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6:16:20

배극렴


<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0ad73> 조선 정승
태조 ~ 연산군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calc(1.5em + 6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좌의정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문하좌시중 문하좌시중 → 문하좌정승
초대

배극렴
제2대

조준
문하좌정승
제2대

조준
제3대

심덕부
제4대

성석린
제5대

민제
문하좌정승 문하좌정승 → 좌정승 좌정승
제6대

이거이
제7대

김사형
제8대

하륜
제9대

조준
좌정승 판의정부사 → 좌의정
제10대

하륜
제11대

성석린
제12대

하륜
제13대

남재
좌의정
제14대

하륜
제15대

류정현
제16대

박은
제16대

박은
제17대

이원
제18대

류정현
제19대

이직
제20대

황희
제21대

맹사성
제22대

최윤덕
제23대

허조
제24대

신개
제25대

하연
제26대

황보인
제26대

황보인
제27대

남지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27대

남지
제28대

김종서
제29대

정인지
}}}
제30대

한확
제31대

이사철
제32대

정창손
제33대

강맹경
제34대

신숙주
제35대

권람
제36대

한명회
제37대

구치관
제38대

황수신
제39대

심회
제40대

최항
제41대

조석문
제42대

홍달손
제43대

박원형
제43대

박원형
제44대

김질
제45대

홍윤성
제46대

윤자운
제46대

윤자운
제47대

김국광
제48대

최항
제49대

한명회
제50대

조석문
제51대

심회
제52대

윤필상
제53대

홍응
제54대

노사신
제55대

신승선
제56대

정괄
제57대

어세겸
제58대

한치형
제59대

성준
제60대

이극균
제61대

류순
제62대

허침
제63대

박숭질
제64대

신수근
<colbgcolor=#c00d45,#94153e> 역대 정승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역대 영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우의정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문하우시중 문하우시중 → 문하우정승
초대

