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14:36:39

색목인

1. 개요2. 의미의 오해3. 무협소설에서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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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원(元)나라 때 몽골 정권에 귀복(歸服)한 서방계 민족의 총칭이며, 후이족의 조상이기도 한다.

원나라에 있었던 신분제도상의 분류이며, 위구르, 탕구트, 튀르크, 이란, 아랍 등 좁게는 중앙아시아에서, 넓게는 유럽인까지 중국에서 봤을 때 서쪽에 사는 사람들이 원나라에서 살게 되면 이 분류에 속했다. 이들은 중국의 한인(금나라)・남인(남송)보다 일찍 귀복하여 제국 창업의 공로를 인정 받았고, 또 중국 민족 견제의 필요성에 의해 준지배계층으로서 우대받았다.

기존의 다른 제국들과의 차별점이 필요하기도 했고, 원나라 건국에 이들 서방계 민족 출신들이 공로한 바가 컸었기에 일종의 귀화 정책 중 하나로 만든 제도였으며, 공무원이나 장교 등이 될 수 있었던 건 기본이고 그 밖에 다른 직업들을 자유롭게 가지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상인 계층의 경우 역대 중국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원나라만큼의 자유를 보장해 주지 못했다고 한다.[1]

특히 몽골의 지방행정조직인 행성(行省)의 인사권은 중앙에서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행성의 최고권력은 몽골인과 색목인이 양분하였으며, 특히 재정 부문은 거의 색목인들이 담당하기도 했다.[2]

색목인 중에는 원나라 중앙권력에 편입되어 재상들을 배출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현재의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쿠빌라이 칸의 재정장관으로 임명된 아흐마드 파나카티(阿合馬 아합마), 페르시아 출신의 승상 다울라트 샤(倒剌沙 도랄사) 등이 있었다.

이들 색목인들의 다수는 원나라가 만리장성 이북으로 후퇴하고 명나라가 중원을 장악한 뒤에도 중국에 남았는데, 명나라에서 이들을 기술직 관료로 적극 등용하는 한편 한족과의 통혼을 강제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명나라 중기에 이들의 다수는 한족과 외형상의 차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다만 종교상의 차이는 남아있었기 때문에 후이족이 되었다.

원나라에서 활동하던 색목인들은 고려로 넘어와 활동하기도 했는데, 일부 색목인들은 아얘 고려에 눌러앉아 가계를 잇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위구르 출신의 설장수(偰長壽), 장순룡(張舜龍) 등이 있다.[3]

2. 의미의 오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피부색이나 눈동자의 색이 다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잘못된 설명이다.

색목인은 각색명목지인(各色名目之人)의 준말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뜻일 뿐, 눈의 색깔과는 전혀 상관없다. 각색(各色)은 여러 가지란 뜻이고, 명목(名目)은 종류, 분류라는 뜻이다. 그래서 '각색명목'의 준말인 색목(色目)은 배우의 배역, 신분 등을 가리키기도 했다.

원나라보다 이전, 송나라 시절에 색목인(色目人)이라고 하면 '희성(성姓이 희귀함)인 사람'이란 뜻이었다. 특히 과거 정시 합격자 중에서 희성인 사람을 가리켰다. 그런데 원나라 시절에 '색목인'은 몽고족이나 한족도 아닌 여러 민족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는데, 이민족들의 성이 중국인 입장에선 역시 희성(희귀한 성)이었기 때문이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Contrary to popular belief, the term "Semu" (interpreted literally as "color-eye") did not imply that caste members had "colored eyes" in contrast with black-eyed Mongol Yuan people. It in fact meant "assorted categories" (各色名目, gè sè míng mù), emphasizing the ethnic diversity of Semu people."라고 레퍼런스를 제시하며 딱 잘라서 말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레퍼런스를 제시한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도 동일하다.

다만 단어 자체가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직관적으로 색있는 눈(color-eye)이라는 의미로 다가오는 데다 색목인으로 분류된 민족들 중에는 분명히 백인 계통 민족들도 있고,[4] 눈동자가 갈색이 아닌 다른 색 민족 사람들도 많음이 사실이라 이런 오해는 정말 깊고 오래되었다. 당장 사학과에서 이 부분을 수정해 주는 교수들도 대학 들어와서 수업에서 이 사실을 배우기 전에는 색있는 눈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사학도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3. 무협소설에서의 쓰임

중원 사람들이 아닌 오랑캐 종족을 분류할 때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로, 의미를 잘못 해석해서 문자 그대로 색깔 있는 눈동자를 가진 코카서스 인종의 사람들로 오용되어 사용된다. 다만 오용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이런 오인의 역사가 수백 년으로 매우 뿌리깊기 때문이다.

북해빙궁이나 포달랍궁 출신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색목인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 설정에서는 남만 사람들도 포함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윗동네 사람들이 금발러시아인이고, 아랫동네나 옆동네 사람들이 갈색 피부의 건강미 넘치는 인도인이 된다. 이런 전통이 계속 이어진 결과, 20세기 말엽부터의 무협소설에서는 색목인이라 하면 대체로 '금발벽안의 미남미녀 외국인'이나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눈 큰 미남미녀 외국인'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미국에서 만든 무협영화인 포비든 킹덤에서도 미국인인 주인공을 보고 중국인들이 '색목인'이라고 한다.


[1] 바다와 접한 행정구역과, 해외 무역을 담당하던 시박사(市舶司)의 상당수도 색목인에 의해 운영되었다.[2] 이와 대조적으로 가장 아래 계급인 남송인(南人)은 과거시험조차 사실상 막혀, 관직에 오르는건 매우매우 어려웠다. 남인보다 윗 단계인 한인(漢人)은 상황에 따라서는 요양행성 평장장사 같은 고위직에 임명되기도 했다.[3] 각각 경주 설씨와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4] 오늘날에도 위구르인을 비롯한 튀르크 계통 민족들 중에는 드물게나마 금발벽안인 사람들이 있으며, 타지크인, 와키인이나 사리콜인같이 진짜 코카소이드계 민족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