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06:04:20

무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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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俠小說

1. 개요2. 상세3. 역사4. 필수요소5. 한국의 무협소설6. 현황7. 작품 목록8. 작가 목록9. 기타10. 관련 항목

1. 개요

중국 등을 배경으로 하여 무림이나 협객 등을 다루는 소설 장르.

2. 상세

1911년부터 시작된 신해혁명과 중화민국 건국의 격동기를 거치며 무협이라는 장르가 태동한다. 초기 형성기를 지나, 1923년에 이르러 평강불초생이 <강호기협전>을, 조환정이 <기협정충전>을 비슷한 시기에 각각 발표하여 초기 무협사에 한 획을 긋는다. 환주루주의 <촉산검협전>이나 왕도려의 <학철오부곡>(오부작 중 네 번째 작품이 이안 감독의 동명 영화의 원작으로 유명한 <와호장룡>)이 뒤를 따른다.

근대무협소설계는 고전 협의소설의 계보를 이으면서 서양에서 유입된 사실주의 문학 등의 영향을 받으며 관념적 서사 중심에서 구체적인 인정의 묘사중심으로 옮겨온다. 와룡생, 김용, 양우생 등 신파 무협의 등장으로 무협소설계는 중흥기를 맞이한다. 이후 계속하여 고룡 등의 뛰어난 신세대 작가들이 활약하며 그동안 통속적인 오락물로 치부되던 전통을 넘어서 새로운 경지로 넘어서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국내에서는 이전까지 무협지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아직도 이쪽이 통용된다. 무협소설이란 표현은 1990년대 후반 들어서 대본소 중심의 장르문학 시장이 무너지면서 '무협지=저질문학'이라 푸대접받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독자층이 기존 무협과 차별화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아직도 70년대 이전 어른들은 습관적으로 무협지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판타지와 함께 천대받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순수문학이 아닌 대중문학은 모조리 문학 취급도 못받고 있긴 하다.

주구독층은 중국, 대만, 중화권, 대한민국 정도다. 일본의 경우에는 찬바라 소설이 하나의 확고한 장르로 받아들여져, 그와 비슷한 장르인 무협은 그다지 취급받지 못한다. 인지도 역시 한없이 제로에 수렴한다. 아무래도 일본에서는 무협의 내공개념이 사실상 없다시피하다는 것이 무협이 발을 들이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이는 한의학의 위상이 음양 오행과 기혈 개념이 아직도 한의학의 기본이 되어 있는 한국과 중화권에 비해 일본은 애초에 상한론을 중심으로 했기에 도교적인 신비한 개념으로써의 '기'의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기 때문. 드래곤볼의 '기' 개념은 파워의 개념일 뿐이고, 북두의 권의 투기, 죠죠의 파문 정도가 유사하다. 나루토의 차크라 개념은 일본에서도 무협이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의 작품이라 가깝지만, 사실 인도 요가의 개념을 차용한 것에 가깝다.

무협소설의 창작이 많이 이루어진 국가의 공통점 중 하나가, 자유로운 정치적 참여의 길이 막혀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홍콩, 90년대 이전의 대만, 한국의 80년대) 무협소설이 지식인들의 좌절된 정치적 욕구의 발현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근거라고 고려원에서 포장해서 팔아먹었었다. 그러나 정치참여의 길이 막혀 썼다는 이 장르의 흔하디 흔한 클리셰는 강호를 평정한 뒤에 바로 그 조정과 결탁(!)하여 외세를 물리치거나 조정의 뜻에 영합해 관직을 제수받고 부마가 되는 등 전형적인 입신양명(success story)물에 불과하다. 다만 3S정책등 검열과 탄압으로 소설등 문화산업이 제한 받고 그나마 이러한 장르소설이 일종의 배설구 역할을 한 측면도 있다.

김용의 소설 정도는 다른 나라에도 수출되었지만, 무협소설이 완전히 장르로 정착한 것은 한국 정도다. 요즘에는 한국에서 역수출하는 경우도 있다.

