 추측하기가 쉽다. 특히 안압지 물 속에서는 상당한 양의 건축 관련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서까래 등에 사용하는 금속 장식이나 섬세한 기와들, 늪에 빠져 보존된 난간으로 쓰였던 석재와 목재 등 매우 다양하고 희귀한 것들이 많이 나왔다. 이 시기의 건축물은, 물론 진골 고위 귀족층의 건축물에 한정되겠지만, 상당히 호화로웠을 것으로 추정된다.[5]# 미적 감각도 전혀 없고 콘크리트로 무식하게 크게 짓는 이북에서도 못짓는 황금 저택을 천년 전의 조상님들은 지었다

그러나 발해의 건축에 대해서는 고분이나 궁궐터, 기와나 건축 부자재 일부 외에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다. 단일 건물로써는 한국 건축물 중 크기가 가장 큰 건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상경용천부 정전도 기단으로만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석조물의 양식으로 보아 아마도 고구려와 당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사료부족으로 인해 연구중이다.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건물의 규모가 거대했는데, 상경용천부 제9절터에서 출토된 치미의 높이는 92cm다.

남북국시대 신라 건축의 방향은 형식상의 완성과 균형미적인 면을 중시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특히 화강암을 적극적으로 다뤄서 만든 석굴암의 조각들과 불국사 석조물은 대단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도 의미부여를 통해 특이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또한 안압지 터를 통해 신라가 인공적인 조경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찰에 있어서는 1개 금당에 1개의 탑이 있던 일탑식 형식(가람 배치)에서 2개의 탑이 있는 이탑식으로 변한다. 특히 통일 후 백제에게서 뭔가 배웠는지 석탑이 마구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전 시기의 신라가 지은 석탑이라고는 분황사 모전 석탑만 남아있다. 불국사, 감은사 등이 이탑식으로 석탑들을 세웠다.

기본적으로 이 시기는 당나라가 중심이 된 중국적 천하가 완성되어 존재하던 시기라 신라와 발해, 그리고 많은 주변국 모두 건축뿐만 아니라 복식, 제례문화 등 문화의 여러 측면에서 당나라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다만 신라의 경우 당나라식 건축 양식의 영향보다는 자국의 재래문화가 강하게 남았다. 대표적으로 도성을 비교해 보면 발해와 일본은 당의 좌우대칭식 도성 구조를 그대로 도입한 데 비해 신라는 기존의 도성 치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1.1.4.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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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경서분변상도. 정토삼부경경의 하나인 관무량수경 속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단 이 관경서분변상도는 불화적 성격이 강해서 있는 실제 모습이라고 그대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건축물의 모습에 있어서는 다른 그림과도 유사한 편으로 일관성이 있는 편.

고려시대의 건축은 비록 삼국시대보다는 스케일이 작아졌지만, 역시 귀족적인 색채가 강했기 때문에 지금 기준으로 봐서도 매우 화려한 모습을 자랑한다.[6] 고려도경에는 백성의 집들은 누추하다고 하나, 관리들과 국상 부자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사치스러워졌다는 부분과 선의문 안에 들어서면 수십집 가운데 하나씩 누각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다만 이 시대의 건축물은 거의 다 사라졌고, 몇몇 사찰이나 양반가 건물의 경우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경우가 존재하긴 한다.

남아있는 그림 등의 기록으로 봐서는 붉은 색의 주칠과 검은색의 흑칠 등 옻칠을 활용한 단청이 상류층의 건축물에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도경에는 이와 관련해서 "궁궐 건물에 난간은 붉은 옻칠을 하고 동화(銅花)를 장식하였으며 단청이 장엄하고 화려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기본적인 색상 자체는 삼국시대부터 보이는 전통적인 단청법인 상록하단법에 따라 밝은 외부 기둥등 붉은 색으로 칠하고, 어두운 내부는 녹색 혹은 청색으로 칠하는 방법 역시 많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집도대련 등의 그림에도 기둥 끝의 금빛 장식과 이중으로 된 처마, 금빛의 황기와와 처마 등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고려 문화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주었던 송나라의 건축이 고려 건축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사용된 황,청기와 등 장식용 기와나 실내용 타일은 지금도 출토되고 있다.[7] 각종 옻칠과 특수한 기와 등으로 건물을 장식하는 양식은 고려시대를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긴다. 검고 붉은 옻칠과 주칠로 건물을 장식하는 것은 광택이 나고 손이 많이 가기에 상당히 호화로운 방식으로, 이러한 양식은 당나라에서 유래되어 중국 송나라와 고려에서 유행했지만 결국 맥이 끊기고 일본에만 전해저 내려온다. 때문에 이 시기의 이러한 건물을 재현한다면 일본 건물의 색과 유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도경에는 귀족들의 경우 "청자로 된 기와와 흙담벽에 중국 직수입 비단을 둘러 장식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이 외에도 전각에 옻을 칠해서 호화롭게 만들었다는 기록 등이 있다. 화려한 처마 장식의 경우에는 원나라 이후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의 갈색과 녹색의 단청은 고려 말부터 도입이 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는 "아집도대련"이 유명하다. 이것은 귀족의 저택을 그린 것이다.[8]

