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03:00:39

황제내경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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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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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황제내경
Yellow Emperor’s Inner Canon /
Le canon interne de l'Empereur Jaune
국가·소장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국립도서관
등재유형 기록유산
등재연도 2011년

파일:황제내경.jpg

1. 개요2. 의의3.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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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Huangdi Neijing

한나라에 성립된 한의학의 원전[1]. 황제내경 소문(素問) 81편, 황제내경 영추(靈樞)[2] 81편으로 나뉘어 있으며 한의학 이론의 기초가 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소문'은 인체의 생리와 병리, 진단, 치료원칙, 약물, 예방, 의학사상 등 기본적인 의학이론과 임상을 총괄하고 있고, '영추'는 경락과 침구[3]위주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중국한의학 서적. 삼황오제의 한 명, 황제(黃帝)의 이름을 빌렸으며 당연히 황제 본인이 저술한 것은 아니다. 전승과정이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저작으로 보진 않는 견해가 정설로 여겨진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중국 신화 속 임금인 황제 헌원씨가 신하 겸 의사인 기백(岐伯), 뇌공(雷公), 백고(伯高), 소유(少兪), 소사(少師), 귀유구(鬼臾區) 등 6명과 나눈 문답 형식 또는 논술 형식으로 쓰였다.

'황제내경 태소(太素)[4]'라는 서적이 청나라 말기 일본에서 재발견되어 중국으로 역수입되어 비교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 '태소'는 송나라 시대 교정의서국의 교정을 거치기 전의 판본이라 교정의서국의 교정 이전 원형으로서의 황제내경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판본으로서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 발견된 태소는 수나라 시대의 황제내경을 근거로 하여 재편집된 문헌이고, 송대 교정의서국의 교정을 거친 현행 황제내경과는 상이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문헌학적으로나 의학사 및 의학철학의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귀중한 문헌이다. 또한 송대 교정의서국 정본이라는 의경들이 송대 이전에 간행된 의경들과는 일부분이 다르다는 점에서 문헌학적으로 상당한 흥미거리를 제공한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은 모두 나라 시대에 왕빙(王氷)이 주석을 단 물건을 기초로 하고 있다.[5] 성립연대가 고대인지라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기보다 내용을 어떻게든 압축해서 암호처럼 만들어낸 물건이고, 그나마도 기존의 구성을 왕빙이 뜯어고치고 주석을 붙여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냈으니 따지고보면 원형과는 거리가 먼 셈. 특히 운기학을 다룬 7개 편을 가리키는 운기칠편은 왕빙의 자작이라고 한다.

사실 의학서이기는 한데 의학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역학, 운기학(기상학과 다름),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이르므로 의학서가 아니라 과학서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 의의

이 물건의 가치는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하던 한의학 이론을 일차적으로 끌어모아 재편성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한의학적 질병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것과 더불어 현대 경락학설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것에 있다. 전한 초의 고분 마왕퇴에서 출토된 고의서들 중에서 일부는 12경맥이 아닌 11경맥으로 인체의 경맥을 규정했다.

가끔 원전빠들이 '황제내경은 완벽한 서적이라능 하악하악'하는 일도 있지만 당연히 그럴 리 없고 수많은 주석가들이 바보도 아니다. 황제내경은 어디까지나 한의학의 원형을 제시한 것에 가치가 있다. 명말의 장경악은 내경 안에 여기저기 조금씩 나오는 생리 병리 경맥 장부 등의 내용을 골라서 주제별로 합치고 주석을 단 유경(類經)이라는 서적을 저술했다.

아직도 심심하면 내경 뒤적거려서 적당히 간추리면 그럴싸한 이론이 나오기 때문에 한의학의 영원한 밥줄 역할도 한다. 내경에서 틀릴 만한 내용이 나오면 동의보감처럼 까일 텐데 그런 적은 또 없다

3. 그 외

대한제국 광무 8년(1904년)에 유의 석곡 이규준(李圭晙)(1855~1923)이 황제내경 81편 중 중요한 부분만 간추려 25편으로 편집한 뒤 광무10년(1906년)에 '황제소문대요(黃帝素問大要)'란 이름으로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황제내명 소문의 선명오기편(宣明五氣篇)에 오래 누워 있는 것은 기(氣)를 상하게 하고,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육(肉)을 상하게 하며, 오래 보는 것은 혈(血)을 상하게 한다고 하며, 오래 서 있는 것은 골(骨)을 상하게 하고, 오래 걷는 것은 근(筋)을 상하게 하고, 지나친 포식은 비장을 손상시키고, 과도한 노여움은 기운을 역류시켜 간을 상하게 하고, 용써서 무거운 것을 들거나 습한 곳에 오래 앉아 있으면 신이 망가지며, 추운 곳에 있거나 찬 음료를 마시면 폐가 상하며, 비바람과 추위 및 더위는 육신을 망가끄리고, 두려움과 절제 없는 행동은 뜻을 꺾으며, 육신을 힘들게 하고 뜻을 손상하면 정신이 무너진다는 내용이 있다. 건강 유지의 관점에서 보면 편안하게 누워도 너무 오래 누워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고 과도한 노동과 과도한 스트레스의 해로움을 설명하는 지극히 당연하고 중요한 내용을 양생(養生)의 기본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의서로 언급되는 책이기도 하다.

김용의 소설 비호외전의 히로인 정영소의 이름을 영추(靈樞)와 소문(素問)에서 한글자씩 따와서 지어졌다.


[1] 대체로 전국시대에서 진한시기로 추정된다[2] 원래는 침경(鍼經)이었으나 당나라 이후의 本에는 영추로 이름이 바뀌었다.[3] 침과 뜸[4] 수,당 나라 때 사람인 양상선이 내경과 소문에 주를 달고 해설한 책을 편찬하면서 '태소'라고 이름 붙였다는 기록만 전해져 오고 실제 책은 없어졌다가 1835년 일본 교또의 인화사(仁和寺)에서 재발견되었다.[5] 왕빙의 주석본은 황제내경소문뿐이다. 황제내경영추는 북송시대에 설치된 교정의서국이 기존의 의서의 여러 판본들을 모아 하나의 정본(正本)으로 만드는 작업을 할 때 중국 내에서는 제대로 된 영추본을 찾을 수 없었으나, 고려에서 발견된 영추본을 토대로 해서 현행 황제내경영추로 정리했다. 영추를 헌상한 고려가 챙긴 것은 책부원귀(冊府元龜) 전질로서 소동파가 책부원귀를 고려에게 줌을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CCTV가 제작한 황제내경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