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20:28:22

인헌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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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d1b43><colcolor=#ffd400>
조선 원종의 왕비
인헌왕후|仁獻王后
조선 정원군의 부인|조선 인조의 생모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
파일:김포 장릉.jpg
장릉 전경
출생 1578년 6월 2일(음력 4월 17일)
조선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사망 1626년 2월 10일(음력 1월 14일)
(향년 49세)[1]
조선 한성부 경덕궁 회상전[2]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45)
능묘 흥경원(興慶園) → 장릉(章陵)[3]
재위기간 조선 연주부부인 (계운궁)
1623년 4월 22일 ~ 1626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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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d1b43><colcolor=#ffd400> 본관 능성 구씨
□완(□婉)
부모 부친 능안부원군 구사맹[4][5]
(綾安府院君 具思孟, 1531 ~ 1604)
모친 평산부부인 신지향[6][7]
(平山府夫人 申芝香, 1538 ~ 1622)
형제자매
4남 6녀 중 5녀 [ 펼치기 · 접기 ]
오빠 - 구성(具宬, 1558 ~ 1618)
오빠 - 구횡(具宖, 1562 ~ ?)
언니 - 구경완(具敬婉, 1563 ~ 1620)
언니 - 구효완(具孝婉, 1567 ~ ?)
언니 - 구정완(具靜婉, 1568 ~ ?)
오빠 - 구용(具容, 1569 ~ 1601)
언니 - 구장완(具莊婉, 1571 ~ ?)
오빠 - 구굉(具宏, 1577 ~ 1642)
여동생 - 구신완(具愼婉, 1582 ~ ?)
배우자 원종
자녀 3남[8]
작호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
→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
전호 계운궁(啓運宮)
휘호 경의정정(敬毅貞靖)
시호 인헌왕후(仁獻王后) }}}}}}}}}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4. 사후5. 참고 문서

[clearfix]

1. 개요

조선추존 왕비. 조선 16대 국왕 인조의 모후로, 14대 국왕 선조의 5남인 정원군의 부인이다.

능안부원군(綾安府院君) 구사맹(具思孟)의 딸로 본관은 능성이다. 정원군과 혼인하여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에 봉해졌다가 인조반정 후 남편 정원군이 대원군에 추존되면서 부부인으로 격상되었다. 궁호는 '계운궁(啓運宮)'이고, 정식 시호경의정정인헌왕후(敬毅貞靖仁獻王后)이다.[9]

2. 생애

1578년(선조 11년)에 의정부 좌찬성을 지냈으며 세조영의정이었던 구치관(具致寬)의 동생 구치홍(具致洪)의 현손자인 아버지 능안부원군 구사맹(具思孟)[10]과 어머니 평산부부인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참고로 인헌왕후의 증조모가 거창 신씨인데, 연산군의 정비 폐비 신씨의 조카딸 관계가 된다.

정원군혼인하고 처음에는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에 봉해졌다가 1623년(광해군 15년), 인조반정으로 장남 능양군이 인조로 즉위한 뒤엔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으로 불렸으며, 이후 머물던 궁의 이름을 따서 '계운궁(啓運宮)'으로도 지칭되었다.

이후 이괄의 난으로 창경궁이 소실되자 인조경덕궁[11]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어머니인 구씨도 함께 모셔갔고[12] 그 곳에서 거주하다가 1626년(인조 4년) 2월 10일경덕궁 회상전에서 4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장례 때 인조는 자신이 상주가 되려고 하다가 임금왕자 부인의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산되었고[13] 대신 명목상 의안군의 봉사손이었던 둘째 아들 능원군이 돌아와 상주가 되었다.

3. 가족 관계


능성 구씨와 조선 왕실과의 관계가 사뭇 화려한데 태종의 아들인 효령대군세종의 후손들이 이리저리 연결된다.

먼저 효령대군의 증손자 의신군(이징원)의 딸이 구엄이라는 인물과 혼인하는데, 구엄의 아들이 인헌왕후의 아버지 구사맹이다.

구엄은 연산군의 사돈이었던 구수영의 손자인데, 구수영이 세종의 아들 영응대군의 딸인 길안현주 이씨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 중 구희경의 아들이 구순이다.[16] 즉 구순과 부인 이씨는 외8촌이다. 구순의 아들 중 구사안은 중종문정왕후의 딸 효순공주와 결혼한다. 촌수로 따지면 10촌이다.