또한 귀족층의 경우 귀족문화 하에서 고구려의 귀족들처럼 입식 위주의 생활을[9] 했기 때문에 귀족층의 생활상을 그린 아래 두 그림을 보면 바닥에 타일을 깔고 의자와 평상을 놓은 곳과 타일을 깔지 않은 눕고 쉬는 곳이 구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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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귀족들의 생활상을 그린 아집도대련 중 일부. 물론 실제 고려시대의 건축의 모습을 그린것은 아니고 약간의 과장이 들어갔다.

아마도 고려(혹은 송나라)의 것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바닥에 타일을 깐 외실과 문을 걸어닫은 내실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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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이 그렸다는 기위도.

이 시대의 큰 건물로는 개경의 도심 사찰이었던 보제사의 5층 목탑이 있으며, 조선 전기까지 존재했었다고 하는데 높이가 약 60미터 정도 되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 보제사의 이름은 연복사로 바뀐다.
십천교를 지나 곧바로 가서 연복사에 이르렀다.
한 중앙에 우뚝 솟은 5층 누각이 온 성중을 압도하고 서 있는데,
창문과 기왓장에 저녁놀이 비친다.
참으로 웅장한 건물이다.

유호인 명산답사기 중 <송도기행>

나무위키에 등재된 주요 건물 : 만월대 - 고려시대 본궁터다.

문화컨텐츠닷컴에서 3d로 복원해본 영상이 있으니 참고. 한옥이라 하면 좌식 온돌방이라고 생각해온 선입견과 많이 다르다.

1.1.5. 조선 시대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검약주의의 표방으로 지나친 사치를 멀리하였기 때문에 큰 건축물을 짓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다만 건국 초기에는 흥천사 사리전각이라는 한양의 위엄돋는 랜드마크격 건축물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경복궁처럼 고려 왕궁인 만월대보다 면적이 컸던 경우에도 정전은 더 작게 지었으며, 건축 영역 전반에 있어서 일반적으로는 보다 수수하고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졌다.[10] 특히 장식에 있어서는 상당히 절제를 많이 했는데, 조선 건축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점하는 종묘도 장식과 단청을 극도로 단순하게 만들어 의도된 엄숙함을 보인다. 이를 가칠단청이라고 하며, 단청 중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단색의 특정 안료만 칠해놓은 단청이다. 보통 가칠단청은 다른 단청을 칠하기 전 밑바탕으로 칠하는 용도로 많이 쓰는 단청이라 종묘를 비롯한 극소수 건물 외에는 찾기 힘들다. 종묘 단청 건물에 붉거나 검은 옻칠을 하는 것은 아예 보기 힘들어졌다. 고대 사회에서는 단청보다 옻칠을 더 격이 높다 여겼다. 이에 대해서는 무령왕릉 항목 참조.

건물 규모가 작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기와 크기도 작아졌다. 장식물도 원래는 금, 동화(구리꽃), 치미, 비단, 각종 기와 장식 등을 올려 크면서 화려하기까지 했으나 모두 보기 힘들어졌다.

