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1 22:10:48

윤언이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고려사(高麗史)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calc(1.5em + 6px); word-break: keep-all"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세가(世家)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670000,#fedc89> 1·2권 3권 4·5권
태조 · 혜종 · 정종定宗 · 광종 · 경종 성종 · 목종 현종 · 덕종
<rowcolor=#670000,#fedc89> 6권 7·8·9권 10권
정종靖宗 문종 · 순종 선종 · 헌종
<rowcolor=#670000,#fedc89> 11·12·13·14권 15·16·17·18·19·20권 21권
숙종 · 예종 인종 · 의종 · 명종 신종 · 희종 · 강종
<rowcolor=#670000,#fedc89> 22·23·24권 25·26·27권 28·29·30·31·32권
고종 원종 충렬왕
<rowcolor=#670000,#fedc89> 33·34·35권 36권 37권
충선왕 ·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 충정왕
<rowcolor=#670000,#fedc89> 38·39·40·41·42·43·44권 133·134·135·136·137권열전 45·46권
공민왕 우왕 · 창왕 공양왕
<colbgcolor=#fedc89,#670000><colcolor=#670000,#fedc89> [ 지(志) ]
47·48·49권 「천문(天文)」 / 50·51·52권 「역(曆)」 / 53·54·55권 「오행(五行)」 / 56·57·58권 「지리(地理)」 / 59·60·61·62·63·64·65·66·67·68·69권 「예(禮)」 / 70·71권 「악(樂)」 / 72권 「여복(輿服)」 / 73·74·75권 「선거(選擧)」 / 76·77권 「백관(百官)」 / 78·79·80권 「식화(食貨)」 / 81·82·83권 「병(兵)」 / 84·85권 「형법(刑法)」
[ 표(表) ]
86·87권 「연표(年表)」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후비·종실·공주 열전(列傳)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88권 「후비1(后妃一)」
89권 「후비2(后妃二)」
90권 「종실1(宗室一)」
91권 「종실2(宗室二)」·「공주(公主)」
태조
신혜왕후 유씨 · 장화왕후 오씨 · 신명순성왕태후 유씨 · 신정왕태후 황보씨 · 신성왕태후 김씨 · 정덕왕후 유씨 · 헌목대부인 평씨 · 정목부인 왕씨 · 동양원부인 유씨 · 숙목부인 · 천안부원부인 임씨 · 흥복원부인 홍씨 · 후대량원부인 이씨 · 대명주원부인 왕씨 · 광주원부인 왕씨 · 소광주원부인 왕씨 · 동산원부인 박씨 · 예화부인 왕씨 · 대서원부인 김씨 · 소서원부인 김씨 · 서전원부인 · 신주원부인 강씨 · 월화원부인 · 소황주원부인 · 성무부인 박씨 · 의성부원부인 홍씨 · 월경원부인 박씨 · 몽량원부인 박씨 · 해량원부인
태자 왕태 · 문원대왕 왕정 · 증통국사 · 대종 왕욱 · 안종 왕욱 · 왕위군 · 인애군 · 원장태자 · 조이군 · 수명태자 · 효목태자 왕의 · 효은태자 · 원녕태자 · 효성태자 왕림주 · 효지태자 · 태자 왕직 · 광주원군 · 효제태자 · 효명태자 · 법등군 · 자리군 · 의성부원대군 · 안정숙의공주 · 흥방궁주 · 대목왕후 · 문혜왕후 · 선의왕후 · (정덕왕후 소생 공주) · 순안왕대비 · (흥복원부인 소생 공주) · (성무부인 소생 공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혜종 정종 광종
의화왕후 임씨 · 후광주원부인 왕씨 · 청주원부인 김씨 · 궁인 애이주 문공왕후 박씨 · 문성왕후 박씨 · 청주남원부인 김씨 대목왕후 황보씨 · 경화궁부인 임씨
흥화궁군 · 태자 왕제 · 경화궁부인 · 정헌공주 · 명혜부인 경춘원군 · (문성왕후 소생 공주) 효화태자 · 천추전부인 · 보화궁부인 · 문덕왕후
경종 성종 목종
헌숙왕후 김씨 · 헌의왕후 유씨 · 헌애왕태후 황보씨 · 헌정왕후 황보씨 · 대명궁부인 유씨 문덕왕후 유씨 · 문화왕후 김씨 · 연창궁부인 최씨 선정왕후 유씨 · 궁인 김씨
- 원정왕후 · 원화왕후 - }}}
현종
원정왕후 김씨 · 원화왕후 최씨 · 원성태후 김씨 · 원혜태후 김씨 · 원용왕후 유씨 · 원목왕후 서씨 · 원평왕후 김씨 · 원순숙비 김씨 · 원질귀비 왕씨 · 귀비 유씨 · 궁인 한씨 · 궁인 이씨 · 궁인 박씨
평양공 왕기 · 검교태사 왕충 · 효정공주 · 천수전주 · 인평왕후 · 경숙공주 · 효사왕후 · 효경공주 · 경성왕후 · 아지
덕종 정종
경성왕후 김씨 · 경목현비 왕씨 · 효사왕후 김씨 · 이씨 · 유씨 용신왕후 한씨 · 용의왕후 한씨 · 용목왕후 이씨 · 용절덕비 김씨 · 연창궁주 노씨
상회공주 · (유씨 소생 공주) 애상군 왕방 · 낙랑후 왕경 · 개성후 왕개 · 도애공주
문종
인평왕후 김씨 · 인예순덕태후 이씨 · 인경현비 이씨 · 인절현비 이씨 · 인목덕비 김씨
