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eepall>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194, #004DAE 20%, #004DAE 80%, #004194);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초대 | 섭정 | 제2대 | 제3대 |
| 칭기즈 칸 | 툴루이 칸 | 오고타이 칸 | 귀위크 칸 | |
| 제4대 | 제5대 | 제6대 | 제7대 | |
| 몽케 칸 | 쿠빌라이 칸 | 올제이투 칸 | 쿨루크 칸 | |
| 제8대 | 제9대 | 제10대 | 제11대 | |
| 부얀투 칸 | 게겐 칸 | 아슈케베 칸 | ||
| 제12대 | 제13대 | 복위 | 제14대 | |
| 자야아투 칸 | 후투그투 칸 | 자야아투 칸 | 린친발 칸 | |
| 제15대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
| 우카가투 칸 | 빌레그투 칸 | 우스칼 칸 | 조리그투 칸 | |
| 제19대 | 제20대 | 제21대 | 제22대 | |
| 엥케 칸 | 토코칸 칸 | |||
| 제23대 | 제24대 | 제25대 | 제26대 | |
| 델베그 칸 | 오이라다이 칸 | 아다이 칸 | ||
| 제27대 | 제28대 | 제29대 | 제30대 | |
| 타이순 칸 | 오케크트 칸 | 다이온타슨다이 칸 | 오헤크트 칸 | |
| 제31대 | 제32대 | 제33대 | 제34대 | |
| 멀런 칸 | 만둘 칸 | 다얀 칸 | ||
| 제35대 | 제36대 | 제37대 | 제38대 | |
| 알라그 칸 | 구덴 칸 | 자삭투 칸 | ||
| 제39대 | - | |||
| 링단 칸 | | |||
| 비정통 | ||||
| 아리크부카 · 카이두 칸 | ||||
| <colbgcolor=#004DAE> 몽골 제국 · 원 · 오고타이 칸국 · 차가타이 칸국 · 일 칸국 · 킵차크 칸국 | ||||
| 몽골 제국 · 원 · 복드 칸국 · 몽골 인민공화국 · 몽골국 |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min-height: calc(1.5em + 10px); padding-top: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194, #004DAE 20%, #004DAE 80%, #004194)"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 세조 | 성종 | 무종 | 인종 | |
|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 영종(英宗) | 태정제 | 천순제 | 문종 | |
| 제9대 | 제8대(복위) | 제10대 | 제11대 | |
| 명종 | 문종 | 영종(寧宗) | 혜종 | |
| 북원(北元) | ||||
| 초대 | 제2대 | 제3대 | ||
| 혜종 | 소종 | 천원제 | ||
| <colbgcolor=#004dae,#004dae> | }}}}}}}}} | |||
| <colbgcolor=#004DAE> 원 초대 황제 세조 | 世祖 | |||
| 몽골 제국 제5대 대칸 쿠빌라이 칸 | ᠬᠤᠪᠢᠯᠠᠶ ᠬᠠᠭᠠ | |||
| <nopad> | |||
| 출생 | 1215년 9월 23일 | ||
| 몽골 제국 (現 몽골) | |||
| 즉위 | 1260년 5월 5일[1] | ||
| 몽골 제국 개평부 (現 중국 내몽골 자치구) | |||
| 사망 | 1294년 2월 18일 (향년 78세) | ||
| 원 대도 (現 중국 베이징시) | |||
| 재위기간 | 몽골 제국 대칸 | ||
| 1260년 5월 5일 ~ 1294년 2월 18일 (33년 9개월 13일) | |||
| 원 초대 황제 | |||
| 1271년 12월 18일 ~ 1294년 2월 18일 (22년)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4DAE> 성 | 보르지긴(Боржигин) 孛兒只斤(패아지근) ᠪᠣᠷᠵᠢᠭᠢᠨ | |
| 휘 | 쿠빌라이(Хубилай) 忽必烈(홀필렬), 呼必賚(호필뢰 / 호필래) ᠬᠤᠪᠢᠯᠠᠶ | ||
| 부모 | 부황 예종 모후 현의장성황후 | ||
| 형제자매 | 11남 3녀 중 4남 | ||
| 배우자 | 첩고륜 대황후 소예순성황후 남필 황후 | ||
| 자녀 | 12남 9녀 | ||
| 종교 | 불교 | ||
| 묘호 | 세조(世祖) | ||
| 시호 | 성덕신공문무황제(聖德神功文武皇帝) | ||
| 존호 | 헌천술도인문의무대광효황제 (憲天述道仁文義武大光孝皇帝) | ||
| 칸호 | 세첸 칸 薛禪汗(설선한), 色辰汗(색진한) ᠰᠡᠴᠡᠨ ᠬᠠᠭᠠ | ||
| 연호 | 중통(中統, 1260년 ~ 1263년) 지원(至元, 1264년 ~ 1294년) | ||
| 언어별 표기 | 둘러보기 | }}}}}}}}} | |
1. 개요
몽골 제국의 제5대 대칸이자 원나라의 초대 황제.흔히 통합 몽골 제국의 마지막 대칸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툴루이 내전에서의 승리로 대칸 즉위를 공인받았다고는 하지만 친(親) 아리크부카 세력이 이탈했고, 서방 울루스들의 독자적인 세력 형성이 걷잡을 수 없도록 확대되었기에 선대인 몽케 칸을 통합 몽골 제국의 마지막 칸으로 보는 시각도 크다.
