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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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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한국사의 경우4. 서양의 경우5. 부관참시를 당한 인물들6. 비유적 표현
6.1. 사례

1. 개요

관짝을 가르고 시체를 베다
쪼갤 부 널 관 벨 참 주검 시
  • 영어: Posthumous execution
  • 중국어: 剖棺斬屍
  • 스페인어: Ejecución póstuma

이미 죽은 사람의 죄상이 드러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극형을 내리는 걸 말한다. 일종의 고인드립. 즉 이미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이는 형벌. 죽은 후에 정치적인 이유, 혹은 살아있을 당시에 그 위세에 눌려 죄목을 따지지 못했을 경우에도 한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조선시대 사화에 벌어졌고,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영국청교도 혁명 때 권세를 잡고 독재정치를 펼쳤던 올리버 크롬웰이다.

시체의 목을 베기 때문에 부관참두(剖棺斬頭)라고도 불린다. 살아 있는 사람을 살을 발라 내 사형시키는 형벌인 능지처참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2. 상세

사실 의학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의 몸에 무슨 짓을 한다한들 당사자는 이미 죽은 몸이니 당연히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므로 이성적으로 보자면 정말 쓸데없는 뻘짓이다. 사실 인간 사회에서 이렇게 시체 훼손을 하는 행위는 당사자보다는 이 행위로 인해 어떤 방향으로든 정신적 영향을 받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1] 일종의 쇼맨십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부관참시는 실질적인 형벌로서가 아닌 정치적인 행위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전근대사회에서도 시체훼손은 금기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이렇게 시체를 훼손하는 행위는 되도록 금기시하는 편으로, 시체 훼손 행위를 해당 시체의 주인인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다 해서 법으로도 금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관참시는 정치적 리스크가 상당히 큰 행위로 부관참시를 하는 사람이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쥘 수가 있을만큼 강하거나 시체 주인이 알고보니 굉장히 사악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3. 한국사의 경우

신라의 반란자 김헌창김헌창의 난을 일으켰으나 웅진성이 포위되고 패색이 짙자 자결하고 부하들이 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머리와 몸을 베어 따로 묻었지만, 웅진성을 함락한 신라군은 김헌창의 시체를 수색해 모아서 다시 베었다고 한다.

부관참시로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김종직의 〈조의제문〉인데 이것은 패왕 항우에게 결국 왕좌를 넘겨준 초나라 의제를 빗대어 세조의 왕위 찬탈을 은유적으로 비난한 것으로, 연산군 4년에 유자광이 이를 연산군에게 알리는 바람에 일이 터졌다. 김일손, 권오복 같은 김종직의 제자들이 거열형을 당했으며 김종직 자신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묘가 파해쳐져 시체는 토막나고 효수되었다. 오늘날이면 몰라도 전근대 시절 김종직의 세조에 대한 공격은 그 어느 왕이라도 묵과할 수 없는 왕실 능멸이었다.

그밖에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정여창과 생육신 중 한사람이었던 남효온도 연산군 10년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 당했다.[2] 또한 세조의 일등 참모였던 한명회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었다 해서 무덤이 파헤쳐져 시체가 토막나고 한양 저잣거리에 목이 효수되었다. 한명회와 동시대를 살았고 성종 대 고관이었던 김국광이 부관참시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명회가 부관참시된 경우는 천벌이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정의를 여실하게 보여준다.[3]

한편 연산군 때 공조판서로 있었고 《용재총화》의 저자이자 세조의 사람이기도 했던 성현도 세상을 떠난 지 수개월 후 일어난 갑자사화에 시체의 목이 달아났다.[4] 그밖에도 정창손, 어세겸, 심회, 이파 등이 실록을 뒤져 어머니 윤씨를 폐위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부관참시했다. 특히 연산군이 ‘갑자육간(甲子六奸)’이라고 지목한 권신 이극균(좌의정)·이세좌(예조판서)·윤필상·성준·한치형(이상 영의정)·어세겸(좌의정) 모두 끔찍한 화를 입었다. 이들이 당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실록을 보면 뼈를 갈아 바람에 날려버리는 쇄골표풍(碎骨瓢風)이나 집을 헐어 연못을 만드는 파가저택(破家瀦澤) 등의 형벌도 자행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안습.

