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2 02:56:11

무사시보 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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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蔵坊弁慶(むさしぼうべんけい)
1155 ~ 1189

1. 개요2. 상세3. 매체에서4. 벤케이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4.1. 별의 왕녀 5의 등장인물
4.1.1. 스포일러
5. 벤케이를 모티브로 한 가수

1. 개요

일본 겐페이(原平) 시대의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섬기는 5명의 가신 중 한 명으로, 충(忠)의 가신. 아명은 오니와카(鬼若).

2. 상세

벤케이의 탄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쿠마노 수군을 이끄는 후지와라노 탄조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고, 고승 탄조(湛増)가 다이나곤(大納言)의 딸을 겁탈하여 낳은 아들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출생이 불분명하고 벤케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요시츠네와 연관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며 이 때문에 실존인물이 아니라 창작된 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어머니 뱃속에서 18개월[1]을 지내고 태어나, 태어나자마자 이미 두세 살 정도의 몸집이었으며 머리카락은 어깨를 덮을 정도였으며, 이도 다 나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를 보고 귀신의 자식이라며 죽이려 했으나, 숙모가 가까스로 구해내어 키웠다고. 후에 히에이잔(比叡山)에 들어가 승려가 되나, 성격이 난폭하여 파문당하게 되는데, 이후에 비로소 '무사시보 벤케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고조 대교에서 만난 것이 유명하다. 이 때 벤케이는 결투의 전리품으로 천 개의 칼을 모으기로 결심하고 다리를 막아서서 결투를 강요했었는데 천 번째 상대가 요시츠네였다고 한다. 이 일화는 꽤나 유명해서 여러가지 매체에서 패러디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브레이크 에이지의 바이러스 전개 머신. 천 대를 해치우면 프로그램 브레이크 에이지가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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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고조 대교에 있는 요시츠네와 벤케이상. 처음 만났을 때 일화를 형상화했다. 아래가 벤케이, 위가 요시츠네. 그당시에는 헤이케가 멸망하던 때라서 년도는 1185년 정도로 보인다.

고조 대교에서 요시츠네에게 패한 후, 그의 둘도 없는 충신이 되어 활약하게 된다. 코로모가와노타치에서 요시츠네를 지키다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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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화살이 온 몸에 박혀 있었는데도 버티고 선 채로 죽었다고 한다.[2] 이를 두고 조작이니 허구라고 하는 의견도 있으나 현대 의학자들 연구를 분석하면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다가 죽을 경우 몸이 급속도로 굳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되고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선 채로 극락왕생했다라는 뜻에서 '다치오조'(立ち往生)라 부른다.[3]

3. 매체에서

그래서 그런지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 주로 육체파이며 힘쓰는 스타일이 많다. 또한 벤케이라는 말은 일본 내에서는 무력적 길막의 대명사가 거의 되어버렸다.

원평토마전에선 떡대 보스로 등장한다. 완전 괴물이 된 요시츠네나 마왕이 돼버린 요리토모에 비교하면 많이 정상적인 모습이다.

월풍마전에서는 왠 양산형 적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스토리상 잡는 3보스로 가는 길목(삼도천)에 널려 있다.

국내에 소개된 가장 대표적인 예는 명탐정 코난의 "서서 죽은 벤케이 장군" 부분. 모리 코고로의 추리가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4]그런데 국내 정발판에서는 번역자가 벤케이를 변경 장군이라고 번역해버렸다. 이후 극장판 미궁의 십자로에서도 메인 토픽으로 나오며 여기서는 범인의 심볼이기도 하다. 또한 무사시보 벤케이는 국내에서는 임진왜란과 그외의 조선침략과는 연관성이 1도없는 인물이기에 일본위인 이라는 편견은 피할수 없지만 미궁의 십자로의 국내방영의 경우 VOD에서나마 원판명칭 그대로 나올수 있긴 했다.

검용전설 야이바에도 등장. 성우는 고리 다이스케. 오니마루가 소를 매개체로 혼을 불러냈다. 실력은 꽤 좋지만 머리가 나쁘다. 지금은 없는 킨테츠 버팔로즈의 유니폼이 어울린다.