조준
제2대

김사형
문하우정승
제2대

김사형
제3대

성석린
제4대

민제
제5대

하륜
문하우정승 우정승
제5대

하륜
제6대

이서
제7대

이무
제8대

성석린
우정승
제9대

이서
제10대

조영무
제11대

이무
제12대

이서
우정승 판의정부사 → 우의정 우의정
제13대

조영무
제14대

남재
제15대

이직
제16대

류량
우의정
제17대

남재
제18대

박은
제19대

한상경
제20대

이원
제20대

이원
제21대

정탁
제22대

류관
제23대

조연
제24대

황희
제25대

맹사성
제26대

권진
제27대

최윤덕
제28대

노한
제29대

허조
제30대

신개
제31대

하연
제32대

황보인
제33대

남지
제33대

남지
제34대

김종서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34대

김종서
제35대

정분
제36대

한확
}}}
제37대

이사철
제38대

정창손
제39대

강맹경
제40대

신숙주
제41대

권람
제42대

한명회
제43대

구치관
제44대

황수신
제45대

박원형
제46대

황수신
제47대

최항
제48대

홍윤성
제49대

강순
제50대

김질
제50대

김질
제51대

윤사분
제52대

윤자운
제53대

김국광
제53대

김국광
제54대

한백륜
제55대

성봉조
제56대

김질
제57대

윤사흔
제58대

윤자운
제59대

윤필상
제60대

홍응
제61대

이극배
제62대

노사신
제63대

허종
제64대

윤호
제65대

신승선
제66대

정괄
제67대

어세겸
제68대

정문형
제69대

한치형
제70대

성준
제71대

이극균
제72대

류순
제73대

허침
제74대

박숭질
제75대

강귀손
제76대

신수근
제77대

김수동
<colbgcolor=#c00d45,#94153e> 역대 정승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역대 영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
배극렴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 문하시중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670000,#fedc8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fedc89,#670000> 고려 초기
(918~981)
<colcolor=#373a3c,#ddd> 광평시중
김행도 | 박질영 | 류덕영 | 공훤 | 왕철 | 권직
문벌귀족기
(981~1170)
문하시중
최승로 | 박양유 | 한언공 | 김승조 | 최숙 | 류윤부 | 위수여 | 유진 | 최사위 | 유방 | 강감찬 | 서눌 | 황주량 | 최제안 | 최충 | 이자연 | 김원충 | 왕총지 | 김원정 | 박성걸 | 최유선 | 이정 | 문정 | 이정공 | 소태보 | 최사추 | 위계정 | 윤관 | 김경용 | 이위 | 김인존 | 이공수 | 김부식 | 김약온 | 임원후 | 왕충
무신정권
(1170~1270)
정중부 | 두경승 | 이의민 | 조영인 | 최충헌 | 이항 | 이연수 | 김취려 | 최종준 | 최항 | 김준 | 이장용
원 간섭기
(1270~1356)
김방경
(도)첨의중찬 · 도첨의시중 · 도첨의정승
김방경 | 류경 | 송송례 | 원부 | 허공 | 김방경 | 홍자번 | 조인규 | 홍군상 | 홍자번 | 홍규 | 홍자번 | 조인규 | 정가신 | 조인규 | 김혼 | 송분 | 홍자번 | 설공검 | 염승익 | 송분 | 한희유 | 한강 | 한희유 | 송분 | 홍자번 | 한희유 | 채인규 | 한희유 | 안향 | 한희유 | 한희유 | 김혼 | 정인경 | 최유엄 | 김지숙 | 최유엄 | 최유엄 | 이혼 | 류청신 | 홍규 | 류청신 | 권부 | 김이용 | 김이용 | 민지 | 배정 | 김태현 | 윤보 | 최유엄 | 김심 | 민지 | 김이 | 김이 | 윤석 | 정방길 | 윤석 | 김심 | 한악 | 윤석 | 강융 | 권한공 | 조적 | 한악 | 윤석 | 채하중 | 이능간 | 기철 | 채하중 | 한종유 | 왕후 | 김륜 | 김영후 | 김영후 | 인승단 | 노책 | 김영돈 | 왕후 | 노책 | 노책 | 손수경 | 손수경 | 이암 | 이제현 | 손기 | 송서 | 조일신 | 정천기 | 송서 | 조일신 | 이제현 | 조익청 | 홍빈 | 조익청 | 인승단 | 채하중 | 염제신 | 염제신 | 류탁 | 채하중 | 채하중 | 이능간 | 이제현 | 홍언박 | 홍언박 | 윤환
