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1:47:16

홍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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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acd32><colcolor=#fff> 홍리나
洪利娜[훈음] | Hong Rina
파일:Hong Rina.jpg
출생 1967년[2] 3월 17일[3] ([age(1967-03-17)]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現 서울특별시 서초구)[4]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0㎝, 49㎏, A형
가족 여동생 2명
남편 배종원, 슬하 1녀
학력 계성초등학교[5] (졸업)
계성여자중학교[6] (졸업)
계성여자고등학교[7] (졸업)
수원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 / 전문학사)
종교 가톨릭 (세례명 : 카타리나)[8]
데뷔 1987년 MBC 청소년 드라마《푸른 교실》
(데뷔일로부터 [dday(1987-05-18)]일, [age(1987-05-18)]주년)

1. 개요2. 상세3. 출연작
3.1. 드라마/시트콤
4. 여담

[clearfix]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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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배우.

2. 상세


1987년 청소년 드라마 <푸른 교실>로 데뷔해 큰 주목을 받았으나 이듬해 말 교통사고로 활동을 중단했다. 1990년 <가을로 온 손님>에서 복귀.

1994년 종합병원에 안미현 역으로 주연인 이재룡, 전광렬 사이의 히로인으로 캐스팅이 되었으나, 조연이였던 신은경, 오욱철, 주용만 등에 밀려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23회에 조기하차.[9]

1996년 드라마 조광조에서 조광조의 부인 역으로 등장했으나, 1997년, MBC 드라마 <산> 촬영 중에 불의의 큰 사고를 당했는데, 북한산 인수봉에서 70여m 높이의 암벽에서 로프를 끊고 자살하는 장면을 연기하던 중 몸을 묶고 있던 자일이 갑자기 끊어져 약 30m 절벽 아래로 굴러 추락했다. 전신에 심한 타박상을 입어 연기 활동이 힘들 것으로 보였지만, 10개월 만에 MBC 사극 대왕의 길에서 혜경궁 홍씨 역으로 복귀했다. 그 이후로는 정통 사극 출연이 뜸해졌다가 2002년, KBS 1TV 제국의 아침에서 정종 제1왕후 문공왕후로 사극으로 복귀했다. 사실 이 작품의 전작인 태조 왕건 캐스팅 물망에 올랐지만 SBS의 그래도 사랑해 출연으로 무산되었다.

2003년에는 SBS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의사 이리나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대장금에서 최금영 역으로 인기를 이끌었다. 궁녀의 신분으로 민정호를 연모하는데 그와 장금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흑화하지만, 개인의 자존심과 집안의 명예 사이에서 갈등하는 입체적인 인물 '금영'으로 그야말로 열연을 펼쳤다. 방영 당시에도 사랑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그녀가 금영의 내면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 재평가 받고 있다.[10] 여하튼 지금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2개의 작품으로 기억하는 듯 하다.

2004년 SBS의 드라마 <아내의 반란> 이후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11] 2006년 2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CEO 재미동포 사업가와 결혼했다.

3. 출연작

3.1. 드라마/시트콤

4. 여담

채시라절친한 사이다.[12] 아들의 여자에 함께 출연했으며, 드라마 미망에서는 모녀 사이로 출연하기도.[13] 2007년에 (채시라는) 그녀의 돌잔치만삭인 몸으로 어린 딸과 함께 참석했다.[14]

2013년에 모 치과에 내원한 모습이 공개되었다.

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한 건 아니지만, 2006년 재미동포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현재는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거주 중이라 복귀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며, 활동을 중단한 지 [age(2004-01-01)]년이 지난지라 사실상 연예계에서 은퇴를 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한 주부사이트에 송도에서 홍리나를 목격했다는 목격담들이 올라온것으로 보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가능성도 있다.

채시라와 전화통화로 근 20년만에 목소리와 근황이 공개되었다.


[훈음] 이로울 아름다울 [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876246[3] 음력 2월 7일.[4] 1973년 방배동을 제외한 모든 구역이(방배동은 당시 신설된 관악구에 편입되었다가 1980년 강남구로 편입) 성동구에 편입되었다가 2년 후 강남구로 분구. 1988년에 현재의 영역이 되었다.[5] 단 홍리나가 다니던 시절에 계성초는 반포가 아닌 명동에 있었다.[6] 1987년에 폐교되었다.[7]계성고등학교[8]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소속의 미션스쿨을 다녔다. 다만 그녀가 학생일 때는 학교들이 중구 명동성당 인근에 있었으나, 도심 공동화 문제로 인해 계성초등학교는 2006년, 계성여자고등학교는 2016년에 이전하면서 현재의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다.[9] 출연진들 중 가장 일찍 하차하였다.[10]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자신의 나약함을 책망하는 등 자칫 평면적인 악역으로 그칠 수 있었던 금영을 그야말로 200% 이상 표현했다.[11] 배우 활동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출연한 작품이다.[12] 다만 자신의 실제 나이는 1967년 3월생이며 그동안 알려진 1968년 2월은 나이만 1살 내렸을 뿐 그녀의 음력 생일이다. 반대로 그녀보다 1살 많은 이주경과도 친구처럼 지내는 듯 하며 그녀의 남편도 이주경이 소개시켜 주었다.[13] 물론 같은 시기에 모녀로 나온 것은 아니다. 엄마로 나온 홍리나 쪽은 과거.[14] 즉, 채시라가 이때 임신중이던 아들은 2007년생으로 2006년생인 홍리나의 딸보다 1살 더 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