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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적 제265호 | ||
단양 적성 丹陽 赤城 Jeockseong Fortres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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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면적 | 64,879㎡ | |
지정연도 | 1979년 7월 26일 | |
제작시기 | 신라 진흥왕 | |
위치 |
<colbgcolor=#344c3c> 단양 적성[1] |
[clearfix]
1. 개요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 위치한 신라의 산성이다. 사적 제265호로 지정되었다.2. 조사 내용
신라에 의해서 축성된 중원진출의 주요 교두보로 평가받는 산성으로 산성 그 자체보다도 단양 신라 적성비로도 유명하다. 동쪽은 죽령천, 서쪽은 단양천이 적성이 북쪽으로 흐르는 남한강에 합류하여 남쪽 빼고는 모두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충지이다. 성의 규모는 위의 제원표에도 나와있듯이 그렇게 대형의 성곽은 아닌데, 단양군의 지형상 대형 성곽이 자리하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신라도 이 단양지역을 영유, 북진하면서 통과할 때에 그렇게 크지 않은 규모로 비교적 소규모 거점으로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단양 적성이 의외로 황당한 것은 국도로 가기에는 여간 불편하지만 중앙고속도로로 가면 단양팔경휴게소(춘천방면)에 내려서 바로 뒤로 걸어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며, 해발고도도 그렇게 높지 않다.[2] 굳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휴게소 바깥으로 형성된 주차장까지만 가더라도 단양 적성을 전체를 충분히 볼 수 있다.
그렇게 휴게소에서 바로 나와서 보면 단양 적성의 남벽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데, 신라 산성의 특징 중의 하나인 현문식(懸門式) 성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성문을 따로 완전히 뚫어놓은 것이 아니라 살짝 낮게 해두되 성 내부에서 다리를 놓아주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형태의 전술적 구조인 것이 특징이다.
<colbgcolor=#344c3c> 단양 적성 동문. 경고표지판 오른쪽이 석환무지이다.[3] |
단양 적성을 포함하여 온달산성, 영월 정양산성, 대야산성, 정선 고성리 산성, 애산리 산성, 송계리 산성 등과 함께 6세기 중엽부터 신라의 구 영역인 영남지역에서 벗어나서 형성되기 시작하는 주요 방어선이자 거점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단양 적성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단양적성
- 고고학사전: 단양 적성
- 문화원형백과: 단양 적성
-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단양 적성
- 대한민국 구석구석: 단양 적성
- 두산백과: 단양 적성
4. 사적 제265호
단양 성재산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주위가 약 900m이나 대부분 붕괴되고, 북동쪽에는 안팎으로 겹쳐 쌓은 부분의 안쪽 성벽이 일부 남아있다.
성의 남서쪽, 남쪽, 동남쪽의 3곳에 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성벽의 절단부가 있다. 북쪽은 남한강과 가파른 절벽의 자연적인 지리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다.
1978년 성내에서 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관계 변동을 알 수 있다. 비석외에 삼국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있어, 신라의 성 쌓기 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성의 남서쪽, 남쪽, 동남쪽의 3곳에 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성벽의 절단부가 있다. 북쪽은 남한강과 가파른 절벽의 자연적인 지리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다.
1978년 성내에서 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관계 변동을 알 수 있다. 비석외에 삼국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있어, 신라의 성 쌓기 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애초에 고속도로가 교량위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올라갈 필요도 없다.[3] 일찍이 발굴조사 없이 공원화 복원 정비를 거쳤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상당히 잃은 편이다. 경고표지판이 붙어있는 것도 복원 이후 붕괴된 부분을 다시 정비하면서 일부 발굴조사를 겸했던 당시의 모습이다.[4] 통상 한 곳에 석환을 몰아두었던 것을 발굴한 것이기 때문에 유구(遺構)의 개념으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