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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Ариккаяа, 阿里海牙, 1227~1286위구르인 출신의 몽골 제국의 장수이다. 남송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서역 북정 출신이다. 시호는 무정(武定)이다.
2. 생애
위구르인 출신의 원나라 장수로 1227년 출생했다. 처음에는 빈민이었으나 군에 투신하여 쿠빌라이 칸을 숙위하였고 이로써 출세하였다.1258년 쿠빌라이의 밑에서 악주를 공격할 때 선봉에 서서 남송군을 공격하였지만 유시에 맞아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싸운 공으로 큰 상을 받는다.
제4차 양양 전투에 참전했다. 유정과 함께 한인 군대를 통솔하여 번성을 도성한 뒤, 1273년에는 양양성을 지키던 여문환에게 항복을 권유하였고 그로 하여금 항복하게 하였다.
그 이후 바얀, 아쥬를 따라 진군하여 남송 무장 하귀가 지키던 양라보[1]를 함락시킨 데 이어 악주를 함락시킨다.
1275년 4월 바얀의 군대가 장강의 흐름을 따라 동진할 때 악주를 지키고 있었다. 이를 틈타 형호 방면에서 고세걸이 세력을 키우자 가거정(賈居貞)[2]으로 하여금 악주를 지키게 한 뒤, 장영실과 함께 후방을 안정시키러 출전한다. 아릭카야는 고세걸을 동정호의 도화탄(桃花滩)까지 추격해 그를 맹공하여 투항시킨 이후 악주(岳州)[3]에 주둔하던 송나라의 장수 맹지소를 항복시킨다.[4]
그 뒤 사마몽구가 지키고 있던 사시진을 도성한 뒤[5], 강릉을 지키던 호북제치부사 고달을 항복시킨다.[6] 이후 경호북로가 모두 원에 투항하였고 아릭카야는 쿠빌라이 칸의 명에 따라 악주를 지킨다.
이후 7월에는 담주[7]에서 이불의 군대가 아릭카야의 군대에 맞서 악전고투하지만 중과부적으로 1276년 정월 담주성은 함락되고, 이불은 자결한다. 처음 아릭카야는 남송 측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군민들을 전부 죽이려고 하였지만 그 수하 최빈과 백아오태화상이 이를 반대하였고 아릭카야는 이에 따른다. 그 뒤 호남에 격문을 돌려 여러 주와 현을 항복시킨다.
1276년 11월, 군대를 이끌고 광서로 진입하였고 이후 정강으로 진격하여 세조의 조서를 가지고 투항을 권하였지만 수장 마기는 분조참사하여 단호히 저항하였고, 원나라의 군대는 정강을 30여일 만에 점령하여 도성을 명하였고, 포로 마기 등 남송의 관원들을 죽였다. 이후 아릭카야는 빼앗은 주군에 병력을 남겨 지키게 하고, 본인은 담주로 돌아갔다.
1284년 교지 원정에 참전한다.
1286년 사망하였으며 이후 초국공에 추봉되었고, 1348년 강릉왕(江陵王)에 추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