쿠로즈카에서는 쿠로미츠에게 반하면서 그녀에게 선택된 쿠로에 질투하여 배신해 죽이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불사자가 되었다. 단, 불로는 아니기에 영원히 늙어가는 상태가 된 것으로 쿠로와 영원히 되풀이되는 쿠로미츠 쟁탈전을 치르게 되었다. 성우는 나카타 조지. 특히 마지막 화에 쿠로미츠를 사랑하여 쿠로를 배신한 후 천년 간의 갈등을 담은 심리 묘사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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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4 일러스트

징기스칸 4에서는 주군인 요시츠네와 함께 히라이즈미 정권에 있다. 전투치가 높고 승병을 이끌면 공격력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간첩 요시츠네에게 배반이 걸리면 "남 대하듯 하시는군. 고조의 다리에서 만난 내 주군은 당신 뿐이지."란 대사를 읊으며 배반. 하지만 충성도가 낮아서 요시츠네와 함께 옆 나라 고려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능력치는 정치 25, 전투 86, 지모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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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신장의 야망 혁신의 특전무장으로 등장.

데즈카 오사무불새난세편에서도 등장하는데, 이 에피소드 자체가 위에서 알려진 이야기를 크게 윤색했다. 여기서 벤케이는 싸움을 싫어하고 순박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아니 사실 여기서의 이름은 벤타고 벤케이라는 이름은 작중 한 인물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원래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지만 그 여인은 요시츠네의 손에 죽는다. 그 와중에 자신의 몇 없는 부하들도 다 잃는다. 요시츠네에 의해 나무꾼으로서 아내와 함께 살려던 꿈이 무너졌지만 그 와중에 새로운 여인을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그 아내가 요시츠네가 자신들의 집을 최후의 거점으로 쓰려는 것을 막으려다 요시츠네의 칼에 맞자 마침내 분노가 폭발하여 요시츠네를 자기 손으로 때려죽인다. 몰려오는 적군들에 맞서 아내를 업고 최후의 결전에서 도망치려 하나 화살에 맞은 모습으로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을 끝으로 죽었을 것이라 보여진다. 단 살아남아 다른 나라로 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영웅'이라 불리는 인물들의 세력 다툼에 파멸을 맞이하는 일반인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볼 수 있다. 불새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비극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 설화속 벤케이가 주군을 위해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박히고 죽은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것을 찬양하기 위한 캐릭터였던 것인 반면, 이 에피소드에서는 정반대로 해석이 된 셈이다.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2차 세계대전 동안 폭격을 통해 고향이 폐허가 되고 자신도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며 전쟁을 부정적으로 보던 인물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각색의 배경을 이해하기 쉬울 듯. 여담으로 이 에피소드는 요시츠네를 전쟁광에 악당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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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45년[5] 작품인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나이'에서 주인공의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당대의 대 배우인 오코치 덴지로가 열연하였다.

오슈로 피난을 가는 요시츠네와 가신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데, 여기서 벤케이는 카리스마 있는 가신들의 리더격 인물이며 전형적인 주인공의 외모에 작중 여러 위기를 재치있게 해결하고 자신이 속여넘긴 적의 대인배같은 행동에 감복하며 저런 의인을 속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을 슬퍼하는 등 주군에 대한 충심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벤케이에 대한 클리셰[6]를 비틀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영화 초반에 짐꾼이 벤케이 앞에서 벤케이를 묘사하며 '8척 장신에 수백근의 쇠봉을 휘두르며 사람의 머리를 무 뽑듯이 뽑지만 머리가 비었다'라며 설화 속의 벤케이의 모습을 늘어놓는다. 사실은 벤케이의 일화를 배경으로 한 아타카(安宅)와 가부키 칸진쵸(勧進帳)를 원작으로 한 것이다. 칸진쵸에서도 벤케이가 적 수문대장의 어려운 질문에 재치있게 대답해 위기를 모면하고, 그의 충심에 감복한 수문대장 토가시가 그들의 정체를 간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7] 이들을 보내주는 장면이 나온다.

쾌락 히스토리에 가마쿠라 편에서 등장. 에로 망가를 끊지 못해 히에이 산에서 추방당해 이후 고죠 다리에서 무사들을 습격해 에로 망가를 빼앗는 땡중. 여담으로 그의 등에 메단 7종의 무기들은 사실은 딜도. 그렇게 미나모토 요시츠네와 싸우다 요시츠네가 여자인 것을 알게 되자 사실은 자신도 여자라며 정체를 공개한다. 다만 죽을 때 아랫도리를 세운 것을 봐선 후타나리일지도. 이후 벤케이의 에로 망가는 요시츠네가 해외로 빼돌린다.

