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13:19:23

주문육


진서(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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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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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0275d><colcolor=#fff> 수창충민공(壽昌忠愍公)
周文育 | 주문육
시호 충민(忠愍)
작위 동천현후(東遷縣侯) → 남이현후(南移縣侯)
→ 수창현공(壽昌縣公)
항(項) → 주(周)
이름 맹노(猛奴) → 문육(文育)
경덕(景德)
생몰 509년 ~ 559년
양부 주회(周薈)
출신 신안군(新安郡) 수창현(壽昌縣)
1. 개요2. 생애
2.1. 초기 생애2.2. 반란2.3. 후경의 난2.4. 왕승변 토벌2.5. 소발의 난2.6. 왕림 토벌2.7. 죽음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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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북조시대 남진의 장수로 자는 경덕(景德). 신안군(新安郡) 수창현(壽昌縣) 출신.

2. 생애

2.1. 초기 생애

본래 이름은 항맹노(項猛奴)로 신안군(新安郡) 수창현(壽昌縣) 출신이었다. 항맹노는 11살의 나이에 물 속을 왔다갔다 하면서 몇 리를 헤엄칠 수 있었고 5~6척의 높이를 뛸 수 있는 등 신체 능력이 뛰어났다. 당시 의흥군(義興郡) 양선현(陽羨縣) 출신인 주회(周薈)가 수창현의 포구(浦口)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항맹노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항맹노는 주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친은 연로하시고 집안이 가난하며, 형제자매가 모두 장성했지만 조세와 부역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주회는 항맹노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불쌍히 여겨서 항맹노의 어머니로부터 동의를 받아 자신의 양자로 길렀으며, 항맹노는 주회의 성을 따라 성을 주씨로 고쳤다.

이후 주회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주맹노는 주회를 따라 건강으로 향했다. 주회는 태자첨사 주사를 만나 이름을 지어주길 청했고, 주사는 주맹노에게 문육이라는 이름과 경덕이라는 자를 지어주었으며, 조카인 주홍양(周弘讓)에게 주문육의 공부를 시켰다. 주홍양은 예서에 능해서 채옹의 권학(勸學)과 옛 시문을 베껴서 주문육에게 가르치려고 했지만 주문육은 여기에 관심이 없었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이런 것을 배우겠습니까? 부귀를 얻으려면 단지 큰 창만 있으면 됩니다.

주홍양은 주문육의 말을 듣고 주문육을 장하게 여겨서 그에게 기마술과 궁술을 가르쳐주었다.

주회는 사주자사(司州刺史) 진경지와 동향으로 서로 친해서 진경지의 밑에서 보직을 맡았다. 주회는 뒤에 진경지의 명을 받아 500명을 이끌고 현호(懸瓠)로 향하여 백수만(白水蠻)을 위로하려고 했다. 백수만 내부에서는 주회를 붙잡고 북위에 귀순하려고 했지만 이들의 계획이 탄로나면서 주회와 주문육은 백수만과 대치했는데 하루 동안에 수십 합을 겨룰 정도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주문육은 선두에 서서 그 용맹함이 가장 두드러졌으며, 주회가 혼전 속에서 전사하자 주문육은 백수만의 공격을 뚫으며 주회의 시신을 거두었다. 양군의 대치는 저녁이 되면서 서로 철군하면서 종식되었다. 주문육은 몸에 9개의 상처를 입었는데, 상처가 나은 뒤 진경지에게 주회의 고향인 의흥군으로 돌아가서 주회의 장례를 지낼 것을 청했다. 진경지는 주문육을 장하게 여겨서 그에게 후한 선물을 주고 돌려보냈다.

2.2. 반란

주문육은 주회의 장례를 마친 뒤 남강독호(南江督護) 노안흥(盧安興)에게 동행하여 이료(俚獠)를 정벌하였고 전공을 세워서 남해현령(南海縣令)에 제수되었다.

노안흥이 죽은 뒤인 542년, 노안흥의 아들인 노자웅(盧子雄)은 고주자사(高州刺史) 손경(孫冏)과 함께 양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이분을 토벌하고자 출정하였다. 당시 노자웅은 현지의 열대한 기후와 장려(瘴癘)의 창궐로 인해 봄에 이분을 토벌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가을에 토벌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광주자사(廣州刺史) 신유후(新渝侯) 소모가 노자웅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소영 또한 출병을 재촉했기 때문에 노자웅 등은 마지못해 출병했으나 합포(合浦)에서 60~70%의 사상자를 내면서 결국 퇴군하였다. 소자는 조정에 노자웅과 손경의 진군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노자웅과 손경이 이분과 내통했기 때문이라며 이들을 참소했고, 결국 조정에서는 노자웅과 손경을 사사시켰다.

