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러시아계 호주인(russian Austrailians)은 러시아에 기원을 둔 호주인이다. 호주인 중 러시아 혹은 소련에서 출생한 인구는 18,278명이며2011년 통계 기준 자가응답으로 조상 중 러시아인이나 러시아 출신이 있다고 대답한 경우는 98,110명이었다.2021년 통계 기준2. 이민사
러시아계 호주인들은 대개 적백내전 당시 신장이나 중국 하얼빈시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상하이시를 거쳐서 호주로 망명한 사람들의 후손이다.[1] 러시아인들의 호주 망명은 1937년 상하이마저 일본군에게 점령당하면서 수년간 중지되었었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끝나고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상하이 내 러시아인들은 굴라크에 끌려갈 위기에 처하고 이들을 받아준 것이 호주였다. 당시 호주는 백호주의 외교 정책을 펴며 아시아 대륙 방면에서의 이민은 이유와 인종을 불문하고 막았으나,[2] 상술한 것처럼 미국의 러시아 정교회 측에서[3] 호주 정부에 탄원을 넣을 것을 계기로 상당수의 러시아 난민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4]21세기 들어서 푸틴 정권의 독재를 피하기 위해 러시아인들이 망명한다든지 아니면 러시아계 미국인, 러시아계 캐나다인들이 다시 호주로 이민한다든지 같은 경우도 있다.
3. 유명 인물
- 니콜라이 니콜래프
- 닉 테이트
-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 포노소프 - 하얼빈의 러시아인 난민 출신으로 발해 유적을 발굴한 학자. 1960년대까지 중국에서 발해사를 연구한 이후 호주로 이민하였다.#1#2
- 아나스타시야 로디오노바
- 아엘리타 앤드리
- 윌 트러밸
- 알렉산더 파리긴
-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
4. 관련 항목
[1] 당시 상하이시는 중국과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역사 덕분에, 무일푼으로 망명 온 러시아인들에게 이런저런 일자리가 있었다. 서구인들의 상전 노릇에 질렸던 상하이 시민들 사이에서는 보상 심리로 러시아인 여성들을 무희나 하인으로 부리며 푼돈을 주는 일이 유행했으며, 운이 좋으면 음악인이나 프랑스어 교사 같은 괜찮을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한동안은 하얼빈시에도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이 남아있었으나 중일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하얼빈시에 러시아인들은 1936년 들어선 일본군의 생체실험장 731 부대에 끌려가는 경우가 발생했으며, 신장에서는 친소 성향 군벌 성스차이가 집권하면서 백군 난민들이 소련군 측에 강제 징집당하는 경우가 늘어났다.[2] 심지어 레바논의 백인 기독교인들의 이민조차 막았다.[3] #[4]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백군 난민들 중 소련 여권을 받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중화민국 측 역시 자국 영토 내 러시아인들을 자국민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이들은 무국적자 상태에서 난센 여권만 들고 있던 상태였고, 법적으로 아시아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