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11-06 07:43:34

이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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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奎報
1168년 ~ 1241년

1. 소개2. 생애3. 일화4. 기타5. 작품들6. 대중매체에서
6.1. 징기스칸 46.2. 이규보 역을 연기한 배우

1. 소개

경기도 여주시 출생.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어려서부터 시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영웅서사시 동명왕편 등을 썼으며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즉흥시를 쓰기로 유명했다. 한때 권신의 압객이란 말도 들었다.

그가 활약을 하던 고려 중기는 하필이면 무신정권 기간이었다. 결국 그도 벼슬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최충헌(진강후)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기개가 있고 성격이 강직해 "인중룡"이란 평도 있었다.

2. 생애

본래의 이름은 인저(仁氐)였다. 부친은 이미 호부 낭중을 역임한 중앙 관료였다. 초년기에는 제법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인데 어렸을 적부터 시문에 뛰어나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좀 약했는지 과거 시험에 3번이나 떨어진 경력이 있다. 본인도 공부를 잘 안 했다는 걸 인정했는지 이 때는 때문에 시험 망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게으른 천재? 이렇게 적으면 n수생 이미지일듯 한데 이규보는 15세, 18세, 20세 때 과거를 치렀다. 질풍노도의 시기여서 그랬나?

그러다가 4번째(22세 때)로 과거를 보게 되었는데 시험 전날 꿈에서 문장을 관장하는 별인 규성(奎星)의 화신이 나타나서 "너님 합격요"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결국 그 과거에서 규성의 말대로 장원으로 합격했는데, 이후 '규성이 결과를 알려준 은혜를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규보(奎報)'로 바꾸었다고 한다.

진사 시험에 합격하긴 했는데 합격자들 사이의 석차가 꼴찌였다.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했는지 합격을 취소하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고 전례도 없었기 때문에 취소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합격을 해서 당시 축하파티를 벌였는데 이규보가 이 자리에서 "아오. 내가 지금은 꼴찌지만 나중에 혹시 문생들 양성할 사람이 될지 어찌 암?"이라고 주사를 부려 손님들이 비웃었다는 일화가 있다.

명종 말년에 자기 스스로 이력서 추천서를 써서 재상들에게 보냈고 재상들 역시 이규보를 명종에게 추천했으나 이규보를 싫어했던 사람이 있어서 등용되지 못했고, 이후 몇 년 간 저술활동을 하다가 32세 때 전주의 하급 관리로 임명되어 간신히 벼슬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1년 3개월만에 교체되었다. 상관이 재물을 탐하는 것에 대해 굽히지 않고 간언하다가 높으신 분들 눈밖에 나버렸다고.

또 그렇게 30대를 보냈다. 이규보 본인이 문집에서 밝힌 바로는 30대에 이미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그 사이 경상도 지역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아직 임관되지 못한 사람 중에서 종군 문관을 뽑으려고 했는데 이규보는 여기 자원해서 약 1년 정도 반란 토벌군에서 종군했다. 정식 직함은 '병마녹사 겸 수제'. 그런데 반란군 토벌 후 돌아온 뒤에 다른 사람들은 다 논공행상으로 벼슬이나 포상을 받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규보만 이걸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걸 보다 못한 관리들이 왕에게 추천하여 직한림원에 임명되긴 했는데 그나마도 비정규직 임시직. 이쯤 되면 참 안습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이 이규보에게 문장을 적게 했는데 이규보는 특유의 문장력으로 최충헌을 감탄시켰고 최충헌은 이규보의 한림원 벼슬을 정규직으로 돌려 주었고 이후로도 최충헌의 초청을 받아 문장을 지어 그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로도 벼슬은 계속 승진하여 마침내 그가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여몽전쟁기에 고려의 조정을 총괄하는 재상직에 올랐다. 재능에 비해 비교적 늦게 출세한 대기만성형 인물. 다만 그러다보니 최우강화도 천도를 찬성하는 등 문제 많은 "최비어천가" 행보를 보였다. 잠깐 용비어천가는 훨씬 후대의 작품이잖아
야사에 따르면 어릴 때 피부병을 앓았다가 미신만 믿고 방치해서 죽을 위기에 놓였었는데, 나중에 겨우 약을 쓰고 나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문학적, 현실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어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자주 실린다. 특히나 '토실을 허물어 버린 설'은 따뜻하자고 만든 온실을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라며 화를 내며 허물어 버리라고 한 내용을 통해 자연에 역행하는 현재의 인간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득권으로서 오만한 면이라는 평도 만만치 않다. 아래사람 편한 꼴을 못보는 개꼰대

이규보는 후대 유학자들에게 그 문장력으로 유명하지, 성품 면에서 특별히 높은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실제 행적은 오히려 권력에 아부하며 부화뇌동하였던 사람이다.