대각국사 왕후 · 상안공 왕수 · 도생승통 왕탱 · 금관후 왕비 · 변한후 왕음 · 낙랑후 왕침 · 총혜수좌 왕경 · 조선공 왕도 · 부여후 왕수 · 진한후 왕유 · 적경궁주 · 보령궁주
순종 선종
정의왕후 왕씨 · 선희왕후 김씨 · 장경궁주 이씨 정신현비 이씨 · 사숙태후 이씨 · 원신궁주 이씨
- 한산후 왕윤 · 경화왕후 · (사숙태후 소생 공주) · 수안택주
숙종 예종
명의태후 유씨 경화왕후 이씨 · 문경태후 이씨 · 문정왕후 왕씨 · 숙비 최씨
상당후 왕필 · 원명국사 징엄 · 대방공 왕보 · 대원공 왕효 · 제안후 왕서 · 통의후 왕교 · 대령궁주 · 흥수궁주 · 안수궁주 · 복령궁주 승덕공주 · 흥경공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인종 의종 명종
폐비 이씨 · 폐비 이씨 · 공예태후 임씨 · 선평왕후 김씨 장경왕후 김씨 · 장선왕후 최씨 광정태후 김씨
대령후 왕경 · 원경국사 충희 · 승경궁주 · 덕녕궁주 · 창락궁주 · 영화궁주 효령태자 왕기 · 경덕궁주 · 안정궁주 · 화순궁주 왕선사 · 왕홍기 · 왕홍추 · 왕홍규 · 왕홍균 · 왕홍각 · 왕홍이 · 연희궁주 · 수안궁주 }}}
신종 희종
선정태후 김씨 성평왕후 임씨
양양공 왕서 · 효회공주 · 경녕궁주 창원공 왕지 · 시령후 왕위 · 경원공 왕조 · 대선사 경지 · 충명국사 각응 · 안혜태후 · 영창공주 · 덕창궁주 · 가순궁주 · 정희궁주
{{{#!wiki style="margin: -16px -11px" 강종 고종 원종
사평왕후 이씨 · 원덕태후 유씨 안혜태후 유씨 순경태후 김씨 · 경창궁주 유씨
수령궁주 안경공 왕창 · 수흥궁주 시양후 왕이 · 순안공 왕종 · 경안궁주 · 함녕궁주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제국대장공주 · 정신부주 · 숙창원비 김씨 계국대장공주 · 의비 · 정비 · 순화원비 홍씨 · 조비 · 순비 허씨 복국장공주 · 조국장공주 · 경화공주 · 명덕태후 홍씨 · 수비 권씨
강양공 왕자 · 소군 왕서 · 정녕원비 · 명순원비 세자 왕감 · 덕흥군 용산원자
충혜왕 공민왕 공양왕
덕녕공주 · 희비 윤씨 · 화비 홍씨 · 은천옹주 임씨 휘의노국대장공주 · 혜비 이씨 · 익비 한씨 · 정비 안씨 · 신비 염씨 순비 노씨
석기 · 장녕공주 - 세자 왕석 · 숙녕궁주 · 정신궁주 · 경화궁주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열전(列傳)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92권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 유금필 · 최응 · 최언위 (최광윤 최행귀 최광원) · 왕유 왕자지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수경 · 왕순식 이총언 견금 윤선 흥달 선필 태평 · 공직 · 박영규
93권
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94권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95권
최충 최유선 최사제 최약 최윤의 · 이자연 이자량 이자인 이혁유 이자현 이자덕 이예 이공수 이지저 이오 이광진 · 박인량 박경인 박경백 박경산 · 황주량 · 류신 · 왕총지 · 위계정 · 소태보 왕국모 고의화 · 문정 · 정문 · 김원정 · 손관 · 최사량 · 김선석 · 임의 임원후 임극충 임극정 임부 임유 임익 임항 · 김한충
96권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97권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98권
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99권
양원준 · 최유청 최당 최린 최선 최종준 최온 최문본 최평 최옹 ·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 류공권 류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 유응규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최보순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100권
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 경대승 · 진준 · 최세보 · 박순필 · 이영진 · 백임지 · 이준창 · 최충렬 · 정세유 정숙첨 정안 · 정국검 이유성 · 정방우 · 정언진
101권
민영모 민식 · 송저 · 김광중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청 · 왕규 · 차약송 기홍수 · 정극온 · 류광식 · 권경중 · 김태서 김약선 김미 · 문한경 권세후 백돈명 · 노인수 · 김의원
102권
금의 · 이규보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김승무 · 이공로 · 이인로 오세재 조통 임춘 · 조문발 · 이순목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하천단 · 채송년 채정蔡楨 · 손변 · 권수평 · 이순효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rowcolor=#670000,#fedc89> 103권 104권