4. 벤케이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4.1. 별의 왕녀 5의 등장인물

성우는 토리우미 코우스케. 똑같은 여성향 게임이라도 2에 비하면 정통 벤케이에 가깝다.

쿠마노 벳토 탄조의 아들이지만, 지나치게 난폭하여 의절. '헤이케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표현될 정도의 풍조와 정치부패에 절망해 전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 벤케이와 같이, 고죠 대교에서 주인공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잘 웃는 쾌활한 성격이다.

여담이지만 먼저 나온 하루카 3의 미나모토노 쿠로 요시츠네의 친우 후지와라노 야스히라와 성우가 같고, 게다가 여기서의 주인공의 소꿉친구 키산타는 2 항목의 벤케이와 성우가 같기 때문에 미라이의 성우 장난이라는 음모론도 나돌고 있다. 부녀자들 일부에서는 '제작진 중에 야스히라의 팬이 있어서 요시츠네와 이어주는 걸로 야스히라의 한을 풀어 주려고 한 것'이라는 얘기도 도는 듯.

4.1.1. 스포일러

실은 고죠 대교에서 주인공과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주인공의 오빠 차나왕과 어렸을 적에 친하게 지냈다. 즉 소꿉친구.

뿐만 아니라 작 내에서 종종 이름이 언급되었던 아테루이의 환생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전생인 모레와 사랑하는 사이였고, 키산타의 전생인 타무라마로와는 친구 사이. 그러나 타무라마로는 조정군, 모레와 아테루이는 에조군이었기 때문에 서로 싸워야 했다. 결국 모레와 아테루이는 에조를 지키기 위해 투항하고, 타무라마로의 손에 처형당한다.

5. 벤케이를 모티브로 한 가수



[1] 3년이었다고도 함.[2] 이 장면은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전위의 죽음에 인용되었고 일본TV 삼국지에서는 관우가 이렇게 죽는다.[3] 또한 속어로 자동차가 눈길에서 갑자기 멎어버리는 걸 뜻하기도 한다.[4] 코고로의 동창회 에피소드로, 수위가 높고 역사적인 문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불방되었다. 격렬한 움직임 끝에 서서 죽었다는 벤케이의 모습이 사건의 결정적인 힌트였다.[5] 영화 촬영 도중에 일본 제국이 패망했다. 그런 연유로 당시 여배우들과 여성 스태프들이 모두 도쿄로 피난 중이어서 영화의 출연진은 물론이오, 스태프롤에서도 여성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패전은 했지만 영화제작은 계속되었고, 이 때 아직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름이 해외에 알려지기 전이었으나 미군들도 일본인들이 영화촬영하는 게 재밌다고 촬영장에 구경와서 제작이 꽤 지연되었는데 이 때 촬영장을 보러 온 미국인들 중에선 존 포드 감독도 있었다고 전한다. 평소 존 포드를 존경하고 그의 영향을 받았던 구로사와지만 이 때는 경황이 없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는데, 뒤에 유명해지고 미국에서 포드를 다시 만났을 때 포드가 이 때 일을 상기시키자 매우 놀랐다고 전해지고 있다.[6] 이 영화가 나온 시점에도 벤케이의 이미지는 현재와 같았으니...[7] 당시 벤케이와 그의 주군 요시츠네는 요시츠네의 형이자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 숙청당해 피난 가는 중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최고권력자 쇼군이 친히 반역자로 몰아 눈에 불을 켜고 잡아 죽이려고 하는 이들을 검거하지 않고 보내주는 행위는, 국가 권력에 대한 중대한 대역죄로 취급되기 때문에 수문대장 토가시는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운명이었다.[8] 캐릭터와 스테이지 디자인 등은 벤케이와 관련된 전승을 따르나, 세부적인 설정에서 다른 일본 신화/전설과 뒤섞이거나 다른 캐릭터로 떨어져나간 부분이 일부 있다. 죽지 않는 자로서의 설정은 야오비쿠니 전설로부터 왔으며, 천 개의 칼을 모은다는 설정은 중간보스 중 하나인 갑옷무사가 인용했다.[9] 식극으로 이긴 상대로부터 식칼을 수집한다는 설정이다.[10] 처음에는 네로스 제국의 일원이었지만 메탈더가 죽이지 않고 살려줘서 눈물을 흘리며 개과천선 했지만 나중에 벤케이처럼 화살맞고 서서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