구수영의 막내아들인 구신경의 아들인 구한은 중종과 숙의 김씨의 딸인 숙정옹주와 혼인한다. 그런데 이들의 촌수가 9촌이다.[17]

연주부부인(추존 인헌왕후) 구씨와 정원군(추존 원종)의 혼인은 세조의 후손과 영응대군의 후손과의 만남인데 연주부부인 구씨는 영응대군의 외손(영응대군-길안현주(구수영)-구희경-구순-구사맹-인헌왕후)의 후손이며, 정원군은 세조의 후손(세조-의경세자-성종-중종-덕흥군-선조-정원군)이다. 촌수로 따지면 13촌이다.

연주군부인의 오빠인 구성(인조의 큰외삼촌)의 딸(죽수군부인 구씨)은 풍해군과 혼인을 하는데 풍해군은 영양군의 손자이다. 영양군의 동생이 덕흥대원군 즉 선조의 아버지니 풍해군과 정원군은 6촌이며 인조와 풍해군은 7촌이다. 더불어 풍해군의 부인은 인조에게 재당숙모가 되는데 외가 쪽으로 보면 외사촌이다.[18]

능성 구씨 시조기준 10 ~ 16대, 구수영 이래 죽수군부인 구씨까지 6대에 걸쳐 구성원 중 한 명은 꼭 왕실(전주 이씨)와 혼인 관계가 성립되는 가문인 셈이다.
조선 16대 임금 인조부터 마지막 27대 임금 순종까지 모두 인헌왕후의 핏줄이다.

참고로 인헌왕후의 숙부 구사민의 12세손이 LG를 창업한 구인회이다.

4. 사후

인헌왕후의 능은 남편 원종과 합장릉인 장릉(章陵)이다.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위치해 있다.

그녀가 죽고 1년 후에 정묘호란이 발발하게 되는데, 당시 후금정묘호란의 형제의 예의 화친 조건으로 인조가 직접 말의 피를 마시며 형제의 의맹을 맺을 것을 강요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난색을 표했고, 후금인조의 모후의 상을 이유로 조건을 완화해서 신하가 피를 마시게 하고 신하는 무슨죄대신 임금이 직접 향을 태우는 것으로 바꿔 형제의 예를 맺게 했다.

5. 참고 문서


[1] 정원군으로 추존되기 전에 사망했기에, 생전에 왕대비였던 적은 없다.[2] 훗날 경희궁으로 바뀐다.[3] 육경원(毓慶園)
→ 흥경원(興慶園)
장릉(章陵)
[4] 세종의 적8남 영응대군의 증외현손자.[5] 영응대군 → 길안현주 → 구희경 → 구순 → 구사맹[6] 세종의 서차남 계양군의 진외현손녀.[7] 계양군 → 부림군 → 이씨부인 → 신화국 → 신지향[8] 인조, 능원대군, 능창대군.[9]조선왕조실록》 인조 26권, 10년(1632년, 임신 / 명 숭정(崇禎) 5년) 5월 3일(경자) 1번째기사.[10] 구사맹의 형인 구사안(具思顔)은, 중종문정왕후의 딸인 효순공주(孝順公主)와 결혼했다.[11] 현재의 경희궁.[12] 반면에 대왕대비였던 인목왕후인경궁으로 보내 버렸다. 대비께서 머물기 좁다는 이유였지만 아무래도 반정의 명분을 쥐고 있던 그녀가 껄끄러웠던 것으로 추측된다.[13] 아직 정원군으로 추존되기 전이다.[14] 신립의 여동생이다.[15] 정원군(원종)의 생모는 선조후궁인빈 김씨이지만, 법적인 어머니, 즉 적모(嫡母)는 선조의 정실인 의인왕후인목왕후이다.[16] 구수영의 또다른 아들인 구문경은 연산군의 딸인 휘신공주와 혼인한다.[17] 세종 - 영응대군 - 구수영(길안현주) - 구신경 - 구한, 세종 - 세조 - 의경세자 - 성종 - 중종 - 숙정옹주[18] 중종의 적서자녀 중 효순공주, 영양군, 덕흥대원군 모두 본인(효순공주-구사안)이나 그 후손(영양군의 손자 풍해군-죽수군부인 구씨, 덕흥대원군의 손자 정원대원군(추존 원종)-연주군부인(추존 인헌왕후) 구씨)이 능성 구씨와 혼인관계가 성립된다. 정확히 따지면 풍해군의 친아버지는 무산군(성종과 명빈 김씨의 아들(서12남))으로 영양군이 후사가 없어 입적된 것이다. 항렬로 치면 성종의 손자로 양아버지 영양군과 동항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