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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화권(중국 본토+홍콩/마카오 및 대만)혈통의 호주인을 말한다.현대에 중국계 혈통을 가진 호주인을 일컫는 용어인데, 그 이유는 중국계 호주인의 이민 역사가 청나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다가 호주에 정착한 중국계 태국인/중국계 말레이시아인/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중국계 브루나이인 등 동남아시아 화교들 중에서 스스로를 중국계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1]
반면 중일전쟁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호주로 이민한 러시아인들은 당시 적백내전 난민 출신이라 소련 국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계 호주인으로 받아들였지 중국계 호주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2]
2. 이민사
1850년대 호주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골드러시 붐이 일어나는 가운데 상당수의 청나라 국민들이 호주로 금광을 개발할 목적으로 이민하기 시작하였다. 광산을 찾기 위해 이민한 사람들이니만큼 당시 호주로 이민한 화교들 절대다수는 남성이었다.당시 골드러시에 참여하던 백인들은 화고들이 자신들 대신 금광을 찾아서 대박이 나지는 않을까 신경질을 부리는 일이 많았고, 이들 중 남성 이민자만 많고 여성 이민자가 없다는 점[3] 등까지 백인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바람에 화교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차례 폭동이 빈발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에 대한 호주 백인들의 반감 그리고 백호주의는 호주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호주/역사 문서나 백호주의 문서 참조. 이러한 연유로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새로 중국인 이민자들이 유입되지는 못하였고, 호주에 체류하는 중국인 인구는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호주에 중국계 인구가 급증한 것은 동남아시아, 특히 태국, 말레이시아에서 화교들이 호주로 이민을 택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부터다.
1970년대에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화교 상당수가 호주로 망명한 것을 계기로 호주 내 중국계 이민자들의 수는 다시금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5년 독립한 싱가포르도 현재는 선진국이라 타국에서 이민을 받는 나라가 됬지만 독립 초기에는 가난한 나라였으며 도시국가의 자립에 회의적이던 부유층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호주 이민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싱가포르가 성공적으로 도시국가로서 자리를 잡고 1980년대에 선진국이 되자 호주 이민행렬이 끊어졌으며 2010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한 싱가포르가 호주를 경제적으로 앞지르자 이제는 호주로 이민갔던 독립 초기 중국계 자손들이 일자리 문제 등으로 싱가포르로 역이민하게 되었다.[4] 이러한 역이민 중국계 호주인 인구들 덕에 싱가포르에 중국계 호주인은 2만 명에 이르며 이들은 싱가포르 영주권을 갖고 중국계 싱가포르인으로 살고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중국계 호주인 2세 남성층은 병역의무도 부담한다.
1990년대 말에는 홍콩인들의 상당수가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캐나다나 호주 등 영연방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들은 교육 수준도 높고 재산도 많은 편이었다. 물론 캐나다로 이주한 홍콩인이 다수였고 호주는 비교적 소수였지만 홍콩인들이 호주에 도착한 것은 호주 사회 내에서 중국계 디아스포라의 입지가 상승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홍콩인들을 따라서 마카오인들도 조금씩 호주에 들어왔다. 홍콩인들이 호주나 캐나다로 들어온 연유는 비자 문제 때문인데 영국이 홍콩 이민자들의 범람을 우려해 이민 문턱을 높여버렸고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비자 획득이 쉽지 않아서이다.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가 산유국으로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하면, 말레이시아의 부유층을 구성하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자제들을 호주에 유학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호주에 자리를 잡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다채로운 모습의 중국계 호주인 사회가 형성될 수 있었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거리가 먼 미국, 캐나다가 아닌 호주를 유학 목적지로 선호하고 더 나아가 부미푸트라 정책에 반발해 호주에서 자리를 잡기도 하였으며 특히 개신교를 믿는 사람이 많아 미국에서의 한국인들처럼 호주에서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교회 수를 늘리게 된다.
그 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도 1998년 인도네시아의 금융위기 및 정치 혼란을 피해 호주로 망명하면서 이젠 인도네시아가 고향인 중국계 호주인들의 숫자도 많다.
중국 본토도 2000년대와 2010년대에 걸쳐서 소득수준이 신장하면서 중상류층 이상 가정에서 호주로 유학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들 중 일부는 호주에 눌러살기도 하고, 일부 부유층들이 별장 및 부동산 투기용으로 호주에 부동산을 사기도 한다.
