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25 20:40:55

13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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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신미년~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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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조 겐추 9년
히브리력 5152년 ~ 5153년
명나라 홍무 25년
조선 건무 원년

1. 개요2. 사건
2.1. 실제2.2. 가상
3. 탄생
3.1. 실제3.2. 가상
4. 사망
4.1. 실제4.2. 가상
5. 기타

1. 개요

한국사의 500년을 거슬러 온 조선의 역사가 시작된 해인 동시에, 태조 왕건 이래로 가장 위태로웠던 고려가 멸망한 해이기도 하여, 한민족에겐 아주 중요한 해가 아닐 수 없다.

2. 사건

2.1. 실제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4.2. 가상

5. 기타

무한도전 TV특강 특집에서 멤버들이 직접 역사 강의를 했을 때, 노홍철이 조선이 건국된 1392년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년도인 1492년,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을 묶어 1492±100년으로 조선의 굵직한 일을 설명했었다.


[1] 헌데, 일각에서는 이 시가 정몽주의 창작물이 아니고, 전해져 내려오는 시구를 적절히 인용한 것이라고도 본다. 단심가 문서 참조.[2] 목조의 능에 '덕릉', 그 부인인 효공왕후의 능에 '안릉'이란 이름을 붙인다.[3] 비타우타스가 리투이니아 대공으로, 스킬갈리아는 키예프 공작이 되었다.[4] 당시 평화 조약의 조건으로 남북조 덴노들이 각각 왕좌를 교대로 계승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1412년 파기된다.[5] 근데 명나라 황제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했던 감이 없잖아 있다. 일부 학자들은 명나라 황제가 '기자조선설(상나라 귀족인 기자가 고조선 지역을 책봉 받아 국가를 세웠다는 설)'에 의거해 조선이라는 국호를 고른 것이라 하기도 한다.[6] 원래는 능주 서쪽에 있었으나, 선조 33년(1600년)에 하응도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7] 정확한 건설년도는 불명확하나, 태조 원년에 지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8] 대부분의 향교태조 대에 지어졌는데, 이는 1392년 태조가 각도의 안찰사들에게 교육의 개혁을 명령하면서 비롯되었다.[9] 정확히는 1405년 육조 직무를 나눌 때 호조에 소속된다.[10] 태종 1년(1401년)에 내자시로 고쳐진다.[11] 왕실의 재물을 넣어두던 부고(府庫)의 출납, 궁궐 내 등불의 점멸(點滅)을 담당하였다. 훗날 태종 대에 들어서면서 의성고와 병합되어, 왕실에서 사용되는 쌀, 국수, 술, 간장, 기름, 꿀, 채소, 과일, 꽃 및 내연직조(內宴織造) 등도 관장하는 한편, 왕자를 낳은 왕비의 권초례(捲草禮)를 봉안하는 일도 도맡았다.[12] 명나라에게 보내는 경고였을 뿐이라는 해석이 강하다. 실제로 이루어지진 못했다.[13] 세조 12년(1467년)에 소격서로 이름을 고친다. 도교의 영향을 받아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던 관청이었다.[14] 녹화사업국군기무사령부로 대표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의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15] 모든 관리들의 녹봉 수입, 지출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호조 소속이다. 지금의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했었는데, 그래서 이 부근에 생긴 지하철역에 광흥창역이란 이름을 붙인다.[16] 헨리 8세 시절인 1529년, 토머스 울지가 이 혐의를 뒤집어쓰고 실각한 것으로 유명한데, 곧 '교황을 국왕보다 높은 존재로 여기고 행동을 실행한 죄' 이다.[17] 고려육은(高麗六隱) 중에 한 사람이며, 길재 대신 삼은으로 꼽히기도 하는 인물. 허나 조선 건국 이후 장형을 받고 죽는다.[18] 묘호는 공종(恭宗).[19] 정몽주의 지시로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으나 도리어 반격당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20] 미카와 국 마쓰다이라 향.[21] 조선 개국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단식해 결국 7일만에 숨을 거뒀다. 이를 가상히 여긴 태종이 그의 절의를 기려 훗날 영의정에 추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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