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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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 제국의 제26대 대칸.2. 생애
에르덴 톱치에 따르면 코르친족 출신이라고 한다. 코르친족은 칭기즈 칸의 동생 카사르의 후예부족 출신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통성에서 걸리는 군주였다. 아룩타이가 아다이를 칸으로 세운 이유는 오이라트가 몽골 황족들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425년 어느날 아룩타이는 오이라트를 크게 물리치고 원나라의 전국옥새를 획득했다. 아룩타이는 아다이를 칸으로 세우기로 결심했다. 나이만 차강 게르 앞에서 칸 즉위식을 한 아다이 칸은 오이라트에 대한 원정에 착수했다. 잘라만 산에서 오이라트를 크게 물리치고 당시 수장이었던 바흐무을 사로잡았다. 이후 바흐무는 아룩타이 밑에서 하인노릇을 했다. 실제로 1425년에서 1426년 사이 명나라 기록에서 토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룩타이는 바흐무에게 쇠그릇이라는 뜻의 토곤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사무르 공주의 도움으로 다시 오이라트 땅으로 돌아온 토곤은 몽골에 반격하기 시작했다.
이후 몽골과 오이라트는 끝없이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몽골이 밀렸다. 당시 몽골의 실세였던 아룩타이가 고령으로 전투를 오래하기 힘들었던 것. 1431년 아다이 칸과 아룩타이는 토곤에게 크게 패해서 요동 근처로 도망갔다. 그리고 1434년 아룩타이가 토곤에게 사로잡혀 사망하면서 아다이 칸은 지지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토곤은 원나라 전국옥새를 빼앗고 스스로 칸이 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톡토부카를 칸으로 세운다.
토곤에게 크게 패한 아다이는 도르지벡을 데리고 명나라 하서회랑 근처로 이동했다. 세력을 잃은 아다이는 양주(涼州)를 약탈했다. 이것 때문에 아다이는 토곤 뿐만 아니라 명나라의 주시대상이 됬다. 1435년 감숙총병관 진무(陳懋)에게 크게 털린 아다이와 도르지벡은 동쪽 영하 근처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난주, 영하 등을 공격하니 정통제는 아다이를 토벌하기로 결정하고 1437년 1월 대동총병관 방정(方政), 영하총병관 사소(史昭), 감숙우부총병 조안(趙安)에게 명해 총 10만 병력을 동원하여 이들을 섬멸하게 했다. 토곤도 이 공격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정통제는 아룩타이는 알아서 잘 숙여서 평화를 지켰다면서 좋게좋게 항복하라고 조서를 보낸다. 하지만 아다이 토벌군은 3명의 총병관의 의견충돌로 뭐하나 제대로 못해보고 원정을 마치게 된다. 결국 임례(任禮)를 총대장으로 해서 다시 공격하기로 한다. 사면초가에 빠진 아다이는 귀순하겠다고 했으나 명나라에서는 진심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거절했다. 그렇게 질질 끌다가 1438년 4월 임례가 아다이와 도르지벡을 크게 격파하고 사막 너머로 쫓아냈다. 아다이는 이 때 수명의 기병만 데리고 도망갔다고 한다.
아다이는 사주위(沙州衛)로 도망가고 한바탕 약탈을 한후 토곤에게 붙잡혀 살해됬다. 1438년 9월에 토곤이 아다이를 살해했다고 명나라에 통보한 것으로 보아 최소한 그 이전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정통제는 타이순 칸과 토곤에게 조서를 보내 아다이와 도르지벡의 사망을 축하했다. 에르덴 톱치에 의하면 나이만 차강 게르 앞에서 죽었다고 전하나 토곤이 꽉쥐고 있던 몽골초원에 아다이가 제발로 갔을 리는 없다. 알탄 톱치에 좀 더 합리적인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토곤은 아다이를 불러내기 위해 몽골인 실라마친과 사일라모친을 매수했다. 실라마친과 사일라모친은 수많은 재물을 들고 토곤이 바치는 것이라며 아다이에게 접근했다. 아다이는 토곤이 자기를 살려준 은혜를 갚는 것이라며 재물을 받았고, 그곳에서 게르를 쳐서 하루를 묵었다. 오이라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게르를 습격했다. 아다이는 절규하며 토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어머니를 카툰[1]으로 삼았다!
너를 죽이지 않았다!
너를 죽이지 않았다!
이에 토곤은
아다이는 "내가 실라마친과 사일라모친의 말만 듣고 화살 한번 쏘지 못하고 죽는구나!"라고 외친뒤 살해당했다. 토곤도 1년 뒤 사망하고 그의 아들 에센이 몽골 초원을 완전히 장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