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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어: Latvijas krievi
러시아어: Русские в Латвии (Русские)
1. 개요
2011년 기준 라트비아 내 동슬라브계 민족(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비중. 수도 리가 주변과 동부 라트갈레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걸 알 수 있다. 편의상 라트비아 내 거주하는 러시아인 외에도 우크라이나계와 벨라루스계도 포함해서 지칭하는 편이다. 이들도 주로 소통할 때 라트비아어보다는 러시아어를 쓰고 라트비아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
주로 오늘날 라트비아에 남은 동유럽 출신 무국적 상태에 처한 사람들에 관한 문서이다. 인구는 1989년 당시에는 라트비아 전체 인구의 34%인 90만명에 육박했지만 라트비아 독립 이후로 저출산과 해외이주로 인해 라트비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어 2022년 기준으로 45만명으로 절반, 총 인구의 24%로 줄어들었고, 에스토니아에 비해 러시아인들의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며 라트비아의 인구 통계를 보면 라트비아인의 출산율은 1명대 후반~2명대 초반 정도이지만, 러시아인들은 출산율이 1명대 초반 이하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2. 현황
라트비아 내에 러시아인이 많아서 사회 갈등이 큰데, 이 사람들이 라트비아어도 배우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 따로 무리 지어 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구 비율도 높아서(인구의 1/4를 차지한다) 최근까지도 수도 리가에 토종 라트비아인보다 러시아인 수가 더 많았다. 라트비아에서 왠지 러시아어처럼 들리면, 그냥 러시아어다.러시아계 라트비아인 중에서는 풍요와 자유를 기대하며 라트비아 독립에 찬성했던 사람들도 있는데,[1] 독립 이후 라트비아가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비라트비아인 대다수에게 라트비아어 시험에 통과하지 않으면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았고,[2] 이것이 상당수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라트비아에 정착한 지 오래되거나 라트비아에서 태어나서 뿌리 박은 사람들도 많았고, 러시아가 라트비아보다 치안과 경제사정이 나빴기 때문에 러시아로 되돌아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라 라트비아에 그냥 남는 경우도 있었다.
비시민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공무원 및 일부 직업에 종사할 수 없고, 주민 투표나 선거에 투표권이 없으며, 일반 여권이 아닌 비시민용 여권이 따로 나온다.[3] 많은 나라에서 이 여권을 라트비아 여권과는 다른 무언가로 취급하지만, 유럽 연합으로 갈 때에는 라트비아 여권과 사실상 동일하며[4], 라트비아 여권으로는 불가능한 러시아 무비자가 이 여권으로는 가능하다. 이것도 많은 러시아계가 비시민 상태로 남아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3. 역사
1897년 러시아 제국 시절 인구조사 당시 라트비아에 거주하는 인구 중 68.3%는 라트비아인, 12.1%는 러시아인으로 나왔다. 당시 라트비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인구는 234.000여 명 정도에 달했다. 당시 라트비아의 러시아인들은 제국 정부에서 파견한 관료나 군 사령관, 무역상 같은 상류층 외에도 고의식파 농민이나 공장지대 빈민 노동자 등 다양한 구성을 보였다.제1차 세계 대전 와중에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 혁명으로 붕괴되고, 독일군의 진주 이후 독일이 연합군 측에 항복하면서 발트 3국은 독립을 쟁취하였다. 라트비아는 독립 당시 반독 감정이 강했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러시아인에 대해 관용적인 정책을 취하던 편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 출신 관료들이나 상인들이 실업자나 난민이 되는 과정에서 러시아인들의 사회적 입지가 약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전간기 당시 라트비아의 러시아인들은 거의 대부분 가난한 농민이나 어민, 공장 노동자로 라트비아의 여타 소수민족 집단에 비해 소득 및 교육 수준이 낮은 편에 속했고, 정치적으로도 그리 활동적이지 않았다. 또한 이 당시 러시아계 사회를 주도했던 인사들 상당수가 러시아가 공산화되면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나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반공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상당했었고,[5]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이 라트비아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반소정서가 강했던데다가 도시빈민층의 수가 적었던지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6] 그러다가 2차대전 종전 이후 소련에 점령되어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의 구성국이 되었다. 그렇지만 현지에 살던 러시아인들은 소련의 라트비아 병합에 대해서 환영일색은 아니었고, 여론이 엇갈리던 편이었는데 그에 걸맞게 소련의 라트비아 점령에 비토를 토하던 정교회 성직자와 언론인들을 비롯한 반공성향 인사들이 대거 시베리아로 끌려가거나 처형을 당했다.
