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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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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56개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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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형성3. 중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4. 한족들의 거주지들5.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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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드는 대만 국민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Stanley_Market_6%2C_Mar_06.jpg
홍콩 내부의 시장을 걷는 홍콩인

漢族, 汉族 / Han Chinese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으로 중국,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의 주류 민족. 한족이라는 이름중국 문화를 정립한 한나라(漢)에서 유래되었다.

중국 전체 14억 인구의 약 91.5%를 차지한다. 산아제한 정책에 의해 한족이 중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래 섹션 참조) 여전히 대다수를 차지한다. 중국에서 한족 다음으로는 좡족(莊), 회족, 만주족, 위구르족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묘족, 이족, 토가족, 티베트족, 몽골족 등이 다음 순위를 차지하지만 한족의 비중이 워낙 많아 각 소수민족의 인구는 중국 인구의 1% 가량이다.[1]

그 숫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한족 인구와 그 외 중국 국외의 화교들의 인구를 합해 대략 15억 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국 본토뿐만 아니고 4천만 명 이상의 한족 이민자, 즉 화교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퍼져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도 한족계 화교가 인구의 70%인 국가이며 말레이시아에서도 이러한 민족은 전국 국민의 25% 정도 된다.

주로 많은 한족들에게 나타나는 일명 '며느리발톱'이라 하여 새끼발톱이 갈라져 또 하나의 작은 발톱이 되는 신체적 특징이 있다. # 하지만 '며느리발톱'은 후천적인 영향으로도 생겨나니 무조건 새끼 발톱이 갈라졌다고 하여 한족 혈통인 것은 아니다. #

2. 형성

본류는 중국티베트어족의 한 갈래로서 섬서성의 농경민족이었으나, 이 민족이 세운 주나라 [2]하남성 부근에 있던 상나라를 정벌하고 봉건제를 실시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중국 대륙 전역으로 팽창하기 시작, 남방과 북방의 여러 민족들을 흡수하면서 형성되었다.

한족은 오랫동안 중국이라는 역사 공동체 속에서 수많은 종족을 흡수하면서 만들어진 민족이다. "중국에 한족은 없다" 란저우 대학 연구팀 "현존하지 않는 혈통" 장기간 여러 민족 융합 … 문화적 개념 불과[3] 하지만 지구상에 일부 산간이나 도서지역에 고립된 민족 빼고는 단일 혈통 민족이란 있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4] 즉, 한족은 그저 합쳐진 종족의 수가 다른 민족보다 많을 뿐, 이렇게 다종족이 문화적으로 융합되어 하나의 민족이 되는 현상은 보편적인 것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민족들만 해도, 이렇게 고대로부터 여러 민족의 혼합으로 형성되어 근대시기에 민족개념이 형성되면서 각각 "영국인" [5] , "프랑스인" [6] , "독일인" [7]이라는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사실 혈통상으로는 한족과 마찬가지로 고대로부터 그 지역으로 이주했거나 끌려온 사람들이 비슷한 혼혈로서 형성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혈통이 어떻든간에 이들은 본인들이 다른 민족집단에 구분되는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런 주관적 요소가 사실 혈통보다도 민족관념의 형성이 더 중요하고, 한족이나 중국의 특징은 이런 주관적인 동일체성이 상당히 강하다는 것이다. 이는 비슷한 다혈통으로 이루어진 인도공화국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의 하플로그룹인 O2a(구 03)는 중국 북부로부터 인도 북동부 및 미얀마의 산악부까지에 걸쳐서 존재하며 O2b는 중국, 한반도, 동남아시아, 필리핀, 발리 섬, 숨바 섬 등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둥 구 03 계열은 선비족들과 별 연관이 없었던 민족들도 다수 가지고 있는만큼 앞의 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의외로 O1b(구 O2)는 상대적으로 한족보단 중국 남부의 소수 민족들이나 만주, 동남아시아 등과 관련이 있다.