여말선초
(1356~1392)
문하시중 · 도첨의정승 · 도첨의시중
홍언박 | 윤환 | 이제현 | 염제신 | 염제신 | 이암 | 홍언박 | 류탁 | 류탁 | 김일봉 | 김일봉 | 경복흥 | 경복흥 | 류탁 | 경복흥 | 김보 | 이춘부 | 이인임 | 이춘부 | 이인임 | 윤환 | 경복흥 | 염제신 | 경복흥 | 이인임 | 윤환 | 이인임 | 홍영통 | 이자송 | 조민수 | 임견미 | 최영 | 이성림 | 임견미 | 이성림 | 이인임 | 이성림 | 반익순 | 반익순 | 이성림 | 최영 | 이성계 | 최영 | 우현보 | 조민수 | 이성계 | 이색 | 이성계 | 이림 | 심덕부 | 이성계 | 정몽주 | 이성계 | 이성계 | 심덕부 | 배극렴 | 이성계
고려 국왕 · 무신정권 집권자
고구려 (좌우보 · 국상 · 대막리지) · 백제 (좌우보 · 상좌평)
신라 (대보 · 시중 · 상대등) · 발해 대내상 · 태봉 시중 · 고려 문하시중
조선 영의정 ·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 임시정부 국무총리 · 대한민국 국무총리
}}}
}}}}}}}}}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 평장사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670000,#fedc8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fedc89,#670000> 고려 초기
(918~981)
<colcolor=#373a3c,#ddd> [내의성] 평장사
최언위
문벌귀족기
(981~1170)
[내사문하성] 평장사
최승로 서희 최량 왕융 한인경 유방헌 위수여 진적 유진 최사위 최사위 김심언 진적 이예균 왕동영 최항 최항 강감찬 강감찬 유방 장영 최항 채충순 유방 이공 이공 서눌 서눌 류소 이단 이단 이단 황보유의 이단 류소 황보유의 박충숙 유징필 황주량 황주량 최충 최제안 황보영 이작충 최충 황보영 김영기 김원충 김원충 이자연 이자연 왕총지 김정준 박성걸 김정준 김원정
[중서문하성] 평장사
김원정 최유선 임종일 김의진 왕무숭 이정 문정 김약진 이정공 최석 이정공 김양감 최석 김양감 류홍 왕석 김행겸 류홍 최사제 정유산 이안 소태보 소태보 이자위 김상기 류석 김상기 임개 최사추 김선석 황영 최사추 위계정 김선석 임간 임간 이오 이오 위계정 오수증 최홍사 최홍사 이오 윤관 김경용 임의 임의 김경용 오연총 허경 오연총 이위 임간 허경 이자겸 김연 이자겸 김연 조중장 강증 김연 오수증 조중장 김준 임유문 김준 한안인 이자량 김고 임유문 최홍재 김약온 김약온 척준경 척준경 이수 이수 박승중 척준경 김부일 김향 최홍재 최사전 김향 문공인 최자성 최자성 김부식 이준양 임원애 최유 임원준 이자덕 최유 이중 이중 최진 최진 한유충 왕충 임원숙 이인실 이인실 고조기 김영관 최유청 문공원 유필 최관 유필 김영석 최자영 최윤의 이지무 양원준 최함 최유청 박순충 김영부 이지무 최유칭 김영윤 허홍재 허홍재
무신정권
(1170~1270)
임극충 서공 임규 양숙 정중부 윤인첨 윤인첨 한취 이광진 기탁성 민영모 송유인 최충렬 이공승 문극겸 한문준 최세보 이의민 박순필 이혁유 임민비 이광정 조영인 기홍수 임유 최당 최당 우술유 기홍수 이문충 최선 임유 기홍수 김준 차약송 최충헌 최충헌 김봉모 노효돈 이극서 조충 류광식 이연수 김의원 최보돈 최보순 왕규 김취려 최홍윤 금의 이규보 이자성 채송년 최린 기윤숙 김창 최자 김태서 류소 최자 김기손 송순 김기손 김기손 이세재 김기손 이세재 이장용 김순 최온 김지대 류경
