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5 22:14:18

세조

1. 개요2. 묘호를 받은 임금3. 서하경종 이원호의 제호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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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世祖
<colbgcolor=#e3ba62><colcolor=#b22222> 군주의 묘호
世祖 |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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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3ba62><colcolor=#b22222> 시법 세 世
承命不遷(승명부천) : 천명을 이어받아 바꾸지 않았다.
景物四方(경물사방) : 만물 사방을 비추었다.
貽庥奕葉(이휴혁엽) : 은택을 남겨 시대를 크고 아름답게 하였다.
조 祖
創業之主(창업지주) - 나라를 세운 군주.
표기 한국 世祖 (세조)
중국 世祖 (shì zǔ)
베트남 世祖 (thế Tổ)
최종 수여 28명
한국 4명
중국 22명
베트남 2명
관련 묘호 세종(世宗), 태조(太祖), 고조(高祖),
열조(烈祖), 시조(始祖), 성조(聖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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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에서 시법에 따라 군주에게 붙이는 묘호의 하나.

위대한 군주에게 주로 붙이는 묘호인 세종에서 종(宗)을 조(祖)로 더 격상한 묘호이므로 극찬 수준의 묘호이다. 아래의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비범한 업적을 남긴 군주들에게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복벽에 성공해서 왕조의 땅을 모두 되찾은 군주[1]이민족이면서 중국을 완전히 정복한 군주[2]에게도 주로 붙인다. 이 밖에 창업 군주가 제 조상을 사실상 창업자로 여기고, 자신은 사실상 창업된 왕조를 정식으로 확정한 임금이라 여겨 제 조상에게 이런 묘호를 추존해서 붙이기도 한다.[3] 아니면 제 조상에게 고조태조 같은 창업군주의 묘호를 추존하고 창업군주 본인이 후대 군주에게 이 묘호를 받기도 한다.[4]

다만 누가 봐도 결코 긍정적인 쪽으로 비범하다 평가할 수 없는 무능한 막장 군주들에게도 붙는 경우가 꽤나 있었는데, 이는 군주가 무능해서 국가를 멸망하게 만든 암군[5]이거나, 폭정을 저질러서 국가를 멸망하게 만든 임금[6] 또는 명분이 부족한 반란으로 즉위하여 여러 실책들을 남기고 친족을 죽인 패륜 행위까지 저지른 경우[7]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경우에는 진짜 세조 묘호를 받은 인간들이 시법에 걸맞은 위대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실질적으로 기득권층 또는 자신의 후계자인 아들에 의해 사후에 붙여진 이름뿐인 칭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겠다.[8]

본래 같은 묘호라면 '조'가 '종'보다 더 높이 평가되지만, 현대 한국에서는 세조보다는 세종이 더 좋은 묘호라는 이미지가 있다. 아무래도 한국사 제일의 성군이 받은 묘호가 세종인데다가, 조선 세종 말고는 역대 한국사의 군주들 중 세종의 묘호를 받은 군주가 추존된 인물을 제외하면 없기 때문에[9] 시법 개념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별로 없는 대다수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그냥 "세종=최고의 묘호"라는 이미지가 고착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세조라 하면 보통 패륜으로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을 떠올리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후한의 개창자인 광무제가 세조 묘호를 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묘호의 급 자체로만 보면 세조가 세종보다 위다. 물론 세종도 좋은 묘호기는 하지만.

2. 묘호를 받은 임금

2.1. 한국사

<rowcolor=#683235> 성명 묘호 시호 재위 기간 비고
한국사
<colbgcolor=#FFF6E8,#000> 김수로
(金首露)
금관가야세조
(金官伽倻世祖)
수로왕(首露王) 42년 ~ 199년 삼국유사에 수록된 가락국기의 기록.[10]
김알지
(金閼智)
신라세조
(新羅世祖)
- -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
추존 임금
왕륭
(王隆)
고려세조
(高麗世祖)
원렬민혜위무대왕
(元烈敏惠威武大王)
- 추존 임금
이유
(李瑈)
조선세조
(朝鮮世祖)
승천체도열문영무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대왕
(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大王)
1455년~1468년 7대 임금
총 수여자 4명

