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宋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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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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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1ba><colcolor=#fff> 양산장후(陽山壯侯) 胡藩 | 호번 | |
시호 | 장(壯) |
작위 | 오평현오등자(吳平縣五等子) → 양산현남(陽山縣男) → 양산현후(陽山縣侯) |
성 | 호(胡) |
이름 | 번(藩) |
자 | 도서(道序) |
출신 | 예장군(豫章郡) 남창현(南昌縣) |
생몰 | 371년 ~ 43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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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진, 유송의 장수로 자는 도서(道序).2. 생애
2.1. 초기 생애
예장군(豫章郡) 남창현(南昌縣) 출신으로 할아버지 호수(胡隨)는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지냈고, 아버지 호중임(胡仲任)은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를 지냈다. 호번은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는데, 상중에 부모의 죽음을 매우 비통해하여 칭송을 받았다. 태수 한백(韓伯)이 호번을 보고 호번의 숙부인 상서 호소광(胡少廣)에게 말했다.경의 조카는 마땅히 의열(義烈)로 명성을 올릴 것이오.
호번은 주에서 벽소되었으나 부름을 받지 않았다가 두 아우의 관례와 혼례가 끝난 뒤 정로장군(征虜將軍) 치회의 참군이 되었다.
2.2. 환현의 참군
당시 형주는 은중감이 자사로 재임했고 호번의 외종사촌인 나기생(羅企生)은 은중감의 참군으로 있었다. 호번은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갈 때 강릉을 거치며 나기생을 만나려고 했다. 은중감이 이때 호번에게 만남을 청하며 후하게 대접했는데, 호번이 은중감에게 말했다.환현은 품은 뜻이 범상치 않고 항상 앙심을 품고 있습니다. 절하(節下)께서는 환현을 매우 융숭하게 대우하시는데, 이것은 장래의 계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은중감이 호번의 조언을 듣지 않자, 호번은 다시 나기생에게 말했다.
창을 거꾸로 들어서 남에게 주면 반드시 화를 입을 것입니다. 만약 빨리 거취를 도모하지 않으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뒤에 환현이 하구에서 은중감을 습격할 때 호번은 환현의 참군이 되었으며, 은중감은 환현에게 패망했고 나기생도 여기에 휘말려 죽었다. 호번은 환현이 태위, 대장군, 상국으로 임명되었을 때도 참군을 역임했다.
하지만 유유가 거병하여 환현을 물리친 뒤, 환현은 유유의 공세를 피해 도망치려고 했다. 이때 호번은 환현의 말고삐를 붙잡으며 말했다.
지금은 아직 우림의 사수 800명이 있고 또한 그들은 은의로 맺어진 서부의 군사들인데, 하루아침에 이들을 버리신다면 돌아가려고 해도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환현은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호번을 뿌리쳤다. 호번은 뒤에 무호(蕪湖)까지 환현을 쫓았는데, 환현은 호번을 보고 부하인 장수무(張須無)에게 말했다.
경의 주에는 옛날에 선비가 많았는데 지금 비로소 다시 왕숙치(王叔治)를 보는구나.
상락주(桑落洲) 전투에서 호번은 자신의 군함이 불에 타자 갑옷을 입고 물에 뛰어들어 30보를 걸은 뒤에 상륙했다. 하지만 유유의 군대가 접근하자 환현을 따라잡지 못한 호번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유유는 호번이 은중감에게 직언을 올렸고 또한 환현을 위하여 충절을 다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외산기시랑(員外散騎侍郞), 참군으로 임명하였다.
2.3. 남연 정벌
409년, 유유가 남연 정벌을 추진했다. 남연군이 임구(臨朐)에 주둔하자, 호번은 유유에게 말했다.연군이 성 바깥이 군대를 주둔시켰다면 남은 수비병들은 틀림없이 적을 수밖에 없으니 지금 진군하여 그들의 성을 취하고 그들의 기치를 꺾는 것이 한신(韓信)이 조나라(趙)를 이긴 방법입니다.
유유는 이에 단소와 호번을 몰래 파견하여 임구성을 함락하였으며, 남연군은 임구에서 후퇴하여 여러 달 동안 광고를 수비하였다. 광고를 공격하기 전날 밤에 장수들이 모였는데, 이때 갑자기 거위만한 크기의 검푸른 새가 군영으로 날아들어서 다른 장수들은 모두 놀라 이를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이때 호번만은 홀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검푸른 색은 오랑캐들의 색깔이니, 오랑캐들이 우리에게 귀순하려는 대길의 징조이다.
다음날 동진군은 남연의 수도 광고를 함락하였다.
2.4. 반란 토벌
410년, 유유가 남연을 정벌하는 틈을 노려 노순이 침공을 개시했다. 이때 호번은 좌리에서 노순을 토벌하여 오평현오등자(吳平縣五等子)에 봉해졌고 정원랑(正員郞)으로 제수되었으며, 영원장군(寧遠將軍), 파양(鄱陽) 태수로 전임되었다.412년, 유유가 유의를 토벌할 때 종군하였다. 유의가 형주로 부임할 때 경구로 돌아가 건강으로부터 수십리 떨어진 조상의 무덤에 고별을 올리고 황제를 알현하지 않겠다는 표문을 조정에 올렸다. 유유는 예당(倪塘)에서 유의와 만났는데, 이때 호번은 유의를 죽여야 한다고 유유에게 건의했지만 유유는 호번의 건의를 따르지 않았다. 유유는 유의를 토벌하기 전 호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날 예당에서 그대의 계략을 따랐다면 지금의 거사는 없었을 것이다.