몽골인의 경우는 Y염색체 하플로그룹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https://www.fsigeneticssup.com/article/S1875-1768(13)00134-0/fulltext 다음의 출처에 나와있는데, 몽골인과 한족은 유전적 유사성[8]과는 다르게 Y 하플로그룹의 구성은 거의 극과 극 수준으로 다르다. 초야권 역시 국가적으로 오래도록 실행된 곳은 라마교를 숭상하던 티베트와 몽골 지역 등이며 원나라 시기 몽골인들이 살던 지역과 인구 구성 비율을 생각하면 이전에 언급된 초야권을 통한 유전자 및 Y 하플로그룹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바이두에서 한자로 "蒙古 " 初夜权"이라고 치면 나오는 중국 학자들의 뉴스 기사에는 원나라의 한족 지배기에는 몽고인들이 라마교로 한족들의 초야권을 뻇는데 꽤 재미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한족들이 첫쨰 아이들을 죽이던 풍습도 이때부터 시작됬다고 주장한다. 과연 한족들이 첫째 아이들을 죽였다고 해도 혼혈화는 꽤 됬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합리적인 추측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화(中華)라는 단어가 고대부터 쓰이기는 하였으나 이 단어가 혈통적 개념 비슷하게 쓰였던 것은 청나라와 중화민국 사이의 혼란기 동안 삼민주의의 원형이 등장하면서 청조의 지배 세력이었던 만주족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주나라 시절에 형성된 "중화사상(中華思想)"의 초기 개념은 "천자의 영향력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들은 문명인이고 나머지들은 야만인이며 문화가 없다"라는 식의 주장에 더 가깝다. 그마저도 당장에 주나라의 형성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누가 이 천자로서의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 또한 혈통적인 것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9] 하지만 이 역시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게, 예를 들어 한 흑인이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중국의 모든 것에 익숙했다고 치자. 그럼에도 이 흑인을 한족으로 인정 못 하는 사람들도 꼭 있다. 한족이 문화적 개념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외모가 가까운 동양인의 틀 안에서나 해당될 뿐, 겉모습이 대놓고 다르다면 그건 또 별도의 얘기.

파일:htm_2004090818291440004300-001.gif

난링·우이산맥 경계로 남북 간 유전적 차이가 뚜렷한 중국 한족의 혈통 구성 모습 출처 단, 저렇게까지 세분하지 않고 유전자 분화도(fst)로 보면 세계적인 기준에서는 한족은 절대 다수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편인 단일 민족이다. 최근 연구 결과로는 의외로 중국계면 북방, 남방을 가리지 않고 몽골계와 같은 유목계열들과 상당히 가깝게 나온다. #

상고시대부터 돌궐-몽골-퉁구스 계통의 유목민족들이 침략하거나 대거 이주, 정복 정착해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당송시대에 이르기까지 몽골 계통의 유목민인 선비족거란족이 대거 정착하였고 이들은 기존의 한족들과 통혼하고 한족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한족에 동화되었다. 선비족은 아예 한족에 동화되고 나서 수당제국을 건국했고, 원나라때는 몽골족이 중국을 먹었는데 몽골이 중국을 완전히 먹기 전에는 한족 정확히는 한족화된 선비족이 국가를 세웠었다. 원나라와 명나라, 그리고 청나라 시대에 몽골인, 만주족들이 대거 정착해 현재 화북인들은 혈통적으로 몽골인과 많이 섞였다. 베이징, 그리고 하북 지방 한족은 몽골인과 유전자가 흡사하다. 한족임에도 말이다.[10] 중국 남부지역 한족도 마찬가지로 기존에 거주하고 있던 동남아 계통의 민족들과 많이 섞이고, 동남아 계통 민족들도 대다수가 한족에 동화되었기 때문에[11] 북방한족들과는 외형적으로 차이가 좀 있는 편이다. 사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진나라만해도 중원에서는 당시 '서쪽 오랑캐'라고 부르던 서융이 주류였을 정도로 한족들의 혼혈화는 그 역사가 매우 길다. 단, 서융과의 항쟁 과정에서 서융을 받아들인 것이라 주류로 치기에는 미묘한 편이다.

