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立中正紀念堂 / Chiang Kai-shek(CKS) Memorial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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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만 타이베이시에 있는 장제스 기념관. 정식 명칭은 국립중정기념당이지만 보통 중정기념당이라고 표현한다.중정기념당 개관 당시 중화민국신문(대한뉴스 격)의 보도
1980년 4월 5일[1]에 개관하였으며 건축비는 전액 기부로 충당되었다. 해당 부지는 본래 육군본부 및 헌병사령부로 쓰였던 곳이다.
이름은 장제스의 본명인 장중정(蔣中正)[2]에서 따왔다. 1975년 장제스가 사망하자 중화민국 정부에서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크고 아름답게 지었다고 한다. 중정구의 이름도 여기서 따왔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듯.
2. 특징
타이베이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미국의 링컨 기념관을 본떠 만들어졌는데[3] 그 링컨 기념관과 비교해도 무진장 크다. 본당 건물의 높이가 70m. 본관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모두 89개다. 장제스가 향년 89세로 타계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파일:external/kids.cksmh.gov.tw/f25.jpg |
건물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서북쪽, 즉 중국 대륙인 게 포인트. 장제스와 중화민국(국민당)의 대륙 수복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듯하다. 참고로 이곳에서 지하철 역 1곳 정도 떨어진 거리에 2.28 추모공원이 있다.
위 사진의 장제스 기념상은 본당 정면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있는 4층에 위치해 있으며, 계단의 옆으로 돌아가 본당 1층의 측면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장제스가 사용하던 자동차나 장제스의 총통 서명문 등 그에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철로는 타이베이 첩운에서 주요 환승역 중 하나인 중정기념당역이 가장 가깝다. 타이베이 첩운의 주요 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단수이신이선과 쑹산신뎬선이 모두 이 역을 지난다.
3. 논란
관련 문서: 탈장화대만 안에서는 독재자이자 학살자이면서 대만 독립파를 철저히 탄압한 장제스를 현창하는 중정기념당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민주진보당 천수이볜 총통 시절이었던 2007년에는 이름이 국립대만민주기념관(國立臺灣民主紀念館)으로 바뀌어 대만 민주화 운동의 전시 비중을 대폭 확대했고, 기념당 내 장제스의 동상 옆에는 콜라주나 데칼코마니를 전시했었다. 이는 장제스 개인의 기념관으로서 '중정기념당'의 의미를 지우고, 대만의 독립성과 민주화를 기리는 곳으로 바꾸려 했던 민진당과 대만 독립 진영의 의도로 이해될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중정기념당 자체를 없애고 싶었겠지만, 워낙 대만의 랜드마크 비슷한 곳이 되었으므로 그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마잉주 총통이 들어오면서 1년 만에 원래 이름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저 데칼코마니 전시물들은 국외 순회 전시를 돌고 난 이후에 전부 창고에 보관 중이라 한다.
차이잉원 현 총통의 민진당이 집권한 현재, 다시 중정기념당의 위상 변화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2017년 2월 25일, 정리쥔(鄭麗君) 문화부장(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격)은 "중정기념당의 위상을 바꿀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에 따라 장제스 개인을 미화하는 성격의 기념품을 '권위주의 숭배'라는 비판 아래 판매하지 않고 2.28 70주기 당일에는 아예 하루동안 기념당을 휴관했다. 별도 조치가 없다면 매년 2월 28일은 휴관일이 된다. 매일 아침저녁마다 실시했던 장공기념가 연주도 중단했다. 국민당은 불편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문화부는 2017년 3월, 6개월 안에 「국립중정기념당관리처리조직법」 수정초안을 발의한다고 한다.
국민당의 불편한 심기와 함께 시민들의 반응 역시 좋지 않다. 가장 먼저 아무래도 긁어 부스럼 만들어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특히 국민당 지지 측은 차이잉원 정부 초기 시행된 국민당 자산 몰수 정책과 더불어 사실상 정치적 보복의 일환이 아닌가 의구심을 품고 있다. 다음으로 규제 자체의 부당함이다. 이미 장제스나 쑨원 관련 기념품이 정상적으로 국내외 유통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막고 제재하는 것은 결국 시장과 산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해마다 중정기념당을 방문하는 관광객과 이를 통해 기념당이 거두어들이는 많은 이익에 대한 고려다. 현재 중정기념당은 국립고궁박물원, 타이베이 101 빌딩 등과 함께, 국제적으로도 대만을 대표하는 관광 랜드마크이기 때문. 이런 점들 때문에 오히려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이 많다.
