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15:26:40

장미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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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제400호
충주 장미산성
忠州 薔薇山城
Jangmi Sanseong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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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산77-1번지 외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면적 442\,382㎡
지정연도 1997년 11월 11일
제작시기 삼국시대(고구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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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626305.jpg
<colbgcolor=#344c3c> 장미산성의 항공사진. 남한강, 금가면 일대의 하안대지의 조망이 용이하다.[1]
1. 개요2. 조사 내용3. 관련 유적4. 외부 링크5. 사적 제400호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해발 337.5m인 장미산을 중심으로 계곡을 감싸, 돌로 쌓은 산성이다. 수로 및 육로교통의 요충지이자 삼국시대에 전략적 거점이기도 한 이곳에는 백제시기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산성의 원류는 고구려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충주 고구려비’와 관련하여 고구려 세력의 남하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대림산성과 장미산성 내 설명판) 이 성과 관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충주의 서쪽 28리에 돌로 쌓은 옛성이 있다.”라 했으며, 「대동여지도」에도 “장미산고성유지(장미산에 오래된 성터가 남아있다)”라 기록되어 있다.
현재 성곽은 다소 훼손된 상태로, 성의 크기는 높은 곳이 5m, 폭은 5~10m이며, 둘레는 2,940m이다.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소개 문구

현재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인근에 있는 산성으로 삼국의 각축지였던 충주에 소재하는 만큼 축조 주체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는 성곽이다. 사적 제400호.

과거에는 고구려 성곽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지만 발굴결과 백제가 가장 먼저 축조했고 이후 고구려가 잠시 점령했다가 신라가 최종적으로 손에 넣었다고 추정한다.

이름에 들어가는 장미(薔薇)는 장미꽃의 장미와 같은 한자이긴 하지만 꽃에서 유래한 이름은 아니고 이 성이 있는 장미산(337m)에서 유래했다. 전설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보련과 장미라고 하는 남매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둘 다 장수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희생이 되어야 해서 각자 보련산(764m)과 장미산에 성을 쌓는 것으로 내기를 했는데 남동생인 장미가 누나 보련을 이겼다고 한다. 또는 이 산의 형태가 남한강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데 이것이 긴 꼬리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장미산(長尾山)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그랬던 것이 나중에 한자만 장미꽃의 장미로 바뀐 것이다.

2. 조사 내용

장미산성은 협축의 석성으로써 삼국시대의 토기들이 분포하고 있어서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시·발굴 조사 이전에는 채집된 여러 삼국시대 토기들 가운데 고구려 토기의 성격을 갖는 토기가 일부 확인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장미산성의 인근에 중원 고구려비가 있고, 탑평리 유적[2]에서 고구려 구들이 확인되기도 하였으며 장미산성에도 고구려 산성에서 주로 보이는 치(雉)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고구려 토기가 채집된 사실과 더불어 고구려 산성으로 보는 견해가 더러 있었다.

2004년의 발굴조사에서 장미산성 성벽의 일부 구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으나 고구려 산성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는 확인되지는 않았고 협축(夾築) 성벽의 축조기법을 확인하고 석환(石丸)[3]무지가 조사되었을 뿐이었다.
파일:충주_장미산성-20090501.jpg
파일:장미산성 치성_출처 오천사 농장 블로그.jpg
<colbgcolor=#344c3c> 장미산성의 남벽 <colbgcolor=#344c3c> 장미산성 북쪽 치성 [4]

장미산성의 북벽에 붙어있는 치성(雉城)은 석축이 일부 보강되었지만 위의 사진처럼 석축 성벽이 완전히 남지는 않았다. 치성의 윤곽을 따라서 굵은 주혈이 열상으로 배치된 양상은 백제가 초축했으나 고구려가 점령하면서 재사용된 도기동 목책성의 사례가 있기 때문에 또 마냥 고구려만의 특징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더군다나 목책성에 나중에 석축을 덧대 보강하는 양상은 남한지역에 소재하는 고구려의 크고 작은 보루에서도 확인기도 한다.[5]

성벽에 사용된 성석도 고구려 석성에서 보이는 쐐기형 석재의 양상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편이다.

또 고구려 토기의 채집의 문제도 있다. 순수 고고학적 이유는 아니지만 1990년대부터 경기도의 북부 지역에서 확실한 고구려 산성이 확인되면서 남한 지역에서의 고구려와 관련된 유적을 발견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붐이 일어났는데, 그런 이유에서 유적에서 확인된 토기 조각 하나를 갖고 고구려토기라고 확실히 보기 어려움에도 니질 태토의 토기편인 경우 고구려 토기로 추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장미산성 또한 아직 발굴이 되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지만 현재까지의 발굴결과만 본다면 그러한 맥락에서 고구려와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장미산성에 전면적인 발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벽 전반에 대해서 시굴조사를 하였던 바 지금까지는 백제에 의해서 가장 처음에 만들어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또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목탄을 시료로한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 분석결과는 490년이라고 나왔고, 출토되는 유물도 파편이긴 하지만 대부분 백제토기였기 때문에 5세기 중후반 즈음에는 분명히 백제가 점유한 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6]
파일:충주일대유적분포도.jpg
<colbgcolor=#344c3c> 충주일대유적분포도[7]
위 이미지는 충주 일대 삼국시대 유적 분포도이다. 누암리 고분군과 하구암리 고분군은 신라의 6~7세기대 고분군, 금릉동 고분군과 단월동 고분군[8]은 백제의 고분군·유적이며 탑평리 유적, 탑평리 석탑은 신라, 중원 고구려비는 고구려의 유적이다.