파일:htm_2007021608461240004300-001.jpg

전통적 중원 지역의 영역 출처

실제로 중국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대학 생명과학학원 셰샤오둥(謝小東) 교수는 "순수한 혈통의 '한족'은 현재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DNA 조사 결과 현대 중국인은 다양한 민족의 특질이 고루 합쳐진 것으로 어떤 특정 민족의 특질이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거기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족은 중원(中原)에 살고 있다'고 생각돼 왔으나 이는 특정 시기의 한족을 주변의 다른 종족들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지역적 구분일 뿐"이라면서 "이젠 한족을 그렇게 지역적으로 따져 정의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BC 11세기 현재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수도를 정한 서주(西周)는 한족 정권에 속하지만, 그 이후인 춘추전국시대에 같은 지역에 세워진 진(秦)은 소수민족인 '서융(西戎:서쪽 오랑캐)'이 주류였다는 것이다. 즉, 13억 중국인 가운데 인구 비율상 92%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족(漢族)이 실제 조사 결과 유전학적으론 현존하지 않는 제3의 혈통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로서, 한족은 혈통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인 개념이라는 통설이 학술연구 결과 실제 사실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족은 혈통상 현존하지 않는 민족으로서 지금 중국에 있는 한족들은 한족 혈통과는 별 연관성이 없는 단지 과거 중원 한족 문화에 동화된 다양한 민족들의 집합체라는 뜻이다. 출처 한족의 나라에 ‘순종 한족’이 없다? 중국 인구의 91%라 했는데 DNA 검사에서도 존재하지 않아…“2천~3천년 전 한 시기의 지역적 구분” 주장도

그 때문에 민족주의 관련 논쟁에서도 동아시아의 경우 일찍부터 서양식 민족주의와 다른 동족 의식[12]이 있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중국 한족은 그렇게 보기에는 차이가 너무 커서 논외로 친다. 자세한 것은 민족 항목 참조. 중국 민족들의 대략적인 전통 모습은 다음과 같다. #

언어적으로는 상술했다시피 크게 7가지 정도의 매우 상이한 사투리를 쓴다. 중국이 영토가 넓기 때문에 사투리간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모두 같은 어족이기 때문에 발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문법은 거의 비슷하다. 요즘에는 보통화(표준중국어가 대부분의 중국 지역에서 통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영역이 아닌 곳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에서도 표준중국어는 모두 통한다. 현재 한족 중에서 표준중국어, 즉 보통화를 전혀 못하는 사람은 중공정권이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제정하기 전인 1940년대생 이하에 한정된다. 중화인민공화국 뿐만 아니라 중화민국도 민남어를 쓰던 대만 본성인들은 장제스 정권 아래에서 보통화를 억지로 써 왔고, 홍콩인들은 원래 보통화를 못했으나, 중국으로 귀속하면서 대부분 한다. 중국어 방언 화자들은 어떤 한 지역 방언을 모어로 쓴다면, 다른 지역 방언은 그 지역에 이주해서 몇개월이면 대부분 마스터 하는데 최근에는 중국 내의 방언 및 타 언어가 표준어에 밀려 사라진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3. 중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

(인구센서스 결과)
한족 비중이 낮아지는 이유는 계획생육정책이 한족에 집중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4. 한족들의 거주지들


중화민국(대만),홍콩,마카오같은 경우는 한족이 주류민족이고 한족 정부이지만,동남아시아같은 경우에는 영향력은 있지만 한족이 주류 민족은 아니고 정권도 한족정권은 아니다.

당연히 한족의 근원지인 중국 대륙에 12억~13억이 살며, 청나라대만 섬을 가져간 이후엔 대만에도 한족이 대부분이다.

말레이 반도 남단의 싱가포르도 70% 이상이 한족이고, 중국 남반부 홍콩/마카오도 95%가 한족이다. 물론 이 셋은 위의 한족들과는 혈통상으로만 유사하고 사실 상 이질적이라 봐도 된다.