앞서도 언급되었지만, 이규보는 문인으로서는 현실을 다룬 이야기가 많다. 자신도 그렇고, 문학세계도 그렇다.

3. 일화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限'

이규보가 과거에 낙방하고 있을 때에, 집 문에 이 글귀를 붙였다. 왕(대부분은 명종이 언급된다)이 암행을 나갔을 때, 이 글을 보고 그 뜻을 알 수 없어서 주변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노래를 잘 부르는 꾀꼬리에게 까마귀가 찾아와서 두루미를 심판으로 노래 대결을 하자고 청했다. 꾀꼬리는 쾌히 승락하고 3일간 노래 연습을 했는데, 까마귀는 노래는 부르지 않고 논밭을 뒤지면서 개구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잡은 개구리 3마리를 두루미에게 주었다. 3일 후, 노래 대결을 하자 두루미는 승자를 개구리 까마귀라고 했다'
라는 것이다. 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과거를 열면서 '유아무와 인생지한'을 시제로 내걸어서 이규보가 장원을 했다.
라는 일화가 떠돌고 있다. "내 한 몸은 있으되 개구리(뇌물)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라는 표현을 통해 과거제가 비리로 얼룩져 있어 뇌물이 없는 자신은 급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풍자한 것. 물론 이건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재미있는 것은 두루미, 혹은 학이 악역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시가 하나 더 있다. 이건 이규보의 시가 확실하다.
蓼花白鷺 요화백로 여귀꽃과 백로
前灘魚富蝦 전탄부어하 앞 개울에 물고기와 새우가 많아서
有意劈波入 유의벽파입 물 가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見人忽驚起 견인홀경기 사람을 보고 문득 놀라
蓼岸還飛集 요안환비집 여뀌꽃 언덕에 다시 날아와 모였다네
翹頸待人歸 교경대인귀 목을 빼고 사람 돌아가기를 기다리느라
細雨毛衣濕 세우모의습 가랑비에 날개 깃은 젖어가고
心有在灘魚 심유재탄어 마음은 오직 개울 물고기에 있건만
人道忘機立 인도망기립 사람들은 속세의 욕심을 잊고 서 있다고 하네
뭐랄까 여러모로 후대의 윤치호와 많이 닮아있다. 정철까지는 아니고

이규보와 관련된 일화 하나 더. 무신정권기에 이에 낙심한 문인들인 이인로 등이 죽림고회라고 해서 술 마시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해좌칠현 혹은 대놓고 죽림칠현이라고 불렸는데, 이규보는 이들중 오세재와 인연이 깊어서 같이 드나들었다. 그런데 오세재는 가난 때문에 경주에 머무르다가 가장 빨리 죽었다. 때문에 이규보에게 가입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규보는 혜강이 죽은 이후에 죽림칠현에 누가 가입했다는 소리는 못들어봤다고 하면서, 누군가 왕융 같은 이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가 했다고 한다. 이 글이 바로 이규보의 '칠현설'이다.

4. 기타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가 있고 그 외에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바로 , , 거문고를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당대의 문장가이자 풍류인다운 면모. 이 사람의 문집이 바로 <동국이상국집>으로 아래에 열거된 작품들은 모두 이 책에 들어 있다.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된 이규보의 시는 무려 2천여 수에 이른다고 한다.

여러모로, 국문학계와 한문학계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문학사에서 따로 한 장을 구성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데, 당시 고려나 조선에서는 사장이 융성하여 시의 기교를 닦는 것이 극에 달했었는데, 이규보는 그런 송시풍의 시체나 용사를 쓰는 것을 남의 글을 도둑질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힐난하며, 고려에 맞는 문체와 신어를 주장하며 애용했다. 이러한 이유로 당대시인 중 용사를 중요시했던 이인로와 대비되는 인물로 반드시 언급된다. 여말의 국문학계의 위치는 가히 조선의 셰익스피어급.

