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 초대 | 임시 | 제2대 |
칭기즈 칸 | 툴루이 | 오고타이 칸 | |
제3대 | 제4대 | 제5대 | |
귀위크 칸 | 몽케 칸 | 세첸 칸 |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올제이투 칸 | 쿨루크 칸 | 부얀투 칸 | |
제9대 | 제10대 | 제11대 | |
게겐 칸 | 이순테무르 칸 | 아슈케베 칸 | |
제12대 | 제13대 | 복위 | |
자야아투 칸 | 후투그투 칸 | 자야아투 칸 | |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
린칠반 칸 | 우카가투 칸 | 빌레그투 칸 |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
우스칼 칸 | 조리그투 칸 | 엥케 칸 | |
제20대 | 제21대 | 제22대 | |
니굴세그치 칸 | 토코칸 칸 | 오루크테무르 칸 | |
제23대 | 제24대 | 제25대 | |
올제이테무르 칸 | 델베그 칸 | 오이라다이 칸 | |
제26대 | 제27대 | 제28대 | |
아다이 칸 | 타이순 칸 | 오케크트 칸 |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
다이온타슨다이 칸 | 오헤크트 칸 | 멀런 칸 | |
제32대 | 제33대 | 제34대 | |
만돌 칸 | 다얀 칸 | 바르스볼라드 칸 | |
제35대 | 제36대 | 제37대 | |
알라그 칸 | 구덴 칸 | 자삭투 칸 | |
제38대 | 제39대 | - | |
부얀 세첸 칸 | 링단 칸 | | |
비정통 | |||
아리크부카 · 카이두 | |||
원 · 몽강국 · 복드 칸국 · 몽골 인민공화국 · 몽골국 | }}}}}}}}}}}} |
<colbgcolor=#004db1> 몽골 제국 제26대 대칸 ᠠᠳᠠᠶ ᠬᠠᠭᠠᠨ | 아다이 칸 | |
칸호 | 아다이 칸 ᠠᠳᠠᠶ ᠬᠠᠭᠠᠨ |
성 | 보르지긴 (孛兒只斤 / 패아지근) ᠪᠣᠷᠵᠢᠭᠢᠨ |
휘 | 아다이 |
출생 | 1390년 |
사망 | 1438년(48세) |
재위 기간 | 1425년 ~ 1434년[1] (9년) |
종교 | 텡그리교 |
[clearfix]
1. 개요
몽골 제국의 제26대 대칸.2. 생애
초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1425년 오이라다이 칸을 살해한 아룩타이가 다음 칸으로 세웠다. 에르덴 톱치에 따르면 코르친족 출신이라고 한다. 코르친족은 칭기즈 칸의 직계부족이 아니기 때문에 [2] 아무래도 정통성에서 걸리는 군주였다. 당시 몽골의 황족들을 오이라트가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세운 것으로 보인다.1425년 어느날 아룩타이는 오이라트를 크게 물리치고 원나라 전국옥새를 획득했다. 아룩타이는 옥새를 들고 가 아다이를 칸으로 세웠다. 아다이 칸은 나이만 차강 게르 앞에서 칸 즉위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오이라트에 대한 원정에 착수했다. 아룩타이와 아다이 칸은 잘라만 산에서 오이라트를 크게 물리치고 수장 바흐무를 사로잡았다. 아룩타이는 바흐무를 하인처럼 부려먹었고, 그를 토곤이라 불렀다. 아다이 칸은 토곤의 어머니 사무르 공주를 아내로 삼았다. 사무르 공주는 아들 토곤을 불쌍히 여겨 아다이 칸에게 그를 풀어줄 것을 간청했다. 아다이 칸은 토곤을 오이라트 땅으로 돌려보내주었다.[3]
토곤은 이 일을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에 복수를 위해 몽골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처음에는 호각을 이루었으나 점점 몽골이 밀리기 시작했다. 당시 몽골의 실세였던 아룩타이가 고령으로 전투를 오래하기 힘들었던 것. 1431년 아다이 칸과 아룩타이는 토곤에게 크게 패해 요동으로 도망갔다. 그곳에서 올량합 3위, 훌룬과 힘을 합쳐 재기를 노렸으나 오이라트와 명나라의 견제 때문에 잘 되지 않았다. 1434년 아다이 칸과 아룩타이는 다시 크게 패했고, 이 전투에서 아룩타이가 사망하게 된다. 토곤은 아다이 칸으로부터 원나라 전국옥새를 빼앗고 톡토부카를 칸으로 세웠다.[4] 아다이는 도르지벡 등 추종자 소수를 데리고 명나라 서북 변방으로 이동했다.