원 간섭기
(1270~1356)
류경 김전 채정 김방경 김방경 원부 장길 유천우 황보기
(도)첨의찬성사·도첨의중호
유천우 류경 원부 박항 송송례 홍자번 홍자번 한강 한강 조인규 인후 강수형 박구 신사전 홍문계 김련 정가신 강수사 송분 인후 정가신 인후 김혼 차신 송분 한희유 정인경 최유엄 한희유 김지숙 최유엄 임익 이덕손 최수황 류비 김혼 차신 채모 김부윤 김혼 안향 최유엄 류비 오윤부 이지저 민훤 정해 왕유소 설영임 조윤통 류비 이혼 김흔 최충소 이혼 김심 김문연 인후 김심 류청신 이진 류청신 배정 박의 권부 이호 권단 홍선 설영임 설경성 민종유 정지연 최비일 오형 권한공 최성지 김사원 이설 김이용 김이 조연수 오잠 오잠 박허중 오잠 박허중 조련 허유전 박전지 윤보 이호 민종유 송영 권준 김이 한악 임중연 전영보 원충 정방길 강융 임중연 전영보 임자송 원충 전언 채홍철 임중연 조적 채하중 민상정 조위 안문개 홍빈 김인연 정천기 오계유 강윤성 윤환 김륜 권겸 박충좌 유방세 김영후 강윤성 전사의 손수경 안축 윤계종 이군해 류돈 이군해 윤신계 손홍량 윤안숙 염제신 허백 윤신계 이곡 류탁 김인호 조일신 조익청 전윤장 윤시우 김자 류탁 정을보 조유 홍언박 김승택 홍언박 류탁 이공수 강윤충 원호 기륜 강순룡 박새안불화 홍언박 윤환 김경직 김인호 김보 최천택 박수년 허백 황석기 강윤충 권적
여말선초
(1356~1392)
[중서문하성] 평장사·평장정사
류탁 허백 황석기 김용 황석기 김용 전보문 김일봉 김승택 이승경 정자후 이겸 안우 이공수 김용 경천흥 류탁 정세운 정세운 이방실
도첨의찬성사
유인우 김용 이공수 경천흥 황상 이성서 송경 안우경 최영 이인복 이구수 이인복 송경 안우경 최영 이구수 김보 이춘부 이인임 권적 이성서 윤택 안우상 우제
문하찬성사
한방신 황상 안우경 최영 강인유 안사기 목인길 지용기 정몽주 지용기 정몽주 배극렴 설장수 조준 권중화 조준 류만수 권중화 윤호 성석린
}}}}}}}}}}}} ||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개국공신
{{{#!wiki style="margin: -5px -11px; padding: 5px 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392년 8월 20일 태조에 의해 책록
좌명개국공신 (1등)
김사형 남은 남재 배극렴
오몽을 이제 이지란 이화
장사길 정도전 정총 정탁
정희계 조박 조인옥 조준
김인찬 이방간 이방원 이방의 }}}
{{{#!wiki style="margin: -32px -1px -11px"
협찬개국공신 (2등)
정지 유창 윤호 이민도
황희석 정용수 조기 조반
조영규 조온 홍길민 조견
박포 장담
익대개국공신 (3등)
고여 김균 김로 손흥종
심효생 안경공 오사충 유원정
이근 이백유 이부 이서
이직 장지화 함부림 황거정
민여익 임언충 장사정 조영무
한상경 한충 }}}}}}}}}
고려 문하시중
<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0ad73> 조선 정승
성산백(星山伯) 정절공(貞節公)
배극렴
裴克廉
출생 1325년(충숙왕 12)
사망 1392년 12월 18일[1] (향년 66 ~ 67세)
(음력 태조 1년 11월 26일)
봉호 성산백(星山伯)
시호 정절(貞節)
본관 성주 배씨
부모 부친 - 배현보(裵玄甫)
모친 - 성주 이씨 이천년(李千年)의 딸
부인 순흥 안씨
자녀 1녀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여말선초의 군인, 관료로 고려재상,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정승이다.

