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7:57:26

문성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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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670000> 태조 후 혜종 후 [ruby(정종, ruby=定宗)] 후 광종 후
1
신혜왕후 류씨
2
장화왕후 오씨
3
신명왕후 유씨
4
신정왕후 황보씨
5
신성왕후 김씨
6
정덕왕후 류씨
1
의화왕후 임씨
1
문공왕후 박씨
2
문성왕후 박씨
1
대목왕후 황보씨
<rowcolor=#670000> 경종 후 성종 후 목종 후 현종 후
1
헌숙왕후 김씨
2
헌의왕후 류씨
3
헌애왕후 황보씨
4
헌정왕후 황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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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왕후 유씨
2
문화왕후 김씨
1
선정왕후 유씨
1
원정왕후 김씨
2
원화왕후 최씨
3
원성왕후 김씨
4
원혜왕후 김씨
5
원용왕후 류씨
6
원목왕후 서씨
7
원평왕후 김씨
<rowcolor=#670000> 덕종 후 [ruby(정종, ruby=靖宗)] 후 문종 후 순종 후
1
경성왕후 김씨
2
경목현비 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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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사왕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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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왕후 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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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왕후 한씨
3
용목왕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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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평왕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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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예왕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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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왕후 김씨
<rowcolor=#670000> 선종 후 숙종 후 예종 후 인종 후
1
정신현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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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숙왕후 이씨
1
명의왕후 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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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왕후 이씨
2
순덕왕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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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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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창원주 이씨
1
공예왕후 임씨
2
선평왕후 김씨
<rowcolor=#670000> 의종 후 명종 후 신종 후 희종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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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왕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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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왕후 최씨
1
의정왕후 김씨
1
선정왕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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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평왕후 임씨
<rowcolor=#670000> 강종 후 고종 후 원종 후 충렬왕 비
1
사평왕후 이씨
2
원덕태후 류씨
1
안혜왕후 유씨
1
정순왕후 김씨
경창궁주 유씨
1
제국대장공주
<rowcolor=#670000> 충선왕 비 충숙왕 비 충혜왕 비 공민왕 비
1
계국대장공주
1
복국장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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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장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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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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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왕후 홍씨
1
덕녕공주
2
희비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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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국대장공주
6
순정왕후
<rowcolor=#670000> 우왕 비 공양왕 비
근비 이씨
1
순비 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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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고려 정종의 제2왕후
문성왕후 | 文成王后
출생 920년대 추정
후백제 순천 박영규의 사저
(現 전라북도 순천시)
사망 연대 미상
능묘 미상
재위기간 고려 제2왕후
945년 10월 23일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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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본관 순천 박씨
부모 부친 삼중대광 박영규
(三重大匡 朴英規)
모친 국대부인 전주 견씨
(國大夫人 全州 甄氏)
형제자매
3녀 중 3녀 [ 펼치기 · 접기 ]
언니 -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 ? ~ ?)[1]
언니 - 문공왕후(文恭王后, ? ~ ?)
본인 - 문성왕후(文成王后, ? ~ ?)[2]
배우자 정종
자녀
1남 1녀 [ 펼치기 · 접기 ]
장남 - 경춘원군(慶春院君, ? ~ ?)
장녀 - 효성태자의 처(? ~ ?)
종교 불교
작호 왕후(王后)
시호 문성왕후(文成王后)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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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종 문명대왕의 제2비.

후백제 초대 국왕 견훤의 외손녀가 문성왕후다. 정종의 제1비 문공왕후와 같이 박영규의 딸이다. 정종의 부인은 모두 자매지간으로 견훤의 딸인 국대부인 견씨와 박영규의 딸이다.[3]

정종은 문성왕후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경춘원군(慶春院君)을 두었지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춘원군은 혜종의 적자였던 흥화궁군과 함께 광종 연간에 벌어진 대숙청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비운을 맞았다.[4]

경춘원군이 만약 정종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올랐다면 고려에 대대로 견훤의 피가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무산됐다. 정종이 27세에 요절해 경춘원군이 보위에 올랐다고 해도 10세 전후의 나이였을 것으로 보여 고려 헌종처럼 숙부에게 눌려지냈거나 심할 경우 폐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춘원군 외에 딸도 하나 더 둔 것으로 보아 정종과의 사이가 나름 괜찮았던 걸로 보이나 딸은 작위도, 이름도 모두 실전됐다. 딸은 태조 왕건의 제11비인 천안부원부인(天安府院夫人)의 아들 효성태자(孝成太子)와 혼인하였다.
[1] 태조 왕건의 제17비[2] 정종의 제2비[3] 태조의 제17비인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 역시 국대부인 견씨와 박영규의 딸로 딸들이 모두 고려의 왕후이다.[4] 혜종의 적자 흥화궁군, 정종의 적자 경춘원군, 광종의 적자 중 결국 승자는 광종의 아들 경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