2. 언어별 표기
| | |
| 언어별 표기 | |
| <colbgcolor=#004DAE><colcolor=#fff> 한국어 | 쿠빌라이 칸[2] |
| 몽골어 | ᠬᠤᠪᠢᠯᠠᠶ ᠬᠠᠭᠠᠨ Хубилай хаан |
| 영어 | Khublai khan |
| 중국어 | 忽必烈汗 (Hū bì liè hàn) |
| 일본어 | クビライ・カン (Kubirai kan) |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성덕신공문무황제(聖德神功文武皇帝), 칸호는 '세첸 칸'이었으며[3], 휘는 '보르지긴 쿠빌라이'였다.[4] 휘의 어원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백조를 뜻하는 튀르크어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자라는 중세 몽골어 어휘가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3. 생애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쿠빌라이 칸/생애#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쿠빌라이 칸/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 평가
세조(世祖) 황제는 어질고 명철하고 영민하고 씩씩하였기 때문에 천하를 통일하여 앉아서 태평성세를 이룰 수 있었다. 현인을 찾고 간언을 받아들이며 인재를 알아보고 잘 임용하여 문신(文臣)으로는 허형(許衡)ㆍ요추(姚樞)ㆍ유병충(劉秉忠)ㆍ사천택(史天澤)ㆍ왕악(王鶚)ㆍ이도복(李道復) 등이 묘당(廟堂)에서 계책을 수립하고, 무장(武將)으로는 백안(伯顔)ㆍ아리해애(阿里海涯)ㆍ장홍범(張弘範)ㆍ이항(李恒)ㆍ동문병(董文炳) 등이 성을 공격하여 땅을 경략하였다. 좋은 계책을 크게 펼치고 예(禮)ㆍ악(樂)을 제정하였으며 백성이 편하고 재물이 풍족하였으니, 이적[5]의 융성함이 예로부터 이런 적이 없었다.
치평요람 147권
치평요람 147권
세첸 칸 쿠빌라이는 몽골사 내에서도 상당히 특이하며,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칭기즈 칸이 몽골 울루스라고 하는 대(大) 세력의 시초가 되었다면 쿠빌라이 칸은 중국적인 의미에서 최초로 제국을 세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쿠빌라이는 중국적인 가치관을 받아들였거나 혹은 그것을 인정한 대칸으로 평가되는 인물로, 기본적으로 기성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면모가 있으며, 호기심도 많아서 다른 나라나 다른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인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외손자인 충선왕이 왕세자 시절에 쿠빌라이 칸과 만났을 때 충선왕의 학문 스승들이 방에 들어오자 바로 의관을 정제하고(옷차림을 바르고 단정하게 하고) 충선왕의 스승들에 대해 예를 갖추어 맞이했으며, 그 스승들에게 고려의 역사, 풍속, 정치사에 대해 강론하게 하며 밤새도록 문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면이 가장 크게 드러난 부분이면서 쿠빌라이가 다른 대칸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중국의 천자가 되고 싶은 분명한 욕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인을 보호한 최초의 대칸으로 농지를 함부로 빼앗아 목초지로 만들지 못하게 했고, 중국인들의 눈에 위대한 황제로 보이기 위한 노력을 실행한 사람이었다. 근본적인 차별을 철폐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이런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남송을 정복했더라도 자신의 치세 동안은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쿠빌라이는 중국인들뿐 아니라 전세계로부터도 천자로 인정받고 싶어 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베트남에 대한 세 차례에 걸친 원정과 무리했던 두 차례의 일본 원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심지어 제3차 일본 원정을 하려 했다가 1, 2차의 트라우마와 재정적인 문제에 대한 반대가 너무 심해서 단념했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인지 중국 천자 특유의 관대함을 지닌 사람이기도 해서, 송말삼걸 중 한 사람인 문천상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죽이지 않고 잡아와서 회유를 시도했다. 문천상은 희대의 명문인 <정기가>(正氣歌)라는 한시를 쓰면서 거부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처형했지만 마지막까지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처럼 저항한 세력들에 대해서도 다른 대칸들보다 매우 관대했다. 양양을 수비하던 장수 여문환의 예에서도 볼 수 있으며 자신에게 항복한 사람들 대다수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들의 지배를 인정해 주었다. 항복한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몽골 군대의 전통적인 전략이기는 했으나 쿠빌라이만큼 관대하게 이 원칙을 확대해서 적용했던 대칸은 없었다. 이런 전략은 양양이 무너진 후 수많은 남송의 호족들이 앞다투어 원나라군에 항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만 그 측면에서, 남송은 천자가 되고자 했던 쿠빌라이에게 있어 반드시 격파해야 할 난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남송을 군사적으로 약소국이었다고 말하지만,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요나라와 금나라, 그리고 몽골의 역대 대칸들도 남송을 정벌하지 못하거나 정벌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6] 이는 남송 자체가 군사적으로는 다소 열세였을지언정 그 저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송의 군사력은 북송 시절보다 강력했으며 공세적으로 나올 수는 없었을지라도 이민족 군대가 마음만 먹으면 내려와서 한번에 밀어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쿠빌라이의 형인 몽케만 해도 급하게 남송을 정벌하려고 했다가 처절하게 실패하여 전사했고, 결국 자신이 견제하던 동생인 쿠빌라이에게 대칸 자리를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 남송 정벌이 얼마나 어려운 위업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남송에 대해 쿠빌라이는 그들을 위한 정책과 함께 굉장히 관대하면서 인내심 있는 전략을 취하여 남송 정복을 진행, 끝내 성공하여 남송을 정벌한 최초의 이민족 황제가 되었다. 이는 그가 중국적인 가치관을 받아들였거나 혹은 그것을 인정한 대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른 칸들이었다면 결코 기다리지 않고 무작정 공격을 했을 양양 공략이 대표적이다. 쿠빌라이는 몇 번 지휘관들을 질책하긴 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장군들을 신뢰하며 기다렸고, 이 과정에서 중국인들에게 야만인들의 왕이 아닌 관대한 황제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금방 점령할 수 있었던 양양성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항복 권유를 했으며, 끝까지 양양을 지키며 남송에 충성을 바쳤던 성주 여문환은 이런 쿠빌라이의 대접에 감격하여 이후 남송 정벌에 앞장서며 활약했다. 양양을 먼저 먹으면 나머지 지역은 손쉽다고 권하던 유정은 남송에서도 나름 명망이 높던 장군이었고, 그의 항복을 받아들이며 중용한 것도 쿠빌라이 칸이었다.