노자웅의 동생인 노자략(盧子略), 노자열(盧子烈)은 조정의 대처에 불만을 품고 두천합(杜天合), 두승명, 주문육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며, 광주를 공격하여 남강독호(南江督護) 심의(沈顗)를 사로잡은 뒤 소영과 소자를 죽여서 노자웅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한편 고요태수(高要太守) 진패선은 사태를 접한 뒤 3,000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광주에 원군으로 출정하여 두천합이 화살에 맞아서 죽었고 두승명과 주문육은 진패선에게 사로잡혔다. 이후 두승명과 주문육은 진패선의 휘하에서 종군하여 이분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2.3. 후경의 난

548년, 후경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진패선은 근왕병으로 출정하려고 했는데, 광주자사(廣州刺史) 원경중이 몰래 진패선을 도모하려고 하자 성주자사(成州刺史) 왕회명(王懷明), 행대선랑(行臺選郞) 은외신(殷外臣) 등과 함께 비밀리에 계엄을 논의했다.

549년, 남해에서 군대를 모은 진패선은 신속하게 격문을 돌려서 원경중을 토벌했고 원경중은 궁지에 몰리자 결국 목을 매고 죽었다. 진패선은 원경중을 토벌한 뒤 소발을 맞이하고 광주에 진수하였다. 한편 난유(蘭裕)와 난경례(蘭京禮)가 시흥군을 비롯한 10개의 군에 반란을 선동하여 임하내사(臨賀內史) 구양위를 공격하자, 구양위는 소발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소발은 진패선에게 구양위의 구원을 명했고, 두승명과 주문육은 선봉이 되어 전공을 세웠다.

진패선은 다시 근왕병으로 출정하고자 두승명과 호영을 영상(嶺上)에 주둔시키고 시흥군의 호걸들에게 후한 선물을 주어 그들과 결탁했고 여기에 후안도와 장사(張偲) 등이 군대를 모아 진패선을 따랐다. 소발은 이 소식을 듣고 종휴열(鍾休悅)을 진패선에게 보내서 그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진패선은 소발의 설득을 뿌리쳤다. 이 때문에 소발은 남강(南康)에서 거병한 채노양(蔡路養)과 함께 진패선을 막으려고 했다.

550년, 진패선이 시흥군에서 출발하여 대유령(大庾嶺)에 당도할 때 채노양과 조우했다. 당시 채노양의 휘하에는 채노양의 처조카인 소마하가 있었는데, 불과 10대의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용맹을 떨쳐서 당해낼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이때 주문육은 사면으로 포위를 당하여 자신이 탔던 말도 죽은 상황에서 오른손으로 격투를 벌이고 왼손으로 안장을 푼 뒤 포위를 뚫고 탈출하였으며, 두승명과 합류하여 채노양을 물리쳤다. 진패선이 남강에 도착한 뒤 주문육은 부사마(府司馬)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이천사가 대고(大臯)를 점령한 뒤 자신의 장수인 두평로(杜平虜)를 장석(灨石), 어량(魚梁) 등지로 성을 세우자, 진패선은 주문육에게 성채 공략을 명했다. 두평로가 성을 버리고 달아난 뒤 주문육은 성을 점령했으며, 이천사는 두평로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노약한 병사들을 대고에 남긴 뒤 정병들을 선발하여 직접 지휘하여 주문육을 공격했다. 주문육은 이천사와 대치했지만 두승명이 진패선의 명으로 주문육의 원군으로 파견되어 이천사의 수군을 격파하면서 형세가 역전되었고 이천사는 신감(新淦)으로 달아났다. 주문육은 효원제에 의해 가절(假節), 웅신장군(雄信將軍), 의주자사(義州刺史)로 제수되었다.

551년, 진패선이 남강에서 출발할 때 주문육에게 5,000명의 군사들을 주어서 길을 열도록 명하였다. 후경의 장수인 왕백추(王伯醜)가 예장(豫章)을 점령하자, 주문육은 왕백추를 물리치고 예장을 점령하였다. 주문육은 유기장군(游騎將軍),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로 임명되고 동천현후(東遷縣侯)에 봉해져서 식읍 500호를 받았다.