2.2. 중국사

<rowcolor=#683235> 성명 묘호 시호 재위 기간 비고
중국사
<colbgcolor=#FFF6E8,#000> 자순
(子旬)
세조
(商世祖)
문성왕
(文成王)
BC 1314~BC 1287 주무왕 추존
전건
(田建)
세조
(新世祖)
경왕
(敬王)
BC 264년 ~ BC 221년 왕망 추존
유수
(劉秀)
세조
(漢世祖)
광무황제
(光武皇帝)
25년 ~ 57년
조비
(曹丕)
조위세조
(曹魏世祖)
문황제
(文皇帝)
220년 ~ 226년 이칭 고조(高祖)
사마염
(司馬炎)
서진세조
(西晉世祖)
무황제
(武皇帝)
266년 ~ 290년
장준
(張駿)
전량세조
(前凉世祖)
문왕
(文王)
324년 ~ 346년
부견
(苻堅)
전진세조
(前秦世祖)
선소황제
(宣昭皇帝)
338년 ~ 385년
모용수
(慕容垂)
후연세조
(後燕世祖)
성무황제
(成武皇帝)
384년 ~ 396년
혁련발발
(赫連勃勃)
북하세조
(北夏世祖)
무렬황제
(武烈皇帝)
407년 ~ 425년
탁발도
(拓跋燾)
북위세조
(北魏世祖)
태무황제
(太武皇帝)
409년 ~ 452년
유준
(劉駿)
유송세조
(劉宋世祖)
효무황제
(孝武皇帝)
453년 ~ 464년
소색
(蕭賾)
남제세조
(南齊世祖)
무황제
(武皇帝)
483년 ~ 493년
소역
(蕭繹)
남량세조
(南梁世祖)
효원황제
(孝元皇帝)
552년 ~ 554년
진천
(陳蒨)
세조
(陳世祖)
문황제
(文皇帝)
560년 ~ 566년
고담
(高湛)
북제세조
(北齊世祖)
무성황제
(武成皇帝)
561년 ~ 565년
양광
(楊廣)
세조
(隋世祖)
명황제
(明皇帝)
604년 ~ 617년
이병
(李昞)
세조
(唐世祖)
원황제
(元皇帝)
- 당고조 추존
유민
(劉旻)
북한세조
(北漢世祖)
신무황제
(神武皇帝)
951~954
맹찰
(孟察)
후촉세조
(後蜀世祖)
효경황제
(孝景皇帝)
- 후촉고조 추존
완안핵리발
(完顔劾里鉢)
세조
(金世祖)
신무성숙황제
(神武聖肅皇帝)
- 금태조 추존
패아지근홀필렬
(孛兒只斤忽必烈)
세조
(元世祖)
헌천술도인문의무대광효황제
(憲天述道仁文義武大光孝皇帝)
1279년 ~ 1294년 초대 황제
애신각라복림
(愛新覺羅福臨)
세조
(淸世祖)
체천융운정통건극영예흠문현무대덕홍공지인순효장황제
(體天隆運定統建極英睿欽文顯武大德弘功至仁純孝章皇帝)
1644년 ~ 1661년 3대 황제
총 수여자 22명

2.3. 베트남사

<rowcolor=#683235> 성명 묘호 시호 재위 기간 비고
베트남사
<colbgcolor=#FFF6E8,#000> 정검
(鄭檢)
정주세조
(鄭主世祖)
명강인지무정웅략태왕
(明康仁智武貞雄略太王)
1545년 ~ 1570년 초대 국왕
완복영
(阮福暎)
세조
(阮世祖)
개천홍도입기수총신문성무준덕융공지인대효고황제
(開天弘道立紀垂統神文聖武俊德隆功至仁大孝高皇帝)
1802년 ~ 1820년 초대 황제
총 수여자 2명

3. 서하경종 이원호의 제호

성명 묘호 자칭 제호 재위 기간 비고
이원호(李元昊) 서하경종(西夏景宗) 세조시문본무흥법건예인효황제
(世祖始文本武興法建禮仁孝皇帝)[11]
1038~1048 초대 황제

4. 관련 문서


[1] 후한 세조 광무제, 응우옌 세조 자롱 황제. 다만 자롱 황제는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 탓에 평가가 떨어지는데 자세한 건 해당 문서를 참고하면 된다.[2] 북위 세조 태무제, 원 세조 쿠빌라이 칸, 청 세조 순치제. 순치제의 경우 도르곤 섭정시기에 중국 정복을 이룬 것이다.[3] 고려 태조 왕건의 부친인 세조 왕륭이 추존의 의미로 세조를 묘호로 받은 대표적인 사례이다.[4] 이 경우는 조위 세조 조비와 서진 세조 사마염 그리고 응우옌 세조 자롱 황제와 원 세조 쿠빌라이 칸 등이 해당된다.[5] 북제 세조 고담이 이 사례이다.[6] 세조 양제북하 세조 혁련발발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7] 조선 세조 수양대군 이유가 이 사례이다. 물론 수양제도 여기에 속한다.[8] 당연하지만 세종 묘호를 받은 군주들 중에서도 요나라세종명나라가정제(...) 같은 막장 사례가 존재하였다. 참고로 세종 묘호를 받은 군주 중 마지막 명군은 청나라옹정제였다.[9] 가야 김수로왕의 묘호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다.[10] 참고로 김해 김씨 족보엔 태조(太祖)라 되어있음.[11] 재위 중 자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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