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6:44:24

대만의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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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진행
2.1. 장제스 시대
2.1.1. 2.28 사건과 계엄령2.1.2. 국부천대와 일당독재
2.2. 장징궈 시대
2.2.1. 당외운동과 민주화 요구2.2.2. 민주진보당 창당2.2.3. 계엄령 해제
2.3. 리덩후이 시대
2.3.1. 영정혁명2.3.2. 총통직선제와 정권교체
3. 결과
3.1. 정치적 측면3.2. 외교적 측면
4. 타국과의 비교
4.1. 대한민국4.2. 중화인민공화국
5.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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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img20190110173711724_800.jpg

대만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

2. 진행

2.1. 장제스 시대

2.1.1. 2.28 사건과 계엄령

청일전쟁 직후 잠시 동안이지만 중화권 최초의 공화국[1]타이완 민주국을 세우기도 했으며 이후 대만일치시기를 거치면서 민족주의 및 반제국주의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시기 우서 사건이 발생했으며 대만인 최초의 정당인 대만민중당[2]이 창당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만의 운동들은 193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이 완전한 군국주의 국가가 되면서 더욱 철저하게 탄압당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만의 주인이 된 중화민국 역시 말만 공화국이지 사실상 장제스와 국민당의 독재국가나 다름없었다. 특히 이들에게 대만인들은 중국인이 아닌 다른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대만일치시기에 일본 제국에게 협력한 믿을 수 없는 외지인으로 보였다. 대만인들 역시 국민정부를 일본 제국과 간판만 다른 대만의 '새로 온 바깥주인'들로 보며 적대적이었다.

대만을 접수한 중화민국 정부는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을 통해 통치하였고 타이완 섬의 행정과 경제, 치안 등을 맡을 주요 인사들을 중국 본토 또는 대만 출신이지만 중국인 정체성을 가진 '외성인'들에게 맡겼다. 이에 타이완 섬의 '본성인'과 외성인 양측의 갈등이 극도로 달한 상태에서 경찰의 노점상 단속이 트리거가 되어 대만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인 2.28 사건이 발생하였다.
파일:external/www.mtholyoke.edu/228_mob.jpg

시위는 금세 격화되어 대만 전역으로 퍼졌으나 국민당의 잔혹한 진압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혔다. 당시 국민당은 해당 시위 참가자들을 '매국노', '독립분자'로 생각하며 강경진압을 꺼리지 않았고 학살극까지 벌였다. 그리고 장제스는 해당 사건 이후 대만 계엄령을 실시하여 대만의 정치적 움직임을 원천 봉쇄하였다.

2.28 사건천안문 6.4 항쟁처럼 존재 자체가 숨겨진 채 흑역사로 치부되었고 당시의 피해자들이 사과와 배상을 받기에는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했다.

2.1.2. 국부천대와 일당독재

한편 대만에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는 동안 장제스와 국민당은 국공내전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고 결국 1949년 12월 7일 국부천대를 단행하면서 중화민국의 본토와 이질적인 변두리였던 곳이 중화민국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중국 국민당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부군과 외성인 피난민들이 타이완 섬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정치적 혼란을 걱정한 국민정부는 더욱더 대만을 강력히 통제하였다.

장제스는 일부 유화책과 경제성장을 통해 현지 민심을 잡기도 했으나 정치ㆍ사회적으로는 강압적인 통치를 고수했으며 3당 훈정 체제를 유지하고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 정체성을 경계하며 교육부터 사회, 문화적 측면까지 철저하게 중화사상을 주입하고 '독립분자'들을 탄압했다. 물론 반국민당 인사들도 이런 독립분자로 엮어 뤄다오향 같은 외딴 섬에 유배보내거나 가택감금을 하였다. 당시에는 대만의 ㄷ도 꺼낼 수 없었으며 본성인 차별 문제 제기나 대만 원주민의 인권과 자치 및 차별 금지 등의 말은 독립운동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대규모 시위는 사실상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2.2. 장징궈 시대

