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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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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적 제200호
고양 서삼릉
高陽 西三陵
West Three Royal Tombs, Goyang
<colbgcolor=#315288><colcolor=#fff>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원당동)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면적 1,361,665m2
지정연도 1970년 5월 26일
건축시기 조선시대
관리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파일:고양 서삼릉 경내도.jpg
서삼릉 안내도

1. 개요2. 개요3. 능(陵)
3.1. 희릉(禧陵)3.2. 효릉(孝陵)3.3. 예릉(睿陵)
4. 원(園)
4.1. 효창원(孝昌園)4.2. 소경원
5. 묘(墓)
5.1. 후궁묘5.2. 회묘5.3. 빈·귀인 묘역5.4. 왕자 및 공주 묘5.5. 경혜옹주 및 이숙무 묘5.6. 태실
6. 훼손의 역사7. 복원 문제8. 기타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2. 개요

西三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제200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조선 왕조의 왕릉 희릉, 효릉, 예릉이 조성되면서 3릉이 한양의 서쪽에 있다하여 ‘서삼릉’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기타로 회묘 등이 있다. 이 근처로 다니는 노선으로는 043번이 있다.

이 곳에는 공개되어 있는 능/원들 말고도 소현세자의 소경원과 인종의 능인 효릉, 폐비 윤씨의 묘소인 회묘, 왕자 및 공주묘와 태실이 있으나 농협 산하의 젖소개량소 부지 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비공개 권역이었다. 다만, 2023년 9월 8일부로 일반인에게도 개방되게 되었다.# 하지만 2023년 10월 21일부터 가축 전염병 방지 문제로 인하여 다시 비공개 권역으로 전환되었다.

3. 능(陵)

3.1. 희릉(禧陵)

파일:희릉장경왕후.jpg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가 홀로 묻힌 단릉이다. 중종의 정릉이 지금의 예릉 자리에 들어서면서 희릉 역시 정릉의 소속이 되고 동원이강릉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러나 중종의 능은 문정왕후 윤씨에 의해 정릉으로 이장되고, 다시 장경왕후의 능은 희릉이 되었다. 둘사이를 갈라놓다니 정작 문정왕후도 중종과 함께 하지 못하고 태릉에 묻혔지만.

희릉은 원래 헌인릉의 서쪽, 즉 지금의 국정원 경내 서쪽 능선에 있다가 현 위치로 이장됐는데 이 무덤 자리가 한동안은 세종의 구 영릉으로 잘못 알려져있었다. 2008년에 구 영릉인 줄 알고 발굴조사를 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이 무덤은 석실로 조성한 소헌왕후까지 묻힌 합장릉이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회격묘에 단실이었기 때문에 영릉으로 보기엔 어려웠고 결과적으로는 희릉 초장지(初葬地)임이 확인됐다.[1]#

이렇게 되면서 1973년에 인근에서 발굴했던 구 영릉 석물이 사실은 영릉이 아니라 희릉의 것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추정은 공식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진짜 구 영릉 석물들은 그 자리에 순조인릉이 조성되면서 인릉의 석물로 쓰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3.2. 효릉(孝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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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관련 문서}}}
생애 · 효릉 · 중종 시기의 괴수 출현 소동 · 인종실록

파일:인종효릉.jpg
인종인성왕후 박씨가 나란히 묻힌 쌍릉이다. 특이하게도 인종의 릉에만 병풍석이 둘러져 있다. 인종의 릉에도 원래는 난간석만 둘러져 있다가 선조 때 인종의 릉에만 병풍석을 둘렀기 때문. 이 능은 최근까지 비공개 능역이었는데 이유는 효릉 주변이 축협 부지이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까지 비공개 능역이었던 온릉이 전면 개방되면서 조선왕릉 중 비공개 능역인 곳은 효릉이 유일했었다. 참고로 청나라 3대 황제인 순치제의 황릉과 능호가 같다. 소현세자의 소경원과 함께 2023년 9월 8일에 개방되었다.[2] 하지만 2023년 10월 21일 가축 전염병 방지로 인하여 다시 비공개 권역이 되었다.

3.3. 예릉(睿陵)

파일:철종 예릉.jpg
철종장황제철인장황후 김씨가 나란히 묻힌 쌍릉이다.

원래 중종정릉이 자리했던 곳이다. 그러나 문정왕후에 의해 이장되면서 이 자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장할 때 그대로 묻었던 정릉의 석물을 재사용하여 예릉 조성 당시의 석물 크기보다 훨씬 거대한 석물의 크기를 엿볼 수 있다.

4. 원(園)

4.1. 효창원(孝昌園)

정조의빈 성씨의 장남 문효세자의 원이다. 1786년(정조 10년)에 고양 율목동에(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공원)에 효창묘(孝昌墓)를 조성하였는데, 1870년(고종 7년)에 효창원(孝昌園)으로 승격하였고, 이후 1944년 일제가 현재의 자리로 강제 이장하였다. 여담으로 처음 조성될 당시에는 문효세자 이후 세상을 떠난 의빈 성씨의 묘와 100보(약 50m)였는데, 두 묘를 이장을 한 현재는 약 2km에 달한다고 한다.