또한 유교로 인한 강력한 신분사회는 가사제한령 등의 법을 통해 지배층인 양반의 가옥에조차 그 장식이나 재료를 엄격하게 제한했기 때문에 수수해질 수 밖에 없었다. 건축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서 금과 은, 옻칠 등 사치스러운 물품에 대해 강력하게 금지하였고, 이런 제약으로 인해 수백년간 장식에 대한 기술이 수요를 잃어버리고 괴멸적인 전란으로 인해 기술자가 손실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중세 건축 관련 장식 기술이 퇴보하였다. 다만 조선시대가 매우 길었기 때문에 조선의 시기에 따라서 모습이 꽤 차이가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후기에 와서는 암암리에 풀어지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공납의 폐단으로 인해 장인들의 수준과 의욕이 저하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바닥 전체에 온돌을 깐 온돌방이 비로소 전국적으로 일반화되는데,[11] 이는 당시 소빙하기 도래로 인한 저온 현상과 관련이 있다. 아무튼 이 온돌의 도입으로 인해 바닥의 무게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중층 구조의 가옥이 사라지는 한 원인이 된다. 또한 이 온돌은, 아마도, 땔감의 수요를 늘어나게 해서 쓸만한 재목을 사라지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다층 건물을 보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루 하면 경회루 등의 개방된 대형 정자같은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원래 루는 사방의 벽이 막힌 다층 건물을 뜻했다. 고려시대와 조선 초까지만 해도 루에 대한 기록이 여럿 등장한다. 세종대왕이 침루에 올랐다거나 루의 다락을 오르내리다 처녀막이 찢어진 여인을 변호하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복층 살림집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의 거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왕궁 혹은 종교적 건축물이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도 조선은 굉장히 건축에 있어서는 좋지 못한 환경이었다.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불교가 곧 국교였으며, 도시 특히 수도에는 도심 한복판 이곳 저곳에 황룡사, 흥왕사 등과 같은 대형 사찰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로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절을 탄압하기 시작했으며, 세조 사후로는 노골적인 절에 대한 압박과 심지어는 고의적인 테러까지 벌어졌다. 심지어는 조선초에는 조선왕사라고까지 불렸던 회암사 역시 조선 중기 이후로는 몰락한다. 때문에 현재는 거대한 사찰이나 왕궁 건축물 중 후대까지 전해지는 것은 극히 드물다. 물론 많은 전란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이 크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러한 타버린 대규모의 도심지 사찰들을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한 조선에서 재건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12]

조선시대에 지어진 사찰들은 대부분 왕실의 원찰이나 능을 지키고 관리하는 조포사, 능찰들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즉 조선 후기에는 억불 정책이 약화되며 왕실과 양반계층의 지원을 받은 사찰의 재건이 늘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화엄사, 금산사, 법주사 등의 대형 사찰이 있다. 특히 화엄사 각황전은 숙종이 직접 이름까지 지어주신 귀한 건물되신다.[13] 다만 조선시대에는 당연히 문화재 보호 의식이란게 많이 옅어 많은 사찰 건물들이 전문적인 보호를 받지 못해 쇠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후기로 가면서 절 건축 자체가 유교건축/관청건축과 유사해지는 경우도 생겼다. 전자는 불국사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수원 용주사가 대표적이다.

단청 기술이 화려하고 섬세한 모습을 많이 보였으며, 단청이 목재가 많은 건축물에서 좀이 슬거나 썩는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으므로 많은 건물에서 단청이 사용되었다. 특히 산간에 위치한 절이나 궁궐 건축등에서 많이 사용된 편.

또한 조선후기에는 목재가 부족해지다 보니 나무를 절약하면서 맞배지붕의 단점[14]을 보완하기 위해 맞배지붕의 양 옆에 커다란 풍판을 달고 화재에 대해 저항력을 늘리기 위해 일반 벽 겉에 덧씌우는 화방벽이 출연하였고, 기둥이나 추녀같이 긴 부재를 만들 때 길이가 다소 짧은 부재를 이어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8번째 사진 기둥 참조[15]


풍판과 화방벽을 설치한 조선시대 건축물의 모습. 사진의 건물의 화방벽은 기둥을 덮지 않고 용지판을 대 기둥과 화방벽을 구분한 것으로, 화방벽이 기둥을 덮어 감싸는 완전밀폐형도 존재한다. 이 경우 습기로 나무로 된 기둥이 썩는 것을 막기위해 화방벽 아래쪽에 기둥의 목재 하단부 일부가 공기와 접촉하도록 작은 공기구멍을 뚫어 놓는다.