2. 생애

1376년에 왜구경상도를 공격하자 진주도원수에 임명되었다.

1377년 4월에 부원수로 종군해 우인열과 함께 율포에서 왜구를 물리쳐 100여 명을 참수했다. 5월에 강주원수로 종군해 하카다와 싸워 격파했고 우인열이 병으로 사직하자 그를 대신해 경상도 도순문사가 되었다. 11월에 왜구가 130척의 배를 거느리고 김해부, 의창현 등을 공격하자 그들과 싸웠지만 크게 패했다.

1378년 8월에 욕지도에서 왜구를 격파해 50명을 죽였고 12월에 왜구가 하동현, 진주 등을 공격하자 사주까지 추격해 20여 명을 죽였다.

1379년 5월에 왜구가 2700여 명을 이끌고 진주를 공격하자 양백연, 우인열, 한방언, 김용휘, 경의, 홍인계 등과 함께 반성현에서 적을 격파해 13명을 죽였다. 6월에 왜구가 울주, 청도, 밀성, 자인, 언양을 공격하자 우인열, 하을지 등과 함께 울주에서 승리해 선박 7척을 얻었다. 8월에 우인열, 박수경, 오언 등과 함께 사주에서 왜구를 크게 격파해 43명을 죽였다.

1380년 8월에 왜구가 사근내역에 주둔하자 김용휘, 지용기, 오언, 정지, 박수경, 배언, 도흥, 하을지 등 여러 장수들과 함께 싸우다가 5백여 명이나 죽을 정도로 크게 패했다. 9월에 밀직부사에서 경상도 도순문사로 임명되었다.

1388년 4월에 명나라요동을 공격하기 위해 이성계 휘하의 장수로 참전했다가 위화도 회군에 참여했다.

1390년에 평리를 지내다가 7월에 양광도 찰리사가 되어 한양 궁궐의 수축을 감독했고 11월에 문하찬성사가 되었다.

1391년 정월에는 중군 총제사로 임명되었다가 평리를 옮겨 8월에 한양의 궁궐을 수리하는 일을 맡았다.

1392년에 만호를 지내다가 파직되었고 4월에 수문하시중으로 임명되으며 이후 판삼사사, 우시중 등을 지냈다. 고려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익대 보조 공신 문하좌시중 성산백에 봉해졌다. 1등 공신에 봉해졌고 병으로 사직했다가 이틀 만에 사망했고 그가 죽자 이성계는 3일 동안 조회를 폐하고 7일 동안 육고기와 물고기로 된 반찬을 먹지 않았다. 시호는 정절(貞節).
문하 좌시중(門下左侍中) 성산백(星山伯) 배극렴이 졸(卒)하니, 임금이 3일 동안 조회를 폐하고 7일 동안 소선(素膳)201) 을 하고, 맡은 관원에게 명하여 예장(禮葬)하게 하였다. 극렴(克廉)의 본관(本貫)은 경산(京山)이니, 위위 소윤(衛尉少尹) 배현보(裴玄甫)의 아들이었다. 성품은 청렴하고 근신하며, 몸가짐은 근실하고 검소하였다. 진주(晉州)·상주(尙州) 두 주(州)의 목사(牧使)가 되고, 또 계림 윤(鷄林尹)·화령 윤(和寧尹)이 되어 모두 어진 정치를 하였다. 나가서 합포(合浦) 원수(元帥)가 되어 성을 쌓고 해자(垓字)를 파서 유망(流亡)한 사람들을 안집(安集)하였었다. 수비(守備)하는 것은 잘했으나 다만 싸워서 이기거나 공격하여 취하는 것은 그의 장점이 아니었다. 고려 왕조의 말기에 이르러 임금에게 마음을 돌려 조준 등과 더불어 서로 모의하여 임금을 추대하고는, 마침내 수상(首相)이 되었었다. 그러나 배우지 못하여 학술이 없어서 임금에게 의견을 아뢴 것이 없었으며, 세자를 세우는 의논에 이르러서도 이에 임금의 뜻에 아첨하여 어린 서자를 세울 것을 청하고는 스스로 공(功)으로 삼으니, 식자(識者)들이 이를 탄식하였다. 졸(卒)하니 나이 68세였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아들이 없었다.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1월 26일 계묘 1번째 기사, 1392년