552년, 진패선은 백모만(白茅灣)에 도착하여 왕승변과 합류한 뒤 주문육과 왕승변을 선봉으로 삼아 남릉(南陵), 작두(鵲頭)를 비롯한 성들을 평정하였고 고숙(姑熟)에서 후경의 장수 후자감(侯子鑒)을 물리쳤다. 후경의 난이 평정된 뒤 주문육은 통직산기상시(通直散騎常侍)로 제수되고 남이현후(南移縣侯)에 봉해졌으며, 식읍 1,000호를 받고 신의태수(信義太守)로 임명되었다. 주문육은 뒤에 지무장군(智武將軍), 산기상시로 임명되고 남단양군(南丹陽郡), 난릉군(蘭陵郡), 진릉군(晉陵郡)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2.4. 왕승변 토벌

2.5. 소발의 난

557년, 광주자사 소발이 진패선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며 구양위, 부태(傅泰), 소자(蕭孜)를 선봉으로 삼았고 여효경이 여기에 호응하였다. 여효경은 자신의 아우 여효매(余孝勱)에게 군성을 수비하도록 명하고 자신은 예장에서 출정하여 석두(石頭)를 수비하였다. 소발은 자신의 아우 소자에게 여효경과 합류하도록 명했으며, 구양위에게는 고죽난(苦竹灘)을 수비하도록 명하고 부태에게는 척구성(蹠口城)의 점령을 명하여 관군의 진로를 막으려고 했다. 주문육은 진패선의 명으로 소자를 토벌하고자 출정하였다.

당시 진패선은 함선이 부족했지만 여효경은 300척의 거룻배가 있었고 100여 척의 함선이 상뢰(上牢)에 정박해 있었다. 주문육은 자신의 부하인 초승도(焦僧度)와 양간(羊柬)을 상뢰로 파견하여 여효경의 함대를 습격한 뒤 여효경의 함선을 모두 빼앗았고 예장에 성채를 세웠다.

뒤에 관군의 식량이 부족해져서 수하의 장병들이 모두 퇴각하려고 하자 주문육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보내 정세를 관망하고 있던 주적에게 서신을 전하며 형제의 맹세를 맺으려고 했다. 주적은 주문육의 서신을 받고 매우 기뻐하여 주문육에게 군량을 지원하기로 약조했다.

주문육은 이후 노약자를 낡은 배에 나눠서 실은 뒤 예장에 세웠던 성채를 불태우고 거짓으로 퇴각했다. 여효경은 이를 바라보고 매우 기뻐해서 방비를 하지 않았고, 주문육은 샛길을 따라 급행하여 이틀 동안 숙영을 하다가 천소(芊韶)에 도착했다. 천소의 상류는 구양위와 소발이 수비하고 있었고 하류는 부태와 여효경이 수비하고 있었는데, 주문육은 그 중간에 성을 쌓고 군사들을 위로하여 상류와 하류의 연계를 차단하였다. 구양위는 이해(泥溪)로 물러나 성을 세우고 수비 태세를 갖췄지만 엄위장군(嚴威將軍) 주철호와 장사(長史) 육산재를 보내 구양위를 습격해 사로잡았다. 뒤이어 주문육은 구양위와 함께 배에 올라 연회를 베풀고 척구성을 공격하여 부태를 사로잡았다.

남강에 있던 소발은 패전 소식을 접하면서 혼란에 빠졌고 이런 와중에 덕주자사(德州刺史) 진법무(陳法武)와 담세원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담세원은 항복하려고 했지만 소발의 부하였던 난애(蘭敱)가 담세원을 살해했고, 난애는 다시 담세원의 부하였던 하후명철(夏侯明徹)에게 살해당했다. 소자와 여효경은 석두를 점령하고 있었지만 진패선이 후안도를 주문육에게 원군으로 파견한 뒤 소자는 주문육에게 항복했고 여효경은 신오로 달아났다가 아들을 인질로 보낸다는 조건 하에 강화를 청했다.

소발의 난이 평정된 뒤 주문육은 예장으로 돌아갔고 진남장군(鎭南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도독강광형교등주제군사(都督江廣衡交等州諸軍事), 강주자사에 제수되었다.

2.6. 왕림 토벌

주문육은 뒤에 남도도독(南道都督)으로 임명되어 무창(武昌)에서 후안도와 합류하여 왕림을 토벌하고자 출병하였다. 한편 진패선은 양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경제(양)|경제 소방지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오르니 이가 남진의 초대 황제인 무제였다.

