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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0275d><colcolor=#fff> 吳明徹 오명철 | |
작위 | 안오현후(安吳縣侯) → 회덕군개국공(懷德郡開國公)[1] / 소릉현개국후(邵陵縣開國侯)[2] |
성 | 오(吳) |
이름 | 명철(明徹) |
자 | 통소(通昭) |
생몰 | 504년 ~ 580년 |
부친 | 오수(吳樹) |
조부 | 오경안(吳景安) |
출신 | 진군(秦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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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북조시대 남진의 장수로 자는 통소(通昭). 남조 최후의 명장인 소마하가 오명철의 부하 장수였다.2. 생애
2.1. 초기 생애
진군(秦郡) 출신으로, 양나라의 우군장군(右軍將軍) 오수(吳樹)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명철은 양나라에서 동궁직후(東宮直後)로 기용되었고 좌장군을 역임하였다.548년, 후경의 난으로 양나라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오명철의 집안에 3천여 곡에 달아흔 식량이 있었는데, 이웃들이 굶주리는 모습을 보고 형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초야에서 도적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생활을 도모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식량을 가지고도 고향 사람들과 함께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명철은 집안의 식량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여 존경을 받았다. 한편 도적들은 이 사실을 알고 오명철이 있는 곳을 피했다.
2.2. 진패선과의 만남
진패선은 경구(京口)에 진수할 때 오명철의 명성을 듣고 그와 교류하고 싶었다. 오명철은 이에 진패선을 만났고 진패선은 직접 계단을 내려와 오명철의 손을 잡아주며 함께 시사를 논했다. 오명철 또한 경서와 사서를 약독했고 주홍정에게 천문, 허공, 둔갑을 배우며 오묘함에 대해 이해하고 영웅을 자처해서 진패선이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554년, 오명철은 융소장군(戎昭將軍), 안주자사(安州刺史)로 제수되었다.
555년, 주문육을 따라 두감(杜龕)과 장표(張彪) 등을 토벌하였으며, 사지절(使持節), 산기상시(散騎常侍), 안동장군(安東將軍), 남연주자사(南兗州刺史)로 제수되고 안오현후(安吳縣侯)에 봉해졌다.
2.3. 남진의 장군
557년, 진패선이 양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경제 소방지로부터 선양을 받아 남진 건국하고 제위에 오르니 이가 초대 황제인 무황제였다. 오명철은 안남장군(安南將軍)으로 임명되었고 후안도, 주문육과 함게 군대를 이끌어 왕림을 정벌하였으나, 도리어 패배하여 주문육과 후안도는 사로잡혔고 오명철은 가까스로 회군하여 수도로 돌아왔다.559년, 오명철은 다시 주문육에게 종군하여 수군을 거느리고 주적에게 군량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왕림은 장수 조경(曹慶)을 파견하여 여효매(余孝勱)를 구원하도록 명했고, 조경은 직접 오명철과 주적을 공격하여 이들을 패배시켰다.
같은 해에 무제가 붕어하고 진천이 즉위하니 이가 제2대 황제인 문제였다. 오명철은 우위장군(右衛將軍)이 더해졌다. 왕림이 남하하여 책구(柵口)를 점령하자, 오명철은 밤에 분성(湓城)을 습격했으나 파릉태수 임충에게 패배하여 겨우 살아남았다.
560년, 왕림이 평정된 뒤 오명철은 도독무원2주제군사(都督武沅二州諸軍事), 안서장군(安西將軍), 무주자사로 제수되고 나머지는 모두 예전과 같이 받았다. 561년, 북주의 하약돈(賀若敦)이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이끌고 무릉(武陵)을 침공하자, 오명철은 중과부적이라 판단하여 군대를 이끌고 파릉(巴陵)까지 후퇴한 뒤 거듭 쌍림(雙林)에서 북주의 별군을 물리쳤다.
562년, 안서장군으로 제수되었다. 이후 주적이 임천(臨川)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오명철은 안남장군(安南將軍), 강주자사(江州刺史)로 제수되고 예장태수(豫章太守)를 겸임하며 주적을 토벌하고자 출병하였다. 하지만 오명철은 성품이 강직해서 내부에 불화가 생겼는데, 문제는 이를 듣고 안성왕(安成王) 진욱을 오명철의 대임으로 파견하고 오명철에게는 조정으로 귀환하도록 명했다. 이윽고 진전장군(鎭前將軍)으로 제수되었다.
564년, 진동장군(鎭東將軍), 오흥태수(吳興太守)로 옮겼다. 오흥군으로 부임하기 전 문제가 오명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흥군은 비록 일개 군이지만 짐의 고향이라 중요한 곳이니 그대를 이곳의 태수로 제수했소. 최선을 다하시오!