소련이 라트비아를 점령한 이후, 라트비아는 1991년 독립을 되찾을 때까지 소련 정부로부터 독립운동을 탄압받았고, 이 때문에 라트비아인들은 소련 점령 이후 라트비아로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을 사실상 모스크바에서 식민통치를 위해 이주시킨 앞잡이라고 느꼈다. 실제 소련 시절 각지에서 이주해온 여러 이주민들은 라트비아어를 배우거나, 라트비아 문화를 접하기 보다는 기존 생활방식을 고수했고, 특히 라트비아 독립 과정에서 친소시위를 벌이면서 라트비아 독립을 방해하려 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1991년 다시 독립국가가 되었을 때 라트비아 정부는 1940년 제1공화국 시절 국적법을 복원시켜, 라트비아 국적을 오직 가족이나 친인척이 점령 이전부터 살아온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한정했으며, 이외 라트비아에 거주하는 인구에게는 정식 귀화 절차를 거쳐 새로 국적을 취득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라트비아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인구 중, 라트비아 법에 따라 귀화를 거치지 않은 채 거주하는 인구를 비시민(Non-citizen)와 같은 일종의 영주권자로 간주했다. 이에 라트비아계 러시아인들 중에서는 소련 붕괴 이후 전반적인 상황을 감안하여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 본국으로 귀국하거나 타국으로 이민가는 경우가 많았다.
- 라트비아 정부의 러시아어 수업 폐쇄, 축소 정책에 항의하는 라트비아 내 러시아인들
1991년 라트비아 독립 이후 러시아계 라트비아인들은 라트비아 정부 및 라트비아인들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러시아계 인구는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해달라며 라트비아 정부와 갈등을 빚었고,## 2012년에 라트비아에서는 라트비아의 공용어에 러시아어를 추가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부결되면서, 라트비아의 유일한 법적 공용어는 라트비아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언어 사용에 대해서 라트비아 정부가 2021년부터 16살부터 18살까지 고등교육과정을 라트비아어로만 가르치도록 하자 라트비아 내 러시아인들은 반발하기도 했다.###(러시아어) 여기에 러시아는 라트비아에서 영향력 행사를 위해 언어 문제 및 정체성 문제로 러시아계 인구로 하여금 피해의식을 자극하면서 소요를 선동했고, 당연히 라트비아인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옛날 러시아 및 소련 시절 지배당했던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상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반러 감정이 강화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국가적으로 라트비아 정체성을 추진하는 정책이 강화되어 왔다.
이렇게 러시아계 라트비아인들은 독립 후 한동안 라트비아 및 라트비아인들과 갈등을 빚었지만,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련 시절 이주한 1세대들이 감소하고 독립 후 태어나거나 교육받은 2, 3세대들이 점차 사회에 진출하면서 이전 시대에 비하면 점차 갈등이 감소하는 추세다. 비시민 숫자도 1991년 715,000명[7]에서 2022년 195,159명[8]으로 감소했으며, 라트비아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을 경우 이전 세대에 비하면 국적 취득율이 훨씬 증가했다.
라트비아의 러시아인들은 에스토니아의 러시아인들보다 나쁜 생활환경을 지녔다고 평가되는데, 이는 러시아인들의 높은 알코울 중독률에 따른 낮은 평균수명에다가 저소득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고, 라트비아어를 새로히 배워야하는 환경에 처한 러시아계 장노년층들이 소외를 받는 정도가 타 공화국에 비해 강하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영향이라고 분석된다.
