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2 20:57:54

허형

진서(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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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許亨
(517 ~ 570)

자는 형도(亨道)로 고양군(高陽郡) 신성현(新城縣) 출신. 허선심의 아버지.

2. 생애

허형은 어린 시절에 가업을 전수받았으며, 성품이 단정했고 절조가 있었다. 또한 허형은 여러 책을 읽었고 전대의 고사에 대해 상세히 알았으며, 유지린이 특히 허형을 중시하였다. 허형은 안동왕(安東王)의 행참군(行參軍)을 지냈고 태학박사(太學博士)를 겸임했으며, 평서부(平西府) 기실참군(記室參軍)으로 제수되었다. 태청(太淸) 연간 초에 정서부(征西府) 중기실(中記室)이 되었고 태상승(太常丞)을 겸임하였다.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자 허형은 영주(郢州)로 달아났는데, 이때 소릉왕(邵陵王) 소윤이 동쪽에서 왔을 때 만나서 소윤의 자의참군(諮議參軍)이 되었다. 후에 왕승변이 영주(郢州)를 습격할 때 허형의 명성에 대해서 듣고 의동종사중랑(儀同從事中郞)으로 삼았다. 허형은 뒤에 태위부 종사중랑으로 옮겼고 심형(沈炯)과 함께 장서기(掌書記)를 맡았으며, 정무를 모두 위임받았다. 진안왕(晉安王) 소방지의 승제 하에서 허형은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으로 제수되었다.

557년, 진패선이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오른 뒤 허형은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제수되고 우림감(羽林監)을 겸임하였으며, 이후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전임되고 대저작(大著作)을 겸임하며 양사(梁史)를 편찬하였다. 555년, 왕승변이 죽은 뒤 왕승변과 아들 왕위(王頠)의 시신은 방산(方山)에 매장되었는데, 여기에 대해 굳이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허형은 자신이 왕승변의 옛 속관이었기 때문에 왕승변의 장례를 치를 것을 주청했고 서릉, 장종, 공환 등과 함께 집안의 재산으로 장례용품을 마련하고 왕승변의 장례를 다시 지냈다.

567년, 안성왕(安成王) 진욱이 정사를 보좌할 때 허형의 정직한 성품과 허형이 지닌 옛 사람의 풍격을 마음에 들어해서 허형을 매우 존경하여 스승의 예로 모셨다. 이후 도중거가 안성왕 진욱을 조정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자 모희가 도중거의 음모를 알렸다. 진욱이 허형에게 의견을 물으니 허형은 조칙을 받들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568년, 진욱이 진백종을 폐위하고 제위에 오른 뒤 허형은 위위경(衛尉卿)에 임명되었고 이듬해인 570년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