중국시보가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이잉원 정부가 중정기념당에서 장제스 관련 전시와 기념상품 판매 중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26.5%가 찬성, 55.8%가 반대하였다고 한다. 또 교차분석 결과, 민진당 지지자 중 '찬성' 비율이 56%에 달했으나, 반대 비율도 33.6%였고, 무당층에서는 '찬성'이 20.7%, '반대'가 53.5%으로 나타나, 사실상 민진당은 절반 이상의 국민 여론을 물리치며 나아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특히나 민진당 지지층에서도 압도적으로 이번 조치를 찬성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물론 중국시보의 성향이 국민당과 가깝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도 그에 따라 감안해서 봐야 할 필요는 있겠다. 아울러 연합보는 민진당이 집권 중인 타이중시의 시정부가 "도시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철거된 타이중 신사의 토리이를 다시 세우려고 하고 있는데, 일본 식민시대의 신사가 중정기념당보다 '덜 권위주의적'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2017년 10월 기준으로 다시 장제스 관련 전시가 대폭 줄어들고 타이베이 시정부 관련 홍보물이 늘어났다. 기념품 가게들도 이전보다는 기념품의 종류가 한층 적어졌다.
2018년에도 장제스 동상 훼손 사건이 다시 벌어지기도 했다. # 현 민진당 정부는 이들 사건을 자신들이 추진하는 국민당 집권기의 과거사 청산(중정기념관의 탈 장제스화 포함)을 촉진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이지만, 피해 당사자 격인 국민당은 "민진당과 현 정부가 반달리즘을 부추기고 있다"며 반발했다.
2018년 11월 24일 실시된 2018년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에서 민주진보당이 패배한 후에도, 민진당 정부의 탈 장제스 추진은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일환으로 대만 정부의 과거사 청산위원회는 12월 17일 중정기념당의 명물인 군 의장대를 철수하는 내용이 포함된 건의안을 발표했다.[9] 그러나 소관 부처인 국방부는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2019년 2월 말, 쑤전창 행정원장(국무총리격)은 2.28 사건 72주기를 맞아, "중정기념당의 폐쇄보다는 용도변경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천수이볜 시절에 '대만민주기념관'으로 변경했던 것을 따르겠다는 의미인 듯.
2021년 9월에 행정원 산하 기구인 '정의촉진이행위원회'(정의위원회)가 장제스 동상을 철거하는 한편 중정기념당의 이름을 '권위주의 반성 역사공원'으로 변경한다는 계획 초안을 공개했다. #
2022년 타이베이 시장에 국민당 후보로 출마, 당선된 장제스의 증손자 장완안은 중정기념당 개명에 동의하여 국민당에 충격을 주었다. 다만 장제스 개인의 기념, 찬양을 표방했던 것에서 벗어나, 대만의 발전 역사와 이에 기여한 이들의 기념으로 확대 및 전환하는 대만발전기념관을 제안한 것이다. 그의 입장은 기존의 중정기념당을 국민당 독재시대 비판을 비롯한 과거사 청산의 공간으로 개조하려는 민진당의 입장과는 차이를 나타낸다.
2024년 7월 15일부로 장제스 동상 앞에서 거행해 온 의장대의 보초 및 교대 의식을 중단하고, 대신 기념당 앞의 민주대도(民主大道)로 옮겨 진행한다.#
4. 기타
- 2023년 기준으로, 문화부 지도 하에 상설전시장에서 '자유로운 영혼 VS. 독재자 - 대만 언론 자유의 길'(自由的靈魂VS.獨裁者-臺灣言論自由之路)이라는 제목으로 대만의 언론 탄압과 대만인들의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에 관련된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10] 전시에 대한 설명은 중화민국 국어(정체 중국어)로만 기재되어 있다.
즉 장제스의 공을 알고 싶으면 여기에, 과를 알고 싶으면 근처의 2.28 기념공원에 가면 되었는데, 이제는 여기서도 과도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전시 마지막의 '새 시대의 도전(新時代的挑戰)' 구역에는 한국의 중앙일보 1면을 인용하여 걸그룹 TWICE의 대만인 멤버인 쯔위가 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에 휘말렸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5. 타 매체에서
심시티 3000 코리아에서 랜드마크에 'CKS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CKS는 장제스의 영문 표기 '창카이섹(Chiang Kai-shek)'[11]에서 따온 것이다.[1] 장제스가 사망한 날이 1975년 4월 5일이며 5년 후이다.[2] 대만에서는 장제스를 장중정이라는 본명으로 부르고 교육한다.[3] 쑨원의 영묘인 중산릉에서도 영향을 받았다.[4] 그래서 사람들은 근위병을 마네킹으로 착각하기도 한다.[5] 중국식 문의 일종. 차이나타운의 입구에 많다.[6] '포부가 크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지극히 바르다'는 뜻의 사자성어. 장제스의 본명인 장중정(蔣中正)이 여기서 유래했다.[7] <꽃보다 할배> 대만편에서는 이를 두고 신구가 "장충동 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이 함께 위치하고 있는 셈"이라고 적절한 비유를 했다.[8] 2007년까지는 중정광장이라는 이름이었다. 패방 교체와 동시에 광장 이름도 바꿨다.[9] 장제스의 초상이 포함된 200대만 달러의 도안 변경, 군부대에 세워진 장제스 동상의 철거 등도 건의안에 포함되었다.[10] 바로 옆에는 대만 언론탄압의 장본인인 장제스에 관련된 상설 전시 구역이 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11] 이 영문 표기는 '장개석(蔣介石)'의 광동어 발음에서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