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20:58:10

정세유


鄭世裕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고려 무신정권 시기의 관리, 무신. 하동군(河東郡) 사람이다.

2. 생애

명종(1170년~1197년 재위) 때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있었다. 백성의 재물을 착취해 몇 번 내부(內府)에 바치자 왕이 그의 아들 정숙첨(鄭叔瞻)편에 손수 쓴 조서(詔書)를 내리며 칭찬했다고 한다.

정세유가 돌아와서 아들 정윤당(鄭允當)을 전조(銓曹)에 제수(除授)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정윤당이 나이가 어리고 아는 것이 없다하여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으로 제수했다고 한다.

1177년 남적처치병마사(南賊處置兵馬使)에 임명되어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을 진압했다.

1185년 음력 6월[1], 정세유가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승진하자, 당시 참지정사 상장군(叅知政事 上將軍)인 문장필(文章弼) 등 여러 장수들이 탄핵하여 아뢰기를, “정세유가 예전에 서북면에 있을 때 민에게서 명주실과 진기한 물품들을 거두면서 공물로 바친다고 사칭하고는 역마(驛馬)를 이용해 제 집으로 실어 보냈습니다. 또 상서성(尙書省)에 있을 때는, 영주(永州)의 향리(鄕吏) 최안(崔安)의 호장(戶長) 임명장이 이미 완성되었는데도, 정세유가 수주(水州)의 향리인 최소(崔少)에게 뇌물을 받고 영(永)자를 수(水)자로 고치고 안(安)자를 소(少)자로 고쳐, 그 임명장을 최소에게 주었습니다. 일이 발각되었으니 법에 의해 마땅히 유배되어야함에도 잔꾀를 써서 처벌을 면했습니다. 지금 형부상서가 되어서는 먼저 관아에 나와 앉아 있다가 늦게 오는 동료가 있으면 언제나 욕설을 퍼부어 내쫓았습니다.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문서를 뜯어고쳐 법을 우롱하였으며, 뇌물의 많고 적음을 따라 사람의 죄가 왔다 갔다 합니다. 청컨대 먼 섬으로 유배를 보내시어 후세를 경계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이 허락하는 조서를 내리자 나라 사람들이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2]

1194년 음력 11월, 대정(隊正) 이금대(李金大)가 정세유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고발했고, 정세유·정윤당·정숙첨은 모두 남쪽 끝으로 유배보냈다. 유배된 이후 기록이 없는 점을 보면 유배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3. 대중매체

  • 2003년 ~ 2004년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조연으로 등장한다. 배우 김규 씨가 연기했다. 초반에 정중부 측 장수로 나왔다가 어느샌가 조원정파 장수로 묘사되었다. 망이, 망소이의 난 때 자신에게 돌을 던진 망이의 어머니와 아내를 죽인다.[3] 이후 1187년 조원정, 석린의 반란이 실패한 후 나레이션으로 반역을 꾀했다는 죄로 유배보냈다는 말로 퇴장당했다.

[1] 고려사절요의 기록 참조.[2] 다만 1194년에 반역죄로 재차 유배를 간 점을 보면, 1185년에 받았던 유배형은 풀렸던 것으로 보인다.[3] 이 소식을 들은 망이는 다시 반란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