졸기에서는 성품이 검소했던 점, 지방관으로서의 실적이 있었던 점, 방어전에 능했지만 공격전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 등을 알 수 있다. 한편 배우지 못하여 학술이 없어서 임금에게 의견을 아뢴 것이 없었다는 박한 평가 역시 내리면서 비판하고 있는데 바로 뒤에 세자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서 짐작한다면 책임 추궁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2] 이색의 졸기에서도 이색이 그를 가리켜 말 장사꾼이라고 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문(文) 방면에서는 미숙했던 모양으로 추정할 수도 있겠다.[3] 그의 졸기에는 세자 책봉에 책임이 있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 만큼 일찍 죽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훗날 정도전과 의안대군의 꼴을 보면 이 사람도 비명횡사했을지도 모르는 노릇. 그가 의안대군이 세자로 책봉되는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었고 진정으로 그러했다면 무인정사 때까지 살아있었을시 위험했을 수도 있다. 다만 조준의 졸기#를 보면 태조와 더불어 조준, 정도전, 남은, 김사형 등과 세자 문제에 대해 논의할 당시 "적장자(嫡長子)로 세우는 것이 고금(古今)을 통한 의(義)입니다."라는 주장을 처음으로 한 이가 배극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신덕왕후 강씨가 밖에서 무언의 압력을 가하였고 이로 인해 이성계의 마음이 움직였으니 초반에 조준이 반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결국 자리에 있던 재상들의 동의하에 의안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배극렴도 다른 이의 의견을 따랐을지도 모르지만 처음에는 이전까지의 정석대로 장자가 세자가 될 것을 주장하였으나 신덕왕후와 이성계의 의지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의안대군을 밀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4]

3. 기타

어떤 사람이 문밖에 이르러 이상한 글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지리산(智異山) 바위 속에서 얻었습니다."
하는데, 그 글에,
"목자(木子)가 돼지를 타고 내려와서 다시 삼한(三韓)의 강토를 바로잡을 것이다."
하고, 또,
"비의(非衣) ·주초(走肖) ·삼전 삼읍(三奠三邑)"
등의 말이 있었다. 사람을 시켜 맞이해 들어오게 하니 이미 가버렸으므로, 이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고려의 서운관(書雲觀)에 간직한 비기(秘記)에 ‘건목득자(建木得子)’의 설(說)이 있고, 또 ‘왕씨(王氏)가 멸망하고 이씨(李氏)가 일어난다’는 말이 있는데, 고려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숨겨지고 발포(發布)되지 않았더니, 이때에 이르러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7월 17일 병신 2번째 기사
  •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치고는 배극렴이 중요한 입지를 갖고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사료가 있다. 가령, 태조 1년의 개국 프로파간다성 기록인데 일종의 예언서가 조선의 건국을 알리고 있었다는 이야기. 한자파자를 이용한 예언들이 나와 있는데 우선 목자(木子)는 합치면 이(李)가 되니까 이성계, 비의(非衣)는 합치면 배(裴)이므로 배극렴, 주초를 합치면 조(趙)씨라서[5] 조준을 의미하고 삼전 삼읍에서 전(奠)과 읍(邑)을 합치면 정(鄭)이 되는데 각각 3쌍이 있으니 3명의 정씨인 정도전, 정총, 정희계를 뜻한다. 예언은 '이성계가 배극렴, 조준, 세 명의 정씨와 함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고 당연히 예언서란게 실존할 턱이 없으니 조선 건국의 정통성을 위해 창작된 이야기일텐데 그러한 프로파간다성 일화에 정도전, 조준 같은 대신들과 함께 이름을 올릴 정도면 조정 내에서도 상징적인 인사였을 가능성이 있다.
수보록(受寶籙). 주상 전하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에, 어떤 사람이 지리산(智異山) 석벽(石壁) 속에서 이상한 글을 얻어 바쳤는데, 뒤에 임신년에 이르러, 그말이 그제야 맞게 되었으므로, 수보록(受寶籙)을 지었습니다. 저 높은 산에는 돌이 산과 가지런했는데, 여기서 이를 얻었으니 실로 이상한 글이었습니다. '용감한 목자(木子)가 기회를 타서 일어났는데, 누가 그를 보좌하겠는가? 주초(走肖)가 그 덕망 있는 사람이며, 비의(非衣) 군자(君子)는 금성(金城)에서 왔으며, 삼전 삼읍(三奠三邑)이 도와서 이루었으며, 신도(神都)에 도읍을 정하여 왕위(王位)를 8백 년이나 전한다'는 것을 우리 임금께서 받았으니, 보록(寶籙)이라 하였습니다.
태조실록 4권, 태조 2년 7월 26일 기사 1번째기사
  • 이 예언 이야기는 정도전이 지어 바친 악장인 <수보록>에서도 나온다. <수보록>은 태종 11년에 궁중 음악을 논할 때 다시 논의거리가 되는데 가사가 '목자장군검(木子將軍劍)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 비의군자지(非衣君子智) 부정삼한격(復正三韓格)'으로 운율에 맞게끔 구체화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성계 장군의 검, 조준 대부의 붓, 배극렴 군자의 지혜가 삼한을 도로 바로잡는다네' 정도의 가사인데 장군 이미지와 달리 지혜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기사에서 태종은 정희계는 공이 없고 덕도 없어서 때에 응해 나온 사람이 아니며[6] 배극렴은 짧은 정승 기간 동안 이렇다 할 공훈이 없었다는 이유로 <수보록>은 악부에서 빼라고 지시한다.