이후 세조가 병을 앓자, 오명철은 중령군(中領軍)으로 임명되었다.
2.4. 화교의 난
566년, 진천의 태자 진백종이 즉위하니 이가 제3대 황제인 폐제였다. 오명철은 폐제가 즉위한 뒤 영군장군(領軍將軍)으로 제수되었다가 이윽고 단양윤(丹陽尹)으로 옮겼다. 오명철은 또한 무장한 병사 40명을 이끌고 궁성을 출입하였다.한편 조정에서는 도중거가 조칙을 위조하여 안성왕 진욱을 궁궐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도중거의 음모를 모희(毛喜)가 사전에 눈치채고 진욱에게 알리자, 진욱은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모희를 오명철에게 파견하여 대책을 논의하도록 명했다. 오명철은 모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군(嗣君)께서 상중에 계셔서 정무에 궐실이 많이 생길 것이며, 밖으로는 큰 적을 품고 있고 안으로는 큰 상을 겪고 있습니다. 안성왕 전하의 친근함은 주공과 소공에 비견되고, 인품은 이윤과 곽광보다 뛰어납니다. 지금은 사직이 매우 중요하니, 전하께서는 잘 의논하시고 너무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후 한자고와 도중거가 주륙되자, 상주자사(湘州刺史) 화교는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북주와 연합하고 후량에 귀순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오명철을 사지절(使持節), 산기상시(散騎常侍), 도독상계무3주제군사(都督湘桂武三州諸軍事), 안남장군(安南將軍), 상주자사로 제수하고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순우량 등과 함께 군대를 이끌어 화교를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화교가 평정되자,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제수되고 작위가 공으로 올라갔다.
569년, 진남장군(鎭南將軍)으로 제수되었다. 572년, 시중(侍中), 진전장군(鎭前將軍)으로 임명되고 나머지는 모두 예전과 같이 받았다.
2.5. 태건북벌
2.6. 북벌의 실패
577년, 북주의 침공으로 북제가 멸망하면서 북주가 화북을 통일하였다. 577년 선제 진욱은 오명철에게 진군을 명했고 오명철의 아들인 융소장군, 원외산기시랑(員外散騎侍郞) 오혜각(吳惠覺)에게 주의 사무를 대리하도록 명했다. 오명철은 여량(呂梁)에서 북주의 서주총관(徐州總管) 양사언을 여러 차례 격파했으며, 양사언은 결국 성으로 물러나며 오명철에게 감히 대항하지 못했으며, 오명철은 양사언이 물러난 틈을 타 청수(淸水)의 물길을 양사언의 성으로 돌린 뒤 공세를 강화했다.북주에서는 다시 상대장군(上大將軍) 왕궤(王軌)를 파견하여 양사언의 구원을 명했다. 왕궤는 간편한 장비를 갖추고 청수를 따라 회구(淮口)로 진입하여 말뚝을 세우고 쇠사슬로 수레바퀴를 묶은 뒤 수군의 통로를 차단하였다. 오명철의 부하 장수들이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오명철에게 제방을 무너뜨리고 철수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이때 오명철의 마주 배자열(裴子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제방을 무너뜨리고 배를 세운다면 배가 틀림없이 전복될 것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차라리 기병을 내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오명철은 이때 등에 심각한 종기를 앓고 있었는데, 북벌이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고 결국 배자열의 건의를 따르기로 했다. 오명철은 뒤이어 소마하에게 수천 명의 기병들을 이끌고 먼저 출발하도록 명했다. 오명철은 직접 제방을 무너뜨리고 물살을 따라 퇴군하려고 했다. 하지만 청구(淸口)에 이르러 물살이 점점 약해지고 배가 건너지 못하게 되면서 부대는 뿔뿔이 흩어졌고 오명철은 궁지에 몰리면서 결국 북주군에 사로잡혔다.
오명철은 북주에서 회덕군개국공(懷德郡開國公)에 봉해졌고 대장군으로 임명되었으나, 울분으로 인해 병에 걸려 결국 580년 장안에서 죽었다.
3. 사후
그가 죽고 3년 뒤인 583년, 남진의 후주 진숙보는 오명철을 동정하여 소릉현개국후(邵陵縣開國侯)로 추봉하고 식읍 1,000호를 내렸다. 오명철의 아들 오혜각(吳惠覺)이 후사가 되었다.782년, 안진경의 건의에 따라 당나라에서 64명의 명장들을 추봉할 때 오명철 또한 여기에 포함되었다. 1123년, 송나라에서도 당나라의 관례를 따라 사당을 세웠는데 여기에도 포함되었다. 십칠사백장전과 광명장전에도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