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1 10:39:12

순천왜성

<colbgcolor=#BE0529><colcolor=#fff> 순천왜성
[ruby(順, ruby=じゅん)][ruby(天, ruby=てん)][ruby(倭, ruby=わ)][ruby(城, ruby=じょう)] | Suncheon Japanese Castle
파일:external/www.yisunshinforum.or.kr/201307241629451410.jpg
천수각
형태 왜성
면적 188,428m²
건설 1597년 (선조 30년)
고니시 유키나가
폐성 1598년 (선조 31년)
주소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산 1
1. 개요2. 내용3. 성 구조4. 여담5. 대중매체6. 외부 링크7.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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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천왜성은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왜성으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주둔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조선과 명나라의 육군과 수군의 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가 왜교성 전투다. 1997년 이전까진 '승주 신성리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2. 내용

국내에 있는 왜성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본래의 모습이 어느 정도 보존되긴 했지만, 서생포왜성과 더불어 그나마 가장 보존상태가 좋을 뿐이지 상당수가 헐렸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왜군이 만든 성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임진왜란 끝나고 조선에서도 군대가 배치하기에는 맞지 않으니[1] 그냥 헐어서 다른 건물 재료로 쓰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에 관리를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조선군이 주둔한다고 해도 왜군이 지은 석축은 조선군이 쌓은 석축보다 빠르게 올릴 수는 있지만 내구력 자체는 약해 시간이 지나면서 비교적 빨리 허물어지는 편이었기에 왜성을 재활용하여 세운 조선군 읍성도 오래갈 수 없었다.

순천왜성은 일제강점기에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서 '승주 신성리성'이란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사적 제49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우리 문화재라기보다는 일본의 문화재에 가까운 왜성을 굳이 국가 지정 사적으로 보호해야 하느냐는 비판의 소리가 점차 커지자, 문화재청은 1997년 1월 1일자로 순천왜성을 사적에서 지정해제하면서 지방 문화재로 지정하기를 권고하였다. 이에 순천왜성은 1999년 2월 26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로 재지정됐다.

3. 성 구조

파일:external/blogfiles14.naver.net/%BA%ED8_%BC%F8%C3%B5%BF%D6%BC%BA%C0%C7_%B3%BB%BC%BA.jpg
파일:190-sunchonr.jpg
순천왜성 구조

평산성으로 제일 외곽에 제1외성이 있고 그뒤로 해자, 제2외성, 제3외성, 내성이 있다. 들어가면 고니시 유키나가가 머물던 천수각 터[2]가 있다.

또한 제3외성에는 배가 들어오는 선입지가 있었다. 현재는 간척 사업으로 순천왜성 주변이 육지가 되어서 바다가 있던 옛 모습은 사라졌다.

4. 여담

  • 위치가 해룡면 신성리라는 여수-순천(여순로) 중간쯤에 있는데 상당히 외져서 대중교통도 매우 불편하다. 순천버스 21번이나 광양 버스 3번을 타고 신성리 왜성 정류장이나 조금 떨어진 현대제철 정류장에 내려서 걸어와야 하는데, 두 노선을 합쳐도 하루에 8대만 운행한다. 따라서 자가용이나 택시가 필수다.
  • 차로 갈 경우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117 일대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포장 흙바닥이고 주차구획등도 없지만, 순천시 주요 관광지 안내 간판이 있어서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 순천왜성 근처엔 충무사가 있다. 왜교성 전투에서 죽은 왜귀들이 출몰해 흉흉한 분위기가 돌자 이들을 가라앉히려면 충무공을 모셔야 한단 의견으로 사당을 세운 것이며, 이 후 왜귀들이 사라졌단 전승이 있다.
  • 전라남도에 유일하게 남은 왜성이다.
  •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자주 방문하는 장소이다. 특히 역사 매니아인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성 아래 안내판에는 일본어 설명도 있다.

5. 대중매체

6. 외부 링크

7.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낮은 구릉지대에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성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장 소서행이 일본군의 호남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하여 쌓은 왜성이다.

순천왜성은 왜교 또는 예교(曳橋)라 하며 일본사람들은 순천성이라 부르고 있고, 1997년 1월 1일 국가 사적 제49호에서 해제되기 전까지는 ‘승주 신성리성’으로 불려왔다.

성벽은 외성 3첩과 내성 3첩으로 쌓았는데 내성만 그 흔적이 분명하고 외성은 분명치 않으며, 성 주위에는 연못을 둘러 판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은 1598년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과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군 사이에 최대의 결전이 벌어진 곳이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둔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1] 조선일본이 만든 성이 각각 다르듯이 군사전력 등 요소에서 여러 모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2] 현재는 천수대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