무협소설은 같은 용어를 쓰더라도 실제 소설마다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 해도 어차피 가상역사물의 범주를 넘지 못한다. 고증을 완전 철저히 살려도 결국 역사소설 범주다. 리얼리즘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그 이상 가면 이미 그냥 역사 논문이 된다. 또 실제 사건이나 역사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설정의 경우 대부분 누군가 머리를 짜내 만든 허구이기 때문에 반드시 000를 따라서 작성되어야 한다는 규정 같은 것은 없다. 단, 서구 언어에서 비롯된 외래어는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최대한 유사한 의미의 한국어(순우리말과 한자어까지는 허용) 문구로 써야 한다.(ex: 시너지→상승효과) 이웃인 인도나 서역의 언어, 혹은 남만을 통해 들어온 서구 언어는 음차, 혹은 가차해서 쓰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표준 도량형을 쓰지 않는 등의 일종의 불문율은 있다. 만약 아래 설명이 당신이 읽은 작품과 다르다면, 그 작품 속에서 통하는 설명을 받아들여 읽기를 권한다. 이는 판타지소설 등지에서도 자주 범하는 실수이다. 작품별 최강자 가리기가 이런 오류의 큰 한 획을 구성한다.

3. 역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무협소설/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필수요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무협소설/용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한국의 무협소설

한국의 장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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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1931년, 독립운동가 박건병이 맹천 이라는 필명으로 평강불초생의 <강호기협전>을 동아일보에서 번역 연재 한 것이 최초의 무협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무협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히기가 전이었고, 또한 <강호기협전>은 중국에서 만큼의 큰 인기를 끌지 못한채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고, 연재가 중단되고 나서 불과 2개월 후인 1932년 1월 10일 박건병은 암살을 당한다.[1]

그래서 <강호기협전>이 국내에서 최초로 번역된 중국 무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반적으로는 1961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정협지>가 최초의 중국 무협 번역작인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원작은 대만 작가 위지문의 <검해고홍(劍海孤鴻)>으로, 언론인 김광주[2]가 번안했다.

와룡생을 필두로 한 대만과 홍콩의 신파 무협의 붐을 타고 7~80년대에 대본소(만화방)에서 만화와 함께 무협지가 널리 읽혔다. 이 즈음, 중국 작가의 이름을 달고 창작 무협의 시대가 열린다. 최초의 창작 무협이 어떤 작품인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 작가의 이름을 떼고 저자명으로 한국 작가의 이름을 올린 것은 1979년 을재상인의 '속팔만사천검법'이 효시로 꼽힌다. 국내 무협지 중 대부분은 무협지 프로덕션에 소속된 작가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계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갈겨댔던 것. 원래 순수 문학도였으나 돈이 되지 않는 관계로 무협지 프로덕션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간간히 그러한 울분이 드러나는 작품도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소설가로 대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착취 속에서 본인의 의도와 상관 없는 창작 아닌 창작생활을 해야 했고, 일부는 자기 프로덕션을 차려서 후배들을 착취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당시 만화계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모든 무협지 작가는 필명을 썼는데, 중국 작가처럼 보여야할 필요가 있었고 물론 누가 속겠냐마는, 본인이 이런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다. 필명은 유명 작가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바꿔쓰거나 무협지 주인공에 맞먹는 으리으리한 이름들 달기도 했다. 80년대의 유명 작가들은 사마달, 금강, 서효원, 야설록, 검궁인 등이 있다.