다만 쿠빌라이는 원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반대로 원나라가 몰락하는 원인들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간신을 믿었고 권력 때문에 자기 아들인 칭김마저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티베트 불교를 지나치게 중시해 원나라의 역대 황제들이 라마승에 빠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루이 14세나 양무제의 경우와 여러 측면에서 비슷한데, 쿠빌라이 칸도 이 두 사람처럼 장기간 통치하면서 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한편으로 무리한 원정과 권신들의 발호 등의 문제로 인해 황제가 죽은 후 나라가 기울게 되었다.
또한 천자가 되고자 했던 쿠빌라이의 성향이 조부인 칭기즈 칸의 사후부터 가속화되었던 대몽골 제국의 분열을 더 심화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쿠빌라이의 실책이나 잘못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이미 칭기즈 칸 대에 아들들의 분쟁[7]은 공공연한 일이었을뿐더러 쿠빌라이의 아버지 툴루이 또한 대칸의 자리를 노리다가 실패하여 형 오고타이에게 죽었다는 의혹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8][9][10][11]
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툴루이 이 네 사람의 후손들은 쿠빌라이가 집권하기 이전부터 서로 반목하고 있었다. 당장 몽케만 해도 제4대 대칸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금기였던 황금씨족[12] 학살을 단행했으며, 그 윗대의 바투와 귀위크 칸이 대립했던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분열은 칭기즈 칸 바로 이후의 대에서부터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쿠빌라이가 몽골 제국의 분열에서 행한 실책 아닌 실책을 굳이 뽑자면 그 자신이 중국적인 가치를 받아들임으로써 반대파에게 명분을 주었다는 정도일 것이다.
오늘날에 들어서는 몽골족과 한족 모두에게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다. 몽골족의 경우 중국 전역을 손에 넣은 것 때문에 위대한 정복군주로 추앙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소 강경한 성향의 몽골 민족주의자들은 중국적인 가치를 받아들인 것 때문에 쿠빌라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한족의 경우 중국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항복한 한족에게 관용을 베풀며 남방의 한족들에게 광범위한 자치를 허용한 것 때문에 쿠빌라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다소 강경한 성향의 한족 민족주의자들은 원나라의 중국 통일 이전 마지막 한족 왕조였던 남송을 멸망시킨 것 때문에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5. 기타
- 남송의 부를 수탈하여 죄다 북쪽의 대도로 끌어들여 이룩한 원나라의 어마어마한 수탈은 백만 떡밥의 창시자인 마르코 폴로와 그의 책《동방견문록》으로 잘 드러난다.[13] 궁전의 한 전각에 통째로 엄청난 금과 은을 저장했다고 한다.[14] 이 묘사는 쿠빌라이 개인의 부유함보다 원나라의 은태환 지폐인 보초와 연동되는 국고를 가리킨 것일 가능성이 있다. 경제가 활성화될수록 보초가 더 발행되고, 보초가 더 발행될수록 은도 더 많이 필요해져서 원나라가 응방을 통해 은을 수집하느라 혈안이 되었다는 후일담도 있다. 원나라 말기에 그 전각에 저장한 금과 은들은 다 날아갔다고 하는데 정작 원나라측 사료에는 마르코 폴로의 언급이 없다. 오죽하면 《동방견문록》은 죄다 마르코 폴로가 주워들은 '떡밥 견문록'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가 정말 중국에 갔다고 믿는 사람들은 원나라에 색목인 관리가 많아 마르코 폴로를 특별히 적을 필요가 없었다고도 주장한다. 사실 다른 방문자들의 견문기를 보아도 분명히 많은 서양인이 몽골의 궁정에 있었지만, 그 누구의 이름도 원나라 측 기록에 없었다. 하지만 마르코 폴로 스스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총애를 받았다고 적은 것이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는 당시 서양인들의 과장과 뻥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마르코 폴로 덕분에 칭기즈 칸 못지않게 서유럽 세계가 잘 아는 몽골 제국의 군주가 쿠빌라이 칸이기도 하다.
