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bf1400,#bf1400><colcolor=#ffd400,#ffd400> 조선 신의왕후의 왕릉 | 북한소재 조선왕릉 제릉 齊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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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지 | 개성시 판문구역 상도리 |
| 조성형태 | 단릉(單陵) |
| 매장자 | 신의고황후 (1391년 10월 21일 사망) |
| 조성시기 | 1392년 10월 2일 |
| 홈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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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릉(齊陵) 전경 |
1. 개요
제릉(齊陵)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첫 번째 왕비 신의왕후 한씨가 안장된 왕릉이다. 현재 북한 개성시에 자리하고 있다.태조의 4대조의 무덤인 북도팔릉과 아들 내외의 무덤인 후릉과 함께 북한 지역에 소재한 탓에 남한에 소재한 조선왕릉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함께 등재되지 못하였다. 추후 관계가 개선되어 북한 당국과 협의하거나 통일이 이뤄진다면 확장 등재 방식으로 추가 등재될 가능성도 있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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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릉(齊陵)의 능침 |
제릉은 사실상 현존하는 조선왕릉 중 가장 오래된 왕릉 중 하나로, 조선 초기 왕릉 양식 연구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왕릉이다.[3] 특히 제릉의 8각 장명등은 조선왕릉에서 가장 먼저 확인되는 8각 장명등으로,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여러 공통점이 발견되어 같은 장인들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후 한반도가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될 당시에는 개성이 남한의 영역이었으므로 관리상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정전협정 이후 개성이 북한 치하에 놓이면서 통일되기 전까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두 조선왕릉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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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릉(齊陵)의 표석 |
보존 상태는 별로 좋지 못하다.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정자각과 비각은 물론 석물들의 상태 역시 관리를 받지 못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릉이 있는 산도 나무가 모조리 베어져나가 민둥산이 되었다.[5]
3. 여담
[1] 현재의 북한 개성시 판문구역[2]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 박자청(朴子靑, 1357~1423)이 공사를 총괄했다.[3] 시기상으로 태조의 건원릉 보다도 먼저 조성된 왕릉이 제릉이다. 물론 태조의 4대조의 무덤인 북도팔릉이 제릉보다 근소하게 먼저 조성되었으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4] 나머지 하나는 2대 국왕 정종과 정안왕후가 안장된 후릉이다.[5] 왕건의 현릉과 공민왕의 현정릉을 제외한 북한 치하 왕릉은 고려, 조선 가리지 않고 나쁘다. 그나마 조선왕릉은 도굴은 안 당했지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줄기차게 도굴당했던 고려 왕릉들의 보존 상태는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 최악이다. 그나마 북한이 보전에 신경을 쓴 현릉과 현정릉도 외관만 그럭저럭 꾸며 놓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