4. 서양의 경우

철기대를 이끌고 청교도 혁명에 승리하여 찰스 1세의 목을 치고, 의회파의 영웅이 된 올리버 크롬웰도 혁명 후 독재정치를 펼치게 된다. 사후 아들인 리처드 크롬웰에게 권력을 이양하려 하다가 장로파가 왕정복고를 실행, 찰스 2세를 옹립하면서 한 때 호국경이었던 크롬웰은 왕을 죽였다는 반역자란 죄목이 붙었고 1660년 12월 4일 의회 투표를 통해 크롬웰의 부관참시를 결정한다. 1661년 1월 30일, 그러니까 찰스 1세 처형 12주년 기념일인 바로 그날에 무덤에서 꺼내서 9시간 동안 런던의 교수대에 매달린 후 토막냈다. 시체는 매장 당시 잘 절였기 때문에 그냥은 잘 잘리지도 않아 도끼로 9번을 내리쳤다고 한다. 목은 장대에 꽂혀 웨스트민스터 성당 홀에 걸렸다.

뱀발을 더 붙이자면, 이 크롬웰의 "머리"는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고대 유물처럼 한번 도난 당한 후 300년 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떠돌아 다니다가 결국 1960년에 이르러서야 크롬웰의 모교 케임브리지 시드니 서식스 대학에 매장되었다. 크롬웰의 머리가 도난당한 후 떠돌아다닐 때의 일설에 의하면 아이들의 축구공으로 쓰이기도 했다가 쪼개져 템스 강에 버려졌다는 소리도 있었다.

