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30 23:54:35

장쑤성


파일:중국 국기.png 중국의 제1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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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행정 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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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苏省
장쑤성 | Jiāngsū Shě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0px-China_Jiangsu.svg.png

청사 소재지 난징시
국가 중화인민공화국
지역 화둥
면적 102,658km²
하위 행정구역 13 지급시, 55 시할구, 21 현급시, 20 현
인구 78,650,000명
인구밀도 755명/km²
시간대 UTC+8
한국과 시차 1시간
서기 우정룽(吴政隆)
성장 러우친젠(娄勤俭)
HDI 0.795(2017)
GRDP $1조 3,992억 7,200만(2018)
1인당 GRDP $17,404(2018)
행정구역 한자 약칭
ISO 3166-2 CN-JS

장쑤 성/강소성
Jiangsu Province
江蘇省
江苏省

1. 개요2. 지리3. 산업과 교통4. 역사5. 요리6. 출신인물
6.1. 고대, 중세6.2. 근대, 현대

1. 개요

장쑤성(강소성, 江蘇省)
중국의 행정구역. 약칭은 소(蘇)[1] 혹은 (吳). 성도는 난징(南京) 시[2] 성의 인구는 약 7,900만 명이다. 북쪽으로 산둥 성, 서쪽으로 안후이 성, 남쪽으로 저장 성상하이 직할시와 접하고 있다. 성 이름의 의미는 한국의 도(행정구역)들 이름 지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이 지역의 역사적 중심도시인 장닝(江寧/강녕. 난징의 옛 이름 중 하나)과 쑤저우(蘇州/소주)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저장성, 상하이와 함께 중국 강남(江南)지역의 대표격으로 중국 내 GDP 최상위권인 지역이다.

2. 지리

중국 영토의 1.1%인 약 10만㎢[3]를 차지하고 있어 전체 중국에서 보면 면적이 아주 작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 작은 땅의 대부분이 비옥한 퇴적층이기 때문에 실로 넓고 아름다운 평야를 지니고 있어서 잠재력이 아주 높은 땅이다. 장쑤 성에서는 이라 할만한 것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온통 평야만 가득하다. 그래서 인구밀도도 상당히 높고 (750명/㎢, 중국 평균 140명의 5.4배), 사실 중국의 어느 성보다도 높은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성'이 아닌 직할시 중에서는 더 높은 곳이 3개 있지만(상하이, 베이징, 톈진).

화이허(淮河) 강이 성의 중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화이허는 황하양쯔강포스에 밀려 존재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아주 많고 자잘한 지류를 만들면서 엄청난 양의 퇴적토를 쌓아 왔다. 때문에 장쑤성의 지도를 보면 물줄기와 호수, 늪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양제가 쌓은 대운하에 힘입어 수운 교통이 발달했다. 남쪽에는 양쯔강이 흘러 상하이 직할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양쯔강의 삼각주인 충밍다오(崇明岛)는 상하이 소속...이지만 지도를 보면 어째 장쑤에 소속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양쯔강 너머에도 작지만 장쑤 성 관할 구역이 있는데 이 곳에도 난징 등 굵직한 도시들이 많다.

온갖 강이 흐르다보니 장쑤 성의 해안은 온통 갯벌로 가득하다. 바위 해안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300km가 넘는 해안선이 거의 굴곡도 섬도 없는 간석지로만 차 있다. 또한 위성사진으로 보면 크고 아름다운 염전들이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주요 도시로는 성도인 난징을 비롯해 우시, 쑤저우, 롄윈강, 옌청, 쉬저우, 창저우, 화이안, 난퉁 등이 있다.

3. 산업과 교통

농업은 농사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온통 평야뿐인 지자체다 보니 엄청난 생산력을 자랑한다. 반대로 지하자원은 상당히 빈약하다. 광업도 거의 불모지에 가깝다. 뭔 산이 있어야 채굴을 하지 다만 해안에 접해 있다는 이점으로 인해 롄윈강 등의 대도시는 상당히 산업이 발달해 있다. 하지만 워낙 굴곡 없고 갯벌뿐인 해안이 많아서 대부분의 해안가는 그저 평범한 농어촌만 드문드문 있는 정도이다. 사실 롄윈강 이외에는 딱히 해안 도시라 할 만한 곳도 없다. 다만 바다 없이도 난징이나 쑤저우 같은 내륙의 대도시들이 상당히 발전한 편이다.

베이징상하이를 잇는 인프라가 이 곳을 지나가므로 교통 면에서도 상당히 중요하다. 다만 장쑤성의 경우 해안보다는 내륙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고대부터 정비된 수운 교통은 중국에서 가장 잘 정비되어 있지만 현대에는 중요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해운 교통은 위에서 말했듯이 롄윈강 말고는 진짜, 별 볼 일 없다. 그저 중국 어민의 전진기지일 뿐. 참고로 인천에는 롄윈강으로 가는 배편이 있다. 보통은 한국 한자음식 '연운항'이라고 써져 있다.

장쑤 요리는 상하이 요리, 난징 요리라고도 불리며, 중국 내에서 가장 비싼 편이지만, 또 그만큼 인기도 높다. 담담하고 약간 단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옌청시에 기아자동차 중국공장이 자리하고 있다.(동풍열달 기아차) 거기에 따라 모비스 등의 협력업체들도 대거 입주해 있는 상태. 과거 염전지대였던 옌청시는 천지개벽급의 변화를 해서 2016년 현재 인구 820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옌청시에서는 관용차를 기아차로만 쓰고 있고, 도로표지판을 한글병기로 바꾸는 등 기아자동차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보이고 있다. 옌청시 외곽에 있는 공군기지 역시 기아자동차 및 협력사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서 국제공항[4]으로 개조되었다.