아다이의 무리는 더이상 칸의 무리가 아닌 일개 도적떼의 무리였다. 아다이는 생존을 위해 양주(涼州)를 약탈했다. 이 사건으로 아다이는 명나라의 주시대상이 되었다. 1435년 감숙총병관 진무(陳懋)에게 크게 패한 아다이는 영하 근처로 이동했다. 이후에도 약탈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정통제는 아다이를 토벌하기로 결정했다. 정통제는 1437년 1월 대동총병관 방정(方政), 영하총병관 사소(史昭), 감숙우부총병 조안(趙安)에게 명해 총 10만 병력을 동원하여 이들을 섬멸하라고 지시했다. 토곤도 이 공격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정통제는 아다이에게 조서를 보내 옛날 아룩타이가 명나라에 꿇은 것처럼 좋게좋게 꿇으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막상 토벌이 시작되자 3명의 총병관은 의견충돌로 서로 다투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임례(任禮)를 총대장으로 해서 다시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사면초가에 빠진 아다이는 귀순하겠다고 했으나 명나라에서 진심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그렇게 질질 끌다가 마침내 1438년 4월 임례가 아다이 무리를 사막 너머로 쫓아냈다. 아다이는 이 때 수명의 기병만 데리고 도망갔다고 한다.
아다이는 사주위(沙州衛)로 도망가서 한바탕 크게 약탈을 벌였다. 그리고 곧 토곤에게 붙잡혀 살해됬다.[5] 정통제는 타이순 칸과 토곤에게 조서를 보내 아다이와 도르지벡의 사망을 축하했다. 에르덴 톱치에 의하면 아다이는 나이만 차강 게르 앞에서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나이만 차강 게르는 토곤의 손에 있었다. 아다이가 제발로 토곤이 있는 곳까지 갈리는 없기 때문에 에르덴 톱치의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신 알탄 톱치에 좀 더 합리적인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어느날 토곤은 아다이를 불러내기 위해 아다이의 수하 실라마친과 사일라모친을 매수했다. 실라마친과 사일라모친은 토곤이 바치는 것이라며 수많은 재물을 아다이에게 바쳤다. 아다이는 토곤이 자기를 살려준 은혜를 갚는 것이라 생각해 재물을 받았다. 실라마친과 사일라모친은 아다이에게 오이라트 땅의 경계로 갈 것을 부탁했다. 아다이는 의심없이 경계지역으로 갔고, 거기서 게르를 쳐서 하루를 묵었다. 오이라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게르를 습격했다. 아다이는 절규하며 토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 어머니를 카툰[6]으로 삼았다!
너를 죽이지 않았다!
너를 죽이지 않았다!
이에 토곤은
아다이는 "내가 실라마친과 사일라모친의 말만 듣고 화살 한번 쏘지 못하고 죽는구나!"라고 외친뒤 살해당했다. 아다이의 사망으로 몽골 초원에서 오이라트에 대항할 세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1년뒤 토곤의 아들 에센이 아버지를 이어 오이라트의 수장이 되었고, 몽골 제국의 실질적 수장이 되었다.
[1] 알탄 톱치와 에르덴 톱치는 아다이가 사망할 때까지 칸의 자리에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오이라트가 원나라 전국옥새를 가지고 있었던 점, 명나라에서 아다이를 "아룩타이가 왕으로 세웠던 자"라고 불렀던 점, 명나라에서 아다이가 죽지 않았는데도 톡토부카를 칸이라고 불렀던 점을 고려하면 1434년 원나라 전국옥새를 빼앗기고 칸에서 쫓겨난 것이라 보는게 맞다.[2] 칭기즈칸의 동생 카사르의 후예가 다스리던 부족이었다.[3] 1425년, 1426년에 명나라 기록에서 갑자기 토곤이 사라진다. 아마 이시기동안 잡혀있던 것으로 보인다.[4] 원래 토곤이 스스로 칸이 되려고 하다가 실패해서 톡토부카를 칸으로 세운 것이다.[5] 1438년 9월 토곤이 명나라에 아다이가 살해됬다고 통보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6] 몽골어로 왕비를 뜻한다. 여기서는 니굴세그치 칸의 딸 사무르 공주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