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11 02:45:34

13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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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신미년~임신
일본 북조 메이토쿠 3년
일본 남조 겐추 9년
히브리력 5152년 ~ 5153년
명나라 홍무 25년
조선 건무 원년

1. 개요2. 사건
2.1. 실제2.2. 가상
3. 탄생
3.1. 실제3.2. 가상
4. 사망
4.1. 실제4.2. 가상
5. 기타

1. 개요

한국사의 500년을 거슬러 온 조선의 역사가 시작된 해인 동시에, 태조 왕건 이래로 가장 위태로웠던 고려가 멸망한 해이기도 하여, 한민족에겐 아주 중요한 해가 아닐 수 없다.

2. 사건

2.1. 실제

* 왕이 탈 말, 수레, 마구와 목축을 관장하는 사복시를 설치한다.
* 실레시아 (슐레지엔)의 귀족 블라디슬라브 오폴치크가 신성로마제국, 튜튼 기사단, 실레시아, 헝가리에 의한 폴란드 분할을 제기하였으나 거절되었다.
  • 무함마드 7세가 나스르 왕조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 잉글랜드 의회가 '교황존신죄법'을 제정한다.[16]
  • 토머스 우드스톡 제1대 글로스터 공작이 아일랜드 주 지사 작위를 수여받으나, 그와 동시에 그곳으로의 여행을 금지당한다.
* 루이 드 발루아가 초대 오를레앙 공작이 되었다.
* 독일의 에어푸르트 대학이 세워졌다.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4.2. 가상

5. 기타

무한도전 TV특강 특집에서 멤버들이 직접 역사 강의를 했을 때, 노홍철이 조선이 건국된 1392년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년도인 1492년,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을 묶어 1492±100년으로 조선의 굵직한 일을 설명했었다.


[1] 헌데, 일각에서는 이 시가 정몽주의 창작물이 아니고, 전해져 내려오는 시구를 적절히 인용한 것이라고도 본다. 단심가 문서 참조.[2] 목조의 능에 '덕릉', 그 부인인 효공왕후의 능에 '안릉'이란 이름을 붙인다.[3] 비타우타스가 리투이니아 대공으로, 스킬갈리아는 키예프 공작이 되었다.[4] 당시 평화 조약의 조건으로 남북조 덴노들이 각각 왕좌를 교대로 계승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1412년 파기된다.[5] 근데 명나라 황제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했던 감이 없잖아 있다. 일부 학자들은 명나라 황제가 '기자조선설(상나라 귀족인 기자가 고조선 지역을 책봉 받아 국가를 세웠다는 설)'에 의거해 조선이라는 국호를 고른 것이라 하기도 한다.[6] 원래는 능주 서쪽에 있었으나, 선조 33년(1600년)에 하응도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7] 정확한 건설년도는 불명확하나, 태조 원년에 지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8] 대부분의 향교태조 대에 지어졌는데, 이는 1392년 태조가 각도의 안찰사들에게 교육의 개혁을 명령하면서 비롯되었다.[9] 정확히는 1405년 육조 직무를 나눌 때 호조에 소속된다.[10] 태종 1년(1401년)에 내자시로 고쳐진다.[11] 왕실의 재물을 넣어두던 부고(府庫)의 출납, 궁궐 내 등불의 점멸(點滅)을 담당하였다. 훗날 태종 대에 들어서면서 의성고와 병합되어, 왕실에서 사용되는 쌀, 국수, 술, 간장, 기름, 꿀, 채소, 과일, 꽃 및 내연직조(內宴織造) 등도 관장하는 한편, 왕자를 낳은 왕비의 권초례(捲草禮)를 봉안하는 일도 도맡았다.[12] 명나라에게 보내는 경고였을 뿐이라는 해석이 강하다. 실제로 이루어지진 못했다.[13] 세조 12년(1467년)에 소격서로 이름을 고친다. 도교의 영향을 받아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던 관청이었다.[14] 녹화사업국군기무사령부로 대표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의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15] 모든 관리들의 녹봉 수입, 지출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호조 소속이다. 지금의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했었는데, 그래서 이 부근에 생긴 지하철역에 광흥창역이란 이름을 붙인다.[16] 헨리 8세 시절인 1529년, 토머스 울지가 이 혐의를 뒤집어쓰고 실각한 것으로 유명한데, 곧 '교황을 국왕보다 높은 존재로 여기고 행동을 실행한 죄' 이다.[17] 고려육은(高麗六隱) 중에 한 사람이며, 길재 대신 삼은으로 꼽히기도 하는 인물. 허나 조선 건국 이후 장형을 받고 죽는다.[18] 묘호는 공종(恭宗).[19] 정몽주의 지시로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으나 도리어 반격당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20] 미카와 국 마쓰다이라 향.[21] 조선 개국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단식해 결국 7일만에 숨을 거뒀다. 이를 가상히 여긴 태종이 그의 절의를 기려 훗날 영의정에 추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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