4. 역사

지금이야 생산력 좋은 비옥한 땅이지만 배수와 치수작업이 완벽하지 않던 오래 전에는 그저 습기찬 늪지대에 가까운 곳이어서 더군다나 온갖 벌레가 들끓고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질병 발생률도 너무 높아서 사람이 살기에는 영 좋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발달되지 않은 변방이었고 춘추전국시대 초창기에는 회이(淮夷)라는 이민족이 터를 잡고 살았다. 회이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중국에 빠르게 흡수되었다. 그래도 개발은 덜 됐지만 드넓고 잠재력이 있던 땅이었기에 춘추전국시대 오나라합려는 이곳에서 힘을 키워 남방의 강국 초나라의 수도를 점령했고 그 아들 부차대에 춘추오패에 등극했다.

진시황의 통일 이후에도 그다지 좋은 대접은 받지 못했다. 물론 지금의 난징이 위치한 곳은 산업 중심지로 차츰차츰 커 갔지만 양쯔강 이북 지역은 아직도 불모지에 불과했다. 한나라 때는 강 이북은 도겸이 다스리던 그 서주, 강 남쪽은 손책이 자리잡은 양주였다. 특히 손권오나라의 수도를 이곳 난징에 두고부터 육조시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개발되어간다.

그러다가 수나라의 재통일과 수양제대운하 사업으로 이 곳의 수운 교통이 급격히 개선되고 생산량도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후 장쑤 지역은 곡창지대로 떠올랐고 난징은 점차 경제적 부를 쌓아 남송 시대에 이르러서는 화북의 경제력을 추월한다.[5]

명나라주원장도 처음 나라를 세울 때 금릉(난징)[6] 을 수도로 삼았다. 명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생산력에 있어선 화북을 한참 추월한 상태였다.[7] 명과 청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베이징을 수도로 삼았으나[8] 당시 중국 산업의 실질적 중심지는 난징을 비롯한 장쑤성 남부 지역과 저장 성 북부 지역이었다. 청나라 순치제 때 강남성(江南省)에서 안후이 성과 강동성(江東省)을 분할했으며 이어 강동성을 강녕(현 남경)과 소주의 이름을 각각 따서 강소성으로 고쳤다. 주원장의 초기 명나라태평천국홍수전도 이곳을 기반으로 삼았다.

중화민국이 건국된 곳으로 한때 북양군벌 펑궈장의 기반이었으나 이후 리춘에게 자리가 넘어갔고 1920년 10월 리춘이 자살한 이후 치셰위안이 강소독군에 임명되어 강소성을 지배했다. 1924년 2차 직봉전쟁 이후 일시적으로 봉천군벌양위팅의 지배를 받았으나 1925년 손봉전쟁 이후 다시 직예군벌쑨촨팡이 지배했다. 1926년 국민당의 1차 북벌 이후 중국 국민당의 손에 들어갔으며 이후 국민정부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1949년 국공내전중화인민공화국에게 점령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 중에 하나는, 기나긴 중국의 과거 제도의 역사 속에서 70% 이상의 장원급제가 이 지역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9] 현재까지도 중국 유명대학의 교수들 중 장쑤성 출신이 많은데, 이러한 전통이 이어진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5. 요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소 요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출신인물

6.1. 고대, 중세

6.2. 근대, 현대


[1] 참고로 이 한자 소자는 소비에트 혹은 소련의 줄임말로도 쓰인다. 중국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이 지역의 줄임말이 하필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약칭과 같은 한자를 쓴다는 것이 아이러니.[2] 중화민국 시대에는 전장(진강 鎭江). 이 시절의 난징은 직할시였다.[3] 남한과 거의 비슷하다[4] 말이 국제공항이지 변변한 면세점도 없고 시설도 시외버스터미널 수준이며 하루에 인천공항으로 오가는 항공편 1편밖에 없다.[5] 난징은 계속 이름이 바뀌었는데, 삼국지로 유명한 건업이 바로 지금의 난징이다. 이후에도 건강, 금릉 등으로 이름이 계속 바뀐다.[6] 남경의 옛 지명은 원래 금릉(金陵)이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가 전국을 순행하던 중 금릉을 둘러보고 왕기가 서린 곳이라고 하여놀라운 육감... 실제로 금릉은 동오 이후 여섯왕조의 수도이자 명나라 초기 30여 년간 수도이다. 금릉이라는 이름을 고쳐 말릉(末陵)이라 하였는데 진대 한대를 거쳐 말릉이라는 이름이 유지되다가 삼국지로 유명한 손권이 다스리던 동오의 도읍이 되면서 건업(建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다시 금릉으로 불리다가 명대 이후 남경으로 바뀌었다.[7] 금나라와 원나라를 거치면서 화북 지역이 상대적으로 매우 피폐해진 것과 무관치 않다.[8] 정난의 변의 주역인 명나라 영락제 주체의 본거지였기도 했고, 사실상 농경민의 영역과 유목민의 영역의 경계 지역이라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기도 했다. 북경을 수도로 한 것은 변방의 군권을 중앙 조정이 장악하기 용이하게 하기위한 측면이 크다. 사족으로 중국 역사적으로 베이징 쪽에 기반한 세력과 난징에 기반한 세력이 다투면 항상 베이징 세력이 승리했다.[9] 명청대의 급제자 수가 이전 시대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명초에는 과거를 실시했더니 금대 원대 이후 피폐하고 거리가 먼(홍무제 시대 명의 수도는 남경 응천부) 북방 출신이 죄다 낙방하고 남방 출신이 과거를 석권하다시피 해서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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