6. 가족 관계
제1오르도- 첩고륜 대황후(帖古倫 大皇后) 옹기라트씨 - 쿠빌라이의 원비(元妃)
제2오르도
- 소예순성황후(昭睿順聖皇后) 옹기라트씨 - 쿠빌라이 칸의 정후(正后)(재위 : 1260년 ~ 1281년), 본명은 찰필(察必)
- 제1황자 도르지 황자(朶兒只 皇子) - 요절
- 제2황자 명효태자(明孝太子) 진금(眞金)
- 제3황자 진왕(秦王) 망갈라(忙哥剌)
- 제4황자 북안귀정왕(北安歸定王) 노무간(那木罕)
- 남필 황후(南必 皇后) 옹기라트씨 - 쿠빌라이의 계후(繼后)(재위 : 1283년 ~ 1294년)
- 제11황자 테미치 황자(鐵滅赤 皇子) - 요절
제3오르도
- 탈랄해 황후(塔剌海 皇后)
- 노한 황후(奴罕 皇后)
제4오르도
- 오식진 황후 허올신씨(烏式眞 皇后 許兀愼氏)
- 속가답사 황후(速哥答思 皇后)
- 백요올진 황후(伯要兀眞 皇后)
- 활활륜 황후(闊闊倫 皇后)
- 알자사 황후(斡者思 皇后)
- 욱실진 황후(旭失眞 皇后)
- 타로별진 황후(朶魯別眞 皇侯)
- 살불홀 비자(撒不忽 妃子)
- 팔팔한 비자(八八罕 妃子)
- 살불홀 비자(撒不忽 妃子)
- 아속진 비자(阿速眞 妃子)
- 올내홀내 비자(兀乃忽乃 妃子)
생모 미상
아들
- 제5황자 운남왕(雲南王) 후게치(忽哥赤)
- 영왕(營王) 보르지긴 에센테무르(孛兒只斤 也先帖木兒)
- 제6황자 아야치 황자(愛牙赤 皇子)
- 제7황자 서평왕(西平王) 오그룩치(奧魯赤)
- 제8황자 영왕(寧王) 쿠쿠추(闊闊出)
- 제9황자 진남왕(鎭南王) 토곤(脫歡)
- 제10황자 쿠틀룩테무르 황자(忽都魯帖木兒 皇子)
딸
- 제1황녀 조국대장공주(趙國大長公主) 월렬(月烈) - 조무양왕 애불화(趙武襄王 愛不花)에게 하가(下嫁)
- 제2황녀 창국공주(昌國公主) 오로진(吾魯眞) - 패화(孛花)에게 하가(下嫁)
- 제3황녀 창국대장공주(昌國大長公主) 다륜(茶倫) - 생모미상(生母未詳), 첩감간(帖監干)에게 하가(下嫁)
- 제4황녀 노국장공주(魯國長公主) 완택(完擇) - 알라진(斡羅眞)에게 하가(下嫁)
- 제5황녀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낭가진(囊家眞) - 알랄진(斡剌眞), 첩목아(帖木兒), 만자태(蠻子台)에게 하가(下嫁)
- 제?황녀 공주(公主) - 남송 공제 조현(南宋 恭帝 趙㬎)에게 하가(下嫁)
7. 대중매체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쿠빌라이 칸/대중매체#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쿠빌라이 칸/대중매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em; letter-spacing: -0.35px" | 진한시대 | |||
| 원사(元史)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de3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본기(本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color: #181818" | 1권 「태조기(太祖紀)」 | 2권 「태종·정종기(太宗定宗紀)」 | 3권 「헌종기(憲宗紀)」 | |
| 패아지근 철목진 | 패아지근 와활태 · 패아지근 귀유 | 패아지근 몽가 | ||
| 4·5·6·7·8·9·10·11·12·13·14·15·16·17권 「세조기(世祖紀)」 | 18·19·20·21권 「성종기(成宗紀)」 | 22·23권 「무종기(武宗紀)」 | ||
| 패아지근 홀필렬 | 패아지근 철목이 | 패아지근 해산 | ||
| 24·25·26권 「인종기(仁宗紀)」 | 27·28권 「영종기(英宗紀)」 | 29·30권 「태정제기(泰定帝紀)」 | ||
| 패아지근 애육려발육팔달 | 패아지근 석덕팔랄 | 패아지근 야손철목아 | ||
| 31권 「명종기(明宗紀)」 | 32·33·34·35·36권 「문종기(文宗紀)」 | |||
| 패아지근 화세랄 | 패아지근 도첩목이 | |||
| 37권 「영종기(寧宗紀)」 | 38·39·40·41·42·43·44·45·46·47권 「순제기(順帝紀)」 | |||
| 패아지근 의린질반 | 패아지근 타환첩목이 | |||
※ 48권 ~ 105권은 志에 해당. 106권 ~ 113권은 表에 해당. 원사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4db1> 114·116권 「후비전(后妃傳)」 ||