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105권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106권
백문절 백이정 · 박항 · 곽예 · 주열 · 이주 이행검 · 장일 · 김구 · 이승휴 이연종 · 김훤 김개물 · 정해 정오 정포 정공권 · 조간 · 심양 · 추적 이인정 채우 · 김유성 곽린 · 윤해 윤택 · 이영 · 엄수안 · 안전 · 최수황 · 박유 · 홍규 홍융
<rowcolor=#670000,#fedc89> 107권 108권
한강 한악 한수 한방신 · 원부 원충 원호 원선지 원송수 · 김련 · 김부윤 · 정인경 · 권단 권부 권준 권렴 권용 권적 (권고) 권화 권근 · 민지 민상정 민종유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 김지숙 김인연 · 정선 · 이혼 · 최성지 최문도 · 채홍철 · 김이 · 이인기 · 홍빈 · 조익청 · 배정지 · 손수경
109권
박전지 · 오형 · 이진 · 윤신걸 박효수 · 허유전 · 박충좌 · 윤선좌 · 이조년 이승경 · 이곡 · 우탁 · 안축 안종원 안보 · 최해 · 장항 · 이성 · 조렴 왕백 · 이백겸 · 신군평
<rowcolor=#670000,#fedc89> 110권 111권
최유엄 · 김태현 김광재 · 김륜 김경직 김희조 김승구 · 왕후 왕중귀 · 한종유 · 이제현 이달존 이보림 · 이능간 염제신 · 이암 이강 · 홍언박 홍사우 류연 · 류탁 · 경복흥 · 김속명 · 이자송 · 조돈 조인옥 · 최재 · 송천봉 · 홍중선 · 김도 · 임박 · 문익점
112권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113권
안우 김득배 이방실 · 정세운 · 안우경 · 최영 · 정지 · 윤가관 · 김장수
114권
윤환 · 이성서 · 이수산 이념 · 이승로 · 황상 · 지용수 · 나세 · 김선치 · 전이도 · 구영검 · 오인택 · 김보 · 변광수 · 정지상 · 임군보 · 나흥유 · 목인길 · 김유 · 양백연 · 지용기 · 하을지 · 우인열 · 문달한 · 김주 · 최운해
{{{#!wiki style="margin: -16px -11px"<rowcolor=#670000,#fedc89> 115권 116권 117권
이색 · 우현보 · 이숭인 심덕부 · 이림 · 왕강 · 박위 · 이두란 · 남은 정몽주 · 김진양 · 강회백 · 이첨 · 성석린
<rowcolor=#670000,#fedc89> 118권 119권 120권
조준 정도전 윤소종 윤회종 · 오사충 · 김자수 }}}
121권
<rowcolor=#670000,#fedc89> 「양리(良吏)」 「충의(忠義)」
유석 · 왕해 · 김지석 · 최석 · 정운경 홍관 · 고보준 · 정의 · 문대 · 조효립 · 정문감
<rowcolor=#670000,#fedc89> 「효우(孝友)」 「열녀(烈女)」
문충 · 석주 · 최루백 · 위초 · 서릉 · 김천 · 황수 · 정유 · 조희참 · 정씨 · 손유 · 권거의 노준공 · 신씨 · 윤구생 · 반전 · 군만 유씨 · (현문혁의 처) · (홍의의 처) · (안천검의 처) · (강화부 세 여인) · 최씨 · 배씨 · 문씨 · 김씨 · 안씨 · 이씨 · (권금의 처)
122권
{{{#!wiki style="margin: -16px -11px"<rowcolor=#670000,#fedc89> 「방기(方技)」 「환자(宦者)」 「혹리(酷吏)」
김위제 · 이녕 (이광필) · 이상로 · 오윤부 · 설경성 정함 · 백선연 · 최세연 · 이숙 · 임백안독고사 · 방신우 · 이대순 · 우산절 · 고용보 · 김현 · 안도치 · 신소봉 · 이득분 · 김사행 송길유 · 심우경 }}}
123권 「폐행1(嬖幸一)」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124권 「폐행2(嬖幸二)」
윤수 윤길보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125권 「간신1(姦臣一)」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126권 「간신2(姦臣二)」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wiki style="margin: -16px -11px"<rowcolor=#670000,#fedc89> 127권 「반역1(叛逆一)」 128권 「반역2(叛逆二)」 129권 「반역3(叛逆三)」
환선길 · 이흔암 · 왕규 · 김치양 · 강조 · 이자의 · 이자겸 · 척준경 · 묘청 (정지상) 정중부 이광정 송유인 · 이의방 · 이의민 · 정방의 · 조원정 석린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
<rowcolor=#670000,#fedc89> 130권 「반역4(叛逆四)」 131권 「반역5(叛逆五)」
한순 다지 · 홍복원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132권 「반역6(叛逆六)」
신돈
133·134·135·136·137권
신우(우왕) (신창(창왕)) }}}}}}}}}}}}

