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79년 6월 13일(음력 5월 7일)
1. 개요
고려 중기의 군인. 무신정권과 관련된 인물들 중 경대승, 두경승처럼 제신열전에 수록된 몇 안되는 인물이다.2. 생애
본관은 목천 우씨. 상서우복야 우방재의 아들로, 장윤문(張允文)의 외삼촌이다.우학유는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 의종·명종 연간에 숙위(宿衛)했는데, 오직 충성과 근실로써 임무를 다했다. 1170년 무신정변 당시 하급 군인 출신인 이고, 이의방 등은 대장군인 우학유를 정중부보다 먼저 포섭하려고 했으나 이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공의 뜻이 큽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가 일찍이 훈계하시기를 ‘무관(武官)이 문관(文官)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은 오래인데, 분한 생각이 없겠는가. 문신을 제거하는 것은 썩은 것을 부려뜨리는 것처럼 쉽지만 문관이 해를 입게 되면 화가 우리들에게 미칠 것이니 너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소.
나의 아버지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말씀은 여전히 귀에 쟁쟁하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따르지 못하겠소.”
<고려사 권100 열전 우학유
나의 아버지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말씀은 여전히 귀에 쟁쟁하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따르지 못하겠소.”
<고려사 권100 열전 우학유
우학유를 포섭하는데 실패한 이고와 이의방 등은 정중부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해 무신정변을 일으키게 되었다. 무신정변 이후, 이고와 이의방은 무신정변 동참에 거부한 우학유를 해치려고 했다. 그러나 우학유가 이의방의 윗누이와 혼인하겠다고 자청하면서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1172년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을 지내다가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임명되었다. 이후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까지 올랐다가 1179년 6월 13일(음력 5월 7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