415년, 사마휴지를 토벌할 때도 종군하여 참군이 되었고 건무장군(建武將軍)이 더해졌으며, 강진(江津)에서 유격대를 이끌었다. 한편 서규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유는 격분하여 직접 장강을 건넜지만 강진은 지형이 험준했고 사마휴지가 물가를 따라 진을 쳤기 때문에 언덕을 오르지 못했다. 유유는 호번을 불러 언덕을 오르도록 명했는데, 호번은 이를 의심했다. 유유가 분노하여 부하들에게 호번을 데려오라 명하고 호번을 참수하려고 하자, 호번은 군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차라리 앞으로 나가 죽겠습니다!
결국 호번은 상륙작전을 개시하여 호번의 뒤를 따른 사람들이 많았다. 호번의 분투에 질린 사마휴지는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달아났다.
2.5. 후진 정벌
유유가 후진을 정벌할 때 호번은 임시로 영삭장군(寧朔將軍)이 되었고 태위부 참군으로 임명되어 독립된 부대를 거느렸다. 하동(河東)에 도착할 때 폭풍이 불어 호번의 배가 북안에 표착하자, 북위군은 호번의 배에 올라 배에 있던 물자들을 빼앗았다. 호번은 매우 분노하여 12명을 거느리고 작은 배에 올라 하북(河北)으로 향했다. 북위군의 기병 5~600명은 호번이 온 것을 보고 모두 비웃었다. 하지만 호번은 본래 활을 잘 쏘아서 언덕에 올라 활을 쏘았고 호번이 쏜 화살에 북위의 병사 10여 명이 쓰러졌으며, 북위군이 철수한 틈에 호번은 잃어버린 물자들을 모두 회수하여 돌아갔다.호번은 다시 주초석 등과 함께 반성(半城)에서 북위군을 추격했다. 북위의 기병들이 몇 겹으로 호번과 주초석을 포위했을 때 호번과 주초석이 거느린 군대는 모두 막 배정된 새로운 군사들이었고 숫자도 5,000명이 되지 않았지만 모두 역전해서 북위군을 대파하였다. 호번은 다시 주초석 등과 함께 포판(蒲坂)에서 요업(姚業)을 공격했으나 주초석이 패배하여 물러나자, 호번은 주초석이 버린 물자들을 회수하고 천천히 회군하여 요업이 감히 추격하지 못했다.
유유가 팽성으로 돌아온 뒤, 호번은 상국부 참군이 되었다. 이때 노순의 잔당과 소음(蘇淫) 등의 도적들이 집결하기 시작하자, 호번은 시흥상으로 임명되었다. 호번은 사마휴지를 토벌하고 후진을 정벌할 때 참전한 공을 인정받아 양산현남(陽山縣男)에 봉해졌고 식읍 500호를 받았다.
2.6. 유송 건국 이후
423년, 호번은 동부를 수비할 때 제멋대로 궁문을 열은 죄를 추궁당해 면직되었다가 다시 복직했다. 427년, 건무장군(建武將軍), 강하 내사로 옮겼다. 430년, 유격장군(游擊將軍)으로 임명되었다. 도언지의 북벌에서 남연주자사 장사왕 유의흔이 팽성을 점령할 때 호번은 광릉에 남아서 사무를 대행했으며, 태자좌위솔로 전임되었다. 이후 433년에 사망하여 장(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3. 가족관계
호번의 후사는 호융세(胡隆世)가 되었으며, 호융세는 관직이 서양(西陽) 태수까지 이르렀다. 호융세 사후 호융세의 아들인 호건수(胡乾秀)가 후사가 되었다.호번은 60명의 서자가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법도를 따르지 않았다. 호번의 14남인 호준세(胡遵世)는 영원장군(寧遠將軍) 장질의 참군을 지냈다가 벼슬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호준세는 공희선과 함께 역모를 꾸몄는데, 문제 유의륭은 호준세가 공신의 자식이기에 이런 불상사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고 대신 강주(江州)에서 다른 일로 호준세를 붙잡아 죽였다.
447년, 호번의 16남인 호탄세(胡誕世)와 17남인 호무세(胡茂世)가 200여 명을 이끌고 군현을 공격하여 태수 환륭지(桓隆之)와 현령 제갈화지(諸葛和之)를 죽이고 유의강(劉義康)을 추대하려고 하였다. 때마침 교주자사 단화지(檀和之)가 예장에 도착해서 이들을 토벌했다. 호탄세의 형인 거기부 참군 신흥태수 호경세(胡景世)와 호경세의 아우인 호보세(胡寶世)는 정위(廷尉)에서 자신들의 죄를 시인하면서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호건수는 여기에 연루되어 작위가 삭탈되었다. 효무제가 즉위한 뒤 유배되었던 이들이 모두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