심지어 도쿄대학 99년도 입시 국어(한문편)에서 그의 '동국이상국집'이 출제되기까지 했다!!!(99년)

5. 작품들

  • 경설: 패관 문학 중 하나. 거사의 흐린 거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거울'에 빗대어 설명한다.
  • 국선생전: 고려시대 유행하던 산문문학 중 하나인 가전체로 쓰여진 소설. 을 의인화하여 주인공으로 삼았다.
  • 동명왕편(동명성왕 신화를 읊은 영웅 서사 한시)
  • 슬견: (벌레)와 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손님과 논쟁을 한 것을 적은 수필. 오늘날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며 동물학대 또는 개고기 관련 소식이 뜨면 자주 인용이 되는 글이다. '뒤집어 읽기를 통한 깨달음'이라는 작품에서는 슬견설 전체를 인용하여 슬견설의 주제를 편견을 버리고 폭 넓은 견해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글쓴이가 말한다.
  • 주뢰설: 뇌물을 주지 않아 배가 나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당대의 극심한 정치적 부패를 우회적으로 까는 이야기이다.
  • 칠현설: 은 시절에 이인로가 포함된 죽림칠현의 모임에 갔다가 깽판친 이야기.
  • 영정중월: 5언절구. 해를 품은 달에 나와서 많은 이들에게 인식된 시.
詠井中月 영정중월 우물 속 달을 읊다
山僧貪月色 산승탐월색 산사의 승려가 달빛을 탐하여
幷汲一甁中 병급일병중 병 속에 물과 함께 담아가네
到寺方應覺 도사방응각 절에 도착하면 비로소 깨달으리
甁傾月亦空 병경월역공 병을 기울이면 달 또한 빈 것을
  • 절화행 : 악부체 시.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걸 옥탑방 왕세자에서 봤느냐, 극악서생에서 봤느냐, 시문학관련해서 봤느냐가 문제일 뿐.
牡丹含露眞珠顆 모란함로진주과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 같으니
美人折得窓前過 미인절득창전과 신부가 (모란을) 꺾어 들고 창 앞을 지나다
含笑問檀郞 함소문단랑 웃음을 머금고 신랑에게 묻기를
花强妾貌强 화강첩모강 "꽃이 더 낫나요 제 모습이 더 낫나요"
檀郞故相戱 단랑고상희 신랑이 일부러 장난치느라
强道花枝好 강도화지호 "꽃가지의 아름다움이 더 낫구려"
美人妬花勝 미인투화승 신부는 꽃이 더 낫다는 것을 질투해서
踏破花枝道 답파화지도 꽃가지를 밟아 짓뭉개며 말하기를
花若勝於妾 화약승어첩 "만약 꽃이 저보다 낫다시면
今宵花同宿 금소화동숙 오늘밤은 꽃과 함께 주무세요"

6. 대중매체에서

6.1. 징기스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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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4 일러스트[1]

일본에서도 유명한지 코에이푸른 늑대와 흰 사슴 시리즈에서도 고려의 문신으로 계속 등장한다. 원조비사에서는 시나리오 2에서[2] 한반도 지역의 재야인재로 등장하며 정치 C 전투 D 지도 D 매력 B로 고만고만한 능력치에 비교적 높은 매력이 인상적이다. 징기스칸 4의 경우 지모가 상당히 높게 잡혀있어 인사 특기를 가진 최충헌과 더불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무사시보 벤케이를 빼온다던가 하는데 유리하다. 그런데 일본판에서는 지모가 74. 한글판에서는 85로 한글판에서 능력치가 상향되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지모가 74라도 쓸만하다. 여담이지만 이사람도 고증오류가 있는데, 출생년도에서 원래 출생년도가 1168년 이지만 여기선 1178년으로 나온다.

6.2. 이규보 역을 연기한 배우



[1] 그런데 고려고종과 동일한 얼굴이다. 그나마 이게 비스코 정발판에서 새로 추가된 것이고, 원판 파위업키트에선 아예 클론무장 얼굴로 뜬다(...).[2] 내수판에서는 유저 시나리오에서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