2.2.1. 당외운동과 민주화 요구

1975년 장제스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장징궈가 총통직을 승계하였다. 철권통치를 하던 장제스가 사망하자 그동안 눌려왔던 불만과 개혁에 대한 요구들이 쏟아져나왔다. 당시 대만은 '3당 훈정'으로 인해 중국국민당관제야당을 제외한 그 어떠한 정당의 활동도 금지되었기 때문에 당시 민주화 운동가들은 국민당 바깥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당외운동'을 하였으며 이들은 야당 창당과 같은 일을 시도했다. 그러다 1976년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원이었던 쉬신량이 대만 독립과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국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타오위안현장 선거에 출마하는 일이 발생했다.

쉬신량은 객가어로 선거운동을 하고 공공연히 대만 독립을 주장하였는데 이에 경악한 국민당은 부정선거를 벌였다. 타오위안의 투표소에 군경을 배치하고 가짜 투표용지를 미리 준비하는 등 3.15 부정선거 뺨치는 행위에 시민들이 분노하여 거리로 나갔고 2.28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인 중리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대며 진압을 시도했지만 시위대에 의해 저지선이 붕괴되는 등 시위는 격화되었으며 이번에도 대학생 등을 포함한 인명피해를 냈다. 결국 부정선거에 의한 표들을 무효표로 처리하면서 쉬신량은 현장에 당선되었고 이후 대만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2.2.2. 민주진보당 창당

급진적인 성향의 민주운동가들이 '메이리다오'라는 잡지사를 만들고 시위를 시도했으나 국민당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당하고 관련자들이 줄줄이 감방에 들어가는 메이리다오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대만 민주화 세력들에게 구심점이 되었고 이들은 대만 독립과 민주화라는 자신들의 성향을 대변하는 정당을 창당 하고자 했다. 그리고 1986년 타이베이의 그랜드 호텔에서 파티를 가장하여 훗날 대만의 주요 정당이 되는 민주진보당 창당을 거행했다.

당시 창당 행위는 불법이라 바로 잡혀들어갈 수도 있었고 당연히 국민당에서는 이들을 전부 잡아넣어야 한다고 날뛰었지만 장제스에 비하면 온건했던 장징궈는 민주진보당을 묵인해 비 합법 정당으로나마 민주화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민주진보당은 이후 대만 야권의 중심점이 되면서 민주화에 큰 힘이 되었다.

2.2.3. 계엄령 해제

파일:대만 계엄령 해제.jpg

장징궈는 독재자이긴 했으나 장제스보다는 훨씬 온건한 편이었으며 말년에는 아예 헌법에 입각한 후계자 선출이러던가 야당 창당을 허용한다거나 스스로 대만인이기도 하다는 등의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987년 마침내 타이완섬에 대한 대만 계엄령을 해제하면서[3] 비록 전면적인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대만은 민주화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2.3. 리덩후이 시대

2.3.1. 영정혁명

파일:external/www.taiwantt.org.tw/20130916-05.jpg
1995년 정부의 첫 2.28 사건 공식 추도행사에 참석한 리덩후이 당시 총통

장징궈가 임기 중 사망하자 그의 발언대로 헌법에 따라 당시 부총통이었던 리덩후이가 총통직에 올랐다. 국민당 소속이기는 했으나[4] 상당히 개혁적이었던 그는 국민당 강경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징궈보다도 훨씬 전향적인 행보를 보였다. 물론 총통이 국민당이 장악한 국민대회에서 간선제로 뽑히던 당시에는 권한대행 시기였던 만큼 눈치를 보면서 반공을 표방하고 사회운동들을 찍어눌렀으나 정식으로 총통으로 당선되자 당내의 반대를 씹고 완전한 대만 민주화를 추진했다.