1.2. 개항 이후 ~ 해방 이전

이러한 전통건축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다름이 아닌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이 시기에 다양한 형태로 서양 양식의 건축들이 지어지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일본내부적으론 전통 건축이 아닌 서양식 건축양식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식민지(한국이라든지 대만등)에는 미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서양의 양식을 채용한 건축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이 시기에 대대적으로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하여 서양 양식의 건축물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총독부구 서울역사등이 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일본 전통 형식의 건축물들도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 전통과 서양식 건축 양식이 합쳐진 절충식 양식들도 볼 수가 있다. 군산의 동국사적산가옥처럼 거의 완전한 일본식 건축물도 등장하며,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 나왔던 양조장 등 절충형의 건물들은 지금도 조금만 눈돌려보면 손쉽게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주요 도시. 즉 부촌이었던 동네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의 도시와 시골의 경우에는 전통 건축을 그대로 채용해왔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부촌이었던 군산, 강경, 인천 일본조계지만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들은 6.25 즉. 한국전쟁을 통해 현대 건축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또, 19세기부터 재료와 수요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 전통양식이 발전해간 일본건축과 달리 한국의 전통건축은 쇠락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동안 자기발전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일본에 현재 남아있는 많은 2층 민간주거나 '중복도형'(중간의 복도 양쪽으로 방이 있는 형태) 저택은 사실 대부분 19세기부터 대대적으로 개조, 확장되어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쉬운 부분. 종교 건축물은 서양식 벽돌건물이, 관공서를 위시한 근대적 행정,교육, 상업 건축은 일본식의 일본-서양 절충식 건물이나 일본 전통의 목조건축이 대체해버렸다. 주거에서도 조선식과 일본식의 대대적인 절충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의 절충하는 경우에는 지붕 기와를 일본식 평기와로 대체하거나, 미닫이 문의 도입, 한국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한국식 온돌방을 도입하는 정도였다. 아무튼 이러한 절충된 양식으로 유명한 한옥으로는 남일당 한약방 등이 있으며, 등록문화재 등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 한옥 형식으로 넓은 2층 상가 건물을 짓는 등의 새로운 시도도 있었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저평가와 혼란기 속에서 곧 사라졌다. 1930년대 지어진 2층 상가 덕우당은 덕성여대 안에 복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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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2층 목조 상가. 양식이 절충되어 있다. 덕우당은 아니다.

대신 난방연료가 나무나 숯에서 근대식 기름이나 탄으로 바뀌면서 전통건축처럼 부억을 굳이 낮게 만들거나 방높이를 올리지[16] 않아도 되니 집의 높이가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해방후엔 툇마루를 없애고 그 자리에 타일을 붙이는 식으로도 변형되기도 하는데, 근래에 도심에 슬럼가처럼 남아있는 한옥들은 대개 일제말기와 해방후 새롭게 만들어진 바로 이런 도심형 한옥이다. 이런 도시형 한옥이나 유사한 구조의 건축물들은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구조를 제일 쉽게 보는 경우는 일일연속극 등의 막장드라마에 나오는 집 세트 중 재산없는 집안의 집 세트장.

이 시기에 지어진 많은 건축물들은 해방 직후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천대받았고, 그 덕분에 상당수의 주요 건물들이 아무런 논의도 없이 헐려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에 대해 인정받기 시작하며 등록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등록이 되고 있다. 그러나 등록문화재는 강제성이 없는 제도라서 아직까지도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1.3. 해방 이후 ~ 현재

사실상 1950년대 이후에 현대(사실은 모더니즘) 건축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양식은 대부문 모더니즘의 변용이다. 서구에서 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건축이 유행할 당시에 한국의 건축가들은 대부분 모더니즘 건축을 공부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대부분 모더니즘 혹은 그것의 변형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 것이 낡았다, 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모더니즘 건축보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진보했다고는 할 수 없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의 수상자가 아직까지 없다는 점에서 아직 대외적인 평가는 조금 낮은 편이라 안타깝다.

주거 양식으로는 단연 아파트를 가장 대표적인 양식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단독주택 역시 아파트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골목만 가면 시뻘건 벽돌로 지어진 비슷한 주택들이 전국에 있다.서울 주택가와 부산 주택가를 비교하면 처음본 사람은 구분할수 없을지경이다.