광헌익성황후 · 소자황후 · 흠숙황후 · 정절황후 · 소예순성황후 · 남부이 · 정자정의황후 · 불루칸 · 선자혜성황후 · 수케시리 · 장의자성황후 · 장정의성황후 · 바부칸 · 정유휘성황후 · 바부샤 · 부다시리 · 다리예테미쉬 · 다나시리 · 백안홀도 · 보현숙성황후 · 현의장성황후 · 휘인유성황후 · 선의숙성황후 · 소헌원성황후 115권 「예종등전(睿宗等傳)」 117권 「별리고태등전(別里古台等傳)」 타뢰 · 진금 · 감마랄 · 답랄마팔랄 별리고태 · 출적 · 독랄 · 아홀도 · 관철보화 · 첩목아불화 118권 「특설선등전(特薛禪等傳)」 119권 「목화려등전(木華黎等傳)」 특설선 · 패독 · 아랄올사척길홀리 목화려 · 박로출 · 박이홀 120권 「찰한등전(察罕等傳)」 121권 「속불태등전(速不台等傳)」 찰한 · 찰팔아화자 · 출적태 · 진해 · 초내태 · 오야이 · 갈사맥리 속불태(1) · 안축이 · 외답아 · 박라환 · 초사 122권 「파이출아이특적근등전(巴而朮阿而忒的斤等傳)」 파이출아이특적근 · 철매적 · 안찰아 · 암목해 · 풍숙안 · 석리검부 · 삭직돌로화 · 석아길사 · 합산납 123권 「포지아등전(布智兒等傳)」 포지아 · 소열태초올아 · 활활불화 · 배연팔도로 · 아술로 · 소고아 · 아랄와이사 · 초아 · 야포감복 · 조아가반 · 순지해 · 점철발도아 · 겁겁리 · 탑불이아 · 직탈아 · 월리마사 · 날고랄 · 아아사란 · 합팔아독 · 애모 124권 「탑본등전(塔本等傳)」 탑본 · 합랄역합적북로 · 탑탑통아 · 악린첩목이 · 이정(李楨) · 겁렬속가 · 망가산아 · 맹사속 125권 「새전적섬사정등전(賽典赤贍思丁等傳)」 126권 「안동등전(安童等傳)」 새전적섬사정 · 포로해아 · 고지요 · 철가 안동 · 염희헌 127권 「백안전(伯顏等傳)」 128권 「아추등전(阿朮等傳)」 팔린백안 아출 · 아리해아 · 상위 · 토토흡 129권 「내아팔적등전(來阿八赤等傳)」 130권 「철리등전(徹里等傳)」 내아팔적 · 뉴린 · 아랄한 · 아탑해 · 사도 · 이항 연지길태철리 · 불홀목 · 토별연완택 · 아로휘살리 131권 「속가등전(速哥等傳)」 속가 · 낭가알 · 망올태 · 오로적 · 완자도(2) · 백첩목아 · 회도 · 역흑미실 · 배항 132권 「항홀사등전(杭忽思等傳)」 아속항홀사 · 보로합답 · 옥와실 · 맥리 · 탐마적 · 발도아 · 앙길아 · 합랄태 · 사전 · 첩목아불화 133권 「탑출등전(塔出等傳)」 탑출 · 배연 · 야한적근 · 엽선내 · 탈력세관 · 홀날출 · 중희 · 단지아 · 찰랄아태탈환 · 실리백 · 패란해 · 겁렬 · 암백 · 야속태아 · 석도아 134권 「철길사등전(撒吉思等傳)」 철길사 · 월합내 · 석반 · 철련 · 애설 · 활활 · 독홀로 · 당인조 · 타아적 · 화상 · 유용 · 가로납답사 · 활리길사 · 소운석탈홀련 · 알라사 · 타라태 · 야선불화 135권 「철가술등전(鐵哥朮等傳)」 철가술 · 탑출 · 탑리적 · 탑해첩목아 · 구아길 · 홀도 · 패아속 · 월거련적해아 · 아답적 · 명안 · 홀림실 · 실랄발도아 · 아속철리 · 갈랄 · 걸태 · 탈인납 · 내만태화상 136권 「합랄합손등전(哈剌哈孫等傳)」 137권 「백찰한등전(伯察罕等傳)」 합랄합손 · 아사불화 · 배주 백찰한 · 곡추 · 아례해아 · 혁혁저아이정 · 탈열해아 138권 「강리탈탈등전(康里脫脫等傳)」 139권 「내만태등전(乃蠻台等傳)」 강리탈탈 · 연철목아 · 멸아길태백안 · 마찰아태 · 탈탈 내만태 · 타아지 · 타이직반 · 아로도 · 뉴적해 140권 「별아겁불화등전(別兒怯不花等傳)」 141권 「태불화등전(太不花等傳)」 별아겁불화 · 하유일 · 철목아탑식 · 달식첩목이 태불화(太不花) · 찰한첩목아 142권 「답실팔도로등전(答失八都魯等傳)」 143권 「마조상등전(馬祖常等傳)」 답실팔도로 · 경동 · 야속 · 철리첩목아 · 납린 마조상 · 노노 · 자당 · 아영 · 소운석해애 · 태불화(泰不華) · 여궐 144권 「답리마등전(答里麻等傳)」 145권 「역련진반등전(亦憐真班等傳)」 답리마 · 월로첩목아 · 복안철목아 · 성길 · 복수 · 도동 역련진반 · 염혜산해아 · 월로불화 · 달례마식리 146권 「야율초재등전(耶律楚材等傳)」 147권 「장유등전(張柔等傳)」 야율초재 · 점합중산 · 양회중 장유 · 사천예 · 사천상 148권 「동준등전(董俊等傳)」 149권 「야율유가등전(耶律留哥等傳)」 동준 · 엄실 야율유가 · 유백림 · 곽보옥 · 석천응 · 야율독화 · 왕순(王珣) 150권 「석말야선등전(石抹也先等傳)」 석말야선(3) · 하백상 · 이수현 · 야율아해 · 하실 · 학화상발도 · 조진 · 석말명안 · 장영 · 유형안 151권 「설탑랄해등전(薛塔剌海等傳)」 설탑랄해 · 고요아 · 왕의(王義) · 왕옥 · 조적 · 저순 · 왕선 · 두풍 · 석말패질아 · 가타라콘 · 오돈세영 · 전웅 · 장발도 · 장영 152권 「장진형등전(張晉亨等傳)」 장진형 · 왕진 · 양걸지가 · 유통 · 악존 · 장자량 · 당경 · 제영현 · 석천록 · 유빈 · 조유 153권 「유민등전(劉敏等傳)」 유민 · 왕즙 · 왕수도 · 고선 · 왕옥여 · 초덕유 · 석천린 · 이방서 · 양환 · 가거정 154권 「홍복원등전(洪福源等傳)」 155권 「왕세현등전(汪世顯等傳)」 156권 「동문병등전(董文炳等傳)」 홍복원 · 정정 · 이진 · 석말안지 · 알지리 · 정온 왕세현 · 사천택 동문병 · 장홍범 157권 「유병충등전(劉秉忠等傳)」 158권 「요추등전(姚樞等傳)」 159권 「송자정전(宋子貞等傳)」 유병충 · 장문겸 · 학경 요추 · 허형 · 두묵 송자정 · 상정 · 조자량 · 조벽 160권 「왕반등전(王磐等傳)」 왕반 · 왕악 · 고명 · 이치 · 이창 · 유숙 · 왕사렴 · 이겸 · 서세륭 · 맹기 · 염복 161권 