소련 시절 러시아인들이 라트비아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소련식 아파트들이 대거 건설되었는데 이 때문에 라트비아인들은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사람 러시아인들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 같은 스테레오타입도 생겼었다. 라트비아인들이야 어차피 인구증가율도 높지않았기에 아파트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져서 기존에 살고있던 단독주택에서 계속 살았지만 러시아인들은 이주민이니 아파트를 배급받아 사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련 해체로 인한 혼란을 기점으로 현재는 단독주택에 사는 러시아계 라트비아인과 아파트에 사는 라트비아인도 많아졌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이 동족인 러시아군에게 대거 학살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라트비아인들이 러시아계 인구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상황이 되면서 러시아계 라트비아인 인구가 앞장서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보호, 수용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라트비아로 망명한 우크라이나인 난민들 상당수가 러시아계 라트비아인들이 운영하는 기업에서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인 난민들이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계 기업에서 일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인들 대부분이 러시아어는 할 줄 알고 라트비아어는 모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일자리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
4. 여담
라트비아 내 러시아어 사용자들이 다 무국적자인 것도 아니고, 러시아계나 우크라이나계 인구 역시 법률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라트비아의 대형 로펌이나 변호사 사무소에는 라트비아어 구사자와 러시아어 구사자(경우에 따라서는 우크라이나어 구사자 포함)를 동시에 다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예시5. 관련 문서
6. 외부 링크
[1]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의 발트 3국에서 주거하던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독립반대가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했던것은 아니었다. 오랜 경기침체를 해결한 요인으로 독립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러시아인들도 의외로 생각보다 많았다.[2] 라트비아 독립 당시에 라트비아인들의 비율은 53% 내외정도였다. 사실 비슷한 사정이었던,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의 경우에는 자체 출산율이 높아서 시민권을 다 부여해도 수십년뒤면 자연적으로 자민족들이 대다수를 차지할테니하면서 걱정이 없던것과는 달리 라트비아인들의 출산율이 낮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라트비아인들의 비율이 압도적인 우위로 변할 가능성이 적었다. 하지만 라트비아에 정착하던 비라트비아인들은 하루아침에 공민권도 행사를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이에 에스토니아를 제외한 타 구소련권 공화국들도 국적을 주는데 왜 자기만 예외대상이라고 항의하면서 라트비아 국적을 달라고 요구했는데, 이것이 사회갈등 요인이 된것이다.[3] 그러니까 일본으로 치면 특별영주자와 대강 비슷한 신분이라고 보면 된다.[4] 솅겐 지역 무비자 입국이 가능. 그러나 일반 라트비아인과 같은 이동의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솅겐 지역 입국 한국인과 동일한 대우)[5] 예를 들면 1919~1940년에 걸쳐 발행된 일간지이자 소련밖에서 발행된 러시아어 일간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신문사로 손꼽히던 세드고냐는 라트비아에서 발간되던 신문이었는데 자유주의적인 논조를 지님과 동시에 반소적인 논조를 지녔던 신문사였다. 당연히 1940년에 소련군이 라트비아를 병합한 뒤에 폐간되었다. 신문 소유주는 미국으로 가까스로 빠져나갔지만 남아있던 임직원들은 상당수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처형당하는 운명을 맞이했다.[6] 라트비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라트비아 제1공화국 내내 제1당 자리를 차지했지만 집권한 시기가 짧았다. 라트비아 공산당은 선거에 출마했지만 세력이 크지 못할뿐더러, 타 정당의 보이콧으로 의원 선출만 되었을뿐, 등록이 불가능해 사실상 반쪽짜리 원내정당 신세였다.[7] B. Bowring, Report of a second mission to the Republic of Latvia on behalf of FIDH and Bar of England and Wales, September 14, 2015, HRC, 1994, p. 16.[8] (출처) Latvijas iedzīvotāju sadalījums pēc valstiskās piederības, 202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