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숙릉은 왕의 무덤의 이름으로 쓰이는 명칭 중 하나이다.2. 한국
2.1. 고려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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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고려 제9대 국왕 덕종의 숙릉(肅陵)
오랜 세월의 풍파를 거쳐 유실된 상태였으나 2016년 해선리 1릉을 발굴해 '숙릉'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근처에 동생인 정종의 주릉도 같이 발굴했다.
숙릉 발굴 초기 모습
파일:덕종 숙릉 정비 후 사진.jpg
숙릉 최근 모습
2.2. 조선왕릉
2.2.1. 조선 익조의 추존 왕비 정숙왕후의 숙릉(淑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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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북도팔릉#숙릉(淑陵)|숙릉(淑陵)]] 부분을}}} 참고하십시오.2.2.2. 조선 제14대 국왕 선조 왕릉의 옛 이름 숙릉(肅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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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목릉#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목릉#|]]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선조의 능호는 현재 목릉(穆陵)인데 원래 이름은 숙릉(肅陵)이었다가 정숙왕후의 능호 숙릉과 음이 같다고 하여 2개월만에 바꿨다.
2.2.3. 조선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 왕릉의 옛 이름 숙릉(肅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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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홍유릉#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홍유릉#홍릉(洪陵)|홍릉(洪陵)]]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을미사변 이후 1895년(고종 32년) 10월 22일 김홍집 내각에서 올린 명성황후의 시호는 '순경왕후(純敬王后)', 능호는 '숙릉(肅陵)'이었다.[1] 그러나 아관파천으로 인해 김홍집 친일내각이 붕괴하자 고종은 장례 일정을 중단했다. 이후 1897년(고종 34년) 1월, 조정에서 김홍집 내각이 올린 건 시호로 쓸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자 고종은 시호와 능호 후보를 새로 올리라고 했고, 시호와 능호를 각각 삼망(三望) 후보 중 첫째 후보인 '문성왕후(文成王后)', '홍릉(洪陵)'으로 하기로 했다.[2] 이후 시호는 '문성'이 정조 대왕의 정식 시호에 쓰였다는 이유로 취소하고, 시호 후보 중 하나였던 '명성(明成)'을 쓰기로 바뀌었으나 능호 홍릉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숙릉의 조성 위치는 동구릉의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崇陵)의 우백호였으며,# 지금도 초장지의 흔적과 석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리피스 컬랙션 중에서도 숙릉 조성 당시의 사진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