「양대연등전(楊大淵等傳)」 162권 「이홀란길등전(李忽蘭吉等傳)」 양대연 · 유정(劉整) 이홀란길 · 이정(李庭) · 사필 · 고흥 · 유국걸 163권 「이덕휘등전(李德輝等傳)」 이덕휘 · 장웅비 · 장덕휘 · 마형 · 정사렴 · 오고손택 · 조병 164권 「양공의등전(楊恭懿等傳)」 양공의 · 왕순(王恂) · 곽수경 · 양환 · 양과 · 왕구 · 위초 · 초양직 · 맹반린 · 상야 · 이지소 165권 「장희등전(張禧等傳)」 장희 · 가문비 · 해성 · 관여덕 · 조갑랄 · 주전 · 공원 · 주국보 · 장립 · 제병절 · 장만가노 · 곽앙 · 기공직 · 양새인불화 · 선비중길 · 완안석주 166권 「왕준등전(王綧等傳)」 왕준 · 수세창 · 나벽 · 유은 · 석고산 · 공언휘 · 채진 · 장태형 · 하지 · 제병절 · 맹덕 · 장영실 · 석말구구 · 초정 · 번즙 · 장균 · 단신저일 · 왕석랄 · 조굉일 167권 「장입도등전(張立道等傳)」 장입도 · 장정진 · 장혜 · 유호례 · 왕국창 · 강욱 · 장초 · 여질 · 담자영 · 왕운 168권 「진우등전(陳祐等傳)」 진우 · 유선 · 하영조 · 진사제 · 진장경 · 조여표 · 요천복 · 허국정 169권 「하인걸등전(賀仁傑等傳)」 하인걸 · 가석랄 · 유합라팔도로 · 석말명리 · 사중온 · 고휴 · 장구사 · 왕백승 170권 「상문등전(尙文等傳)」 상문 · 신도치원 · 뇌응 · 호지휼 · 왕이용 · 창사문 · 장소 · 원유 · 장방 · 학빈 · 고원 · 양식 · 오정 · 양덕규 171권 「유인등전(劉因等傳)」 172권 「정거부등전(程鉅夫等傳)」 유인 · 오징 정거부 · 조맹부 · 등문원 · 조원용 · 제이겸 173권 「최빈등전(崔斌等傳)」 174권 「요수등전(姚燧等傳)」 최빈 · 최욱 · 엽이 · 연공남 · 마소 요수 · 곽관 · 협곡지기 · 유갱 · 야율유상 · 학천정 · 장공손 175권 「장규등전(張珪等傳)」 장규 · 이맹 · 장양호 · 경엄 176권 「조백계등전(曹伯啟等傳)」 조백계 · 이원례 · 왕수 · 왕의(王倚) · 유정(劉正) · 사양 · 하약우 · 조사로 · 유덕온 · 울지덕성 · 진기종 177권 「장사명등전(張思明等傳)」 178권 「양증등전(梁曾等傳)」 179권 「하승등전(賀勝等傳)」 장사명 · 양원규 · 장승 · 장몽해 · 진호 양증 · 유민중 · 왕약 · 왕결 · 송도 · 장백순 하승 · 양타아지 · 소배주 180권 「야율희량등전(耶律希亮等傳)」 181권 「원명선등전(元明善等傳)」 182권 「장기암등전(張起巖等傳)」 야율희량 · 조세연 · 공사회 원명선 · 우집 · 게혜사 · 황진 장기암 · 구양현 · 허유임 · 송본 · 사단 183권 「왕수성등전(王守誠等傳)」 184권 「왕도중등전(王都中等傳)」 왕수성 · 왕사성 · 이호문 · 패출로충 · 이형 · 소천작 왕도중 · 왕극경 · 임속가 · 진사겸 · 한원선 · 최경 185권 「여사성등전(呂思誠等傳)」 186권 「장정등전(張楨等傳)」 여사성 · 왕택민 · 간문전 · 한용 · 이직 · 개묘 장정 · 귀양 · 진조인 · 성준 · 조감 · 장저 187권 「오고손양정등전(烏古孫良楨等傳)」 188권 「동단소등전(董摶霄等傳)」 오고손양정 · 가로 · 녹로증 · 공사태 · 주백기 · 오당 동단소 · 유합랄불화 · 왕영 · 석말의손 189·190권 「유학전(儒學傳)」 조복 · 장수 · 김이상 · 허겸 · 진력 · 호일계 · 황택 · 한택 · 동서 · 안희 · 호장유 · 웅붕래 · 대표원 · 모응룡 · 정저손 · 진부 · 동박 · 양재 · 유선 · 한성 · 오사도 · 주문규 · 주인영 · 진려 · 이효광 · 우문공량 · 합랄로백안 · 섬사 191·192권 「양리전(良吏傳)」 담징 · 허유정 · 허즙 · 전자 · 복천장 · 야율백견 · 단직 · 암도랄 · 양경행 · 임흥조 · 관음노 · 주자강 · 백경량 · 왕간 · 노기 · 추백안 · 유병직 · 허의부 193·194·195·196권 「충의전(忠義傳)」 이백온 · 석규 · 유합랄발도 · 임지 · 야율특말 · 보바르 · 합랄보화 · 유천부 · 소경무 · 장환 · 이보 · 이제 · 곽가 · 저불화 · 주희동 · 변침 · 교이 · 안유 · 왕사원 · 양박 · 조련 · 손총 · 석보 · 성소 · 양승 · 납속랄정 · 백안불화적근 · 번집경 · 전보암철리 · 주당 · 섭병 · 유경손 · 유술조 · 계완택 · 추려 · 패라첩목아 · 팽정견 · 왕백안 · 유준 · 타리불화 · 조야준대 · 진군용 · 복리아돈 · 조해 · 위중립 · 보안불화 · 민본 · 배주 · 조홍의 · 정옥 · 황후 · 백첩목이 · 질리미실 · 박새인불화 · 정호례 197·198권 「효우전(孝友傳)」 왕윤 · 곽도경 · 소도수 · 곽구구 · 장윤 · 전개주 · 영저구 · 필야속답립 · 번연 · 유덕천 · 곽회 · 공전 · 장자기 · 진걸아 · 양일 · 장본 · 장경 · 원선 · 조육 · 호광원 · 진소손 · 조일덕 · 왕사총 · 철철 · 왕응초 · 정문사 · 왕천 · 곽전 · 양호 · 정문충 · 소경조 · 호탁 · 손수실 · 이자경 · 종기 · 조영 · 오호직 · 여병 · 서옥 · 윤신 · 유정양 · 유통 · 장왕구 · 장사효 · 두우 · 장수 · 