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적 제382호 | ||
여주 고달사지 驪州 高達寺址 Godalsa Temple Site, Yeoju | ||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1-1번지 외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
면적 | 60,033㎡ | |
지정연도 | 1993년 7월 23일 | |
제작시기 | 경덕왕 23년(764) | |
위치 |
1. 개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위치했던 사찰로,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1993년 사적 제382호로 지정됐다.2. 역사
경덕왕 23년(764년)에 창건된 사찰이지만, 통일신라시대 당시에는 크게 번성하지 못했던 사찰로 보인다.통일신라 말기와 고려시대에 들어서 비로소 번창하기 시작하여, 고려 광종대 이후로는 고려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왕실사찰로 거듭남으로서 고려시대에는 상당한 전성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고려가 멸망한 이후 이 사찰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관해서는 기록으로 남은 것이 거의 없으며, 16~17세기 경에는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3. 관련 문화재
3.1. 여주 고달사지 승탑
자세한 내용은 여주 고달사지 승탑 문서 참고하십시오.3.2.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3.3.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3.4.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
3.5.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4.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여주 고달사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여주고달사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고달사
- 답사여행의 길잡이 7 - 경기남부와 남한강: 고달사터
-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주 고달사지
- 대한민국 여행사전: 여주 고달사지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고달사지
- 두산백과: 여주 고달사지
5. 사적 제382호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처음 세워진 후, 고려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절로 성장하였다. 고달사에는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혼을 바쳤다고 하는데,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니,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절터 안에는 깔끔한 모양과 세련된 조각수법의 고달사지부도(국보)를 비롯하여 훌륭한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와 이수(보물)는 원종대사의 행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탑비로 975년에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보물)은 원종대사의 묘탑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이 있어 고려시대 부도의 조각 수법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고달사지석불좌(보물 제8호)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 고달사지쌍사자석등(보물)이 있다.
최근에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터를 비롯한 건물터를 확인하고, 절터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절터 안에는 깔끔한 모양과 세련된 조각수법의 고달사지부도(국보)를 비롯하여 훌륭한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와 이수(보물)는 원종대사의 행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탑비로 975년에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보물)은 원종대사의 묘탑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이 있어 고려시대 부도의 조각 수법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고달사지석불좌(보물 제8호)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 고달사지쌍사자석등(보물)이 있다.
최근에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터를 비롯한 건물터를 확인하고, 절터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