한편 연대측정이 490년을 가리키는 것은 475년의 고구려 남정과 관련이 있음을 추정케도 한다. 장미산성의 축조 자체는 백제와 관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6세기의 고구려의 남한 내 주요 거점이라는 충주의는 지역적 특징을 고려하면 고구려와 관련이 없었다고 단정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근거리에 위치하는 장미산성에서 고구려가 산성을 점유하였는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었다거나 하는 확실한 물질적 증거는 없어도 정황상 이유로 고구려와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멀지 않은 곳에 신라 고분군이 있기 때문에 신라가 만든 산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조사 결과로 볼 때, 장미산성은 백제가 처음 지었으나 (중간에 고구려가 점유했을 수도 있고) 신라가 결국 손에 넣었다는 설이 타당해 보인다.

3. 관련 유적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 화이트.svg 세계유산 잠정목록
중부내륙 산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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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대전 일대는 소위 중원지역이라고 지칭되며 삼국시대 5~6세기의 각축장이었던 만큼 관방시설이 굉장히 많다. 중원지역의 삼국시대 산성들이 실제로 유네스코에 등재될 가능성은 낮지만 중부내륙 산성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등재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남한지역의 고구려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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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한탄강 유역 고구려 보루군 <colbgcolor=#ffffff,#1f2023>연천 호로고루ㆍ연천 당포성ㆍ연천 은대리성ㆍ연천 무등리 1·2보루ㆍ파주 덕진산성
양주분지 고구려 보루군 양주 태봉산 보루ㆍ양주 독바위 보루ㆍ양주 천보산 보루군ㆍ양주 불곡산 보루군ㆍ양주 도락산 보루군
아차산 일대 보루군 아차산 보루ㆍ용마산 보루ㆍ홍련봉 보루ㆍ시루봉 보루ㆍ수락산 보루ㆍ망우산 보루
불암산 보루ㆍ배봉산 보루[a]
한강 이남 고구려 점령 성곽 서울 몽촌토성안성 도기동 목책 유적ㆍ대전 월평동 산성ㆍ청원 남성골 산성ㆍ진천 대모산성[b]충주 장미산성[b]
[ 각주 ]

[a] 아차산 일원은 아니지만 서울 권역에 소재[b] 축조와 점령의 주체에 대해서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거론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대모산성에는 치 시설이있어 고구려라고도 하지만 수 킬로 둘레를 갖는 큰 성벽에 치는 단 1개만 있을 뿐이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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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475년 고구려 남정과 관련하여 고구려의 남한 진출 및 점령과정을 엿 볼 수 있는 다른 관방유적들과도 관련이 있다.

4. 외부 링크

5. 사적 제400호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 쌓은 둘레 약 2.9㎞의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권에 보면 ‘하천 서쪽 28리에 옛 석성이 있다’라는 기록과 『대동지지』에 ‘장미산의 옛 성의 터가 남아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1992년 조사결과 성 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을 통해 백제·고구려·신라가 차례로 이 성을 점령, 경영하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북쪽에 있는 절인 봉학사 지역 일부를 빼고는 성벽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돌을 대강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쌓았는데, 서쪽과 서남쪽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북쪽 정상부분의 성벽을 따라 있는 좁고 긴 군사용 참호는 주변 성벽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남쪽의 대림산성과 강 건너편 탄금대의 토성, 충주산성과 서로를 보호하며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파주의 오두산성(사적 제351호)과 지형조건이 비슷해 성을 쌓은 시대나 배경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유적이다.

6. 둘러보기

파일:충주시 CI.svg
충주시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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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충주 고구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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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철조여래좌상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선림보훈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사적 ||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장미산성 숭선사지
누암리 고분군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명승 ||
탄금대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국가민속문화재 ||
충주 윤양계 고택 이응해장군 묘 출토복식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1d2088> 국가등록문화재 ||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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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경종 태실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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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사십이장경 인천안목 권상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권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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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7, 8 묘법연화경 권1 묘법연화경 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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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 출처 - 문화재청.[2]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과 관련된 유구들이 모두 확인되었고 유물들도 출토된 바 있다. 뿐만아니라 층위 상으로도 고구려 유물 포함층이 있기 때문에 충주 지역의 고구려와의 관련성이 있는 유적으로 탑평리를 제외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만 유적에서는 고구려계 토기라고 불리는 고구려 영향을 받았지만 백제토기로 구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고구려 유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이유도 있다.[3] 적성에서도 이러한 석환무지가 확인된 바 있다.[4]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5] 특히 산성의 축조주체를 파악하는 것은 토기와 같은 유물에 비해서는 복잡한 편이다. 특정한 국가의 축조방법이 확인되었다고는 해도 산성은 추후에 그 국가말고도 타국이 점령하여 재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현상이 더불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특정한 기법이 보인다고 어느 국가의 성곽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것이 신라 성벽의 기단보축으로, 신라가 주로 썼던 성벽 보강법이지만 고구려나 백제성곽에서도 가끔씩 보인다.[6] 하지만 490년이라는 기록이 완전히 초축연대를 증명하진 않는다. 더군다나 축조주체를 판별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490년에 이 성이 있었다 정도의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을 뿐이다.[7] 사진 출처 - 구글어스.[8] 지도의 오른쪽 아래부분인 남한강의 남쪽에 약간 떨어져 분포하고 있으나 화면 비율 때문에 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