5. 여담

중국의 한족들이 너무 많아서 동시에 뛰면 지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농담이 있다. 주로 중국 대륙인들이 대만인을 놀릴 때 쓰는 말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Accessory_nail_of_the_fifth_toe 한족계이면 자연적으로 새끼발톱이 갈라지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이를 며느리 발톱이라고 하는데 아직 의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작은 구두를 신어서 후천적으로 생길 수는 있다고 한다.

대만도 청나라 때 이주해온 사람들과 국공내전에서 패해서 도망온 사람들을 모두 합쳐보면 95%~98%가 한족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혈통만 그렇지 정체성은 달라서 그냥 남남이다.

중국사 중 한족 왕조 시대에 한반도를 침공한 예는 거의 없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한반도를 침공한 수나라와 당나라는 '통일 제국'은 맞지만 정권 핵심부가 '순수 한족'인지에 대해서는 애매하기 때문.[13] 그러나 문벌귀족[14] 세력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이들 정권은 훗날 등장하는 원나라, 금나라, 청나라 정권 처럼 뚜렷하게 민족색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족 통일 제국'으로서 수나라와 당나라도 한반도에 침공한 적이 있으며 당나라 이후 한족 정권일 때 한반도를 대대적으로 침공한 경우는 사실상 사라지는데, '한족 통일 정권'을 기준으로 볼 경우 대규모 육상 침략군을 파병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송나라)이거나, 북방 민족의 압력에 대응할 필요가 더 컸기 때문(송나라, 명나라)이다.

삼국지의 인물들 가운데 손견과 그 후손들 및 맹획, 사섭 등의 인물들이 남방계이며 유비를 비롯한 황실 구성원들[15], 조조, 원소와 그 일족들, 동탁, 공손찬, 마등 등 대부분의 인물들이 북방계이다.

당나라 쇠락 이후 등장한 송나라는 300년 역사 동안 고려와 접경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명나라는 고려 및 조선과 접경하긴 했지만 오이라트북원, 여진족의 동향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상대적으로 순종적인 조선에 무력 침공할 이유가 없었다.

중화민국은 침략할 한반도가 이미 다른 나라에게 먹힌(...) 상태였고 굳이 대한민국을 적대시할 이유도 없어서 되려 혈맹으로까지 불릴 정도였다.실제로 한국인들도 중화민국을 일본제국,중화인민공화국과 싸워줬다고 좋아한다. 물론 장제스가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은 한반도에 전후 영향력을 가지려던 이유가 없다고 보긴 힘들긴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니 국민당이 패망해서 대만으로 망명해 버리기도 했고 공산당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이 북한을 지원하여 6.25 전쟁에 참전한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주목되는 편이다.

따라서 '한족 정권일 때는 한반도를 침공한 적이 거의 없다'는 주장은 그런 대로 옳긴 하지만, 한족 정권이든 아니든 이들이 쳐들어 올 때마다 한반도는 크게 굴곡진 운명을 겪어야 했다는 점은 동일하다. '한족 정권'은 한나라, 위나라(삼국지), 중(화인민공화)국이고 '비한족 정권'은 요,금,원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수,당은 한족화된 선비족 왕조이므로 두가지 특성의 모두 또는 그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알다싶이 한나라의 침략 이후의 한사군만큼이나 원나라의 침략 또한 고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비록 고조선처럼 멸망당한 것은 아니지만 30년간 국토가 갈려나가고 백성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고 이후엔 사실상 반속국화 되어 80년간 많은 간섭을 받았다.

위나라의 경우 공손연 정벌때 고구려와 협력하긴 했지만 나중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전쟁이 발발해 고구려의 전 국토가 피해를 입었다.[16]