4.2. 소경원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의 원이다. 현재 서삼릉 비공개 구역 중 하나에 속해 있다. 철종의 예릉 뒷문으로 한참 동안을 걸어가야 나오고, 소경원의 주위에는 농협 젖소개량소 및 뉴코리아 컨트리클럽, 제30기갑여단이 둘러싸고 있다.[3]

5. 묘(墓)

5.1. 후궁묘

과거에는 의친왕의 어머니인 귀인 장씨의 묘도 있었으나 2009년남양주시 홍유릉으로 이장하였다.

5.2. 회묘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무덤으로, 1504년 연산군이 갑자사화를 일으킬 당시 폐비 문제에 관계된 자들을 처벌할 때 '제헌왕후(齊獻王后)'로 복위시키면서 회릉으로 승격시켰으나,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제헌왕후의 작위도 삭탈되고 능도 묘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석물은 그대로 남아 있다. 본래는 서울특별시 회기동에 있었으나 1969년 서삼릉 능역으로 이전되었고, 회기동의 구 회묘 부지에는 현재 경희의료원이 들어서있다. 회묘 인근에는 농협 젖소개량소와 한국스카우트 종합훈련원의 부지가 차지하고 있고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그 인근을 지나고 있다.

5.3. 빈·귀인 묘역

후궁묘의 '빈·귀인 묘역'에 조선대한제국의 왕과 황제의 후궁의 묘 16기를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옮겨왔다. 비공개 지역으로, 사전에 서면으로 출입신청을 해야 관람할 수 있으나, 9월 8일 부로 효릉을 포함한 비공개 묘역들이 전부 개방함에 따라 예약을 하고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5.4. 왕자 및 공주 묘

왕자 및 공주의 묘가 비공개 능역에 있다.

5.5. 경혜옹주 및 이숙무 묘

낙타고개 인근에 있고[4], 근처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비공개 구역이다. 서삼릉 능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무덤 양식인 사각분으로 둘레돌을 세웠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왼쪽이 경혜옹주의 묘이고, 오른쪽이 이숙무의 묘이다.

여기서 경혜옹주는 진안대군 이방우의 2남 3녀 중 장녀이고, 이숙무는 조선 초 문신으로, 고려의 충신인 목은 이색의 손자이다.

5.6. 태실

조선 역대 임금들의 태실을 일제시대 때 이 곳으로 옮겨 왔다. 태실 비문에는 일제 시대 연호를 썼다가, 지운 흔적이 있다.

6. 훼손의 역사

본래 서삼릉의 능역은 광릉수목원에 필적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시절 서삼릉의 광활한 능역을 한양컨트리클럽, 뉴코리아 컨트리클럽, 농협대학교, 농협 젖소개량소, 종마장[5], 한국스카우트 종합훈련원에 넘겨주었고, 그로 인해 서삼릉의 능역은 무참히 훼손되었다. 인종의 효릉과 폐비 윤씨의 회묘, 태실, 소현세자의 소경원[6], 왕자 및 공주, 후궁묘는 서삼릉의 능역을 차지하고 있는 농협 젖소개량소에 둘러싸여 오늘날까지도 비공개 구역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는 서삼릉 태실 권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가 생겼다고 한다. 단, 방문하려면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다.

7. 복원 문제

2009년까지 능 내의 시설을 철거하고 능역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

2023년 6월, 인종의 효릉과 소현세자의 소경원도 개방할 예정이다. 그런데 부지의 젖소개량사업소 문제는 아직 확정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2023년 9월 8일, 관람로를 마련하면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방문하려면 사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해야 한다. 그리고 방역을 위해 입장 시 소독 작업은 필수다. 그러나 소현세자의 소경원은 개방되지 않았다.

8. 기타

삼릉역의 역명도 여기서 따왔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철도역은 원흥역이다.

조선왕릉 중 가장 훼손이 심각한 왕릉이다.

일제강점기 때의 수난과, 군사정권 시절의 아픔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9. 관련 문서


[1] 세종의 영릉이 있었다고 하면 그 아래에 석실(돌방)이 있어야 하는데, 발굴 당시 회격묘의 흔적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바닥이 단단하면서 움푹 파인 흔적이 있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김안로가 희릉을 이장할 때 구실로 '현재 조성한 자리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현재의 서삼릉 쪽으로 이장했다고 한다.[2] 기사 기사 2.[3] 특히 소현세자의 아들인 경선군과 경완군의 묘는 30여단 영내, 즉 군사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30여단 주둔지는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로 분단되어있는데, 그중 90년대 후반까지 제30기계화보병사단 시절 예하 90여단 주둔지로 사용했고 현재는 30여단 소속부대 창고가 조성된 지역 내부에 위치해있다. 외부 출입구도 없고 막사 등 병영생활 관련된 시설이 없으니 훈련이나 작업 등을 목적으로 일부러 가지 않는 이상 해당 부대 출신이더라도 방문할 일이 없다. 덕분에 인적이 거의 닿지 않은 채로 방치되고 있다.[4] 정확히는 원당에서 통일로 IC에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5] 한국마사회 소속[6] 인근에 뉴코리아 컨트리클럽, 제30기갑여단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소현세자의 아들들인 경선군묘와 경완군묘는 30여단 주둔지 내부, 즉 군사지역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