3. 현황
중국계 호주인은 전세계 중국계 디아스포라 집단 중에서 가장 큰 그룹 중에 하나이며, 호주에서 가장 큰 아시아계 이주민 집단이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중국계 혈통이 있다고 밝힌 호주 거주자는 1,390,639 명이라고 하며 이는 호주 인구의 약 5.5%를 차지한다.지리적으로 볼 때 중국(홍콩+마카오 및 대만 포함)과 호주 사이에는 동남아시아가 위치해 있는데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제권은 사실상 화교가 쥐고 있다도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호주와 동남아시아는 경제적으로 아주 밀접한데, 이러한 연유로 중국계 호주인들은 호주 경제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특히나 아세안을 주도하는 싱가포르가 아예 화교 이민국가로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세운 나라고 혼자 선진국에 호주와 관계가 깊으니 말이 필요없다.
그리하여 중국의 관문인 홍콩 및 동남아시아의 화교 이민국가 싱가포르에서는 호주 국적을 가진 인구가 각각 9만여 명/2만여 명 가까이 거주한다. 물론 둘의 배경은 전혀 다르다.
특히 홍콩에는 1997년 홍콩 주권반환을 전후해 국적취득을 목적으로 투자이민을 한 뒤 호주에서 자녀를 출산하여 호주 국적을 물려준 경우도 많아 홍콩 내 호주인 중엔 중국계 혈통도 꽤 많다. 물론 홍콩에선 캐나다 국적 중국인에 비해선 소수다.[5]
그러나 싱가포르의 경우는 홍콩과 달리 독립 초기 이민갔던 사람들의 자손들이 역이민으로 싱가포르에 되돌아온 사람들인데 2010년대 이후 싱가포르 경제가 호주를 앞지르면서 해외취업 목적으로 대거 역이민이 벌어졌다. 이들 중국계 호주인들은 오늘날에는 싱가포르 영주권을 소지한 평범한 중국계 싱가포르인으로 살고 있다. 특히 2세 이상 남성층의 경우 싱가포르군에 입대하여 병역까지 부담한다.[6]
최근 호주에 중국 대륙/홍콩 발 부동산 투기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코로나 판데믹까지 겹치며 이로 인해 서민층의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동양계에 대한 증오범죄도 늘어나고 있었으나 2022년 및 2023년 이후 코로나 엔데믹으로 호주가 국경을 개방하자 관광객이 다시 늘어나며 경제가 살아나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국제 이슈까지 바뀌며 동양인에 대한 감정이 누그러들어서 진정되었다. 대신에 러시아인 및 구소련권 출신들이 루소포비아로 증오범죄에 시달리게 되었고 2023년 이후에는 팔레스타인 난민 이민자들과 아랍계 호주인들 더 나아가 호주 내 무슬림 그룹으로도 타겟이 옮겨갔다. 대신 동양계의 경우 2023년을 지나서 이렇다 할 증오범죄 사례가 없다.
4. 관련 문서
[1] 특히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호주로 이민한 경우가 그렇다. 말레이시아는 인종차별을 피하여 이민을 택하는 중국계와 인도계 숫자가 많은데 중국계는 이웃한 화교 이민국가인 싱가포르와 함께 호주를 주로 골랐다. 그리고 역시 압박이 많은 중국계 브루나이인들은 국적조차 주지 않아 호주행을 택한 사람이 많았다.[2] 이들의 경우 미국의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호주 정부에 탄원을 넣어 호주의 백호주의 즉 아시아인 이민 금지 정책에서 예외로 받아들여졌다.[3] 1860년대 당시 중국인 이민자 4만여 명 중 여성은 12명 정도에 불과했다.[4] 2023년 1인당 GDP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세계 3위로 호주는 물론 미국, 일본도 크게 앞서며 한국과는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다. 호주 백인들도 싱가포르로 해외취업을 오는 판인데 호주보다 싱가포르가 일자리가 많아서이다.[5] 홍콩 내 캐나다 국적 중국인들의 경우 이름을 알 만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있을 정도로 그 숫자가 많은 편인데 그 유명한 진관희도 캐나다 태생이었다.[6] 싱가포르 태생의 호주 국적 영주권자에 한한다. 후천적 영주권자는 남성도 해당없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