1.3.1. 현재의 전통 목건축

파일:external/www.ibulgyo.com/144135_92026_4242.jpg
2015년 6월 개원한 서울 흥천어린이집. 사진출처:불교신문 2015년 10월 국토교통부 올해의 한옥상을 수상했으며, 서울시 최초의 한옥 어린이집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그 가치가 상당히 재평가되고 있다. 해방 직후에만 하더라도 그저 헐어버릴 대상이었건만...아무튼 긍정적인 일이다. 도심지에서는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 전주의 한옥마을 등에서 신축, 개량된 주거, 상업용 한옥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불교 사찰 등이 세워지면서 황룡사 같은 삼국*고려시대의 건물을 복원할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보기로 지어진 진천 보탑사의 3층 목탑 등이 그러한 것 중 하나. 그리고 건물규모가 그간의 경제성장 덕분에 전체적으로 커지고 화려해졌다. 조선시대에 명맥이 끊긴 3층 건물도 지어졌고 구인사 조사전분당 대광사건축평면양식도 이전의 획일적인 일(一)자형에서 탈피하여 아(亞)자형 형태처럼 다양해졌으며용인 법륜사 단청 중에서 가장 화려한 갖은금단청[17]을 칠하거나도봉산 능원사 건물전체에 금박을 입힌 데도 많이 생겼다. 서울 수국사 화려함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반면 예술의 다양성 및 취향을 존중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또한 수입목재의 등장으로 길이가 긴 나무를 구하기 쉬워지다보니, 조선 후기 건축에서 비교적 짧은 나무를 이어 긴 부재를 만드는 방식이 다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외 전통건축에 관하여서는 한옥 문서를 참고.

1.3.2. 북한 건축

남한은 미국이나 시드니에 흔한 서구 양식을 이용하는 데 반해 북한은 소련에서 흔했던 스탈린 고전주의 양식을 사용한다. 지금 북한의 건물들을 보면 구소련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고 북한의 건축가들이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도 구소련 사람들이 상상하던 미래관과 유사하다.

과거에는 공산주의, 오늘날에는 전제군주제 국가 답게 큰 건물을 매우 선호한다. 반면 그 취향에 비해서 낮은 기술력과 경제난으로 인한 자재난 때문에 안습인 상황. 21세기에도 기포가 들어간 질 나쁜 유리를 쓰고, 류경 호텔 같은 초고층 건축물에도 철골을 쓰기가 부담스러운지 철근 콘크리트로 짓고 있다. 그나마 이러한 대형 건축물들도 평양을 벗어나면 없다고 봐야 한다. 또한 도시 주거에서도 아파트의 비율이 높아서 아파트 그라드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한 가지 의의가 있다면, 전통 목건축의 형상을 현대식 건물에 접목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이며, 나름대로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 물론 피상적인 외형만을 개량없이 붙이기만 한다는 비판점이 있지만 말이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인민대학습당이 있다.

2. 한옥/장단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옥/장단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건축물 명칭