왕림을 토벌하기에 앞서 후안도와 주문육은 서로 통솔이 맞지 못했고 부하들끼리도 서로 싸우는 바람에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돈구(沌口)에서의 전투에서 주문육과 후안도는 왕림에게 사로잡혔지만 후안도가 자신들을 감시하던 환관 왕자진(王子晉)에게 후한 뇌물을 주면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주문육은 뒤에 사지절(使持節), 산기상시, 진남장군, 개부의동삼사로 제수되고 수창현공(壽昌縣公)에 봉해졌다.

2.7. 죽음

비록 소자와 여효경은 평정되었으나 여효경의 아들인 여공양(余公颺)과 여효경의 아우인 여효매(余孝勱)는 여전히 항복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무제는 주문육과 주적, 황법구 등을 다시 파견하여 여공양과 여효매의 토벌을 명했다. 이때 예장내사(豫章內史) 웅담랑이 군대를 이끌고 주문육에게 합류하면서 군대가 1만에 달했다. 주문육은 오명철에게 수군을 이끌게 하고 주적에게 군량을 옮기게 한 뒤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상아강(象牙江)으로 출병하여 금구(金口)에 성을 세웠다. 뒤에 여공양이 500명을 이끌고 거짓으로 항복하여 주문육을 사로잡으려고 했지만 음모가 발각되면서 주문육은 여공양을 가두어 수도로 압송했다.

주문육은 뒤에 배를 버리고 삼피(三陂)를 점령했는데, 한편 왕림은 조경(曹慶)에게 2,000명의 군사를 줘서 여효매를 구원하도록 명했고, 조경은 상중애(常衆愛)를 보내 주문육을 막게 하고 자신은 지름길을 따라 주적과 오명철을 공격하였다. 주적이 패배하자, 주문육은 금구로 달아났다. 이때 웅담랑은 주적의 패배로 인해 주문육을 죽인 뒤 상중애에게 호응하려고 했다. 주문육의 감군(監軍) 손백상(孫白象)이 웅담랑의 계획을 눈치채고 주문육에게 먼저 웅담랑을 제거하라고 권했는데, 주문육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럴 수 없다. 우리는 군대가 적지만 웅담랑은 군대가 많으니 만약 웅담랑을 없앤다면 부하들이 놀라 두려워하고 우리가 힘들어질 것이니 그들을 성심으로 대우하여 안심시키는 것이 좋다.
주적이 상중애에게 패배하여 배를 버리고 달아나서 주문육은 주적의 행방을 알 수 없었는데, 주적의 서신을 받고 난 뒤 매우 기뻐해서 웅담랑에게 서신을 보여주었지만 웅담랑은 그 틈을 이용해 주문육을 살해하였다.

무제는 주문육의 죽음을 슬퍼하여 주문육을 시중(侍中), 사공(司空)으로 추증하고 충민(忠愍)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561년, 무제의 사당에 배향되었다.

3. 여담

  • 주문육이 삼피를 점령했을 때 유성이 땅에 떨어져서 천둥과 같은 소리에 났고 큰 구덩이가 생겼는데, 그 안에는 몇 말의 쇄탄(碎炭)이 있었다. 또한 군중에서 갑자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들려본 방향으로 다가가니 지하에서 들리고 있었다. 군인들이 땅을 파보니 길이가 3척이나 되는 관이 있어서 주문육은 이를 싫어하였다. 이윽고 주적이 패배하면서 주문육도 웅담랑에게 살해당했다.
  • 진패선이 건강에서 장수들과 연회를 열 때 주문육은 두승명, 후안도와 함께 배석했다. 이때 세 장수들은 술을 권하며 자신의 공적을 자랑했는데, 진패선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들은 모두 뛰어난 장수들이지만 모두 단점이 있소. 두공(杜公)은 뜻은 크지만 식견이 어두우며, 아랫사람에게는 친근하지만 윗사람에게는 오만하며,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면서 자신의 결점은 숨기지 않소. 주후(周侯)는 친구를 사귈 때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남을 너무 성심껏 대하며, 위험할 때는 의심하고 대비하지 않소. 후랑(侯郞)은 오만방자하여 만족할 줄 모르며, 경박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오. 모두 스스로를 보전하는 도리가 아니오.

    결국 진패선의 발언이 세 사람의 최후에 들어맞게 되었다는 내용이 진서와 남사에 전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