[1] 좡족, 회족은 1%가 넘었고, 만주족은 0.8%정도이다.[2] 상나라는 조금 계통을 달리보는 학자들이 많다.[3] "중국 한족, 단일 혈통 아니다" 난링·우이산맥 경계로 남북 차이 뚜렷[4] 흔히 단일민족으로 묘사되는 한민족조차도 과거 예족, 맥족, 한족 등의 여러 민족이 합쳐져서 형성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5] 원주민인 켈트인, 나중에 쳐들어온, 게르만게 앵글로색슨인, 그보다 조금 더 늦게 온 데인(덴마크)인[6] 원주민 켈트계 외에 로마로부터 온 라틴인, 그리고 고대 말기에 진출한 게르만인(프랑크족), 이외에도 영국에서 밀려난 영국 켈트족 등등.. 프랑스는 지방어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7] 독일민족의 상당수는 게르만계뿐만 아니라 슬라브인들이 섞여있다. 독일 통일을 이끈 프로이센 자체가 튜튼 기사단이 동부를 정복하면서 슬라브인들을 정복-동화시켜 만든 나라이다.[8] 당연히 Y 하플로그룹에만 달려있지는 않다.[9] 한족이라는 것도 단일 민족이라기보다는 중화계 농경 민족들이 합친 것에 가깝다. 유목민들도 몽골, 만주 같은 걸 이용해서 연합하기도 했다. 사실 세계사에서는 더 특이한 사례들도 있는데, 러시아처럼 문화권이 다른 민족이나 헝가리처럼 농경 민족과 유목 민족의 합체가 일어난 사례들도 있다.[10] 그런데 꽤나 오래전부터 하플로 그룹이 나누어졌고 지역별로 더 가까운 경우가 일반적이라 새롭게 정착을 해서 유전자가 흡사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흡사했는지는 알기 힘들다. 후에 유목민들이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보기에는 사료적으로도 섞여서 그들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 숫자를 크게 늘렸다거나 하는 기록이 별로 없으며 유목민들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이유도 있어 좀 의문인 편이다. 사실 이민족 근처에 사는 다른 지역 사람들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중국인이었으나 티벳이나 베트남 등의 사람들과 가까운 경우가 많고 만주족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요서, 요동 등 동북 쪽에 살았던 한인팔기의 경우도 그나마 가까운 과거라 어느 정도 추적이 가능한데 오래 전부터 중국어를 주로 사용하던 한족이었고 주변 민족들도 그렇게 생각을 했으나 다른 지방의 한족들에 비해서는 만주족 등에 더 가깝다.[11] 물론 한족에 동화되지 않고 남은 소수민족도 더러 있기는 하다. 하이난의 리족이나 몽족, 대만 원주민(대만 자체는 중공과는 실질적으로 별개의 국가지만, 어쨌든 한족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이 대표적인 예.[12] 그러나 지금과 같은 민족주의와는 분명 크게 달랐을 확률이 매우 크다. 동족 의식을 느껴도 학살을 하거나 노예로 삼는 것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았고, 그리고 지금보다 학문도 발달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도 많이 달랐다. 분명 구석에 있는 지형에서 모여 살았으니 아무래도 넓은 영토에서 서로 평생 볼 일이 없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고 언어적 차이까지 있었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서로 가깝다는 의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봐야 서양식 민족주의에 비하면 학문적 완성도가 낮아 설득력과 효과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임진왜란만 봐도 이민족들이 대우를 조금 좋게 해주겠다는 말만으로 넘어가서 칼을 거꾸로 잡은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조선에서도 사회적 대우가 좋지 않았던 직업이나 신분을 가진 사람들 또는 정부에 대한 원한과 불만을 가졌던 이들이 일본에 투항해서 조선과 싸우기도 했다. 반대로 일본측에 불만과 원한을 가지고 조선에 투항해서 일본과 싸운 일본인들도 있었다.[13] 수의 황족 양씨와 당의 황족 이씨 모두 선비 혼혈 혈통이다. 그래서 돌궐에서는 수, 당을 선비족이라는 뜻의 타브가치(선비족의 탁발부)라고 불렀다.[14] 서진의 황족이던 사마씨 같은 이들이 살아남았거나 아니면 그런 가문들을 계승했다고 우기는 세력들이 있었다.[15] 유언은 병주 근처에 있다가 남쪽으로 내려갔으며 유표하진의 부하로 낙양에서 관료로 일하고 있다가 왕예가 사망하자 후임 형주자사로 파견되었지 그쪽 토박이들이 아니다.[16] 물론 선제공격은 고구려가 했으나 위나라가 공손연 토벌 이후 합의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고구려의 잘못이라 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