흔히 전각이라 줄여 부르지만, 한국 건축물에 붙는 명칭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 전(殿) : 매우 규모가 큰 중심 건축물에 붙는다. 경복궁 근정전, 대웅전 같은 예가 있다.
  • 당(堂) : 전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꽤 큰 건축물에 붙는다. 창덕궁 희정당 등이 대표적.
  • 합(閤) : 전이나 당의 부속 건물 성격의 건물에 많이 붙는다. 창덕궁 낙선당 양정합 같은 식.
  • 각(閣) : 아마 한국 건축물 명칭 중 가장 많이 붙는 명칭일 것이다. 역시 업무 건물의 부속 건물에 많이 쓰였다. 규장각이 대표적.
  • 재(齋) : 궁궐 건축 뿐 아니라 양반들의 가옥에도 종종 붙는 명칭이다. 창덕궁 낙선재가 대표적.
  • 헌(軒) : 주로 생활 공간에 많이 붙인다. 오죽헌이 유명.
  • 루(樓) : 이 명칭이 붙는 건축물은 대부분 여흥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그 규모도 작은 편이 많으나, 경회루처럼 예외적으로 크게 지어진 경우도 있다.
  • 정(亭) : 정자(亭子)할때 그 정이다. 경치가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하여 지은 집. 주거용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벽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다. 경복궁 향원정이 대표적.
  • 정(庭) : 정원(庭園)할 때 그 정. 보통 건물이나 지명 이름에 붙진 않고 조정(朝廷) 같은 식으로 많이 쓴다.
  • 관(館) : 오늘날에도 관청청사 같은 단어에 쓰이듯, 주로 관공서 계통 건축물에 많이 붙는다.
  • 청(廳) : 오늘날에도 정부청사 같은 단어에 쓰이듯, 주로 관공서 계통 건축물에 많이 붙는다.
  • 사(舍) : 객사(客舍)같은 관공서 건물 뿐 아니라 남간정사(南澗精舍) 같은 정원 건축물에도 붙는다.
  • 사(祠) : 이쪽의 사는 사당(祠堂)할 때 사다. 당연히 제사용 건물에 붙는다. 의외로 충렬사처럼 서원에도 붙는데, 공자님 등을 모시는 사당이 있어서 그럴지도.
  • 대(臺) : 아마 이 명칭이 붙은 건축물중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청와대일 것이다. 그러나 '대'는 사실 축대(築臺)나 넓직한 자연 바위처럼 벽이나 지붕없이 탁트인 공간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된다. 개성 만월대(滿月臺)나 첨성대가 대표적. 계룡대처럼 지역을 지칭할 때도 쓰이는 듯.
  • 단(檀) : 건축물보다는 말 그대로 제단(祭壇)을 지칭할 때 많이 붙는다. 사직단(社稷壇), 선농단(先農壇)
  • 원(院) : 보통 공적인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여관을 일컬었다. 조치원(鳥致院)이 대표적. 하지만 요즘은 꼭 그런 역참에만 붙는게 아니고 유교의 서원(書院)이나 선종(禪宗) 불교의 선원(禪院) 같은 곳에 붙기도 하고 여기저기 붙는 듯하다.
  • 원(園) : 정원(庭園)할 때 그 원. 소쇄원 같은 사례가 있다. 중국 같은 경우 이화원처럼 큰 경우도 있다. 원 또는 원소(園所)는 왕세자, 왕세자빈 또는 임금의 사친(私親)의 묘소에 붙이는 이름이기도 하다. 같은 자로 원(园)을 쓰기도 한다.
  • 분(墳) : 보통 무덤을 일컬는 명사로 쓴다. 고분 같은 식으로.
  • 능(陵) : 규모가 큰 무덤을 말하며, 보통 주인이 밝혀져 있는 왕과 왕비의 무덤을 일컫는다. 태릉선수촌이 있는 태릉이나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이 있는 선릉이 대표적.
  • 총(塚) : 규모가 큰 무덤을 말하며, 보통 주인이 밝혀져 있지 않은 무덤을 일컫는다. 장군총, 천마총 등이 대표적.
  • 묘(墓) : 일반적인 무덤.
  • 탑(塔) : 원래는 불교건축물에서 유래한 건축물이나 최근에는 그냥 높은 건물이면 다 탑이라 부르는 듯. 원래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만 탑이라 불렀으나, 이후에는 부처에게 봉안하는 봉납품을 봉안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선종 계통에서 명성이 높은 고승의 사리를 모신 것을 부도(浮屠)라고 불렀는데, 최근에는 그냥 승탑이라고 부르는 추세인 듯하다.
  • 성(城) : 읍성 또는 산성.
  • 문(門) :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숭례문, 광화문 같은 큰 것부터 뒷간 막는 것까지 다 문이다. 물론 규모가 큰 문에만 이름이 붙는다.
  • 교(橋) : 다리. 선죽교가 대표적.

4. 건축물 일람

4.1. 전통건축

4.1.1. 궁궐

4.1.2. 성(건축)

4.1.3. 무덤

4.1.4. 사당

4.1.5. 서원

4.1.6. 향교

4.1.7. 관아

4.1.8. 절(불교)

4.1.9. 고택

4.1.10. 정원

4.1.11. 그외 구조물

4.1.12. 기타문서

4.2. 근대 건축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항목에서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4.3. 현대 건축

  • 커튼 월(일명 유리궁전) 항목에서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 교회 항목에서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 철도 항목을 잘 찾아보면 매우(...)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 버스 터미널 항목에서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4.3.1. 교통 인프라