5. 부관참시를 당한 인물들

  • 권전 - 현덕왕후 아버지
  • 기자 - 기자가 조선에 와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기자 동래설에 따라 평양 기림리(현재의 평양 중구역) 일대에 기자릉(箕子陵)이 조성되었고 이것이 김동인의 《배따라기》에도 묘사되어 있으나, 1959년 "봉건 지배계급이 벌인 사대주의의 산물이며 조선 민족에 대한 모욕"이라는 김일성의 지시로 묘가 파해쳐지고 일대에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가공의 인물이니 상관은 없겠지만, 실존했던 인물이었다면 완벽한 부관참시.
  • 김만금[5] - 사망한 뒤 1990년대에 '용성 사건[6]의 주범이라는 이유로 김정일의 명령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졌다. 이때 김만금의 유골을 끌어내서 공개재판을 해서 논죄하고 유골에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해 가루를 내버렸다. 그리고 김만금의 가족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졌는데 억울하다고 한탄하던 가족들은 즉결처형되었다. 김만금은 몇년 후인 2000년도가 넘어서야 서관히와 함께 복권되었고 가족들은 풀려났다.
  • 김부식
  • 김옥균 - 홍종우가 먼저 총과 칼로 사살한 후 시체에서 머리만 따로 떼어 가져와 효수했고 남은 시체도 마저 조선으로 운송돼 토막났다.
  • 김종직 - 무오사화 항목 참고.
  • 김헌창
  • 남효온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 총살형 당시 집행관들의 증오심으로 인해 사살 후 몇 시간 뒤 또 다시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 린썬 -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에 의해 묘가 폭파당했고 시체는 소각되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쇼군에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 자체를 폭파시켜 없앴다. 그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아들아내 및 손자 도요토미 쿠니마츠는 물론 충성스러운 가신들도 보내주었다.
  • 루이 15세의 자녀들
  • 만력제 - 우리 입장에선 갓력제지만 객관적으로는 명 역사상 최악의 암군으로, 명 13릉 중 유일하게 지하 무덤을 발굴하는 도중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서 홍위병들에 의해 시체가 불태워졌다. 그리고 비가 내려 잿가루도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나라를 말아먹은 것에 대한 천벌을 받았다는 말이 나올 만 하다. 다만 평가는 평가고 이 때문에 만력제의 체격이나 건강 상태 등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던 증거가 영원히 사라졌다.
  • 미천왕, 미천왕비
  • 바르톨로메노 페레티 - 바르바로사에게 부관참시 당했다.
  • 사사정
  • 서태후 - 1920년대 중화민국 군벌이었던 쑨뎬잉 부대가 군 자금을 얻기 위해 묘를 도굴했다. 도굴당시 도굴꾼에 의해 시체의 옷이 벗겨지고 훼손당했다.
  •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 악비 - 역시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에게 무덤이 파헤쳐져 유골이 불에 타 가루가 되었다.
  • 앙리 4세 - 프랑스의 명군으로 왕실 묘지 역할을 하던 생 드니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었으나 프랑스 혁명 당시 분노한 군중들에 의해 역대 왕실 인사들의 묘역이 파괴될 때 시신이 함께 능욕을 당했고 시신의 머리는 잘려나가 민간에 넘겨졌다. 이후 200여년 동안 떠돌던 머리는 2010년에야 신원이 밝혀져 생 드니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 양소
  • 양후청: 명색이 서안 사건으로 공산당의 목숨을 이어준 사람인데도 가차없이 홍위병들에게 부관참시 당했다.
  • 올리버 크롬웰 - 이 분야의 끝판왕. 부관참시 후 머리만 프랑스 전국 유람을 다니면서 조리돌림을 당했다.
  • 왕징웨이 - 사망 전부터 이미 매국노로 찍혀있었기 때문에 무덤을 콘크리트로 만들어달라 유언했지만, 종전 후 장제스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렸다.
  • 왕채옥 - 장제스의 어머니. 문화대혁명 중에 당연히 홍위병들이 개떼처럼 몰려와서 무덤을 박살내고 시신을 소각했다.
  • 요나 - 2014년 7월에 이슬람 국가에 의해 무덤이 폭파당했다.기사
  • 유관순 - 이장을 앞두고 아무 통보도 없이 무덤이 파헤쳐지면서 그녀의 유해가 분실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선인들이 그녀의 유해를 받들어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삼을 가능성을 두려워한 일제에 의해 무덤이 훼손되고 유골이 파괴되었다는 설이 있다.
  • 유영경
  • 유자광 - 야사에는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 부관참시당할 것을 예지해 가짜 무덤을 만들어 피했다고 전해지나 실제로는 중종의 반대로 무산됨.
  • 응오딘지엠 - 베트남이 통일되자 이미 사망한 남베트남의 장관, 군인 등과 함께 무덤이 파헤쳤고 시체는 소각당함.
  • 이두황 - 훈련대 제1대대장으로서 을미사변에 가담하고 친일내각 하에서 전라북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남한 대토벌 작전에도 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일의 길을 걸은 매국노. 이후 1951년 전북경찰국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제2연대장으로 빨치산 토벌차 활악중이었던 차일혁경무관이 장지에 출동해 무덤을 파해치고 유골항아리를 깨부숴버렸다.[7]
  • 이세적(이적)
  • 이오시프 스탈린 - 본래 블라디미르 레닌 옆에 방부처리되어 안치되었으나, 생전에 자신과 내내 다퉜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그의 명령에 의해 강제로 화장되었다.
  • 이완용 - 같은 친일파들 사이에서도 외면당했을 정도의 악질 매국노. 관뚜껑을 덮은 명정은 그의 일가라고 오해받던[8] 사학자 이병도[9]가 태웠고, 이완용의 시신은 후손들이 화장했다는 야사가 있는데, 사실이라면 이 문서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무덤은 테러도 많이 당했다.
  • 장각 - 황보숭에게 당했다.
  • 정여립
  • 정여창
  • 정인지
  • 정창손
  • 조조 - 연암 박지원의 저서 열하일기 "구외이문(口外異聞)"에서 나오는 얘기로 건륭제가 조조의 무덤을 발견해서 시신을 참하여 한소열의 영전에 올렸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여기에 속하겠지만 이는 당대에 떠돌던 야사일 것이다. 조조 무덤 문서로.
  • 존 위클리프
  • 주전충
  • 진패선
  • 찰리 채플린 - 돈을 노린 두 명의 엔지니어에게 본인의 무덤이 도굴되었다. 이쪽은 나중에 범인들을 체포하고 유해를 되찾아 다시 안장하면서 좋게 끝났다.
  • 초나라(楚) 평왕 - 억울하게 참살당한 아버지와 형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오자서가 무덤을 파헤쳤다. 그리고 채찍 수백대를 때려서 시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발살을 냈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 굴묘편시(掘墓鞭尸)라고 한다. 다만 당대에도 이것은 부당한 행위로 받아들여졌기에 이에 대한 주변의 분노로 오자서는 적을 많이 만들었고 결국 그가 오왕 부차에 의해 처형당할 때 외면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 최진실 - 본인의 유골이 무덤에서 꺼내져 도난당했다. 이쪽도 범인이 잡히고 유골을 회수함으로써 위의 찰리 채플린처럼 좋게 끝나긴 했다.
  • 캉유웨이 -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그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거리에 끌고 다녔고 두개골을 조반유리 전시회에 전시해놓았다. 나중에 산둥성 정부가 그의 유골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 문화대혁명만 몇번째냐?
  • 토머스 베케트 - 본래 성인으로 캔터베리 성당에 모셔지던 교인이었으나, 헨리 8세가 교회랑 연을 끊으면서 겸사겸사 교회 재산도 털어갈 목적으로 360년 전에 죽은 그를 역모 혐의로 기소하고는, 30일 이내로 법정에 출두하란 명령을 내렸다. 당연히 그는 출석하지 않았고, 이후 헨리 8세는 궐석재판에서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 뒤, 캔터베리 성당에 보관 중이던 유해를 불태우고, 조문객들이 바친 헌금을 깡그리 털어갔다...
  • 포르모소
  • 포송령 - 요재지이 작가.역시 홍위병들에게 무덤에서 꺼내어져 유골이 불에 탔다.
  • 프랑수아 뒤발리에
  • 한명회
  • 해서 - 문화대혁명의 서막을 연 해서파관 사건의 주인공. 역시 홍위병들에게 시신이 훼손됐다.
  • 현덕왕후 - 세조의 장남 덕종 꿈에서 나타나서 죽게 되자 화가 난 세조는 무덤파서 관을 꺼내 유해는 망치로 부수고 소각해서 강에 버렸다는 내용이 야사에 있다.