또 80년대 무협지에는 야설을 능가하는 성적 묘사가 반드시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프로덕션에서 강제로 넣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이를 거부하면 인격적 모독이나 폭행을 당하거나 쫒겨나기 일쑤였다. 체불임금이 만연한 상황에서 그간의 원고료도 못 받고 쫒겨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간혹 작가 스스로 사회와 본인에 대한 울분을 가학적인 성묘사로 풀어내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작가들이 착취만 당한 것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유명대학을 다니다가 수익이 많다라는 이유로 전업한 작가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즉, 무협 소설 시대에 자기 필명 내걸고 소설 쓰던 작가들은 출간만 된다면 처녀작이건 뭐건 나름 괜찮게 받았다고 한다[3]. 이때문에 소위 말하는 유명 구무협작가들은 학력이 화려한 편이다. 서효원은 성균관대, 야설록은 연세대, 일주향은 서울대, 야한 무협으로 유명한 와룡강도 고려대, 무림파천황 사건의 박영창도 연세대였다. 용대운이 서울시립대 출신으로 야설록 이름으로 혹은 야설록과 공저라는 형태로 초년을 시작했는데 대충 이정도가 기준선이었던듯 하다.

그러나 독자들의 지지와 인기에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국내의 무협소설계는 대만이나 홍콩 등지에서 일어났던 신무협운동과 같은 질적 비약의 움직임이 너무 약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무협물은 저질문학이라는 오명만을 남기게 되었다. 심지어 중국이나 대만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무협의 은 개나줘버리고 무림을 배경으로 폭력깽판을 행사하는 소설이 주류였다. 보수적인 한국 문단과 지성계꼰대집단의 상황과 맞물려 이런 악평은 너무도 뿌리깊게 박혀서, 국내로 유입된 양우생과 김용, 고룡 등의 뛰어난 작품들도 싸그리 저질로 치부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1980년대말에서 1990년대 초로 이어지는 한국무협소설 암흑기의 등장이다. 검궁인은 1달에 무협지 1질(=1편)을 꾸준히 쓴 사람은 자신과 서효원 밖에 없었다고 밝혔는데, 당시 무협지 1질은 이후에 문고판으로 재간된 판본을 기준으로 하면 소설책 3권 분량이다. 1달에 소설책 3권을 썼다는 것인데, 이후 한국 양판소계에서 공장장으로 불린 성상영도 한달에 3,4권[4]을 겨우 썼다. 그런데 검궁인이 한달에 2질을 써야 수입을 유지할 상황이 되었다면서 무협소설계를 떠나게 되는 것이 문제의 무협소설 암흑기이다. 이 때가 위에 언급된 대명을 통한 공장이 돌아간 대표적인 시기이다. 이 시기에 1달에 1,2편이 꾸준히 나오던 이름은 사마달백상이었고, 이 중에서 진짜로 자기가 쓴 것은 백상 뿐이었다. 물론 한달에 6권을 쓰면서 안정될 퀄리티가 유지될리가 없어서, 이 시기 백상의 작품들은 그 완성도가 처참한 수준이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무협소설의 평가는 결정적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 반발하여 90년대 중반에 뫼 출판사에서 용대운태극문을 시작으로, 용대운과 금강 같은 작가들이 무협을 그래도 사서 볼 가치가 있게 내보자며 신무협의 기치를 들고, 좌백대도오 같은 작품을 발굴해내면서부터 서서히 달라졌다. 좌백 같은 경우엔 처음에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야 다른 무협 작가들이 그렇듯이 위에서 내려주는 스토리를 갖고 글을 썼지만[5] 자신의 재능을 살리지 못해 습작 기간만 계속 가질 뿐 출간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좌백은 1994년을 끝으로 무협소설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런 와중에 용대운이 사무실 실장이 된 다음에 좌백에게 마음대로 글을 쓸 권한을 주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대도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무협 소설의 세계에 제시하면서 소위 신무협 작가들의 효시가 되었다. 거기에다 pc통신을 통해 무협지 팬들이 직접 글을 쓰게 되고, 그 중 인기작이 출판되면서부터 무협 소설은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작이 가능하게 됐다. 또 저작권에 대한 법규와 인식이 좋아진 것도 한목을 했다.

