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3 23:06:20

대명주원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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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제14부인
대명주원부인 | 大溟州院夫人
생몰년 미상
성씨 명주 왕씨
부모 부친 - 내사령 왕예(內史令 王乂)
부군 태조
자녀 기록없음
직위 부인(夫人)
작호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clearfix]

1. 개요

고려 창업군주 태조의 제14부인. 명주의 호족 내사령 왕예의 딸이다.

2. 생애

명주출신으로 내사령(內史令)의 증직을 받은 왕예(王乂)의 딸이다. 태조는 고려를 세운 뒤 지방 호족세력을 포섭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강릉지방에 대한 관심은 상당하였다.

태조는 명주의 성주이며 장군인 왕순식(王順式)을 포섭하기 위하여 내원(內院)의 승려로 있는 왕순식의 부친 허월(許越)을 보내 귀부를 권유하였고, 왕순식의 내투시에는 사성 왕씨(王氏)을 하사하고 관직과 전택을[1] 주어 우대하였다.

왕예와 왕순식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왕예가 왕순식의 휘하에서 태조의 통일전에 참여하였으며, 둘 다 신라 왕족의 후예라는 점, 고려에 와서 사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태조가 왕예의 딸을 왕비로 맞아 들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을 근친관계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왕예는 강릉지방에서 독자적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던 지방호족이었으며, 940년(태조 23) 명주의 도령으로서 주진군(州鎭軍) 지휘관의 위치에 있었다. 태조는 귀부 호족을 포섭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들과 혼인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참고로 작호중에 유일하게 소(小), 후(後)가 아닌 대(大)가 붙어있는데, 추측하건데 같은 동향인 제8비 정목부인 왕씨와의 관계가 주목된다. 정목부인은 23명의 부인들 중 시호를 받은 5명의 부인들 중 하나로 살아생전에는 소명주원부인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왕후들을 제외하고 시호를 받은 부인인만큼 가문의 세력이 막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따라서 대명주원부인은 살아생전에는 명주원부인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래도 먼저 명주호족의 딸로 태조와 혼인을 했으나 정목부인 일족의 위세로 후에 밀린 것으로 추정된다. 즉 주객전도인 셈이다. [2]

3. 가족관계

  • 친정
    • 아버지 : 왕예(王乂)

  • 배우자 / 남편
    • 남편 : 태조 왕건(王建)

[1] 토지와 가옥[2] 태조의 부인들 순서가 단순히 혼인순서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당장 신성왕후만 해도 제5왕후이지만 연도 순을 계산하면 나중에 입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례이다. 즉 부인들 순서는 혼인순서도 있겠지만 호족가문의 위세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