손근 · 장공 · 자여도 · 왕용 · 황윤 · 석명삼 · 유기 · 유원 · 축공영 · 진사효 · 강겸 · 호반려 · 왕사홍 · 하종의 · 합도적 · 고필달 · 증덕 · 근병 · 황도현 · 사언빈 · 장소조 · 이명덕 · 장집 · 위경익 · 탕림 · 손억 · 석영 · 왕극기 · 유사경 · 여우 · 주락 199권 「은일전(隱逸傳)」 두영 · 장특립 · 두본 · 손철 · 하중 · 무각 200·201권 「열녀전(列女傳)」 왕추추 · 진로화진 · 마영 · 조옥아 · 풍숙안 · 조왜아 · 주숙신 · 갈묘진 · 장의귀 · 이동아 · 탈탈니 · 주면가 · 귀가 · 이지정 · 채삼옥 · 범묘원 · 서채란 · 우숙정 · 진숙진 · 야산홀도 · 여언능 · 반묘원 · 유취가 · 나묘안 · 이새아 · 도종원 · 안정동 202권 「석로전(釋老傳)」 203권 「방기전(方伎傳)」 팔사파 · 구처기 · 전절 전충량 · 근덕진 · 장강 · 이호 · 손위 · 아로와정 · 역사마인 · 아니가 204권 「환자전(宦者傳)」 205권 「간신전(奸臣傳)」 이방녕 · 박불화 아합마 · 노세영 · 상가 · 철목질아 · 합마 · 삭사감 206권 「반신전(叛臣傳)」 207권 「역신전(逆臣傳)」 이단 · 왕문통 · 아로휘첩목아 철실 · 패라첩목아 208·209·210권 「외이전(外夷傳)」 고려 · 탐라 · 일본 · 안남(진조) · 면국 · 점성 · 섬국 · 유구 · 삼서 (1) 121권의 속불태(速不台)와 122권의 설불태(雪不台)는 동일인물이므로 122권에서는 생략한다.
(2) 131권의 완자도(完者都)와 133권의 완자도발도(完者都拔都)는 동일인물이므로 133권에서는 생략한다.
(3) 150권의 석말야선(石抹也先)과 152권의 석말아신(石抹阿辛)은 동일인물이므로 152권에서는 생략한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4db1><tablebgcolor=#004db1> ||
[1] 원나라 선포는 1271년이다.[2] 이 표기는 본래 영어와 일본어식 표기다. 실제 현지인들의 발음을 들어보면 '후빌라이' 또는 '호빌래'에 가깝게 발음한다.[3] 흔히 '쿠빌라이 칸'으로 부르지만 사실 '세첸'이라는 칸호가 따로 있었다. 이는 칭기즈 칸을 '테무진 칸'이라 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본래는 다소 어색한 호칭이다. 다만 칭기즈 칸의 후대부터 쿠빌라이 칸의 선대까지(오고타이 칸, 귀위크 칸, 몽케 칸)는 전부 휘와 칸호가 같았고, 이 영향으로 '쿠빌라이 칸'이라는 호칭이 정립되었다. 쿠빌라이가 세첸이라는 칸호를 따로 만든 이유는 중국을 정복하여 통일한 통일 군주이기 때문에 중국식 피휘를 한 것이었다.[4] 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ᠬᠤᠪᠢᠯᠠᠶ(Боржигин Хубилай, Borǰigin Khubilai)
중국어: 孛兒只斤 忽必烈
한국어: 패아지근 홀필렬 혹은 흘필렬[5] 夷狄, 몽골족을 의미한다.[6] 제1대 대칸이었던 칭기즈 칸은 남송과 국경을 접하지도 못했고, 서하 → 금나라 → 서요 → 호라즘 순으로 정벌하다가 죽었다. 제2대 대칸인 오고타이 칸은 남송과 손을 잡아 금나라를 양면전선으로 멸망시켰고, 이후 남송과의 대립을 시작했으나 유럽 정벌의 추진으로 여력이 분산되어 남송 정벌을 추진하지 못했으며, 제3대 대칸인 귀위크 칸은 재위한 지 2년 만에 죽었다. 제4대 대칸이었던 몽케 칸은 남송 정벌 중 사천에서 병사했다.[7] 당시 칭기즈 칸의 제1부인 보르테의 아들은 4명이었는데, 장남 주치에게 후계자 문제를 논하자, 차남 차가타이가 "주치는 메르키트 부족에 의해 태어난 잡종일 수 있다"며 반발했다.(메르키트 콤플렉스) 이후 차가타이는 3남 오고타이가 온화하니 오고타이가 차기 대칸으로 적합하다며 추천했고 이후로도 차가타이 울루스 & 오고타이(우구데이) 울루스 vs 주치 울루스 & 툴루이 울루스로 나뉘어 다퉜다. 물론 이후로도 승리한 주치 및 툴루이 울루스도 다시 나눠져서 다투었고 살아남은 차가타이 & 오고타이 울루스도 서로 혹은 적이 된 주치 & 툴루이 울루스와 다퉜다.[8] 《원조비사》에 따르면 금나라가 멸망한 후 오고타이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툴루이는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형을 살려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고, 오고타이의 병이 낫자 곧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툴루이가 한때 대칸 후보로 거론된 점 때문에 사실은 오고타이와 투레게네 카툰 및 테무게 옷치긴에 의해 모살당했다는 주장이 있다.[9] 원래 오고타이가 칸이 된 쿠릴타이를 개최한 게 임시 대칸이었던 툴루이이기도 했고, 막내라서 세력은 가장 적었지만 대신 막내가 집안을 잇는 유목민의 전통 때문에 정통성을 주장하기는 가장 좋았다.