고려 파평 윤씨의 계보도
문숙공
윤관
윤언이 문정공
윤인첨
파평▨대부인
<colbgcolor=purple><colcolor=white> 고려국 중서시랑 평장사
윤언이
시호 문강공(文康公)
본관 파평 윤씨
이름 윤언이(尹彦頤)
원로(元老)
금강거사(金剛居士)
가족 아버지 윤관
부인 광양군대부인(光陽郡大夫人) 김씨[1]
자녀 윤인첨 등 7남 4녀
사망지 개경 개성부 자택
묘지 임강현(臨江縣) 용봉산(龍鳳山) 숭복사(崇福寺) 동쪽 언덕[2]
생몰연도 음력 1090년 ~ 1149년 9월 3일

1. 개요2. 역임 관작3. 생애
3.1. 초기 행적3.2. 김부식의 정적3.3. 최후
4. 자손

[clearfix]

1. 개요

"여진은 본래 아조(我朝) 사람의 자손이기에 신복(臣僕)이 되어 누차 조천(朝天)해왔습니다. 그 호적이 모두 아조에 올라와 있는데 어떻게 거꾸로 우리가 신하가 될 수 있겠습니까?"
- 금나라의 칭신 요구에 반발하는 윤언이. 윤언이 묘지명에서 발췌.[3]

고려 중기의 문신, 정치가. 여진정벌동북 9성 개척으로 유명한 윤관의 6남이다. 당대 김부식의 강력한 정적으로, 흔히 김부식의 라이벌로는 서경파 묘청이나 정지상이 거론되지만, 사실 정지상 못지않게 중앙 정치판에서 김부식과 오랜 기간 대립한 인물은 윤언이였다.[4] 젊은 시절부터 말년까지 거의 평생을 15년 인생 선배인 김부식과 대립했다.

