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고려 정종의 제1왕후 문공왕후 | 文恭王后 | |||
안릉 전경 | |||
출생 | 920년대 추정 | ||
후백제 순천 박영규의 사저 (現 전라북도 순천시) | |||
사망 | 연대 미상 | ||
능묘 | 안릉(安陵) | ||
재위기간 | 고려 제1왕후 | ||
945년 10월 23일 ~ 미상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본관 | 순천 박씨 | |
부모 | 부친 삼중대광 박영규 (三重大匡 朴英規) 모친 국대부인 전주 견씨 (國大夫人 全州 甄氏) | ||
형제자매 | |||
배우자 | 정종 | ||
종교 | 불교 | ||
작호 | 왕후(王后) | ||
시호 | 안숙정혜선목순성경신효신숙절문공왕후 (安淑貞惠宣穆順聖景信孝愼淑節文恭王后)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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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종 문명대왕의 1비. 정종 文명왕과 함께 文 자 돌림 시호를 받았다. 정종의 제2비인 문성왕후와는 친자매지간이다. 또한 시아버지인 태조의 제17비인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과도 친자매지간이다.후백제 출신이자 고려 개국공신인 박영규와 국대부인 견씨[3]의 딸이다. 박영규는 옛 후백제 지역의 대호족이었기에 정종은 그와 힘을 합쳤다.
박영규는 견훤대왕의 몰락을 보고 고려에 항복을 결심했다. 이는 박영규가 견훤의 사위였을 정도로 친견훤파였기 때문이다.
문공왕후는 사후 정종과 함께 안릉에 안치됐고 시호가 계속 추봉되어 정종의 정비로서 대우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