[10] 다만 반대로 세력 자체는 오히려 툴루이가 가장 컸고(칭기즈 칸의 세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을 테니까) 엄연히 아버지 칭기즈 칸이 생전에 오고타이를 차기 대칸으로 지명해두었으므로 정통성이 낫다고 보긴 어려웠다. 어디까지나 툴루이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어서 차기 대칸을 쓱싹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일 뿐.[11] 아무리 초원이라고 해도 몽골 제국 정도의 대세력이라면 기존 소규모 부족일 때와 마찬가지로 막내에게 집안을 잇게 하지는 않았는데, 몽골은 아니지만 케레이트의 옹 칸도 후계자는 장남인 일카 셍굼이었고 오고타이 칸, 툴루이 칸 역시 후계자는 장남인 귀위크, 몽케였다.[12] 칭기즈 칸의 핏줄을 이은 황족들을 말한다.[13]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쿠빌라이 칸에 대해 "아담에서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나타난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지역과 재물, 영토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14] 참고로 그 전각의 크기는 아주 컸다고 한다.
중국어: 孛兒只斤 忽必烈
한국어: 패아지근 홀필렬 혹은 흘필렬[5] 夷狄, 몽골족을 의미한다.[6] 제1대 대칸이었던 칭기즈 칸은 남송과 국경을 접하지도 못했고, 서하 → 금나라 → 서요 → 호라즘 순으로 정벌하다가 죽었다. 제2대 대칸인 오고타이 칸은 남송과 손을 잡아 금나라를 양면전선으로 멸망시켰고, 이후 남송과의 대립을 시작했으나 유럽 정벌의 추진으로 여력이 분산되어 남송 정벌을 추진하지 못했으며, 제3대 대칸인 귀위크 칸은 재위한 지 2년 만에 죽었다. 제4대 대칸이었던 몽케 칸은 남송 정벌 중 사천에서 병사했다.[7] 당시 칭기즈 칸의 제1부인 보르테의 아들은 4명이었는데, 장남 주치에게 후계자 문제를 논하자, 차남 차가타이가 "주치는 메르키트 부족에 의해 태어난 잡종일 수 있다"며 반발했다.(메르키트 콤플렉스) 이후 차가타이는 3남 오고타이가 온화하니 오고타이가 차기 대칸으로 적합하다며 추천했고 이후로도 차가타이 울루스 & 오고타이(우구데이) 울루스 vs 주치 울루스 & 툴루이 울루스로 나뉘어 다퉜다. 물론 이후로도 승리한 주치 및 툴루이 울루스도 다시 나눠져서 다투었고 살아남은 차가타이 & 오고타이 울루스도 서로 혹은 적이 된 주치 & 툴루이 울루스와 다퉜다.[8] 《원조비사》에 따르면 금나라가 멸망한 후 오고타이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툴루이는 자기 목숨을 바쳐서라도 형을 살려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고, 오고타이의 병이 낫자 곧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툴루이가 한때 대칸 후보로 거론된 점 때문에 사실은 오고타이와 투레게네 카툰 및 테무게 옷치긴에 의해 모살당했다는 주장이 있다.[9] 원래 오고타이가 칸이 된 쿠릴타이를 개최한 게 임시 대칸이었던 툴루이이기도 했고, 막내라서 세력은 가장 적었지만 대신 막내가 집안을 잇는 유목민의 전통 때문에 정통성을 주장하기는 가장 좋았다.[10] 다만 반대로 세력 자체는 오히려 툴루이가 가장 컸고(칭기즈 칸의 세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을 테니까) 엄연히 아버지 칭기즈 칸이 생전에 오고타이를 차기 대칸으로 지명해두었으므로 정통성이 낫다고 보긴 어려웠다. 어디까지나 툴루이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어서 차기 대칸을 쓱싹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일 뿐.[11] 아무리 초원이라고 해도 몽골 제국 정도의 대세력이라면 기존 소규모 부족일 때와 마찬가지로 막내에게 집안을 잇게 하지는 않았는데, 몽골은 아니지만 케레이트의 옹 칸도 후계자는 장남인 일카 셍굼이었고 오고타이 칸, 툴루이 칸 역시 후계자는 장남인 귀위크, 몽케였다.[12] 칭기즈 칸의 핏줄을 이은 황족들을 말한다.[13]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쿠빌라이 칸에 대해 "아담에서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나타난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지역과 재물, 영토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14] 참고로 그 전각의 크기는 아주 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