6. 비유적 표현


이미 당할 대로 당해 재기불능인 것(사망)을 다시 관광보내는 것(참시)을 말한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승자가 패자를 다시 한 번 짓밟는 사례. 한마디로 망했어요를 더 망했어요로 만드는 것.

둘 사이의 대결에서(인기, 가격, 점유율 등등) 한 쪽이 우세한 상황으로 이긴 후 다시 한번 일을 터뜨려(추가인하, 신제품 개발 등) 진 쪽이 재기도 못할정도로 승리를 기정사실로 만드는 행위.

부관참시는 그 말 자체로, 산 사람인 상대를 '시체'로 비유한다는 뉘앙스가 있어서 사람에 따라 거북하게 받아들일수도 있다.

재기불능이 아니라 실제로 이미 죽은 사람을 비난해서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부관참시라고도 한다. 이쪽은 원래의 부관참시와 상황과 목적이 비슷하다.

6.1. 사례

  • 힛갤 아이언맨 사건
  • 오덕페이트와 액셀러레이터의 대결
  • 무한도전 특별기획전 2/웃음 사냥꾼이 간다
  • 웃음을 찾는 사람들
  • 조 패터노 前 NCAA FBS 펜스테이트 대학교 미식축구팀 헤드코치 - 2011년 11월 '미국판 도가니 사건'이라 불리는 수비코치 제리 샌더스키의 10여년에 걸친 미성년자 성폭행을 총장과 함께 묵인한 죄로 시즌중 사임한 뒤 3개월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사망 6개월 후 교내에서 동상이 철거당했으며, NCAA 측에서 패터노 감독 재임기인 1998~2011년까지 대학의 우승전력을 무효화하였다. 위의 네 경우와는 다르게 진짜로 죽고 나서 부관참시. 단 크리스 벤와나 야구, 축구, 농구의 승부조작범들처럼 범죄를 저지르고도 기록은 인정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미국에서도 대부분이기에 성범죄 은폐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 박탈은 당연하나 기록부정까지 한 건 지나쳤다는 비판도 있다.
  • 스튜디오 딘 - 페스나 본편 애니메이션언리미티드 워크스 극장판의 퀄리티가 처참한지라, 유포터블페이트 제로, 언리미티드 워크스 애니메이션에 비교되며 두고두고 까였다. 다만 스튜디오 딘의 경우 스폰서의 부재와 타입문의 지원이 부족했고, 거기서도 어떻게든 뽑을건 그럭저럭 뽑았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 페이커& 제드 미러전 솔킬 - HOT6 Champions Summer 2013 결승 5세트에서 미드라인에서 혼자 스플릿 푸쉬를 하다 타워에 맞아 피가 얼마 남지 않은 페이커의 제드를 잡기위해 류의 제드가 선궁을 썼으나 페이커가 화려한 컨트롤로 류를 역관광시켰다. 이 장면은 당시 실시간으로 국내외에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잊을 만하면 기사, 칼럼, 롤 명장면 영상 모음 등에서 등장하여 그 때마다 '오늘도 류의 제드는 죽습니다.' '그만해 류의 라이프는 이미 제로라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죽은 제드' 와 같은 드립이 댓글로 달린다. 이러한 사정으로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이 장면은 꾸준히 조회수가 올라가 2016년 6월 기준 250만 조회수를 넘겼다. 해당 영상.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류의 제드는 또 한번 죽는다
  • 홍명보호 - 2002 팀 동료들에게 까이는 것도 모자라 본인이 쓰지도 않은 선수들로 승리한 맥콜라리에게 부관참시당했다. 거룩하신 효멘의 애정담긴 예언을 씹은 대가는 가혹했다.
  • 요구르팅
  • 국가모독죄(형법 제104조의2) : 1975년 제정 당시부터 비판받았던 조항이었고, 민주화 이듬해인 1988년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처벌받은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므로 이들은 훗날 위헌심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위헌을 선고하였다.
  • 갤럭시 노트7 : 폭발 사고로 인한 단종 이후 고객지원 사이트에서 펫네임을 날려서 그 폰을 없던 폰으로 만들었다. 또한 주기적으로 킬 스위치를 가동하여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노트7을 영원히 충전할 수 없게 만들었다.