4. 대중매체

  •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배우 김시원[8]이 연기했다. 고려 말은 간략하게 다루고 조선 건국으로 빠르게 넘어가기 때문에 건국 직후 병사한 그의 비중은 크지 않으나 이성계가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을 맡게 되자 영광이라며 기뻐하고 옥새를 얻으러 갈 때 대비 안씨를 면전에서 겁박해 떨게 만드는 등 과격하면서도 충직한 인물로 나오는데 그의 죽음에 이성계도 안타까워했다.
  • 2019년 JTBC 드라마 <나의나라>에서는 이성계를 통해 언급만 되었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배극렴이 건국 1등 공신에 봉해진 것을 두고 의도적인 정치적 안배로 해석하였다. 배극렴은 위화도 회군에 동참하는 등 이성계와 어느 정도 연이 있기는 했지만 역성혁명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지는 않았고 굳이 따지면 중도파에 가까웠으니 이런 배극렴을 1등 공신에 봉하여서 민심을 수습하고 지지 세력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는 것.

[1] 율리우스력 12월 10일[2] 남은의 졸기에서도 '배운 것이 없어 식견이 우매한 때문에 강씨(康氏)가 적통(嫡統)을 빼앗으려는 계책을 찬성했다'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건국 당시 남은의 활약상을 생각한다면 못 배웠고 식견이 부족했다는 발언은 그의 무식을 지탄하는 것이 아니라 신덕왕후, 정도전 등과 함께 의안대군을 세자로 지지한 점을 공격한다는 것이 그럴듯한 이야기로 배극렴의 졸기 또한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있겠다.[3] 이색이 한산군에 봉해지자 이성계에게 "개국할 때 날 불러서 직임을 맡기지 왜 말 장사꾼을 재상에 앉혔습니까?"라고 디스를 했다고 한다. 이것을 믿으면 이색이 마음 속으로는 이성계를 왕으로 여기며 충성하고 있었기에 내심 재상이 되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말인데 과도한 윤색으로 보인다.[4] 반대를 하고 싶었다 하더라도 위치상 그러기가 힘들었는데 당시에 같이 의논을 하던 재상들은 그를 제외하고는 전부 문신 출신이었던데다 고려가 멸망하기 직전부터 이성계 측과 같은 길을 걸었던 이들이자 조선 건국에 영향을 미친 실세들이었다. 실세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더라면 2인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겠지만 조준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입장이 한결같았으니 의안대군을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은 대표자 격으로 한 것일 수도 있다.[5] 후대인 중종 시기에 기묘사화조광조의 죽음을 불러온 '주초위왕'의 도참설 역시 이와 완전히 동일한 방법으로 풀이되었다. 남곤이 <국조보감>에 보니까 옛날 조준을 가리키는 것 같다며 중종에게 해설을 해주는 기록도 나온다.[6] 이 때 정희계만 지적했다는 것은 정도전과 정총에게는 공이 있다는 뜻이 된다.[7] 1983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는 정도전 역.[8]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수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