다만 작품의 질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일부 명작을 제외한 대다수 판박이 무협소설들은 편집자가 감수를 하는 건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글 쓴다는 사람이 이걸 모르나 싶을 정도로 틀린 맞춤법들도 간간히 보이며 오자도 수정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6. 현황

만화계의 상황과 비슷하게, 도서대여점텍본 등의 폐해[6]를 이기지 못해 기존 작가들도 생활고에 시달려 전업하거나 글쓰기를 중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규 작가들의 등장도 무척 제한적이었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웹소설 시장의 활성화에 힘입어 웹소설으로 유료 연재하는 방식이 크게 활성화되어 현재는 웬만한 기존 작가들은 거의 모두 웹소설 유료 연재 및 전자책 출간 모델 형식으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중. 저작권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도 많이 나아졌고 스마트폰을 비롯한 개인용 IT 기기의 폭발적인 보급까지 어울려 웹소설 시장의 파이도 점점 커지는 상태이다.[7]

2000년대 이후 양판소와 함께 도서대여점 소설의 2대축이 되었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현대 판타지퓨전 판타지가 남성향 장르소설 시장을 양분하면서 그 입지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한국의 경우 2010년대를 기준으로 정통적인 의미를 가진 무협은 사실상 전멸했었다. 한때 무협의 본산이었던 문피아에서는 연일 현대 판타지가 순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네이버 웹소설등에서 무협이 강세라지만 여성 독자층을 겨냥한 로맨스와 합쳐진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이러니 남성적이고 굵직한 정통파 무협을 좋아하는 아재 무협팬들 입장에서는 눈물이 날 지경. 게다가 좌백, 용대운, 설봉, 이재일로 대표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 활동이 뜸해졌고 새로운 작가들도 유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문피아에서 사이다회귀물, 상태창 등 장르소설계의 최신 트랜드를 도입한 무협소설들이 등장하면서 다른 마이너한 장르인 스포츠 판타지대체역사소설처럼 주류는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작품이 출간되는 장르로 정착한 상황이다.

무협의 본산지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는 2010년대 들어 선협소설(仙俠小說)이라는 인터넷 연재식 인스턴트 양산형 무협 장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7. 작품 목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무협소설/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작가 목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무협소설/작가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기타

  • 무협소설스러운 헛소리에 낚여 국가의 운명과 전세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의화단 운동. 의화단은 의화권이라는 권법을 수련하던 집단이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권법을 100일간 수련하면 '도창불입(刀槍不入)'의 몸이 되어 칼과 창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19세기 내내 산둥과 즈리를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가더니 급기야 서태후까지 이들의 시범을 본 후 완전히 믿게 되었다. 그래서 서태후는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이들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 기연이나, 복수극이나, 피카레스크성장물이긴 해도 너무 막장스럽고 파워 인플레이가 심할 경우 무협지같다고 표현한다.
  • 실존인물 중에서도 무력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인 사람을 두고 역사에서 혼자 무협지 쓰고 있는 사람이라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고려의 무장 소드마스터 척준경. 사실 그 외에도 관우이성계그리고 이순신, 리처드 1세 등 역사서에 홀로 무협지를 쓰는(...) 인간흉기들이 의외로 많다.

10. 관련 항목


[1] 현재 인터넷에서 박건병으로 검색을 해보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 박건병을 설명하는 문서가 있다. 그러나 1932년 1월 10일에 박건병이 암살을 당했다는 동아일보의 보도가 분명히 있음에도 그들은 박건병의 사망년도를 미상으로 적어놓고 있다. 집필자들이 얼마나 성의가 없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2]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3] 검궁인은 처녀작의 원고료로 66만원을 받았다고 증언했는데, 당시 대졸신입사원 월급이 25만원대였다고 했으니 적은 돈은 절대로 아니다.[4] 책형이 작고 여백과 띄어쓰기 등을 고려하면 비슷한 분량이다.[5] 좌백의 경우도 숭실대 철학과 수석으로, 대학원 학비 벌려고 무협판에 뛰어들었다.[6] 도서대여점 같은 경우는, 대여가 얼마나 많이 되건 작가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없다. 불법 복사는 그 폐해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고...[7] 군림천하천마군림, 쟁선계같이 몇 년씩 연재가 장기간 중단되었던 작품들도 거진 다 웹소설으로 연재가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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