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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90호 홍천 노동서원 최유선 초상 | |
시호 | 문화공(文和公) |
본관 | 해주 최씨(海州 崔氏) |
이름 | 유선(惟善) |
아버지 | 최충 |
자녀 | 아들 - 최사제(崔思齊) 딸 - 해주 최씨[1] |
생몰연도 | ? ~ 1075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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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왕조 문종 인효대왕 시기의 유학자이자 문관.해주 최씨의 시조인 최온(崔溫)의 손자이고 최충의 장남이며 최사추의 큰아버지이다. 아들 최사제(崔思齊)가 최용(崔湧)을 낳고, 최용은 최윤의를 낳았으니 그의 증손자 최윤의도 묘정에 배향되었다.
2. 생애
최유선은 문벌귀족 가문 출신이다. 천재였던 아버지를 닮아 현종 대에 주최된 과거에 장원으로 합격, 한림원에 들어가 현종의 명령을 성문화하고 고치는 일을 했다.당시의 일화가 최자의 보한집 권상에 기록돼있다. 현종 재위 22년차에 현종이 직접 와 시험을 주제했다고 한다.
화국문장(華國文章)[2]은 화월(花月)도 그 꽁무리를 쫓아다니게 한다. 짐(朕)은 시험을 통해 그것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 현종의 시험 전 발언.
그래서 처음엔 부를 짓게 했다. 주제는 군유선[3]이었고, 최유선이 금방 부를 지어 올리려 하자 바로 다음 시를 쓰게 했는데 주제는 어완종선도[4]였다. 최유선은 시도 곧바로 지어 현종에게 올렸는데, 현종의 마음에 들어 현종이 '직접' 최유선의 장원 급제 합격서를 써서 주었다.[5]- 현종의 시험 전 발언.
부는 실전됐지만 시는 남아있는데, 다음과 같다.
어완에 있는 새로운 복숭아 종은 / 御苑桃新種
낭완의 신선에게 가져와 옮겨 심은 것이니, / 移從閬苑仙
단지에 뿌리 내리고, / 結根丹地上
자정에 그림자 띄우네. / 分影紫庭前
세엽은 그림 같고, / 細葉看如畵
꽃이 핀 것이 처다보게 만드네. / 繁英望欲然
품은 계성수보다 높고, / 品高鷄省樹
향은 수로연보다 좋다. / 香接獸爐烟
날 가까우니 봄이 다가오고, / 天近先春茂
새벽 맑으니 이슬을 머금었다. / 晨淸帶露鮮
이는 왕모가 바친 것이니, / 是應王母獻
성수가 천 년은 늘 것이다. / 聖壽益千年
- 보한집 권상, 최유선의 과거.
낭완의 신선에게 가져와 옮겨 심은 것이니, / 移從閬苑仙
단지에 뿌리 내리고, / 結根丹地上
자정에 그림자 띄우네. / 分影紫庭前
세엽은 그림 같고, / 細葉看如畵
꽃이 핀 것이 처다보게 만드네. / 繁英望欲然
품은 계성수보다 높고, / 品高鷄省樹
향은 수로연보다 좋다. / 香接獸爐烟
날 가까우니 봄이 다가오고, / 天近先春茂
새벽 맑으니 이슬을 머금었다. / 晨淸帶露鮮
이는 왕모가 바친 것이니, / 是應王母獻
성수가 천 년은 늘 것이다. / 聖壽益千年
- 보한집 권상, 최유선의 과거.
현종, 덕종, 정종 대를 거쳐 계속 승진하여 문종 대엔 지중추원사[6] 직을 맡았다.
"옛 당태종은 신성하며 영무했으니, 천백년 동안 비교할 자가 없었습니다. 아무나 승려가 되지 못하게 하고 사관을 짓지 못하게 하여 고조의 뜻을 받들었으니, 사전에서 찬양했습니다.
昔唐太宗神聖英武千百年以來未有倫比不許度人爲僧創立寺觀以遵高祖之志史傳美之
우리 태조 신성왕의 훈요에서 이르길: '국사도선이 국내 산천을 살펴 사원을 지을 수 있는 곳을 정해 짓지 않은 곳이 없다. 후세 사왕과 공후, 귀척, 후비, 신료들은 원우를 짓겠다고 경쟁하여 지덕을 해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我太祖神聖王訓要曰國師道詵察國內山川順逆凡可以創造寺院之地無不營建後世嗣王及公侯貴戚后妃臣僚無得爭修願宇虧損地德
지금 폐하께선 조종이 쌓아온 대업을 받드시어 승평[7]하신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절약하시고 사람을 사랑하시어 성업을 지켜 후사에 전해야 합니다. 어떻게 국민의 재산을 탕진하고 국민의 힘을 소모해 급하지도 않은 일에 쓰시어 방본을 위험하게 하시는 겁니까?"
今陛下承祖宗積累之基昇平日久固宜節用愛人持盈守成以傳後嗣柰何罄民財竭民力供不急之費以危邦本耶
- 고려사 최유선 열전 中.
문종이 흥왕사를 지을 때 당태종의 예와 태조의 유훈 10조를 인용해 건설을 반대하는 등 충신으로서의 모습을 보였다.昔唐太宗神聖英武千百年以來未有倫比不許度人爲僧創立寺觀以遵高祖之志史傳美之
우리 태조 신성왕의 훈요에서 이르길: '국사도선이 국내 산천을 살펴 사원을 지을 수 있는 곳을 정해 짓지 않은 곳이 없다. 후세 사왕과 공후, 귀척, 후비, 신료들은 원우를 짓겠다고 경쟁하여 지덕을 해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我太祖神聖王訓要曰國師道詵察國內山川順逆凡可以創造寺院之地無不營建後世嗣王及公侯貴戚后妃臣僚無得爭修願宇虧損地德
지금 폐하께선 조종이 쌓아온 대업을 받드시어 승평[7]하신지 오래입니다. 그러니 절약하시고 사람을 사랑하시어 성업을 지켜 후사에 전해야 합니다. 어떻게 국민의 재산을 탕진하고 국민의 힘을 소모해 급하지도 않은 일에 쓰시어 방본을 위험하게 하시는 겁니까?"
今陛下承祖宗積累之基昇平日久固宜節用愛人持盈守成以傳後嗣柰何罄民財竭民力供不急之費以危邦本耶
- 고려사 최유선 열전 中.
딱히 이렇다한 업적은 없으나 유풍(儒風)이 약했던 고려시대에 유학자로서 모범을 보였고, 늘 문종에게 간언하니 세간엔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한다.
3. 역임 관작
그의 최후 관작은:- 문산계 품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공신호: 추충찬화강정수제공신(推忠贊化康靖綏濟功臣)
- 직위: 중서령(中書令) - 문하시중(門下侍中) - 상서이부판사(尙書吏部判事)
- 수직: 수태사(守太師)
- 훈위: 상주국(上柱國)
- 시호: 문화공(文和公)
최유선은 증손자인 최윤의의 묘지명에도 등장하는데, 묘지명에서 나온 관작은:
- 직위: 중서령(中書令)
- 시호: 문화공(文和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