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01:35:38

도중거

진서(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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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0275d><colcolor=#fff> 到仲擧
도중거
작위 보안현후(寶安縣侯) → 건창현후(建昌縣侯)
도(到)
이름 중거(仲擧)
덕언(德言)
부친 도흡(到洽)
생몰 517년 ~ 567년
출신 팽성군(彭城郡) 무원현(武原縣)[1]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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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북조시대 소량, 남진의 관료로 자는 덕언(德言). 팽성군(彭城郡) 무원현(武原縣) 출신으로 유송의 장수 도언지의 현손이다.

2. 생애

도흡의 아들로 태어난 도중거는 기예나 업적이 없었지만 정직하고 단정한 성격이었다. 도중거는 저작좌랑(著作佐郞), 태자사인(太子舍人), 왕부(王府)의 주부(主簿)를 역임했다. 뒤에 장성현령(長城縣令)[2]으로 전출되면서 청렴하고 공평한 정치를 펼쳤다. 진패선의 조카인 진천이 장성현에 거처하면서 일찍이 도중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장마가 내린 가운데 도중거는 홀로 방 안에 있었다가 성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가 진천이 들어오니 도중거는 진천을 기이하게 여겼고 이때부터 진천과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549년, 후경의 반란이 벌어지자 도중거는 진천을 의탁했다.

552년, 후경의 난이 평정되고 진천이 오흥(吳興) 태수로 부임한 뒤 도중거는 군승(郡丞)으로 임명되고 유지(庾持)와 함께 진천의 빈객이 되었다. 진천이 선의장군(宣毅將軍)에 임명된 뒤 도중거는 진천의 장사가 되었고 산음현령(山陰縣令)을 겸임하였다.

559년, 남진의 초대 황제인 무제 진패선이 붕어하고 진천이 즉위하니 이가 제2대 황제인 문제였다. 도중거는 문제가 즉위한 뒤 시중(侍中)에 임명되고 관리의 선발을 맡았다.

560년, 도관상서(都官尙書)를 대행하고 보안현후(寶安縣侯)에 봉해져 식읍 500호를 받았다.

562년, 정식으로 도관상서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도중거는 상서좌복야(尙書右僕射), 단양윤(丹陽尹)에 임명되고 종전과 같이 관리의 선발을 맡았다. 뒤이어 건창현후(建昌縣侯)에 봉해졌다.

도중거는 관리의 선발을 맡았지만 배운 것이 없어서 조정의 제도에 익숙하지 못했으며, 관리의 선발과 임용은 실질적으로 원추가 맡았다. 또한 간소한 성격으로 조정의 실무에는 간섭하지 않았고 조정의 대신들과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으며, 단지 재물을 모으거나 술을 마시기만 했다.

565년, 임기를 채우면서 단양윤에서 해임되었다. 당시 문제가 병으로 인해 정무를 직접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상서의 사무는 모두 도중거가 처리하도록 명하였다.

566년, 시중(侍中), 상서복야로 임명되고 이전과 같이 관리의 선발을 맡았다. 당시 문제의 병세가 심해지자, 문제의 시중을 들기도 했다. 이후 문제가 유각전(有覺殿)에서 붕어한 뒤 안성왕(安成王) 진욱이 유조를 받들어 상서령(尙書令)으로 임명되어 진백종을 보좌했다.

도중거는 좌승(左丞) 왕섬(王暹), 중서사인(中書舍人) 유사지, 은불영 등과 함께 조정에서 촉망을 받는 진욱을 몰아내고자 은불영을 통해 조칙을 위조하여 진욱을 동부(東府)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 사태가 발각되면서 유사지는 북옥(北獄)에 수감되어 사사되었고 왕섬과 은불영은 모두 처벌을 받았으며, 도중거는 정의장군(貞毅將軍),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임명되었다.

도중거의 아들인 도욱(到郁)은 문제의 누이인 신의공주(信義公主)에게 장가를 들어서 중서시랑(中書侍郞)을 역임했고 선성(宣城) 태수로 전출되었다. 선성으로 부임하기 직전 문제가 도중거에게 병사와 말을 주었고 문제가 붕어한 해에 남강(南康) 내사로 부임하려고 했으나 문제의 붕어로 인해 부임하지 못했다. 도중거는 뒤에 사저에 틀어박히는 신세가 되었고 이로 인해 마음이 불안해졌다. 당시 한자고가 수도에 있었는데, 도욱은 작은 수레에 올라 부인의 치장을 하고 한자고와 만났다. 그러나 이 정황을 한자고의 부하 장수가 조정에 고발하면서 도중거는 도욱, 한자고와 함께 체포되어 정위(廷尉)로 압송되었다.

이후 도중거와 도욱, 한자고를 처벌하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도중거와 도욱은 옥중에서 사사되었다.


[1] 오늘날 장쑤성 쉬저우시 피저우시[2] 오늘날 저장성 후저우시 창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