가장 먼저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을 폐지하고 지하정당이었던 민주진보당을 합법화했다. 그리고 국부천대를 이유로 재선거가 무한히 연기되어 종신국회였던 국민대회와 입법원을 전격 해산시켜[5]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를 치루었다.[6] 이후 국민당 보수파들을 공직과 당직에서 대거 해임하면서 당내의 반대파들은 실권을 잃거나 신당으로 분당하면서 자신에게 반대할 사람이 없어지자 총통 직선제를 도입하고 타이완성 정부 허급화 및 지방자치 실시를 행했다. 1995년에는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2.28 사건의 실체를 언급하면서 사과와 배상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나의 중국을 파기하려고 간을 본다거나 대만 독립의 구실을 줄 만한 발언을 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면서 제3차 대만 해협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리덩후이 집권 시기 대만은 무력충돌 없이 위로부터 조용히 차근차근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는 의미에서 영정혁명(寧靜革命)이라고 부르게 된다.

2.3.2. 총통직선제와 정권교체

리덩후이 하에서 이루어진 민주화는 이후 제10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에서 야당이었던 민주진보당천수이볜이 총통으로 당선되어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되어 결실을 맺었다. 이후 대만은 천수이볜(민주진보당) -> 마잉주(중국국민당) -> 차이잉원(민주진보당)의 2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달성하면서 확고히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게 된다.

3. 결과

3.1. 정치적 측면

현재 대만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대만의 민주주의 지수는 2021년 기준으로 세계 8위로 웬만한 서구 선진국보다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언론자유지수와 부패인식지수도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3.2. 외교적 측면

외교적으로도 대만이 경제적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선진국으로 평가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논란에 대한 반발로 서구의 지원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부분적으로 우위를 점하며 일부 남아 있는 수교국들과의 관계 유지에도[7]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대만이 민주국가가 되면서 서방, 특히 미국의 지원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4. 타국과의 비교

4.1. 대한민국

대한민국과는 오랜 기간 독재를 겪었으나 덕분에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내기도 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가 이루어졌고[8] 특수한 국가 상황, 양당제인 정치적 상황 등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 민주화 운동은 지속적인 투쟁에 결국 독재세력이 항복하고 타협하면서 이루어진 반면 대만의 경우 비록 투쟁을 하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 리덩후이 등에 의해 '위에서부터의 민주화'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르다. 이 점은 대만 민주화 세력이 크게 아쉬워하는 점 중 하나다.[9]

4.2. 중화인민공화국

같은 중화권인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 문화대혁명 이후 1980년대에 개혁의 바람이 불었고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 발발하기도 했으나 중국공산당중국국민당보다 훨씬 억압적이었고 시위에 온건적인 인물들도 숙청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이후 중국공산당에 의한 경제개발과 철저한 감시로 인해 현재 홍콩을 제외한 대륙 본토에서의 민주화 운동은 씨가 마른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화 운동/중화인민공화국 문서 참조.

5. 주요 사건


[1] 난방공화국 등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2] 현재 대만의 중도주의 정당인 대만민중당과는 이름만 같다.[3] 다만 전방지역인 푸젠성은 1992년까지 유지되었다.[4] 그가 임기 중이나 은퇴 후 보인 행보를 보면 사실상 당시 정치적으로 출세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국민당원이 된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5] 당시 입법, 국민대회 의원들은 해산 당시 거액의 퇴직금과 연금을 요구하는 추태를 부렸는데 결국 리덩후이와 민주진보당 그리고 여론의 압박으로 전면재선거가 시행된다.[6] 이전까지 대만에 선거는 종신의원들이 사망하면 보충하는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밖에 없었고 이마저도 국민당과 관제야당, 무소속만 출마할 수 있었다.[7] 대표적으로 바티칸[8] 한국은 1987년, 대만은 1991년[9] 민주진보당의 일부 강경파들은 리덩후이가 자신들의 업적을 가로챘다며 분개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