[1] 가해자들에게는 고인을 욕보였다는 만족감, 고인과 연관 있는 사람들에게는 경각심과 위협감을 불러일으키는 등[2] 남효온은 생전에 소릉 복위를 줄기차게 주장한 탓에 연산의 눈에 찍혔다. 여기서 소릉은 단종의 친모 현덕왕후 권씨의 능으로 세조가 파헤쳤다.[3] 사실 김국광은 전화위복이 된 경우. 김국광의 아우 김정광과 사위 이한의 부정 사건으로 계속되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사직했기 때문이다. 폐비 윤씨 사건 당시에는 관직에 있지 않아 관여하지 않았기에 운좋게 피했고, 죽어서도 무사했다. 홍달손, 홍윤성, 신숙주 등은 모두 50대- 600여년 전 그때 기준으로는 그리 단명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아까운 나이에 일찍 졸한 셈이다. 개망나니였던 양정은 다름아닌 주군 세조에게 선위를 요구하다 죽었다.[4] 이 집안은 아들 성세창마저 불운에 휩싸였다. 성세창은 명종시기 윤임 일파로 몰려 윤원형의 미움을 사 유배 후 비참하게 죽었다.[5] 북한의 농업상이었으며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가서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소련에도 유학을 다녀왔다. 1945년 노동당 평안남도 안주읍 위원장을 시작으로 북한 정권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1953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평양이 한미 연합군에 의해 점령되기 전에 만경대에 있던 김일성 선친들의 유해들을 옮기기 위해 직접 자원했다. 그는 김일성의 허가를 받아 해군 1개 대대를 이끌고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며 휴전 후 다시 만수대로 옮겼다. 1959년 최고인민위원회 제2․3․5기 대의원,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농업위원회 위원장, 부수상, 노동당 중앙위원회 농업부장, 중앙인민위원회 위원 등 요직을 역임했고 1973년 9월 정무원 부총리 및 농업위원회 위원장직에서 해임되었다가 복귀했다. 1984년 사망하고 평양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었다.[6]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특수기지에서 훈련을 받은 최고사령부 타격대 요원들이 평양 용성에 거주하며 때를 기다리다 잡혔다는 사건이다. 대표적인 날조극으로 이 때 숙청된 대상도 대부분 고령의 당 간부들이었는데 이미 죽었거나 나이가 들어 집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을 끌어내어 공개처형했다. 이 때 비료를 개인 목적으로 빼돌렸다는 혐의로 처형된 중앙당 비서 서관히(서관희) 이외에 2만명이 대량 숙청된 심화조 사건도 있다.[7] 일본식으로 장례를 치뤄서 항아리에 납골해놓은 상태였다고. 그말인즉 조선식으로 관에 넣어 묻었다면 실제 부관참시도 이루어졌을 것이다.[8] 본관이 같은 우봉 이씨지만, 이완용과는 촌수가 멀다.[9] 아들은 이장무 전 서울대학교 총장,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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