4.3.2. 박물관/미술관

4.3.3. 북한

북한의 시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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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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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기 다른 시기의 세 건축이 만나고 있는 곳으로 높이 평가받는 공간 사옥.[2] 기단은 남는다.[3] 지금 한반도의 강산에 소나무가 아주 많은 것은 녹화사업 때 소나무 중심으로 심었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고대부터 원래 자연적으로 소나무 비율이 지금처럼 높은 환경은 아니었다.[4] 면적에서는 안학궁보다는 작고 개별 건물의 크기는 황룡사보다 작으니...안습.[5] 심지어 금으로 된 집도 존재했다고 한다!! 금입택이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무려 35채가 신라 수도 서라벌에 존재했다고!![6] 실제로 자기, 회화 등을 봐도 고려가 조선시대보다는 훨씬 화려하고 섬세하다.[7] 단 청기와가 발견됐다고 해서 그 건물의 지붕자체를 모두 청기와로 뒤덮은건 아니다.애초에 청기와를 만드는 기술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그 하나를 만드는데도 일반기와보다 많은 시간과 관리, 돈이 들었다. 거기다 청기와는 금속을 넣어서 만드는 고급기와로 일반기와보다도 고도의 노동력과 기술이 요구됐다. 게다가 애초에 지붕전체를 청기와로 장식했으면 청기와유물들이 수두룩하게 발견돼야 하는데 지금까지 만월대에서 발견된 청기와는 그다지 많지 않다.[8] 그러나 주의할 점은 아집도 대련은 실제 있었던 일을 그린 기록화가 아닌 당대 문인관료들의 이상적인 생활을 그린 상상화라는 점이다. 그림에 나와있는 건축장식이나 공포의 구조를 봐도 저 양식은 고려는 물론 송나라건축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양식이다. 그리고 고려시대 그려진 아집도 대련 이외에도 조선후기 김홍도가 그린 서원 아집도가 있는데 이 두 작품의 배경은 북송의 관료들이 정원에서 시간을 즐기는 장면을 그려넣은 것이다.[9] 평민이나 하층민들의 경우 지금의 원룸과 비슷한 구조의 좌식생활을 했다. 귀족들이야 사회의 부 대부분을 차지했기에 난방비가 많이 들어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야 했던 하급계층에게 입식생활은 사치였다. 다만 송나라의 문신으로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된 서긍이 쓴 고려 도경에 고려의 왕은 날마다 편좌(便座)에 앉아 정사를 보는데 평상에는 인욕(왕골, 부들로 짠 돗자리)을 깔고 앉아 정사를 본다라는 내용이 있기에 완전히 입식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10] 유교적 소박함을 추구한것도 있지만 제일 주효했던 이유는 바로 목재가 부족해서 그렇다. 애초에 양반이라고 집 규모 결정하는데 유교적 가치따위 신경 안썼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단일 건축의 크기는 작아지지만 장식과 그 공법은 더욱 정교하고 사치스럽게 변화한다. 그 경복궁만 보더라도 언급했다시피, 고려 시대 만월대보다 ‘정전’의 크기는 작아도 규모는 훨씬 크고 복잡하다. 구한말 때에도 100칸 훨씬 넘는 기와집은 계속 지어졌다.[11] 온돌 자체는 고구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다.[12] 평지 지역의 사찰은 보기 드물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찰은 산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이 산지지역의 사찰들도 먼 미래 한국 전쟁 때 아주 묵사발이 나버린다.[13] 물론 지배층들이 불교를 무시하는건 어디 안가서 많은 사찰들이 갈수록 여성 신자들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14] 지붕이 보호하지 못하는 좌우 벽면에 비바람이 들이친다.[15] 기차 참조서적 : 한국 전통 목조건축의 결구법: 맞춤과 이음(정연상 저), 알기 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김왕직 저)[16] 궁궐에 가보면 단층 주거인데도 방바닥의 높이가 성인 남성의 키보다 높다! 시골의 양반집도 사실 방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온돌과 바람을 고려한 설계.[17] 금단청의 금자를 황금 금(金)자로 흔히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비단 금(錦)자를 쓴다. 비단처럼 섬세하면서 화려하고 우아한 단청이란 뜻이다. 하지만 금단청을 칠할 때 실제로 금박을 쓰는 경우도 꽤 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단 전체를 완전히 금박을 입히는 식은 아니다.[18] 사실 2012년 완공 작품은 신관뿐 아니라 본관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