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9 20:01:54

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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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1. 개요

曹楷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황족이자 서진 시기의 인물. 조창의 아들.

2. 생애

223년에 조창이 죽자 작위를 계승해 임성왕(任城王)이 되었다가 중모현으로 옮겨 봉해졌으며, 231년에는 임성현으로 바뀌어 봉했다가 232년에 임성국에 봉해 5현의 2천 5백호를 가지게 되었다.

235년에 중상방에 사사로이 관리를 보내 명제를 위해 금지한 물건을 만들게 했다가 1현의 2천호가 삭감되었다. 246년에 제남으로 봉해 식읍이 3천 호가 되었고 정원, 경원 연간에도 계속해서 식읍이 증가해 4천 4백호가 되었으며, 이후 종정이 되었다.

265년에 위나라가 멸망하고 진나라가 건국되자 숭화소부[1]에 임명되었다.

명제가 아들들이 요절하여서 조방을 양자로 들였는데, 위씨춘추(魏氏春秋), 세설신어 등 기록에 따르면 조방이 그의 아들이라 했지만 근거가 없다.

3.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유지경성에서는 손려의 도움을 받아 오나라로 건너갔고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처지에 공감해 유비의 딸과 결혼했으며, 오나라에서 손려와 손권의 대결로 내분이 벌어질 때 장합이 손려를 돕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위나라와 다투는데, 제갈량이 그 틈을 이용해 영토를 얻는 공작을 하면서 조해는 제갈량의 지시를 받은 구부의 협박을 받아 일시적으로 자신이 모아둔 사병을 구부에게 빌려줬다.


[1] 소부란 궁궐을 관리하는 요직인데 여기서 말하는 숭화란 숭화궁, 즉 황제 사마염의 친어머니인 왕원희의 거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