2. 역임 관작

윤언이 사후 추증된 관작
문산계 품계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정 3품 문산계 품계
수직 수사공(守司空) 사공은 삼공 직 중 하나다.
직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 판상서형부사(判尙書刑部事)
중서시랑평장사는 중서문하성의 4등급 차관[5]
판상서형부사는 상서성 형부의 장관
훈위 주국(柱國) 2등급 훈위
시호 문강공(文康公) 김부식과의 대립 때문에 배향공신이 되지 못했다.

3. 생애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충선왕 제정 재상지종 15가문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태후 가문
경주 김씨
순경태후
정안 임씨
공예태후
경원 이씨
인예태후
안산 김씨
원성태후
당성 홍씨
명덕태후
재상 가문
언양 김씨
김취려
철원 최씨
최유청
해주 최씨
최충
공암 허씨
허재
평강 채씨
채송년
청주 이씨
이자림
황려 민씨
민영모
횡천 조씨
조영인
파평 윤씨
윤관
평양 조씨
조인규家
}}}}}}}}}
윤언이의 가족관계[6]
5대조 윤신달(尹辛達)[7]
고조부 미상[8]
증조부 윤선지(尹先之)[9]
조부 윤집형(尹執衡)
윤관(尹瓘)
형제 윤언인(尹彦仁)
윤언순(尹彦純)
윤언식(尹彦植)
윤언민(尹彦旼)
윤언영(尹彦榮)[10]
윤대원(尹大原)[11]
[출가]
[출가]
파평▨대부인 윤씨[14]
부인 광양군대부인(光陽郡大夫人) 김씨[15]
자녀 장남 윤인첨(尹鱗瞻)[16]
차남 윤자양(尹子讓)[17]
삼남 윤자고(尹子固)[18]
사남 윤효돈(尹孝惇)[19]
오남 윤돈신(尹惇信)[20]
육남 윤돈의(尹惇義)
칠남 파평 윤씨
장녀 파평 윤씨
차녀 파평 윤씨
삼녀 파평 윤씨
사녀 파평 윤씨[21]

3.1. 초기 행적

윤관은 부인 인천 이씨[22] 사이에서 일곱 아들을 두었는데 당시 고려 지배층이 대부분 그랬듯이 두 명은 출가해 승려가 되었고, 남은 아들 중 윤언이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다. 윤언이는 벼슬길에 오른 후 여진 정벌 때도 아버지를 따라 종군했고 윤관이 여진족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빠졌을 때 아버지를 모시고 분전하여 척준경의 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내기도 했다.

윤언이는 여진 정벌이 끝난 후, 과거에 급제하고 승진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했는데 인종, 정지상, 권적(權適) 등과 더불어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기를 즐겼다고도 한다.

3.2. 김부식의 정적

김부식을 위시한 정습명 등 개경파에 대항하여 윤관의천의 신법을 계승한 신법파(新法派)의 거두로서, 정지상과 함께 칭제건원을 주장한 서경파였으나 묘청처럼 급진적인 서경 천도를 내세우지는 않았다.

당대 실권자 김부식과의 악연은 윤언이의 아버지 윤관대로 거슬러올라가는데, 예종 시절 예종은 개경 영통사에 대각국사 의천의 비문을 윤관으로 하여금 짓게 했는데 그 비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영통사의 승려들이 예종에게 수정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예종은 당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지만 신참 관리였던 김부식에게 그 비문을 고치게 했다. 허나 이건 예종이 실수한 것으로, 당시 윤관은 최고위 재상에 있었고 김부식은 하급 관리였기 때문에 상급자인 윤관의 체면을 생각한다면 김부식이 이를 사양하는 것이 도리였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일개 하급 관리가 재상의 허물을 드러내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

하지만 김부식은 별 거리낌없이 이를 받아들여 윤관의 비문을 수정해버렸고, 이에 윤언이는 아버지의 체면을 구겨버린 이 행동에 김부식에게 앙심을 품었다고 한다. 뒷날 국자감에 왕이 행차하여 김부식에게 <주역>을 강론하게 하고 윤언이로 하여금 김부식 강의의 검토관 역을 맡겼는데, 윤언이는 주역에 정통했기 때문에 <고려사>에 (박학다식한) 김부식이 진땀을 흘렸다고 기록되었을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과 반론을 통해 김부식을 어전에서 망신을 주었다.

1135년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토벌군 총사령관으로 김부식이 출정을 하자 윤언이도 막료로 참가하게 되는데, 윤언이 역시 김부식처럼 문인이었음에도 무장으로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 무용담도 상당했다. 특히 화공이 특기였고 공성병기의 활용법을 잘 알고 있어서 서경성 공성전 때 화공과 공성병기를 적극 활용해서 서경성 성문을 불태우거나 건물에 타격을 입히는 등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사이가 틀어진 김부식의 견제로 인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개선 후 윤언이는 서경파 정지상 등과 어울려지냈던 것이 발목 잡혀 참소를 받아 양주(梁州)로 좌천되었다가, 이후 광주목사를 제수받았다.

이렇게 윤언이는 한직으로 좌천된 이후 고생하다, 매우 긴 사죄문(고려사 윤언이 열전 참고)을 올리고 나서야 1140년 개경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윤언이, 한유충 등이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인종에 의해 중앙 정계로 복귀하면서, 졸지에 다시 정적을 마주하게 된 김부식은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다고 직감했는지 인종에게 수차례 사직을 청했다고 하는데, 이때 은퇴를 받아들이는 대신 김부식에게 인종이 편찬하라고 명한 것이 바로 '삼국사기'였다. 윤언이는 문장이 뛰어나 주역해설서인 <역해>를 지었다고 한다.

3.3. 최후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자호를 금강거사라 하였다.

윤언이 묘지명에 따르면 의종 1년, 선군별감(選軍別監)이 되어 여러 해 미결된 전민(田民)의 송사를 모두 처리하였고, 또 군대 20만 여명을 훈련시키니 사람들이 모두 복종하였다고 한다.

의종 2년, 외직 중군 병마판사(中軍 兵馬判事) 겸 동북면 행영병마판사(東北面 行營兵馬判事) 및 삼군훈련사(三軍訓鍊士)를 수여받고 계속 군부에 나아가 군사 훈련을 주도하던 중 1149년 9월 3일 출근하다 몸이 좋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대화를 나눈 뒤 죽었다고 한다.

반면 <고려사> 및 <보한집>에 기록된 윤언이의 마지막은 많이 다르다. 은퇴한 윤언이는 자기 고향인 영평현에 금강재(金剛齋)라는 집을 짓고 살았다. 불교에 심취해 한 고승과 친하게 지냈는데 작은 의자(포암)를 만들고 먼저 죽는 사람이 의자에 앉아 죽기로 약속했다. 어느 날 윤언이가 갑자기 고승을 찾아와 밥을 먹고는 말하기를 자신이 곧 죽을 것이니 미리 언질을 주려고 왔다고 했다. 이에 고승은 의자를 건네주었고 윤언이는 자신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며 웃으며 사세구를 짓고 의자에 앉아 죽었다고 한다.

기록의 진실성이나 현실성을 따져보자면 아무래도 당대에 쓰여진 묘지명 기록이 더 신뢰는 가는 편이지만, <고려사>에도 의자(포암) 설화가 실제 역사로 기록되어 있는걸 보면 윤언이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정확하겐 특정하기 어렵다.

참고로 윤언이가 죽고 2년 뒤에 일생을 투닥거린 정적 김부식도 세상을 뜬다.

4. 자손

이후 아들 3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 중 윤인첨은 문신임에도 불구하고 무신정권기에도 재상의 직책에 오르고 상장군까지 되어 중방에 참여하는 등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부 윤관에 이어 가문에서 2번째로 배향공신에 오르는 영예도 안게 된다.

이는 윤인첨의 조부 윤관이 무신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고, 부친 윤언이는 훗날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부관참시될 정도로 당대 무신들에겐 경멸의 대상이었던 김부식 집안과 척을 졌다는 점에서[23] 무신 세력이 윤인첨을 일종의 문신 파트너로 봤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윤인첨 입장에선 무신들 눈칫밥 먹어야 되는 상황이었지만. 또 윤언이의 5남 윤돈신(尹惇信)과 윤인첨의 맏아들 윤종악(尹宗諤)은 정중부의 난 당시 사망하는 등 집안이 화를 아주 면하지는 못했다.


[1] 광양 김씨(光陽 金氏) 김약온의 딸[2] 윤언이 묘지명에 따르면 아버지 윤관의 묘지도 이 곳에 있었다고 한다.[3] 당시 권신 이자겸을 비롯한 조정 수뇌진은 금나라에 대한 사대를 결정하는데, 이에 반대하면서 펼친 의견으로 보인다. 그러다 이자겸이 숙청된 이후 서경파는 금나라에 대적하기 위해선 일단 입지가 좋은 서경으로 천도하고 국력을 일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허나 개경파는 고려의 여진 정벌 실패에서 보듯 직후 건국된 전성기 금나라에 대적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이에 인종은 처음엔 서경파의 손을 들어줬지만, 서경파가 점차 극단화되자 이에 반대했고, 연장선상에서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한다. 참고로 윤언이도 서경파였지만 묘청의 난 진압에는 참가했다. 여담으로 사실 천도론은 고려시대 내내 제기된 떡밥이기도 했는데, 수도 개경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수운로의 협소와 평야지대의 부족 등으로 인한 현실적인 도시공학적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입지도 좋고 이미 부수도로 기능하고 있던 서경 천도론이 제기된 것인데, 문제는 서경이 기병전에 특화된 북방 유목제국을 고려해볼 때, 강동 6주만 뚫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달리기만 해도 보급기지 없이 바로 도달할 수 있는 안보 위치상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서경 천도가 수포로 돌아간 뒤엔 무신정권이나 원간섭기 등의 내우외환으로 흐지부지되었다가 결국 조선시대 들어선 국방 문제도 적고 다음 입지로 꼽히던 남경으로 천도가 이뤄진다.[4] 묘청은 현대 들어 실질 여부를 떠나 '사대'와 '자주' 프레임으로 라이벌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지만 애당초 당대 김부식과는 급수 자체가 상대가 안 되는 인물이었고, 정지상과의 대립은 문학적인 라이벌(문장은 김부식, 시는 정지상 식)로 조명되지만 주로 야사에 그 일화가 전하는 편이다.[5] 오늘날로 치면 부총리급. 고려 중서문하성 평장사 직위는 네가지가 있었는데, 각각 1등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2등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3등 문하시랑평장사, 4등 중서시랑평장사이다.[6] 고려사 및 윤언이 묘지명 기준.[7] 신흥사 공신당에 초상화가 올라간 삼한공신이다.[8] 파평 윤씨 족보엔 윤선지가 고조부라고 한다.[9] 파평 윤씨 족보엔 윤금강이 증조부라고 한다.[10] 정주 류씨(貞州 柳氏) 류홍의 딸 하원군군(河源郡君) 류씨의 남편. 파평 윤씨 족보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윤언식의 묘지명에 쓰인 기록을 바탕으로 윤언영이 처음 이름이고 나중에 윤언식으로 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11]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에 수록된 윤관의 표문에서 등장하는 아들.[출가] [출가] [14] 장흥 임씨(長興 任氏) 임원후의 부인[15] 광양 김씨(光陽 金氏) 김약온의 딸.[16] 명종배향공신이다.[17] 직산 최씨(稷山 崔氏) 최홍재의 차남 전중소감(殿中少監) 최온(崔溫)의 딸과 혼인.[18] 남평 문씨 문공유(文公裕)의 딸과 혼인했다. 문공유는 문공원과 형제다.[19] 조계종(曺溪宗) 중대사(重大師)의 승려. 효돈은 법명.[20] 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 김단(金端)의 딸과 혼인.[21] 윤언이의 묘지명 기록에 의하면 칠남부터 사녀까지 모두 일찍 죽어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22] 이허겸의 손자 이성간의 딸로 이자연에겐 당질녀가 된다[23]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개념 없는 문신이 김부식 아들 김돈중이었다. 이후 고려판 오발사건까지 더해지며 다수의 무신들과 완전히 척을 져 무신정변 때 목이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